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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나무 Feb 23. 2020

비싸게 팔린 집

얼마 전, 우연히 뉴스를 보다가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      


연봉 4천만 원 정도 받고 있는 월급쟁이가 44년간 열심히 저축해야 강남에 위치한 33평형 아파트를 겨우 살 수 있다는 기사를 읽은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요즘 서민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내 집 마련의 꿈을 안은 채, 오늘도 허리띠를 졸라매며 하루하루를 힘겹게, 그리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세월이 갈수록 내 집 마련의 꿈은 점점 더 멀어져 가고 있는 것만 같은 현실에 안타깝기 그지없다.


'광속에서 인심이 나온다'는 옛말이 있다. 뭐니뭐니 해도 살림살이가 넉넉해야 인심도  넉넉해져서 다른 사람들한테 따뜻한 인정도 베풀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는 뜻이리라.      

잘 모르긴 해도 해가 갈수록 국가는 계속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듯싶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오늘날, 그와는 반비례로 우리 서민들의 살림살이는 날로 어려워지면서 사람들의 인심과 인정 또한 날로 메말라가고 각박해지고 있음을 느끼면서  안타깝기 그지없다. 


어디 그뿐이랴. 


옛날에는 인간의 예절과 도리를 가장 첫째로 꼽고 열심히 배웠던 명심보감의 교훈을 잊은 채 저버린 지 꽤 오래이다. 그래서 그런지 예절은커녕 양심도 사라진 지 오래이다. 아니 양심은커녕 눈 감으면 코를 베어간다더니, 요드음 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도 자칫하면 코가 날아가는 무서운 세상이 되고 말았다. 


따라서 비록 가난한 살림살이였지만 인정과 인심만큼은 넉넉하고 훈훈했던 옛날이 문득 그리워지곤 한다.        

따라서 우리 선조들 중에 양심이 지극히 남달랐던 이야기 한 토막이 떠오르기에 잠깐 소개해 볼까 한다.      

고려 시대 때 산관 노극청이란 사람이 살고 있었다. 


'산관'이란  고려때부터 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 품계만 받고 일정한 직무가 없던 벼슬이어서 나라에서 주는 보수는 전혀 없던 이를테면 허울 좋은 벼슬에 불과했다. 


어느 날, 노극청은 갑자기 지방에 볼 일이 생겨 내려가게 되었다.      


그는 살림이 늘 빈곤하여 현재 살고 있던 집을 팔아버리고 작은 집을 얻어가기 위해 지방으로 내려갈 때 급히 집을 내놓고 내려가게 되었다. 


그러자 그가 지방으로 내려간 사이에 집을 보러 오는 사람이 있었다.      

이웃 마을에 사는 현덕수란 사람이었다. 


마침 집에 혼자 남아있던 아내는 은 열두 근을 받고 집을 팔아넘기게 되었다.     

지방 일을 마치고 돌아온 노극청은 아내로부터 집이 팔렸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아내의 자초지종을 듣고 난 노극청은 화를 벌컥 내더니 집 값으로 받은 은 열두 근 중 세 근을 들고 그 길로 급히 집을 산 현덕수를 찾아갔다.     


"내가 그 집을 살 때는 아홉 근밖에 주지 않았소. 그리고 몇 년 동안 살면서 아무것도 수리한 적이 없소. 그런데 그렇게 살고 나서 세 근이나 더 받는다는 것은 경우가 아니라 생각하오. 그래서 돈을 돌려주러 왔소이다.“     


노극청이 이렇게 설명하며 은 세 근을 내놓자, 현덕수 역시 펄쩍 뛰면서 손을 내저었다.     


"어찌 당신의 경우만 찾고 내 경우는 헤아려 줄 줄을 모르십니까? 그동안 집값이 올라 요즘 그 정도는 나가는 시세이니 그런 생각 말고 그냥 돌아가시오.”     


그러자 노극청도 지지 않고 맞섰다.     

  

"난 지금까지 양심에 어긋난 일이라곤 해본 적이 없이 살아온 사람이오. 그런데 어찌 싸게 산 내 집을 산값보다 비싸게 팔아 부당한 이익을 보란 말이오. 만일 이 세 근의 은을 받지 않는다면 난 당장 은 열두 근을 모두 돌려줄 테니, 다시는 내 집을 살 생각도 하지 마시오.“     


노극청은 화까지 내면서 단호하게 소리쳤다. 그 바람에 현덕수는 마지못해 은 세 근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는 못마땅한 표정이 되어 혼자 중얼거리고 있었다.      


"흥, 어찌 내가 당신보다 못한 사람이 되란 말이오. 어림도 없는 말씀이지.”   

  

현덕수는 노극청이 돌아가기가 무섭게 은 세 근을 가난한 이웃들에게 모두 나누어 주고 말았다.     

이 얼마나 지금의 현실과는 너무나 멀리 동떨어진 다른 세상의 이야기가 아니던가. 아마 바보가 아니면 절대로 그런 일이라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어쩌면 전혀 딴 세상의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이 이야기는 분명히 우리 조상들의 푸근한 양심을 그대로 소개한 것이다.  


이 이야기는 '동문선' 에 실려 있는 지극히 짧은 내용 중의 한 토막이다.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날로 각박해지고 메말라 가는 요즈음 우리들의 정서와 인심,     


좀 더 넉넉함과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고 정직하고 올바르게 살았던 우리 조상들의 옛이야기에 한 번쯤 귀를 기울여 보는 기회를 가져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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