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희는 지금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소꿉놀이를 하고 있습니다.
한동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곧잘 어울려 놀던 선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습니다.
갑자기 심통이 난 것입니다.
”선희야, 너 어딜 가는 거니? 아직 병원 놀이가 끝나지 않았잖아,“
친구들이 의아해진 표정이 되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지만 선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벌써 저만큼 집을 향해 뛰어가고 있었습니다.
바로 조금 전에도 지금처럼 아무 말 없이 집으로 쪼르르 달려갔던 선회입니다.
그런데 이번엔 놀이에 나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또다시 집으로 달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피이, 엄만 이제 내가 싫어졌나 봐.“
선희는 지금 그렇게 좋아하던 소꿉놀이도 이젠 재미가 없습니다. 속이 은근히 상한 선희는 입을 쏙 내민 채 투덜거립니다.
선화가 이렇게 심통이 난 것은 그 모두가 엄마 때문이었습니다.
그전 같으면 우리 공주, 우리 공주 하면서 오직 선회만을 귀여워해 주던 엄마입니다. 그러던 엄마가 민수가 태어난 뒤부터는 마음이 싹 달라진 것입니다. 변해도 이만저만 변한 게 아닙니다.
선희는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엄마였습니다. 그런 엄마를 민수에게 빼앗겼다는 서운함에 엄마가 그렇게 밀고 야속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 재미있던 공부도,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것도 그 모두가 시큰둥하기만 합니다.
”피이, 보나마나 엄만 지금도 나만 빼놓고 민수만 데리고 재미있고 놀고 있을 걸.“
아니나 다를까 선희가 집으로 들어서자 엄마는 여전히 민수를 어르며 한창 재미있게 놀고 있었습니다.
그런 모습을 다시 보게 된 선회는 약이 오르고 속이 상해 견딜 수 없습니다.
”엄마, 나 왔어!“
선희는 성이 나서 빽 소리를 질렀습니다.
”아니, 더 놀다 오지지 않고 왜 또 벌써 돌아왔니?“
엄마의 시큰둥한 대답에 가뜩이나 심통이 난 선희의 표정이 더욱 사납게 일그러지고 말았습니다.
”당장 내다 버리란 말이야!“
선희가 이번에는 저도 모르게 엄마를 향해 더욱 크게 소리질렀습니다.
"버리다니, 뭘 버리란 말이니?”
선희가 하도 크게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엄마가 놀란 얼굴로 물었습니다.
“엄만 여태 그것도 몰라서 물어? 그 자식 당장 내다 버리란 말이야.”
그제야 선희의 말뜻을 알아차린 엄마도 선희를 향해 마주 소리쳤습니다.
"아니, 얘가 보자 보자 하니까 점점 못하는 소리가 없네. 너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니?“
”…….“
선희는 엄마의 말에는 더 이상 아무 대꾸도 없이 숨을 씨근덕거리며 화가 잔뜩 난 얼굴로 못마땅한 듯 민수를 쏘아보고 있습니다.
엄마도 그렇지만 지금 민수는 누나의 마음을 조금도 알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아장아장 오리 걸음걸이로 이리저리 걸음마 연습만 열심히 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한창 걸음 연습을 하고 있던 민수가 그만 중심을 잃고 바닥에 힘없이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러고는 그때 마침 방바닥에 떨어진 큼직한 단주 한 개를 얼른 집더니 냉큼 입에 넣었습니다.
”안 돼! 이런 걸 입에 넣으면 큰 일나는 거에요. 옳지 옳지, 어이구 우리 강아지 참 착하기도 하지.“
엄마는 기겁해서 놀란 얼굴로 재빨리 민수의 입에 넣은 단추를 꺼냈습니다.
엄마는 이제 한창 재롱을 부리기 시작하고 있는 민수가 무슨 짓을 해도 예쁘고 귀엽게만 느껴지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즈음 잠시도 민수 곁을 떨어지지 않고 하루종일 민수하고만 놀아주는 게 엄마의 일입니다.
