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부부

[베품은 곧 부메랑이다]

by 겨울나무

"여보! 잠깐 이리 좀 와 봐요.“


아빠가 느닷없이 엄마를 부르는 소리가 방에서 흘러나왔습니다.


부엌에서 한창 저녁 준비를 하고 있던 엄마가 무슨 일인가 하고 종종 걸음으로 쪼르르 아빠에게 달려갔습니다.


"무슨 일로 바쁜 사람을 부르고 이 야단이에요?“


아빠는 오늘따라 기분 좋은 일이라도 생긴 것처럼 공연히 싱글벙글 웃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침대 밑에 숨겨 두었던 큼직한 종이가방 하나를 꺼내들었습니다.


예쁜 꽃무늬 바탕에 백화점 상표가 찍혀있는 종이가방은 얼른 보기에도 아주 고급스러워 보였습니다.

"자, 얼른 한 번 입어 봐요."


엄마가 금방 휘둥그래진 눈으로 아빠를 바라보며 물었습니다.


"아니 이게 뭐예요?“


"보면 몰라요? 당신 옷이지, 신경을 써서 고르긴 했는데 당신 마음에 들지 모르겠네.”

“도대체 그게 웬 건데요?”

‘아, 글세 그런 건 묻지 말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른 걸로 바꾸어 준다니까 얼른 입어 보기나 해요."


아빠가 종이가방에서 꺼낸 것은 요즈음 한창 유행하는 원피스였습니다. 얼른 보기에도 색상이 은은하면서도 방울무늬가 곱게 찍힌 고급스러운 옷으로 엄마의 눈에도 쏙 들었습니다.


"아니, 이게 웬 옷이냐니까요?“

"웬 거는. 당신 그동안 늘 부족한 살림살이 꾸려가느라 여간 고생이 많았잖아. 그런데도 변변하 옷 한 번 사주지 못해서 늘 마음에 걸렸거든. 허허허…….”

“아니 갑자기 당신답지 않게 별 소릴 다 하고 있네요. 그래서요?”


엄마는 어이가 없다는 듯 더욱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아빠가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마침 어머님도 집에 안 계시니까 어머니가 들어오시기 전에 얼른 입어 보라니까. 어머니가 보시면 서운해하실 거 아니오? 일단 어머님은 좀 여유가 생기면 그때 사 드리도록 하고…….”


"돈도 없는데 아니 왜 갑자기 백화점까지 가서 이런 비싼 옷을 사오고 그래요?“

"비싸기는……. 당신이 비싼 거 싫어하는 거 나도 잘 알아. 그래서 좀 싼 것으로 골랐으니까 자, 어서 입어 보기나 하라니까."


아빠의 성화에 못 이겨 엄마는 원피스를 입어 보았습니다. 엄마의 입가에는 어느새 행복에 겨운 흐뭇한 미소가 번져나가고 있었습니다.


옷은 마치 맞추기나 한 것처럼 꼭 맞고 잘 어울렸습니다. 엄마는 그만 눈물까지 흘리면서 갑자기 두 팔로 아빠를 꼭 껴안은 채 좀처럼 떨어질 줄을 몰랐습니다.

"여보, 정말 고마워요. 그리고 오래오래 아껴서 잘 입을 게요.”


아빠는 이 작은 선물 하나가 엄마에게 이토록 큰 기쁨을 주리라고는 미처 생각조차 못해던 일이었습니다. 그런 엄마를 보자 아빠도 덩달아 흐뭇하고 뿌듯함에 젖어 오래오래 엄마를 껴안은 채 좀처럼 떨어질 줄을 몰랐습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뒤의 일이었습니다.


"여보, 잠깐 어머님이 방으로 좀 와 보시래요?"


이번에는 엄마가 갑자기 방에 있는 아빠를 불러냈습니다.


문 밖에서는 엄마가 활짝 밝아진 얼굴로 어서 나오라는 손짓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니 도대체 무슨 일인데 그래?”


아빠는 아무 영문도 모르고 엄마가 이끄는 대로 어머니의 방으로 따라 들어갔습니다.


