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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나무 Feb 20. 2023

불가능(不可能)?

[이 세상에는 가능한 일이 더 많지 않을까?]

독립선언문(獨立宣言) 대회     


50년대 말경. 아마 고등학교 2학년 학기초쯤이었다고 기억한다.     

  

어느 날 담임 선생님은 그날따라 갑자기 우리들에게 말도 안 되는 숙제를 내주게 되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 반뿐만이 아니라 고등학교 재학생 모두에게 그와 똑같은 숙제를 내주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혹시 그 당시에 다른 학교에서도 그처럼 무리한 숙제를 강요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무리한 숙제란 다름이 아닌 독립선언문 때문이었다. 갑자기 내일까지 독립선언문 전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암기해 오라고 하였다. 그리고 만일 숙제를 해오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두고 보라고 협박 아닌 협박까지 하고 있었다.      


, 말도 안 되는 소리! 당신 같으면 하루 만에 그걸 암기할 수 있겠어요?’     


그런 숙제를 내주게 되자 우리 반 친구들 모두는 농담이려니 생각하고 속으로 콧방귀를 뀌고 있었다. 전쟁이 일어난 것도 아닌데 갑자기 독립선언문 전문을 그것도 하루 만에 모두 암기해 오라니 그것은 누가 생각해 봐도 불가능하며 무리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독립선언문 전문 만이 아니었다. 독립선언문 전문 뒤에 나오는 공약삼장과 33인의 이름까지 하나도 빠뜨리지 말고 모두 암기해 오라는 숙제였으니 그 누가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누구나 그랬겠지만, 나 역시 설마 하는 마음에 그날도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독립선언문 암기는 젖혀두고 재미있는 소설책 읽기에만 빠져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다음 날 모든 수업을 마치고 다시 종례 시간이 돌아왔다.      


종례 시간에 담임 선생님은 오늘따라 굵직한 몽둥이 하나를 들고 교실에 나타났다. 그리고 매우 엄숙한 표정으로 어제 내준 숙제를 해온 사람은 손을 들어보라고 하였다. 사방을 두리번거려 보았지만, 40여 명의 학생 중에 손을 든 사람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담임 선생님의 안색이 금세 싸늘하게 굳어지더니 어제 내가 숙제를 안 해오면 어떻게 되는지 두고 보자고 했지?‘라고 하더니 모두 종아리를 걷고 책상 위에 올라서라고 하였다.     

 

우리는 그제야 겁을 먹은 표정이 되어 하나 둘씩 책상 위로 올라섰다. 종아리를 무릎 위까지 걷어 올린 채…….     


그러자 담임 선생님은 몹시 화가 난 표정으로 입고 있던 상의을 벗더니 소매까지 걷어붙였다. 그리고는 곧 몽둥이를 들고 앞에서부터 차례대로 종아리를 있는 힘을 다해 힘껏 때리기 시작했다.      


“철썩! 철썩!”     


매질을 가할 때마다 여기저기서 매우 고통스러운 비명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대부분이 종아리가 너무 아파 종아리를 잡고 울고 불며 쩔쩔매는 친구들이 많았다. 어찌나 힘껏 때렸는지 종아리가 터져서 피가 나오는 친구들도 있었다.      


담임 선생님이 이처럼 무서워 보이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다른 친구들이 매를 맞고 고통스러움에 쩔쩔매는 모습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가슴을 조이며 바라보는 사이에 드디어 내 차례가 오자 난 두 눈을 꼭 감았다.   

   

“철썩!”     


종아리에 매가 가해지자 너무나 고통스러움에 눈앞이 캄캄해지는 느낌이었다. 난 종아리에 피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매를 맞은 부분이 금세 뱀이 지나간 자리처럼, 툭 불거지며 튀어나오고 말았다. 너무 아팠다.    

  

드디어 우리 반 학생들 모두에게 종아리 한 대씩 매질을 하고 난 담임 선생님이 굳어진 표정으로 다시 협박을 하고 있었다. 내일까지 다시 기회를 줄 터이니 다시 암기해 오라며 만일 그렇지 않으면 내일은 두 대를 때리겠다고 협박을 하고 있었다. 한 대를 맞기도 이토록 고통스럽고 힘이 든데 두 대까지나 ……!     


