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보라 색깔의 나팔꽃 덩굴은 조금이라도 더 빨리 울타리 위로 올라가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개나리 나뭇가지를 야무지게 꼭 잡고 요리조리 덩굴손을 뻗어 가며 부지런히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울타리 중간쯤 올라갔을 때였습니다.
어디선가 앵앵거리며 떠들썩한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습니다.
"우와! 얘들아, 이리 와 봐. 이 꽃 정말 예쁘게 생겼다. 그치?“
"히야, 정말 이렇게 예쁜 꽃은 머리털 난 뒤로 처음 보는걸."
나팔꽃은 문득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습니다.
어느 사이에 왔는지 시커먼 구름떼처럼 생긴 것들이 날아와서 나팔꽃 주위를 빙빙 돌고 있었습니다.
어찌나 빠르게 공중에서 빙빙 돌고 있는지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습니다. 어지럽기도 하였습니다.
"아니, 너희들은 도대체 누구니?"
어리둥절해진 나팔꽃이 낮을 찡그리며 물었습니다.
"네에? 아직도 하루살이를 모르고 계셨어요?“
"뭐어? 하루살이라고?"
나팔꽃은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난생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기 때문입니다.
"네, 그렇다니까요. 그런데 아가씨는 누구세요? 우린 아가씨처럼 예쁘고 아름다운 꽃은 처음 봤거든요."
나팔꽃은 예쁘고 아름답다는 하루살이의 말에 금세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환한 미소까지 지어 보이며 아까보다 훨씬 더 고와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습니다.
"호호호, 내가 그렇게 예뻐보인단 말이니? 난 나팔꽃이야, 나팔꽃!"
나팔꽃과 하루살이들은 금방 친한 사이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함게 어울려 또또따따 노래도 부르고 이런저런 재미있는 야기를 나누면서 한동안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는 동안 어느새 해가 질 무렵이 되자 나팔꽃이 말했습니다.
"얘들아, 오늘은 그만 놀고 내일 다시 만나서 노는 게 어떻겠니?"
그러자 하루살이들의 눈이 갑자기 휘둥그렇게 되어 되물었습니다.
”내일이라니요? 그게 뭔데요?"
이번에는 나팔꽃의 두 눈이 둥그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뭐어? 아직 내일이란 말도 모른단 말이니?”
"그렇다니까요. 내일이 뭐에요?”
나팔꽃은 얼른 뭐라고 대답을 할지 몰라 말문이 막히고 말았습니다. 그러다가 생각이 났다는 듯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이제 조금 뒤에 금방 해가 지고 나면 캄캄한 밤이 온단 말이야. 그리고 밤이 지나고 나면 다시 날이 밝게 되는데 그게 바로 내일이야"
"에이,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어디 있다니? 얘들 좀 봐. 내 말을 그렇게 못 믿겠어?“
"우린 오늘 하루밖에 살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거 정말 모른다니까요."
나팔꽃은 그제야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리고는 안됐다는 듯 혼자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어느새 여름이 가고 가을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나팔꽃은 여전히 개나리 나뭇가지를 타고 부지런히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마치 하늘 끝까지라도 올라가고 말겠다는 듯 열심히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습니다.
"얘야, 위로 자꾸만 올라가는 것도 좋지만, 이거 목이 죄어서 어디 살 수가 있겠니?"
개나리 나무가 나팔꽃을 향해 퉁명스럽게 투덜거렸습니다.
"네에?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나팔꽃이 깜짝 놀란 얼굴로 개나리나무를 바라보며 물었습니다.
"이런 답답하기는……. 네가 이렇게 내 몸을 칭칭 감고 있으니까 어디 마음대로 움직일 수가 있어야지, 숨을 제대로 쉴 수도 없고…….“
개나리 나무는 자신의 몸에 칭칭 감겨 있는 나팔꽃 덩굴을 드러내 보이며 여전히 퉁명스럽게 대꾸하였습니다.
나팔꽃은 그제야 민망스러움에 금방 얼굴이 벌겋게 물들고 말았습니다.
"아저씨, 정말 죄송해요. 전 그런 줄도 모르고……. 어쩌면 좋죠?"
”아니다. 내가 괜한 얘길 했나 보다. 그나저나 네 덕분에 올해는 참 심심치 않게 한 해를 보낸 거 같구나. 허허허…….”