어머니의 방 안에서는 지금 말쑥한 정장 차림의 어머니가 서서 싱글벙글 웃는 낯으로 이리저리 둘러보며 옷매무새를 고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여보, 당신 보기에는 어때요? 이렇게 꾸미시니까 어머님이 십 년도 더 젊어보이시죠? 역시 옷이 날개란 말이 맞긴 맞는 것 같다니까요. 호호호……."


엄마는 여전히 흐뭇한 표정으로 아빠를 바라보며 물었습니다.


"그, 그건 그렇지만……."


아빠는 아직도 어떻게 된 영문을 몰라 그저 어리둥저란 얼굴이 된 채 한동안 입을 열지 못하였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어머니가 여전히 입가에 흘러나오는 미소를 감추지 못한 채, 아빠를 향해 자랑스럽게 입을 열었습니다.


"애비야, 정말 고맙구나. 글쎄, 에미가 네가 다달이 주고 있는 소중한 생활비를 아끼고 아껴서 모아 둔 돈으로 어제 이 옷을 사 왔다지 뭐냐. 어떠냐? 네가 봐도 괜찮아 보이니?“


"아아……네, 아주 정말 잘 어울리고 말고요."

아빠는 여전히 어떻게 된 영문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고개만 끄덕이며 건성으로 얼버무리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엄마가 다시 아빠를 향해 한쪽 눈을 찡긋해 보이면서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호호호……. 당신이 늘 노래를 했잖아요. 어머님 옷 한 벌을 꼭 사드리고 싶다고요.”

"아아,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가 그런 말을 했던가?“


아빠는 몹시 겸연쩍은 듯 이렇게 얼버무리고 말았습니다.

사실 엄마는 그동안 어머니 모르게 원피스 한 장을 얻어 입게 된 것이 항상 무겁게 마음에 건렸습니다. 그래서 많은 생각 끝에 어머니의 정장 한 벌을 어렵게 마련해 드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빠는 자신만이 아닌, 어머니의 몫까지 칭길 줄 아는 그토록 속이 깊은 아내가 새삼 그렇게 고맙게 여겨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그런 아내를 더욱더 사랑하고 아껴 주어야겠다는 마음이 가슴속 깊은 곳에서 용솟음치고 있었습니다.


다시 여러 날이 지난 어느 날이었습니다.


"여보, 그 옷 마음에 안 들어?"


아빠가 문득 생각이 난 듯 엄마에게 물었습니다.


"옷이라니요?"


엄마는 올 것이 왔다는 생각에 순간 가슴이 뜨끔하면서 내려앉았지만 애써 태연한 목소리로 되물었습니다.


"얼마 전에 내가 사다 준 원피스 말이야. 요즈음 그 옷 입고 다니는 걸 전혀 볼 수가 없어서 하는 말이리야.“

”아, 그 옷이요. 당신이 큰마음 먹고 사준 비싼 옷인데 마음에 들지 않을 리가 있어요. 그래서 아무 때나 입지 않고 아껴 두었다가 나중에 꼭 필요할 때만 입으려고 그러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게 요즈음 한창 유행하는 옷이라던데 유행이 지난 뒤에 입을 생각이오? 그러지 말고 여유가 생기면 또 사줄 테니 그런 거정하지 말고 부지런히 입고 다녀요.”

"그렇게 비싼 옷을 또 사주시겠다요? 정말 고마위요 여보. 알았어요. 그럼 당장 내일부터 부지런히 입고 다 테니 아무 걱정 말아요. 호호호…….“


"고맙기는……. 내가 그런 옷을 사 줄 사람이 당신 말고 이 세상에 또 어디 있겠소.”

"여보, 정말 고마워요."

엄마와 아빠는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얼마는 몹시 걱정스러운 마음에 또다시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무슨 큰 죄나 저지른 사람처럼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지난번에 어머님에게 사 드린 정장, 그것은 바로 아빠도 모르게 엉마가 빅화점에 가서 원피스와 바꾸어 온 옷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빠는 그렇게 된 사연을 지금까지도 전혀 눈치조차 채지 못하고 까맣게 모르고 있습니다.

'만일 나중에라도 이 사실을 알게 되면 그땐 뭐라고 변명을 해야지?‘


엄마는 또 다시 은근히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어찌 됐건 아빠와 엄마는 누가 뭐라고 해도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부부였습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