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겨울나무 Dec 31. 2022

내가 어렸을 때는(11)

[뒷간까지 뒤지는 무서운 놈]

6학년으로 올라가게 되자 오후 늦게까지 학교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 많았다. 그때만 해도 중학교 입시제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매일 해가 어둑어둑해져서야 학교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다 보면 금세 캄캄한 밤이 되곤 하였다.      


그러기에 선생님은 반 아이들 전원을 중학교에 합격시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 안간힘을 다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가르친 학생들의 합격률에 따라 그것이 곧 그 선생님의 실력으로 평가되었기 때문이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가르친다고 해야 고작 가르친 것을 학생들이 잘 이해하지 못할 때마다 매로 다스리며 몇 번이고 반복하며 가르치는 일 외에 달리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선생님이 심할 정도로 매질을 한다고 해도 학생들이나 학부모들 역시 그 모두가 마치 순한 양이 된 듯 그 어떤 불평이나 군소리 없이 잘 따랐다.      


저녁 늦게까지 학교 공부를 마치고 나면 나는 시오리나 되는 제법 먼 거리를 걸어서 집으로 돌아와야 하였다. 그리고 인가도 별로 없는 캄캄한 벌판길을 혼자 걸어서 집으로 돌아온다는 것은 여간한 배짱이 아니라면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그때 다행히 우리 반의 네 명의 학생이 집이 같은 방향이어서 서로 의지가 되었다. 우리 집 바로 이웃에 살고 있는 반장, 그리고 우리 마을에서 조금 더 거리가 떨어진 이웃 동네에 사는 두 친구까지 모두 네 명이 한 반이 되어 서로 의지하며 같이 다니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도 학교 공부를 끝내고 네 명이 캄캄한 벌판길을 지나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그리고 삼거리에 도착했을 때의 일이었다. 늘 그랬듯 삼거리에 도착하면 나와 반장은 우리 마을로, 그리고 나머지 두 명은 집이 조금 더 멀어서 삼거리에서 헤어지곤 하였다.      


그날도 여느 때와 같이 삼거리까지 와서 막 헤어질 때의 일이었다.     


철썩!”     


그때 느닷없이 철썩하는 소리와 함께 내 얼굴에서 불이 번쩍 날 정도의 고통스러운 충격이 일어나고 말았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뺨인지 머리통인지 얼른 분간을 할 수 없었지만 몹시 고통스럽고 아팠다.     

 

순식간에 내 머리통을 무언가가 때린 것은 분명하지만, 뭐가 그랬는지 얼른 알아차릴 수가 없었다. 난 자신도 모르게 급히 아픈 뺨과 머리에 손을 갖다 대며 어떻게 된 일인지를 알아보기 위해 본능적으로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아하! 그제야 범인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집이 조금 더 먼 친구 하나가 갑자기 아무 이유도 없이 내 머리통을 힘껏 때리고 나서 재미있다는 듯 낄낄거리고 웃으며 저 멀리 도망을 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 친구 역시 전부터 나를 우습게 여긴 나머지 나를 볼 때마다 심심하면 나를 한 대씩 때리고 도망치곤 하던 또 하나의 무서운 적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너무 약이 오르고 분해서 그냥 참고 있을 수가 없었다.      


순간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 나도 모를 일이다. 분을 참다 못한 나는 갑자기 어깨에 메고 있던 책보를 벗은 다음 땅바닥에 내동댕이 치고 말았다. 책보만 던진 것이 아니었다. 신고 있던 고무신까지 모두 벗어 버린 채 맨발로 엉엉 소리 내어 울면서  죽기 살기로 추격하며 쫓아가기 시작했다.   

  

뒷간까지 뒤지는 아이     


야 이 ㅅㄲ야! 너 거기 서 있지 못해!! 분잡히기만 하면 당장 죽여버리고 말 거야!”     


이미 캄캄한 밤이었다. 한 치 앞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캄캄한 밤이어서 급히 도망치는 그 친구의 모습이 전혀 눈에 보일 리가 없었다.


그러나 난 서 있으라고 연신 목청껏 소리소리 욕설을 내뱉으며 여전히 그의 뒤를 따라 미친 듯이 힘껏 쫓아가고 있었다. 워낙 화가 크게 나서 눈이 뒤집힐 정도였다.


그 친구의 집은 우리 집보다 약 1키로 이상은 더 가야 한다. 난 엉엉 소리내어 울면서 그 집까지 달려간 나는 대문을 벌컥 열어젖히며 그 집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대문이 요란스럽게 벌컥 열리는 소리에 마침 그 친구의 어머니가 눈이 둥그렇게 된 채 깜짝 놀란 얼굴로 나를 맞이하였다.  


아니 너 웬일이니?”     


◌◌이 그 ㅅㄲ 어디 있어요?”     


우리 ◌◌인 아직 집에 안 왔는데 무슨 일이 있었니?”     


거짓말 마세요. 그 ㅅㄲ 아까 벌써 분명히 집에 왔단 말이에요.”     


난 악에 받쳐 예의도 없고 눈에 뵈는 게 없었다. 그래서 가쁜 숨을 헐떡이며 무례하게 대답하기가 무섭게 급히 그 집 방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미처 승낙을 받을 겨룰도 없이 여기저기 샅샅이 찾아보게 되었다.


하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이미 집에 와서 방에 숨어 있어야 할 친구의 모습은 그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방을 뛰쳐나와 이번에는 부엌으로 뛰어들어갔다. 부엌에도 없었다. 다음에는 뒤꼍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뒤꼍 여기저기를 열심히 뒤져 보았지만, 그곳에서도 눈에 띄지 않았다.      