마음씨 좋게 생긴 개나리 나무 아저씨는 얼굴 가득 너털웃음까지 지어 보였습니다.
“네? 저 때문에 심심치 않으셨다니 그건 또 무슨 말씀이세요?”
“아암, 너처럼 곱고 예쁘게 생긴 꽃이 이 세상에 또 어디 있겠니. 난 이른 활짝 핀 너의 모습만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그렇게 즐겁고 기분이 좋을 수 없었단다.”
그러는 동안 나팔꽃과 개나리 나무는 어느새 가까운 사이가 되었습니다. 마치 오래전부터 가깝게 지내온 친구처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가는 줄을 몰랐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얘, 이제 우리 그만 헤어지고 내년에 다시 만나서 노는 게 어떻겠니?”
개나리 나무가 꺼낸 뜻밖의 말에 나팔꽃은 금방 서운한 표정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되물었습니다.
“내년이라고요?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뭐어? 너 여태 내년이란 말을 못 알아듣는단 말이니?”
“네, 전 한 해 살이 꽃이거든요. 그래서 내년이란 말을 생전 처음 들어봤어요.”
“아하, 그렇겠구나!”
개나리 나무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리고 몹시 안 됐다는 듯 혀를 끌끌 찼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습니다.
지금까지 개나리 나무와 나팔꽃이 주고 받는 이야기를 엿듣고 있던 해님이 빙그레 웃는 낯으로 슬그머니 끼어들었습니다.
“얘들아, 너희들 혹시 영생이란 말을 들어본 적은 있니?”
해님의 물음에 개나리 나무와 나팔꽃은 어리둥절해지고 말았습니다. 그런 말은 난생 처음 들어보았기 때문입니다.
“영생이라니요? 그게 무슨 말인데요?”
개나리 나무가 이렇게 묻자 해님을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여전히 웃는 낯으로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영원히 죽지 않고 오래오래 살아갈 수 있는 게 바로 영생이란다.”
“에이, 세상에 그런 게 어디 있어요. 괜히 거짓말하지 마세요.”
개나리 나무는 말도 되지 않는다는 듯 톡 쏘는 소리로 대꾸했습니다.
그러자 해님이 개나리 나무와 나팔꽃을 향해 다시 물었습니다.
“그럼 너희들 하늘나라에는 주가 계신지는 알고 있니?”
“그야 물론 하느님이 살고 계시죠.”
개나리 나무와 나팔꽃이 약속이라도 한 듯 똑같이 대답하였습니다.
그러자 해님이 흡족해진 얼굴로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그래 맞았다. 그런데 하늘나라에는 하느님이 아니라 하나님이 살고 계신단다.”
“네에? 하느님이란 말은 자주 써서 알고 있지만 하나님이란 말은 처음 들어본걸요.”
그리고 이번에는 나팔꽃이 궁금한 얼굴로 해님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그럼 하늘나라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걸 어떻게 믿어요?”
그러자 해님이 다시 천천히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 그걸 쉽게 믿기란 어려운 일이겠지. 마치 하루살이가 내일이란 말을 믿지 못하듯, 그리고 네가 내년이란 말을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란다. 그리고 개나리 나무가 고작 수십 년을 살다가 죽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는 한 영생의 길이 있다는 것도 믿기 힘든 거란다.”
“……?”
“……?”
나팔꽃과 개나리 나무는 해님의 말을 좀처럼 이해할 수 없어서 고개만 갸웃거리고 있었습니다.
해님은 나팔꽃과 개나리 나무의 그런 모습이 몹시 귀여워 못 배기겠다는 듯 조금 전보다 더 따뜻하고 포근한 볕을 그들을 향해 정성껏 뿌려 주며 흐뭇한 미소를 감출 줄 몰랐습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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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 ; ‘여호와(Jehovaho)’를 개신교에서 일컫는 말.
예) 하나님께서 마귀에게 악행을 허락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더하게 하는 기회를 만들려고 하실 때문
이다.
※ 하느님 ; 우주를 창조하고 다스린다고 믿어지는 초자연적인 절대자, 종교적 신앙의
대상이 되며, 종교에 따라 여러 가지 고유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예) 기도 끝에 하느님이 감동하셔서 어머니 병환이 얼른 나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