엄마의 그런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선희가 다시 성난 목소리로 소리쳤습니다.
"그걸 왜 꺼내줘, 그 자식은 그런 거 삼키고 얼른 죽어버리게 놔두란 말이야!”
그러자 엄마의 눈이 대뜸 커지면서 눈꼬리가 치켜 올라갔습니다.
"너 지금 그거 누구한테 한 소리니? 누굴 죽으라고 한 소리냐구?“
선희는 여전히 심통이 풀리지 않은 얼굴로 민수를 쏘아보며 통명스럽게 대꾸했습니다.
"누군 누구야. 저 자식이지!“
”아니, 뭐라구? 이제 보니까 선회 너 정말 못됐구나. 자꾸만 그럴 거면 너나 어서 밖으로 나가란 말이야.“
엄마가 참다못해서 잔뜩 화가 난 무서운 얼굴로 선희를 향해 소리쳤습니다.
"쳇! 내가 나가라면 못 나갈 줄 알아? 당장 나갈 거야. 그리고 엄만 민수 자식하고 재미있게 잘 살란 말이얏!“
분을 이기지 못한 선희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이렇게 소리치고는 급히 밖으로 뛰쳐나고 말았습니다.
”아니, 저 애가 정말. 너 냉큼 들어오지 못하겠니?“
선희는 엄마의 말은 들은 체도 않고 그 길로 집을 뛰쳐나오고 말았습니다.
밖으로 나온 선희는 서러움에 겨워 소리내어 훌쩍훌쩍 울면서 그저 무작정 골목길을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끼이익!“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이었습니다.
선희는 그만 정신을 잃고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그때 마침 골목길을 달려나오던 자전거에 부딪치는 사고가 난 것입니다.
”많이 놀라셨죠? 몸에는 아무 이상이 없습니다. 정말 이만하기가 천만다행입니다. 곧 정신을 차리게 될 테니 아무 염려 마십시오.“
선희는 어느 틈에 병원 침대에 누워 있었습니다. 그리고 의사 선생님의 두런거리는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습니다. 그리고 한동안 사방을 두리번거리다가 겨우 입을 열었습니다.
선희의 눈에 엄마도 보이고 어느 틈에 소식을 듣고 달려왔는지 아빠도 어렴풋이 눈에 보였습니다.
”엄마, 여기가 어디야?"
“어딘 어디야. 병원이란다. 우리 선희 이제 정신이 좀 드니?”
걱정스러운 표정이 된 엄마의 얼굴은 눈물로 온통 범벅이 되어 있었습니다. 얼굴색은 하얗게 질려 있었습니다.
"선희야, 엄마가 잘못했다. 으흐흑…….“
엄마는 선희가 깨어난 게 너무 기뻐서 그런지 순간 울음을 터뜨리며 선희를 와락 껴안았습니다.
그러자 선희가 엄마를 향해 입을 열었습니다.
”엄마, 우리 민수는 지금 어디 있어?“
"네가 이렇게 다쳤는데 지금 민수가 문제니? 민수는 잠시 이웃에 맡겨놓고 왔으니 아무 걱정마라.“
"엄마, 나 집에 가면 이제부터는 민수하고 재미있게 놀고 싶어."
"아암, 그래야 하고말고. 하마터면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이렇게 이쁜 우리 공주를 잃어버릴 뻔했지 뭐니.“
선희의 입에서 나온 뜻밖의 말에 엄마는 너무 좋아서 울다웃다 하면서 선희를 더욱 힘주어 꼬옥 껴안았습니다.
그 모습을 한동안 말없이 바라보고 있던 의사 선생님이 미소 띤 얼굴로 입을 열었습니다.
"생각보다 회복이 참 빠르군요. 이제 잠시 안정을 취한 뒤에 바로 가셔도 되겠습니다.“
"예,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엄마와 아빠는 의사 선생님을 항해 몇 번이고 허리를 숙였습니다.
그런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선희의 입가에도 정말 오랜만에 밝고 환한 미소가 번져나가고 있었습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