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서 조금 떨어진 변두리에 얼마 전부터 작은 병원이 문을 열었습니다. 첫눈에 보기에도 허름해 보이는 안과 병원이었습니다.
크고 으리으리한 여느 병원에 비하면 건물도 그저 우스워 보이고 간판 또한 볼 품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러나 보기와는 아주 달랐습니다. 이 병원을 찾아오는 환자들의 수는 어느 큰 병원 못지 않게 날이 갈수록 점점 늘어만 갔습니다.
아니 환자가 너무 많아 장 박사 혼자서는 도무지 그 많은 환자들을 돌볼 수가 없을 정도가 되고 말았습니다. 치료를 잘한다는 소문이 널리 퍼져나갔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니, 환자가 이렇게 많은데 대기할 자리도 마땅치 않고 무슨 병원이 이 모양이야.“
"글쎄 말입니다. 이제 그만큼 돈을 벌었으면 병원을 크게 확장할 만도 한데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늘 이러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라니까요.“
”병원을 확장하는 것은 그만두더라고 의사 몇 명만 더 써도 될 텐데, 보나마나 이 병원 원장은 돈만 아는 구두쇠라니까요.“
병원은 워낙 비좁은데 환자들만 점점 구름떼처럼 몰려들게 되자, 대부분의 환자들은 병원 밖에까지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기가 일쑤였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봐도 그건 정말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이 병원 말고도 장안에는 이름난 안과 병원들이 수두룩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병원들을 놔두고 이 작고 허술하기 짝이 없는 병원으로만 모여들고 있으니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장 박사의 놀랄 만큼 뛰어난 의술로 볼 때 그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장 박사의 의료 기술이 그만큼 뛰어났기 때문입니다.
어느 안과 병원이나 그렇듯, 이 병원을 찾아오는 환자들의 역시 눈병이 나거나 어쩌다 실수로 눈을 다친 사람, 또는 앞을 전혀 볼 수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병원에 다니다 보면 으레 한 달 이상 걸려야 겨우 나을까 말까 하던 병을 장박사는 불과 며칠 사이에 거짓말처럼 말끔히 치료를 끝내곤 하였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눈에 이상이 생겨서 아예 치료받을 생각조차 못하고 포기했던 환자들도 이 병원에 오기만 하면 대부분 불과 며칠 내에 거짓말처럼 멀쩡하게 치료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자 이 병원에서는 가끔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곤 하였습니다.
그것은 평생 못 고칠 것만 같아 포기했던 사람들이 거짓말처럼 완쾌가 되자 너무나 기쁜 나머지 마치 미친 사람처럼 소리소리 지르며 좋아 날뛰는 소란이 심심치 않게 벌어지곤 하였습니다.
너무 기쁘다 못해 박사님 앞에 가서 코가 땅에 닿을 정도로 몇 번이고 큰 절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박사님, 이게 정녕 꿈이 아니겠지요? 네? 정말 감사합니다.“
또 어쩌다가 눈을 다쳐 부모님의 부축을 받고 왔던 젊은 소녀도 눈이 보이자 기쁨을 참다 못해 그만 울음을 터뜨리기도 하였습니다.
그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날 때마다 그 누구 못지 않게 기쁨과 보람을 느끼는 것은 장 박사 자신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이른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아무리 힘이 들어도 장 박사는 단 한 번도 귀찮게 여기거나 짜증을 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장 박사의 얼굴에는 언제나 흐뭇한 미소가 가실 때가 없었습니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 항상 보람과 기쁨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장 박사는 결국 어렸을 때부터 품었던 큰 꿈을 이루어 내고 만 것입니다. 장차 훌륭한 의사가 된 후에 많은 환자들을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는 일이 그의 꿈이었기 때문입니다.
날이 갈수록 여전히 장 박사의 병원을 찾아오는 환자들의 수는 더욱 불어가기만 하였습니다.
