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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나무 Feb 26. 2020

대학 노트 두 줄의 글

[꼬박 두 달동안 열심히 쓴 글이]

 ‘대학 노트 두 줄의 글’?      


 과거 학창 시절에 겪었던 추억의 한 토막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 


 이 일은 지금도 가끔 글을 쓸 때마다 문득 기억에서 좀처럼 잊혀지지 않는 나에 겐 큰 교훈이 다가고오곤 한다.     

   

그 당시 나는 큰 꿈을 품고 오직 시나리오 창작에 몰두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는 그 모두가 나에겐 과분했던 일장춘몽의 물거품이 되고 말았지만…….    

   

아시다시피 한 편의 극영화 대본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대략 2백자 원고지 약 3백 매에서 5백 매 가량의 원고를 써야 고된(?) 작업이라 하겠다.      


그리고 한 편의 시나리오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3, 4개월이란 긴 세월을 쉬지 않고 부지런히 써야 마침내 한 편의 시나리오를 완성하곤 하였다.     

시나리오 한 편을 쓰는데 왜 그렇게 많은 시일이 걸리느냐고 혹시 반문을 하는 분도 있을 것이다. 글쎄 그것은 각자마다 처한 환경과 개인차에 따라 차이가 날 수도 있지 않을까.   


나의 경험으로 보면 우선 전체적으로 전개될 스토리의 구상이 끝나야 그다음부터는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다시 또 여러 차례 수정을 거쳐야 했다. 

그렇게 수정 단계를 거친 뒤에는 어딘가에 응모하기 위해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새원고지에 정성껏 정서를 하다 보면 그렇게 오랜 시일이 걸리곤 하였다.      

 

그러던 어느 해 여름 방학, 나는 더 열심히 써보자는 다부진 결심을 한 끝에 마침내 전라도 친구네 집으로 내려갔다. 그 친구 역시 누구 못지않게 시나리오 공부에 열을 올리고 있는 아주 절친한 대학 동창이었다.      


그 친구의 고향은 그야말로 금방이라도 호랑이가 나올 것 같은 두메산골이었다. 


우리는 곧 친구네 집 뒷산 바위 위에 원두막처럼 생긴 간이 집을 세우기에 이르렀다. 

바닥은 멍을 깔고 지붕은 비만 맞지 않을 정도로 청솔가지로 얹었다.      

그리고 두 달간 이른 아침부터 땅거미가 내려 어두워질 때까지 열심히 글만 썼다. 후회가 안 될 정도로 정말 열심히 썼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그런 열정이 없었다. 그리고 실로 꿈많은 젊은 날의 아름다운 추억이 아닐 수 없다. 그야말로 후회하지 않을 정도의 열정을 가지고 열심히 썼기 때문이다.     


우린 그렇게 시나리오 한 편이 완성되기가 무섭게 그때마다 여기저기 응모를 하기에 바빴다. 그 결과 학창시절에 아마 그렇게 무려 대여섯 편의 글을 써서 응모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시나리오 작가!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나 혼자만의 꿈에 불과했다. 그렇게 열정을 다해 쓴 원고들이 대부분 예심까지는 통과하였지만, 정작 당선작을 발표할 때는 여지없이 낙선이 되곤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오직 시나리오에만 매달리다 보니 어느덧 3, 4년이란 긴 세월이 훌쩍 흘러가 버리고 말았다. 


다시 어느 해 여름 방학도 끝나고 개학을 맞이했을 때의 일이다. 같은 과에 재학중인 친구 한 명이 느닷없이 한 가지 부탁을 들어달라며 나에게 슬그머니 다가왔다.      

 

그는 여름 방학 내내 하루도 쉬지 않고 심혈을 기울여 가면서 열심히 글을 썼다고 하였다. 그런데 그 글을 보고 평을 좀 해달라는 부탁을 하는 것이 아닌가.      


좀 쑥스러운 이야기이긴 하지만, 나는 그 당시 잡지사에 써서 응모했던 시나리오가 몇 차례 예심을 통과했다는 것을 잡지를 통해 많은 친구들이 알게 되었기 때문에 그나마 글을 조금 쓴 줄 아는 사람으로 친구들 사이에 소문이 자자했었다. 그리고는 곧 시나리오 작가가 될 것이라며 모두 들 부러워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아직은 내가 쓰는 글을 응모를 할 때마다 떨어지는 주제에 감히 남의 글을 읽고 평을 해줄 수 있는 수준은 아니라는 것을 나 자신이 잘 알고 있기에 한 마디로 딱 잘라 거절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보다는 그렇지 않아도 난 지금 글을 쓸 시간도 늘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는 상황에서 친구의 글까지 읽어본다는 것은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두 달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쓴 글을 읽어보라니 시간도 시간이려니와 그럴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친구의 고집은 막무가내였다. 글 좀 잘 쓴다고 너무 비싸게 굴지 말고 제발 한 번만 봐 달라며 자신이 쓴 그 대학 노트를 떠맡기다시피 내게 불쑥 내밀고 있는 게 아닌가.      


