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겨울나무 Dec 26. 2022

내가 어렸을 때는( 10 )

[길고 짧은 것은 실제로 견주어 보아야]

“……!”     


난 반장한테 발로 걷어차인 궁둥이가 몹시 아팠다. 하지만 더 아픈 건 궁둥이가 아니었다. 이렇게 맞으면서도 반장이 무서워서 ‘끽’소리 한마디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참고 있는 나 자신이 몹시 비굴하고 굴욕적이며  더 고통스러웠다.      


조금 뒤, 줄 앞으로 가서 인솔을 하고 있던 반장이 다시 내게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이번에도 다시 나의 궁둥이를 발로 힘껏 걷어차며 여유만만한 표정으로 어깨까지 으쓱거리며 입을 열었다.      

 

얀마, 너 이따가 보자고 하더니 왜 가만히 맞고만 있는 거야, ?”     


……!”     


난 이번에도 아무 말도 못하고 그냥 참고만 있었다. 그냥 참고만 있는 게 아니라 언제 또 당하게 될지 모르는 두려움에 은근히 부르르 떨고 있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후회가 막심하였다.


이렇게 당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왜 아까 집에 갈 때 보자는 말을 했던가!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어서 도로 담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여무만만한 표정으로 나의 궁둥이를 함껏 걷어찬 반장은 다시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가서 아이들을 인솔하고 있었다. 언제 또 내게로 달려와서 공격하게 될지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내 뒤에 서서 따라오고 있던 친구 하나가 몹시 속이 상한다는 듯 내 책보를 강제로 빼앗더니  속삭이듯 조용한 목소리로 나에게 재촉을 하였다.      


, 너 바보니? 왜 그렇게 맞으면서 가만히 있는 거야? 내가 네 책보를 들고 있을 테니 이번에 또 그러면 덤벼 보란 말이야. 알았지?”     


내가 무방비 상태도 일방적으로 맞고만 있는 꼴이 얼마나 바보스러워 보였으면 그가 내 책보까지 빼앗으며 그런 말을 하게 되었을까!     

 

난 그 친구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하지만 난 절대로 반장과 싸울만한 용기가 없었다. 아니 꿈속에서라도 그럴만한 용기가 없었다. 섣불리 건드렸다가 오히려 뭇매를 맞을 것이 불을 보듯 뻔했기 때문이었다.     


그러기에 싸움을 붙이고 있는 그가 오히려 마음의 부담이 되고 말았다. 반장이 앞으로 얼마나 더 나를 괴롭힐지 모르지만, 차라리 오늘은 그냥 맞고 있는 게 나는 훨씬 더 마음이 편할 것만 같았다.     


알았어. 또 한번 궁둥이를 걷어 차면 덤벼볼게.”      


그러나 그의 계속되는 독촉에 난 자신도 모르게 그만 이렇게 대답하고 말았다. 그리고 곧 나도 모르게 다시 후회가 막심하게 되었다. 왜 감당도 못할 일을 해보겠다고 자신도 없는 말을 했던가! 그런 생각에 나의 불안은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그 뒤에도 반장의 발길질은 몇 차례 더 계속되었다. 그러면 그럴수록 내 책보를 들고 있는 친구의 독촉은 점점 더 심해졌다. 아마 그러는 사이에  다섯 번째 궁둥이를 맞았을 때였나보다.      


그곳은 마침 시멘트로 만든 다리가 있는 길 위를 우리 마을 학생들이 줄을 지어 가고 있던 중이었다. 난 드디어 나 자신도 모르게 친구의 독촉을 이기지 못하고 떨리는 마음으로 그만 반장 앞으로 나서게 되었다. 친구의 독촉에 의해 어떨 김에 나서기는 했지만, 순간 눈앞이 보이지 않고 캄캄했다.     


난 마침내 반장 앞에 서게 되었다. 그리고 순간 자신도 모르게 있는 대로 두 손의 힘을 다해 반장의 목을 잡고 밀어버리게 되었다.      


허어, 아니 그런데 이게 웬 일이란 말인가!’     


이게 도대체 꿈인가 생시란 말인가. 순간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았다.


지금까지 무적의 용사처럼 힘이 세고 대단한 줄로만 알았던 반장이었는데, 그리고 틈만 나면 나를 괴롭히던 반장이었는데 이렇게 쉽게 길바닥에 벌렁 나가자빠지다니! 그야말로 어이가 없었다.    

