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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나무 Jan 03. 2023

내가 어렸을 때는(13)

[엉터리로 학예회에 출연하다]

아마 5학년 말쯤이었나 보다. 


전쟁으로 인해 학교가 모두 불에 타버리고 모든 게 엉망인 상태였음에도 학예회를 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학예회는 그나마  두 개 교실이 불에 타다 남아 있었는데 그 교실 두 개를 트고 그곳에서 학예회를 한다고 하였다.      


그땐 대부분 미닫이로 교실 칸을 막고 사용하다가 졸업식이나 학예회 행사 같은 것을 할 때는 미닫이를 트고 두 개 교실을 강당으로 이용하곤 하였다.    

 

학예회 종목은 대부분 독창이나 합창, 그리고 무용 등이 있었는데 여선생님 두 분이 반마다 돌아다니면서 학예회에 나갈 주인공을 선발한 다음 시간이 날 때마다 연습을 시키곤 하였다.    

 

여선생님들은 우리 반에 와서도 학예회에 나갈 사람을 뽑았다. 평소에 노래를 좀 잘한다는 아이들을 누군가가 지명하는 대로 대충 뽑곤 하였던 것 같다. 나는 친구들이 나를 지명해 주기를 은근히 가슴을 졸이며 속으로 기대하고 있었지만, 친구들은 야속하게도 나를 뽑아주지 않았다.     

    

내가 학예회 대표로 뽑히지 않은 게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학예회는커녕 그때까지만 해도 친구들이 보기만 하면 우습게 여기고 괴롭힘을 당하며 숨을 죽이고 지내던 나였으니 학예회에 뽑히지 않은 게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난 그게 아니었다.   

   

치이제까짓 것들이 노래를 잘하면 얼마나 잘 한다고!’     


난 학예회 대표로 뽑힌 아이들보다 마음 속으로는 내가 훨씬 더 잘한다고 생각했다. 그러기에 나를 지명해 주지 않는 반 친구들이 밉고 야속했다. 야속하고 미운 것은 여선생님들도 마찬가지였다. 난 반드시 학예회에 나가야 한다는 생각과 마음이 어디서인지 불끈 치솟아 올랐다. 


나에게 도대체 어디서 그런 용기가 솟아났을까.    

 

그날 저녁이었다. 난 학교 공부를 마치기가 무섭게 집으로 돌아와서 책보를 내던지고는 곧 여선생님 댁으로 발길을 옯겼다. 그때 여선생님은 우리 집에서 좀 떨어진 어느 집에서 자취를 하고 있었다.   

사방은 이미 땅거미가 내리면서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선생님 댁으로 간 나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을 보기 시작했다. 차마 집 안으로 들어갈 용기는 없었다. 그래서 선생님이 언젠가 밖으로 나오기만을 뚫어지게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한동안 기다리던 끝에 마침내 선생님이 두 손으로 대야를 들고 나오는 것이 눈에 띄었다. 아마 대야에 담긴 물을 바깥 마당 가에 쏟아버리기 위해 잠깐 밖으로 나온 것이 틀림없었다. 난 기회를 놓치지 않고 급히 선생님 앞으로 불쑥 다가갔다.      


“어머! 깜짝이야. 네가 웬일이니?”      


어두컴컴한 속에서 내가 갑자기 불쑥 나타나자 선생님이 깜짝 놀란 표정이 되어 내게 물었다. 난 때를 놓치지 않고 용기를 내어 얼른 대답했다.      


선생님저도 학예회에 꼭 나가고 싶어요.”      


뭐어어네가 학예회에 나가겠다고네가 학예회에 나가서 무얼 하겠다는 건데호호호…….”    

 

선생님은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약간 비웃음 섞인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저는 노래도 잘하고 발 댄스도 다른 아이들보다 더 잘해요그러니까 이번 학예회 때 나가서 둘 중에 한 가지를 꼭 하고 싶거든요.”     


……?”     


선생님은 너무나 어이가 없기도 하고 귀찮았음인지 아무 대꾸도 하지 못한 채 한동안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여기서 발 댄스란 그 당시에 한창 유행하던 탭 댄스(tap dance)를 일컫는 말이었다. 탭 댄스는 아마 그 당시에 미군들이 하는 것을 보고 누구나 흉내를 내며 유행을 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선생님은 너무나 어이가 없었음인지 한동안 입을 열지 못했다. 그러다가 귀찮았음인지 다시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가 정 그렇다면 내일 학교에 가서 얼마나 잘하나 보자구네가 하는 것을 보고 나서 생각해 볼게알았니?”      


감사합니다얏호오~~~!!” 