나는 얼떨결에 공책을 받아들고는 그 자리에서 바로 읽어보는 척하고 건성으로 공책장을 대충 넘겨보게 되었다.      


그리고는 나도 모르게 어리둥절해진 표정이 되면서 곧 그 친구에게 묻게 되었다.    

   

두 달 내내 하루도 쉬지 않고 열심히 썼다는 글이 모두 이것뿐이냐고?     


그것도 그럴 것이 그 친구가 두 달 내내 쉬지 않고 글을 썼다는 말에 적어도 대학 노트 로 몇 권쯤의 분량은 되리라는 지레짐작을 했었다. 하지만 그가 쓴 글은 아무리 뒤져봐도 고작 대학 노트 맨 위에 두 줄 뿐이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어리둥절해서 묻자, 그 친구는 오히려 뭐가 잘 못 됐느냐는 얼굴로 되물어왔다. 그리고 곧 그의 사연을 자세히 들어보게 되었다.     


그는 일단 한 가지 글을 쓴 다음에 그 글을 어떤 낱말, 그리고 어떤 문장으로 표현해야 좋을까를 생각해 가면서 수정하고 또 수정하는 작업을 두 달 동안이나 되풀이한 끝에 마침내 두 줄의 글이 완성되었다는 설명이었다.      


나는 순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뒤늦게야 지금까지 함부로 글을 써온 나의 잘못된 습관을 반성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200매, 또는 300매에 달하는 글을 불과 두 달이 아니면 길어야 넉 달 만에 끝을 맺곤 하였는데 그 친구는 두 줄의 쓰기를 두 달이나 걸렸다니 얼마나 글을 다듬고 수정하는 일에 심혈을 기울였나를 가히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의 글에 대한 열정과 노력에 크게 감동을 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때야 비로소 크게 느끼고 깨달았다. 앞으로는 나도 글을 쓸 때는 그 친구처럼 좀 더 정성을 다해 쓰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그러기에 과거 어느 작가는 글을 쓰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이렇게 강조하기도 헸던 기억이 새롭다.       


글을 쓸 때는 낱말 하나하나가 마치 정밀기계의 나사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과 같아서 나사 한 개를 빼도 안 되고 더 넣어도 기계는 고장이 나고 만다고…….

그러기에 일반 문장을 쓸 때는 물론 시어(詩語)를 쓸 때는 더욱 신중을 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아직도 글을 함부로 쓰는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한국 사람들의 성격이 급하기로 유명하다더니 역시 난 한국 사람의 체질로 태어난 것 같다.  

    

과거 만년필로 글을 쓰던 시절, 직장에 나가지 않고 쉬는 날이 돌아오면 하루에 원고지 7,80장은 쉽게 채우곤 하였다. 어쩌면 글을 쓰는 게 아니라 원고지 매수를 채우는 일에 더 재미를 느낀 것 같기도 하다. 천성이 급한 원인도 있겠지만, 항상 마감 날짜는 임박해 오고 시간은 항상 부족해서 그런 못된 습성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몸에 밴 것 같기도 하다.       


어제 아침에 난 아주 특별하고도 고마운 이메일을 받게 되었다.      


무슨 일인가 하고 급히 열어 보니 우리 브런치 작가 중에서 내게 보낸 메일이었다. 


내가 그 전날 브런치에 올린 한 가지 어떤 글을 읽은 작가님께서 정확하게 세 글자의 오자를 지적해 주셨던 것이다. 매우 고마웠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부끄럽기도 하였다.       


난 바로 오자를 찾아 정정해 놓았다. 그 작가님이 아니었더라면 아마 지금도 오자로 올린 글을 다른 분들이 읽게 되었으리라.     


다시 한번 그 작가님께 감사를 드린다.      


그러고 보면 글을 빨리, 그리고 급히 쓰는 잘못된 습관을 난 아직 버리지 못한 것이다.  

     

글은 마치 정밀기계의 나사와 조금도 다름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말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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