그 시각부터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나는 물론, 우리 반 친구들 모두가 오직 독립선언문 암기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또다시 그 무서운 종아리를 맞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오직 독립선언문을 암기해야만 한다는 일념으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눌 시간도 없었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오직 독립선언문을 손에 쥔 채 암기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집에 와서도 마찬가지였다. 식구들이 뭐라고 말을 해도 귀에 들어올 리가 없다. 밥 생각도 별로 없었다. 그래서 밥을 먹을 때도 한 손으로는 밥을, 그리고 다른 한 손에는 독립선언문을 든 채, 틈틈이 암기하는 일에만 여념이 없었다. 밥이 입으로 넘어가는지, 아니면 코로 넘어가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독립선언문을 암기하는 것은 화장실에 갈 때도 마찬가지였다. 1분 1초가 아쉬웠다. 화장실에 가서 볼일을 보면서도 오직 독립선언문을 한 손에 들고 한 문장이라도 더 암기해야만 했다. 곧 내일이면 다시 여지없이 당하게 될 매질이 그만큼 두렵고 무서웠기 때문이었다.      


밤에 잠도 잘 오지 않았다. 그래서 새벽녘까지 오직 독립선언문 암기에 몰입하게 되었다.      


어김없이 그다음 날 아침이 밝았다. 아침밥도 먹는둥 마는둥 하고 학교에 가면서도 한 손에는 독립선언문을 들고 암기하기에 바빴다.      


학교에 가서 공부시간에도 하루 종일 몰래 독립선언문을 책상 밑에 든 채 암기하기에 바빴다. 그러는 동안 종례 시간이 차츰 다가오고 있었다. 쉬는 시간이었지만 밖에 나가 노는 친구들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쉴 시간에도 모두가 오직 독립선언문 암기하기에만 몰입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오늘은 모든 수업이 끝나고 종례 시간이 돌아왔다. 그러자 그처럼 불가능하게만 여겨졌던 독립선언문과 공약삼장, 그리고 33인의 이름까지 모두 암기할 수 있게 되었다. 그때 가장 어려웠던 것은 33인의 이름을 암기하는 일이었다. 다른 것은 모두 문장으로 되어 있어서 암기하기가 그나마 수월한데 33인의 이름은 암기할 때 순서를 빠뜨리기가 일쑤였기 때문이었다.   

드디어 종례 시간이 되었다. 우리들은 담임 선생님이 들어오기를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자 곧 담임 선생님이 들어왔다. 그런데  오늘은 이상하게도 몽둥이를 들고 들어오지 않았던 것이다.      


담임 선생님이 교실로 들어오자마자 우리들을 향해 묻게 되었다.      


“다들 열심히들 외웠겠지? 독립선언문을 끝까지 암기해 온 사람 어디 손 들어 봐!”     


담임 선생님의 물음에 따라 친구들이 서로 눈치를 살피며 하나둘씩 손을 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놀랍게도 50명이 가까운 반 학생들 중에 서너 명만 빼놓고 모두 손을 들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 한 가지 예만 보더라도 머리가 나쁜 사람도 머리가 좋은 사람도 오직 마음만 먹으면 안 될 일이 없겠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담임 선생님은 그제야 흐뭇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면서 다시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돌아오는 어느 날 우리 학교에서는 독립선언문 암송대회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학급 대표로 한 명씩 암송대회에 나가게 되는데 누가 나가게 될지는 며칠 더 두고 보다가 나중에 결정하겠다고 하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내가 다니는 학교는 해마다 3월달이 되면 날을 잡아 운동장에서 전교생을 모아 앉혀 놓고 교내 독립선언문 암송대회를 열곤 하였다.      


난 그때의 그 일로 인하여 한 가지 커다란 교훈과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그 뒤부터 공부하기가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큰 힘과 도움이 되곤 하였다. 이 세상에 그 어떤 힘에 겨운 일이라 해도 마음만 먹으면 안 되는 일이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닫고 그때마다 감히 다음과 같은 위인들의 명언을 가끔 상기해 보곤 한다.  

    

명장 나폴레옹은 ’내 사전에는 불가능이란 말이 없다‘라는 유명한 명언을 남겼으며, 또한 에디슨은 ’이 세상에 천재란 따로 없다. 다만 99%의 노력과 1%의 영감이 따를 뿐이다’라고 역설한 그 유명한 명언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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