난 몇 번이고 허리를 굽혀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는 신바람이 나서 집으로 달려왔다.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세상 모두를 독차지하게 된 느낌이었다.      

  

그다음 날이었다.      


너 선생님이 강당으로 빨리 오래.”     


우리 반 친구 하나가 갑자기 학예회를 담당한 어제 그 선생님이 강당으로 오라는 말을 전해 듣게 되었다. 그처럼 학수고대하던 찬스가 드디어 온 것이었다.  

그러나 난 그 순간부터 너무 긴장했음인지 갑자기 가슴이 사정없이 뛰기 시작했다. 곧 숨이 멈출 것처럼 뛰고 있는 가슴을 겨우 진정하면서 강당으로 향했다.      


강당에 도착하자 선생님은 우선 노래 실력부터 확인해 봐야 한다며 무슨 곡을 부를 것인지를 물었다.   

  

난 사실 지금까지 학교에서 배운 노래라고는 고작 1학년 때 학교 종이란 동요, 그리고 애국가를 배운 기억이 전부였다.      


남달리 몸이 너무 허약해서 결석을 하는 날이 많기도 했지만, 2학년 때 6.25 동란을 겪느라고 학교를 못 다녔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어디서 누구한테 배웠는지는 몰라도 그때 난 국립 경찰가만큼은 나름대로 자신 있게 부를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갑자기 가슴이 너무 뛰고 떨리며 숨이 차서 도무지 부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잠깐 밖에 나갔다가 와서 불러보겠다고 선생님에게 양해를 얻게 되었다. 그러자 선생님은 얼른 그러라고 승낙해 주었다.      


운동장으로 나온 나는 그 길로 운동장을 마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뛰고 나면 어느 정도 뛰는 가슴이 진정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운동장을 한 바퀴 힘껏 돌았다. 그래도 진정이 되지 않았다. 계속해서 두 바퀴를 돌고 세 바퀴를 정신없이 돌았다. 그래도 진정이 되지 않았지만 아까보다는 조금 나아진 것 같았다. 그러나 마냥 운동장만 돌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연거푸 세 바퀴를 돌고 난 뒤에야 숨을 헐떡이며 강당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는 선생님 앞에서 용기를 내어 ‘국립경찰가를 목청껏, 그리고  씩씩하게 부르기 시작했다.     


  ♬  무궁화 아름다운 삼천리 강산

      고귀한 우리 겨레 살고 있는 곳

      영광과 임무를 어깨에 메고  

      이 땅에 굳게 섰다 민주 경찰 ♬      


 어디서 그렇게 씩씩한 소리와 용기가 나오게 되었는지 나도 모를 일이다. 선생님도 끝까지 내가 노래 부르는 소리를 듣고 나더니 매우 만족하다는 듯 밝게 웃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히야정말 잘하는 걸! 그만하면 됐어. 그런데 너 그 노래 어디서 배웠니? 조금 더 열심히 연습해서 너도 학예회에 출연하게 해줄게.”     


난 그만 뛸 듯이 기뻤다. 하늘을 날을 것처럼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그다음 날부터 선생님의 풍금 반주에 맞추어 열심히 연습을 한 끝에 마침내 원하던 대로 학예회에 출연하여 많은 친구들과 손님들이 모인 자리에서 마침내 독창으로 국립 경찰가를 자랑스럽게 부르게 되었다.     


노래만 부른 것이 아니었다. 엉터리이긴 했지만, 몇몇 친구들과 같이 ‘탭 댄스(tap dance)’ 묘기도 마음껏 발휘해 보기도 하였다. 우리들이 탭 댄스를 치는 동안 학생들과 손님들, 그리고 선생님들은 배꼽을 잡으며 마음껏 웃고 있었다. 댄스를 잘 쳐서가 아니라 댄스를 치는 우리들의 모습이 너무나 난장판이며 엉터리여서 우스웠기 때문이었다.    

난 지금도 가끔 그때를 생각해 보며 나 자신도 모르게 슬그머니 웃음이 나오곤 한다.      


정말 나에게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을까!’      


그때 학예회를 지도했던 여선생님, 그분은 아직도 93세로 생존해 계시며 가끔 연락을 주고받곤 한다. 그리고 그때 이야기를 꺼내기만 하면 너무나 재미있는 추억이라는 듯 그때마다 깔깔 소리내어 웃으며 박장대소를 하곤 한다. 


이렇게 멋지면서도 재미있는 추억을 한 가지 만들게 되었으니 그때 용기를 내어 학예회에 나가길 정말 잘한 것 같다. ㅎㅎ(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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