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아저씨는 언제나 붓을 들기만 하면 으레 시골 풍경을 즐겨 그리곤 했습니다. 아니 즐겨 그리기만 하는 게 아니라 어느 화가도 감히 흉내 내지 못할 만큼 시골 풍경을 그리는 솜씨가 뛰어났습니다.
"과연, 시골 풍경을 그리는 건 김 화백을 따를 사람이 없어."
"아암, 기가 막히게 뛰어난 예술가라니까.“
화가 아저씨의 그림을 본, 사람들은 누구를 가리지 않고 입이 딱 벌어졌습니다. 그리고 저마다 감탄을 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화가 아저씨는 무엇보다도 시골 풍경을 잘 그리는 사람으로 별써부터 유명해진 지 오래입니다.
그런데 정말 이상한 것은 화가 아저씨의 표정이었습니다.
주위 사람들이 아무리 침이 마를 정도로 칭찬을 늘어놓아도 조금도 만족하지를 않고 늘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화가 아저씨의 그림을 사기 위해 어떤 신사 한 분이 화가 아저씨를 찾아 왔습니다.
그는 대단히 큰 회사의 회장님이었습니다. 그리고 더구나 농촌에서 태어난 사람이어서 늘 시골을 늘 그리워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잠깐 구경만 하시는 건 좋지만, 제 그림은 절대로 팔지 않습니다.“
신사를 만나자마자, 화가 아저씨는 첫마디부터 그림을 팔지 않겠다고 딱 잘라 말하였습니다. 그러자, 신사의 눈이 둥그렇게 되면서 화가 아저씨에게 되물었습니다.
"네에? 팔지 않으시겠다니요? 그럼 팔려고 그린 그림이 아니란 말씀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어쨌든 제 그림은 단 한 점도 팔 수는 없으니까 미리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신사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도무지 알다가 모를 일이었습니다.
"작가님의 뜻을 도무지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만, 정 그러시다면 구경만이라도 좀 하고 갈 수는 없을까요?”
잠시 후, 화가 아저씨의 안내로 화실로 들어선 신사는 그만 입이 딱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널따란 화실에 수없이 걸려 있는 풍경들, 그것은 마치 정겨운 시골의 풍경들이 그대로 살아서 움직이는 듯한 아름답고도 훌륭한 작품들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신사는 벽에 걸려 있는 수많은 그림들을 차례차례 감상하고 있는 동안 그만 자신도 모르게 넋을 잃고 말았습니다. 하나 같이 탐이 날 정도로 훌륭한 작품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신사가 평소에 늘 그리워하고 동경하던 시골의 풍경, 바로 그런 모습들이 화실 벽 가득히 걸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돈은 요구하시는 대로 얼마든지 드릴테니 더도 말고 딱 한 점만이라도 저에게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제발 부탁드립니다.“
그림을 둘러 본 신사는 욕심이 생겨서 그림을 사지 않고는 이대로 그냥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애원하다시피 다시 한번 간청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화가 아저씨의 대답은 여전히 막무가내였습니다.
"아, 안됩니다. 돈이 문제가 아닙니다. 여기에 있는 그림들은 미안하지만 절대로 팔 수가 없으니 그리 아십시오.”
"무슨 사정 때문에 그러시는지는 몰라도 그러지 말고 웬만하면 저에게 딱 한 점만이리도 주십시오. 정말 이렇게 부탁드립니다.“
신사는 여전히 두 손을 모아 싹싹 비비면서 화가 아저씨한테 매달렸습니다.
그러나 화가 아저씨는 끝내 신사를 돌려보내고 말았습니다.
그날 저녁이었습니다.
아내가 이처럼 가난한 생활이 지겨워서 더 이상 못하겠다는 듯 못마땅한 투로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
"아니, 그렇게 팔라고 애원을 하던데 눈 딱 감고 몇 점 파실 일이지 웬 고집을 그렇게 부리세요? 그까짓 똥고집을 누가 알아주기나 한대요?"
그러자 화가 아저씨가 벌컥 화를 내며 소리쳤습니다.
"아니, 뭐가 어쩌구 어째? 똥고집이라고 했소? 명색이 예술가의 아내라는 사람의 입에서 나온다는 말이 고작 그것뿐이오?“
화가 아저씨가 화를 내자 아내도 오늘만큼은 지지 않겠다는 듯 여전히 대들었습니다.
"그래요. 말씀 한번 잘 하셨어요. 예술가의 아내는 굶어도 좋으니까 언제까지나 입을 꾹 다물고 지내란 말씀이죠?
”…….”
아내의 말에 좀 미안한 생각이 들었던지 화가 아저씨는 그만 더 이상 아무 대꾸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허울만 좋은 화가라는 남편 때문에 지금까지 오랜 세월을 가난에 쪼들리면서 많은 고생을 참아온 아내였기 때문입니다.
그날 밤, 화가 아저씨는 답답한 마음에 좀처럼 잠을 이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연신 담배만 피워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골똘히 생각에 잠기게 되었습니다.
'딱 한 작품만이라도 좋으니 내 평생 죽을 때까지 아름다운 그림을 그린 다음에 숨을 거둔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텐데……. 멋도 모르는 사람들은 내 그림이 그저 좋다고 할 지는 몰라도 지금까지 내가 그린 그림들은 하나같이 진실이 담기지 못한 엉터리 그림들이란 말이야. 그런 걸 모르고 그런 그림을 보고 사 가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어리석은 거라구!‘
사실 따지고 보면 화가 아저씨가 지금까지 그린 시골 풍경 속에는 옛날의 시골 모습 그대로가 아니었습니다.
초가지붕 위에 보름달처럼 크고 둥그렇게 자라야 할 박은 온 데 간 데 사라지고 기와집이 아니면 양옥집들이 들어선 풍경들이었습니다.
시골이긴 하지만, 마을 뒤 산기슭의 있어야 할 정겨웠던 오솔길은 시멘트가 아니면 아스팔트로 시원스럽게 깔려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아낙네들의 빨래터였던 공동 우물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집집마다 수돗물을 이용하고 있었습니다. 호롱불이나 등잔불 대신 전기가 들어오는 바람에 밤에도 도시 못지 않게 휘황찬란히기 그지없었습니다.
그리고 화가 아저씨가 가장 못마땅한 것은 시골 사람들의 마냥 푸근했던 인심조차 도시 사람들 못지 않게 점점 메말라가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그린 그림은 겉보기에만 멀쩡한 시골 풍경이지 풍경이지, 전혀 옛날 맛이 안 난단 말이야!‘
화가 아저씨는 단 한 작품이라도 시골의 아름다운 풍경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밤은 점점 깊어가고 있었지만, 화가 아저씨는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한 채 진실이 듬뿍 담긴 시골 풍경을 구상하기 위해 여전히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습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