  

난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재빨리 길바닥에 보기 좋게 나가자빠진 반장의 배에 덥썩 올라타고 말았다. 그리고 두 손으로 반장의 목을 힘껏 조르며 반장을 향해 흥분한 목소리로 숨을 헐떡이며 입을 열었다.   

   

너 앞으로 또 까불래? 앞으로 다시는 나를 괴롭히지 않겠다고 약속만 하면 용서해 줄 테니까 얼른 대답해 보란 말이야!”     


으음, 으으음…….”     


난 멱살을 잡은 손에 힘을 바짝 주면서 몇 번이고 이렇게 다짐을 해보았지만, 반장은 몹시 괴로운 듯 아무 대꾸도 없이 계속 신음만 토해내고 있었다. 그러자 반장과 가까운 몇몇 아이들이 배를 깔고 앉아 있는 나를 붙잡고 일으키며 말했다.      


, 뒤에서 트럭이 올 것 같으니 이제 그만 일어나!”     


그곳은 원래 자동차가 귀하던 시절이어서 어쩌다 미군 트럭이 한 대씩 지나가곤 하는 길이었다. 너무나 억울했다. 이게 어떻게 나에게 온 꿈같은 행운이었는데…….     


나는 할 수 없이 멱살을 잡은 손을 놓고 일어서며 뒤를 흘금 바라보았다. 그러나 트럭은커녕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내가 반장을 깔고 앉게 되자 반장과 친한 아이들이 못마땅한 나머지 뒤에서 트럭이 온다는 거짓말을 했다는 것을 금방 눈치로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자신과 용기가 생긴 나는 기왕에 내친 김에 다시 반장 앞으로 바짝 붙어섰다. 그리고 다시 멱살을 잡고 있는 힘을 다해 힘껏 밀어보았다.      


그런데 또 이건 무슨 일이란 말인가. 이번에도 반장은 전혀 맥을 쓰지 못하고 다시 뒤로 벌렁 나동그라지고 마는 것이 아닌가!


 이에 자신감이 생긴 나는 다시 반장의 배를 깔고 앉았다. 그리고 용기를 다해 주먹으로 반장의 얼굴을 몇 대 후려갈기며 소리쳤다.       


너 나한테 또 까불면 그땐 알지? 대답 좀 해봐! 알았어?”     


으음, 으으음, 어엉엉…….”     


그러나 반장은 여전히 ‘음음’ 소리만 내며 대답이 없었다. 그리고 너무나 억울하고 분했던지 결국은 엉엉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몇 차례 주먹으로 얼굴을 때린 나는 그제야 그의 배에서 여유만만하게 일어섰다.   

   

그날 그는 너무나 분하면서도 억울하고 창피했던지 아이들을 인솔하지도 않고 혼자 엉엉 울며 먼저 집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 뒤부터 그는 내가 몹시 두려웠던지 멀리에서도 나를 보기만 하면 다른 곳으로 슬슬 몸을 피하곤 하였다. 그는 지금까지 나를 보기만 하면 마치 부하를 부리듯 인간 이하의 취급을 하며 매일 괴롭히고 겁을 주던 친구였다.


그런데 그 뒤부터는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 않고 오히려 나만 보면 피하게 되었으니 한편으로는 찝찝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마름이 그렇게 편안하고 좋을 수가 없었다.       


우리 마을에서는 우리 반에 같이 다니는 친구라고는 단 한 명뿐인 그였는데 가뜩이나 약한 나를 옆에서 돌보아주지는 못할망정 왜 그렇게 오랫동안 나를 하인 취급을 하며 틈만 나면 때리고 괴롭혔는지 70년이 다 된 지금 아무리 생각해도 그의 마음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난 그 사건을 통해 한 가지 확실하면서도 커다란 교훈을 얻게 되었다. 이 세상 모든 일이 다 그렇듯. 상대방의 덩치만 보고 싸움은 해 보지도 않고 두려운 마음에 미리부터 피하거나 죽어 지낼 필요는 없다는 것을, 그리고 길고 짧은 것을 실제로 견주어 보아야 한다는 참된 진리…….    ( * )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어렸을 때는( 9 )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