분명히 먼저 집으로 도망쳐 왔는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뒤꼍에서 도로 나온 나는 이번에는 급히 대문 밖으로 뛰쳐나왔다. 혹시 뒷간에 숨었나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그때는 어느 집이나 그랬듯 그 집 뒷간 역시 대문 밖 바깥마당 저 멀리 건너편에 자리 잡고 있었다.    

  

마침내 뒷간 문을 활짝 열고 한동안 찾아보았다. 그런데 그곳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분명히 먼저 도망쳐 왔는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너무나 분하고 억울했다. 눈에 보이기만 하면 이번에야말로 그냥 두지 않고 성이 풀릴 때까지 마음껏 분풀이를 했을 텐데……!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너무나 분하고 억울했지만, 곧 발길을 돌리고 말았다. 그제야 조금 전에 길바닥에 아무렇게나 동댕이쳐버리고 온 책보와 고무신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사방은 아까보다 더 캄캄했다.


분을 삭이지 못한 나는 여전히 징징 우는 소리를 내며 이번에는 삼거리를 향해 도로 급히 달려가기 시작했다.   

   

마침내 숨을 헐떡거리며 삼거리에 도착했다. 그런데 이건 또 무슨 변이란 말인가!     


캄캄하긴 했지만 내가 동댕이쳐 버린 책보와 고무신은 곧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심부름으로 들고 다니던 도시락이 그만 종잇장처럼 납작하게 찌그러지고 말았던 것이다. 노란색 알류미늄으로 된 고급 도시락이었다.    

난 그때 매일 건넌 마을에 사는 선생님의 도시락을 들고 와서 선생님의 집에 전해주곤 하는 심부름을 도맡아 하고 있었다. 선생님이 점심 식사를 끝내고 나면 으레 나한테 가지고 와서 집에 전해 달라고 맡기곤 했던 도시락이었다. 귀찮긴 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 도시락은 예사 도시락이 아니었다. 그때만 해도 나일론 보자기가 한창 유행을 하던 시기였다. 투명한 나일론에 예쁜 꽃무늬를 박은 도시락 보자기였지만 그나마 비교적 형편이 넉넉한 사람들만 가지고 다니던 고급 보자기였다. 그런데 그만 그 고급 보자기로 싼 도시락이 형태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납작하게 찌그러져 있는 게 아닌가!     


그때만 해도 자동차가 별로 다니지 않던 시절이었다. 어쩌다 소 달구지나 가끔 다니던 길이었다. 그런데 캄캄한 밤이어서

소 달구지가 지나갔을 것 같지는 않았다. 아마 웬 자동차가 마침 그곳을 지나가다가 하필이면 내가 동댕이쳐버린 선생님의 도시락 위를 바퀴가 지나간 모양이었다.     


이 일을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난 겁에 질린 얼굴로 다시 울상이 되고 말았다. 이렇게 된 상태로 선생님 댁에 갖다가 전해 줄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넉넉지 못한 집이어서 그와 똑같은 도시락과 나일론 보자기를 사다가 줄 형편도 아니었다.  

  

난 별 도리없이 그 도시락을 들고 집으로 가지고 가서 어머니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게 되었다. 그러자 어머니는 곧 다듬잇방망이로 찌그러진 도시락을 이리저리 두드리며 정성껏 펴기 시작했다.      


한참 뒤 도시락 모양이 어느 정도 갖추어지긴 했지만 아무래도 멀쩡한 제 모양을 갖춘다는 것은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군데군데 찢어진 나일론 보자기 역시 새것처럼 제 역할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결국 어머니는 도시락과 보자기를 새로 사다가 주지 못하고 어느 정도 모양이 갖추어진 다음 어머니가 직접 선생님 댁에 가서 전해주게 되었다.    

  

그때 그 사건으로 인해 나에게는 두 가지 큰 변화가 생기게 되었다.      


첫째, 선생님은 그다음부터 절대로 나에게 도시락 심부름을 시키지 않고 다른 아이들에게 시키게 되었다.


물론 그때 찌그러진 도시락은 버렸는지 엿장수를 주었는지는 모르지만, 그 대신 다른 도시락과 나이롱 보자기를 새로 구입해 가지고 다니게 되었다. 선생님을 볼 때마다 어색하고 민망하기는 했지만, 귀찮은 심부름을 안 하게 되니 마음은 참 편했다.  

    

둘째, 지금까지 나를 괴롭히던 아이들이 차츰 줄어들게 되었다.      


도시락을 찌그러뜨린 그다음 날, 나를 때리고 도망쳤던 그 친구와 학교에서 만나 어떻게 끝을 맺게 되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어쩌다 다른 아이들이 나를 괴롭히는 모습을 볼 때마다 그 친구가 다가와서 나를 괴롭히려는 친구에게 이렇게 타이르곤 하였다.   

   

너 이놈 함부로 건드리 마라. 얘는 한번 화가 나면 너의 집 뒷간까지 찾아와서 뒤지면서 죽기 살기로 덤벼드는 무서운 놈이란 말이야. 알겠어?”     

 

어쨌든 결과는 잘된 일인 것 같다. 그 삼거리 사건 이후 친구들이 겁을 먹어서 그런지 나를 보기만 하면 괴롭히던 아이들이 하나둘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결국 나에게는 전화위복이라고나 해야 할까?( * )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어렸을 때는( 10 )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