그렇게 몇 해가 지나자 장박사는 꽤나 많은 돈도 벌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말 그대로 돈을 긁어모으다시피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장 박사는 운영하고 있는 병원의 건물은 어찌된 일인지 옛날이나 지금이나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었습니다.
"장 박사! 그동안 벌어놓은 돈을 도대체 어디에 쓰려고 만날 구질구질하게 이 꼴로 지낸단 말인가? 내 말대로 제발 좀 번듯하게 병원 좀 늘리게나,“
어쩌다 동료 의사들이 이렇게 충고를 할 때마다,
"환자들이 좀 불편해서 그렇지, 그런대로 지낼만 하다니까.”
여기저기 크고 이름난 병원에서 보수를 원하는 대로 주고 대우도 잘해 줄 테니 어서 빨리 오라고 여러 번 부탁도 받았지만 장 박사는 그것마저 딱 잘라 거절하곤 하였습니다.
"다른 병원으로 간다 해도 내 직업이 바뀌는 것도 아닌데 왜 번거롭게 자리를 옮기라고 이 야단입니까? 혹시 내 병원에 환자가 없다면 모르겠습니다만…….”
"정 그러시다면 의사를 몇 사람 더 쓰실 생각은 없으신지요? 손이 너무 딸리신다는 소문이 자자하던데…….”
"아닙니다. 좀 그렇긴 해도 아직까지는 그런 대로 견딜만 합니다. “
장 박사가 왜 이렇게 남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는지 사람들은 전혀 그의 속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었습니다. 그래서 의사들 사이에서는 장박사가 타고난 지독한 고집쟁이요, 돈만 아는 구두쇠라는 별명까지 붙은 지 이미 오래전의 일이었습니다.
장 박사가 그렇게 한사코 고집을 부리며 병원을 운영해 온 지도 벌써 수십 년이 흘렀습니다. 치료를 받기 위해 모여드는 환자들의 수도 예전이나 지금이나 조금도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크게 변한 것이 한 가지 있었습니다. 그것은 장 박사의 마음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워낙 나이가 많아져서 그랬는지 이제는 꾀가 나서 그런 것인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그건 장 박사 자신이 생각해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그처럼 보람과 기쁨, 그리고 즐거움으로 열심히 환자를 돌보던 병원이 차츰 귀찮기도 하고 꾀가 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항상 신바람이 나서 흐뭇한 미소로 가득했던 장박사의 얼굴에 차츰 어두운 그림자가 물들기 시작하였습니다.
지금까지 고작해야 한 달에 하루 정도 휴진을 했던 병원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토요일과 일요일은 물론 아무 때나 무슨 구실을 붙여서라도 문을 닫는 날이 나날이 늘어만 갔습니다.
그 뒤로는 병원을 찾아온 환자들이 병원문을 아무리 힘껏 두드려 보았지만 한 번 닫힌 병원 문은 좀처럼 열릴 줄을 몰랐습니다.
”이거 무슨 병원이 이 따위가 다 있어? 이럴 거면 아예 문을 닫아버리든지.“
환자를 대하는 장 박사의 태도도 전과 달리 무뚝뚝하고 싸늘해졌습니다. 그처럼 인자하던 장 박사가 이제는 인정머리 없는 사람으로 변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렇게 다시 며칠이 지나자 이번에는 결국 깜짝 놀랄만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장 박사가 병원 문을 걸어 잠근 채, 어디론가 사라지고 만 것입니다. 갑자기 그 수많은 환자들을 내버려 둔 채 아무 말없이 그림자처럼 사라지고 만 것입니다.
"뭐? 환자들 치료하기가 귀찮아져서 장 박사가 도망을 치고 말았다구?"
"내가 벌써부터 그럴 줄 알았지, 돈을 그렇게 긁어모았으니 이제 아쉬운 게 뭐가 있겠어?“
사람들은 한결같이 장 박사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대해 못마땅해서 한마디씩 지껄여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장 박사의 생각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오직 한평생을 환자들을 돌보다가 늙고 지쳐 버린 그는 깊고 깊은 산속으로 조용히 들어가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지겨운 환자를 치료하는 일을 그만두고 산속을 이리저리 힘껏 쏘다니며 사냥을 하는 재미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아, 이제야 살만 하구나!“
그렇게 몇 달이 지내는 동안 지칠 대로 지쳤던 장 박사의 얼굴에 다시 혈색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환자를 돌보느라 지치고 허약해졌던 몸도 차츰 건강을 되찾아가고 있었습니다.
"평생을 남의 몸만 돌보다가 내 건강을 해치면서까지 일생을 보낸대서야, 어디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냐구.“
장 박사는 가끔 이렇게 혼자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산속으로 들어오게 된 것을 매우 만족히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진즉부터 이렇게 살아보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렇게 즐겁고 한가롭게 마냥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 장 박사는 그만 뜻밖의 불행한 일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산속으로 도망치는 노루 한 마리를 정신없이 허겁지겁 쫓아가다가 그만 나무 가시에 두 눈을 심하게 찔리게 된 것입니다.
”어이쿠, 이거 정말 죽겠네. 사람 살려요!“
장 박사는 피가 줄줄 흘러내리는 두 눈을 부여잡고 비명을 지르면서 다행히 어렵게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깜짝 놀란 가족들은 곧 장 박사를 데리고 안과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이런, 쯧쯧쯧……, 그토록 유명하던 안과 의사가 실명을 하게 되다니……,”
급히 장 박사의 눈을 살펴본 의사는 매우 안 됐다는 듯 고개를 저었습니다.
“눈에 찔린 상처가 너무 심해요. 지금 상태로서는 매우 어렵겠습니다. 혹시 눈을 기증하겠다는 사람이 나온다면 몰라도……,”
의사는 안타깝다는 듯 연신 도리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의사의 말에 장 박사는 말도 안 되는 소리 말라는 듯 성을 내며 소리쳤습니다.
"뭐야? 이런 걸 안과에서 치료할 수 없다니 그럼 뭘 치료하겠다는 거요? 당신 안과 의사 맞아요?“
”박사님, 진정하십시오. 지금 의술로는 더 이상 어쩔 수가 없습니다.“
의사는 난처해진 표정이 되어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그렇게 열흘이 가고 한 달이 지났지만 장 박사의 눈의 상처는 좀처럼 차도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전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암흑 같은 상태에서 그저 침대에 누운 채 꼼짝없이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고통스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이건 살아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죽고만 싶었습니다. 이제와서는 환자들을 버리고 산속으로 들어갔던 지난날의 일이 문득, 크게 뉘우치기도 하였습니다.
”아, 이렇게 고통스러울 수가! 내가 왜 이렇게 고통스러운 환자들을 외면하고 내 욕심만 부렸단 말인가. 결국, 내가 천벌을 받은 거야 천벌을!“
그리고 이번에는 그림자처럼 옆에 붙어서 간병을 하고 있는 아내의 손을 꼭 잡았습니다.
”임자, 내 말 잘 들어요. 임자는 지금까지 내가 평생 모아 놓은 돈을 모두 찾아오도록 해요. 그리고 당장 안과 병원을 하나 큼직하게 차리도록 해요. 그리고 병원을 차리고 남은 돈은 모두 앞을 못 보는 환자들의 치료비로 쓰도록 해줘요.“
아내도 장 박사가에게 잡힌 손에 더욱 힘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글썽해진 눈으로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습니다.
어느새 병원 창밖에는 땅거미가 짙게 덮이기 시작했습니다.
"여보, 지금이 낮이오? 밤이오? 그리고 도대체 몇 시나 된 거요?“
여전히 앞을 보지 못한 채 이렇게 묻고 있었습니다.
”…….“
그런 장 박사의 얼굴을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내려다보고 있던 아내는 그만 복받쳐 오르는 울음을 간신히 삼키며 밖으로 뛰쳐나가고 있었습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