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창작동화

설날 아침

단편 창작동화

by 겨울나무


새해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하늘에서는 마치 새해를 축복이라도 하듯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습니다.



“얘, 미나야, 네가 좋아하는 눈이 온다. 이제 그만 자고 어서 나와 보렴.”



분주하게 주방 일을 하고 있던 엄마가 미나의 방을 향해 소리쳤습니다. 유난히 눈을 좋아하는 미나는 엄마의 소리에 화들짝 잠에서 깨어 거실로 뛰어나왔습니다. 그러고는 베란다 밖을 내다보며 손뼉을 치면서 탄성을 질렀습니다.



“우와, 정말 눈이 내리는구나!”



아파트 15층 베란다 밖에서 춤을 추듯 펄펄 날리고 있는 눈의 광경은 그야말로 멋진 한 폭의 그림이었습니다. 미나의 입에서는 저도 모르게 흥얼흥얼 콧노래가 흘러나왔습니다.


퍼얼펄 눈이 옵니다. 하늘에서 눈이 옵니다.


한동안 정신없이 눈이 내리는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미나가 이번에는 주방으로 쪼르르 달려왔습니다. 엄마는 한창 분주한 손길로 새로 끓인 떡국과 갈비찜을 큼직한 쟁반 위에 정성껏 차리고 있었습니다. 미나가 먹음직스럽다는 듯 입에 고인 침을 꼴깍 삼키며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우와! 정말 맛있겠다. 엄마, 근데 그건 뭐야?”


“보면 모르니? 이건 떡국이고 이건 미나가 좋아하는 소갈비찜이지.”


“누가 그걸 몰라서 물어? 그냥 식탁에 올려놓고 먹으면 될 걸 왜 그렇게 따로 쟁반에 정성껏 차리고 있느냐고?”


“으응, 오늘이 설날이잖니. 그래서 우리 아파트를 위해 늘 수고해 주시는 경비 아저씨에게 이 음식 좀 대접해 드리고 싶어서 그런단다.”


“뭐어? 또 경비 아저씨야? 엄만 창피한 것도 모르는 천치바본가 봐.”



미나는 엄마의 입에서 경비 아저씨란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토라진 목소리로 발끈 성을 내면서 제 방으로 뛰어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아니, 쟤가 갑자기 왜 저러지?”



엄마는 알다가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하던 일손을 바삐 움직였습니다.


눈이 내리는 광경을 바라보느라 모처럼 신바람이 났던 미나의 기분이 삽시간에 망가지고 말았습니다.


미나는 그동안 엄마 때문에 얼마나 속이 상했는지 모릅니다. 평소 항상 예의가 바르고 착하기로 소문이 난 엄마입니다. 아빠에게는 물론이고 미나에게도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정도로 좋은 엄마입니다. 그런 엄마가 언제부터인가 여러 사람의 입에 오르며 손가락질을 받는 엄마가 되리라고는 전혀 상상조차 못했습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의 속은 알 수 없다더니 그게 바로 엄마를 두고 생긴 말인 것 같았습니다.


엄마가 동네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게 된 것은 바로 미나네 아파트의 경비 아저씨 때문입니다. 그 경비 아저씨는 키가 훤칠하게 크고 남자답게 잘생긴 노신사였습니다. 그런데 요즈음 아주머니들이 서로 만났다 하면 수군거리며 미나 엄마 흉을 보는 일에 열을 올리곤 하였습니다.



“아 글쎄, 어디 남자가 없어서 새파랗게 젊은 여자가 그런 늙은이와 눈이 맞아서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됐다지 뭐예요.”


“그뿐인 줄 아세요? 그 여자 며칠 전에는 보란 듯이 경비실까지 들어가서 그 아저씨한테 눈웃음까지 치면서 아양을 떨고 있더라니까요.”


“어머나, 도대체 무슨 배짱이래요? 얼굴이 반반하게 생긴 여자들이 인물값을 한다더니 그게 바로 그 여자를 두고 하는 말 아니겠어요.”


“그 여자가 그런 나쁜 짓을 하고 있는 걸 남편은 전혀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죠?”


“그러니까 여태까지 조용하겠죠. 남편이 그걸 알았다면 벌써 난리가 나도 몇 번은 났겠죠.”



아주머니들의 수다는 한도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런 소문이 미나의 귀에 안 들어올 리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문득 얼마 전에 수진이로부터 들은 기분 나쁜 이야기도 미나의 귓속을 다시 아프게 찔렀습니다.



“야, 니네 엄마 우리 아파트 경비 아저씨와 그렇고 그런 사이라던데 그게 정말이니?”


“……?”



미나는 금세 얼굴이 화끈거리며 말문이 막히고 말았습니다. 그 뒤로부터 미나는 부끄럽고 창피한 마음에 학교에도 가기 싫었고 친구들과 어울리기도 싫었습니다. 동네 사람들 앞에서 떳떳이 고개를 들고 다닐 수도 없었습니다. 쥐구멍이라도 있다면 당장 들어가고 싶은 그런 심정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엄마에게 대놓고 그게 사실이냐고 물을 수도 없었고, 아빠에게는 더욱더 이 사실을 알릴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미나가 보기에도 엄마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런 의심을 받기에 충분하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경비 아저씨가 먼저 인사를 해도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하고 지나가기가 일쑤였습니다. 그런데 엄마는 그게 아닙니다. 경비실 앞을 드나들 때에 혹시 경비 아저씨가 눈에 띄기라도 하면 번번이 급히 차를 세우고 내려서 경비 아저씨를 향해 깍듯이 허리까지 굽혀 가며 인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경비 아저씨란 말 대신 꼬박꼬박 선생님이란 호칭을 쓰는 것도 몹시 못마땅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어쩌다 시장에서 과일이나 맛있는 음식을 사 올 때면 그때마다 경비 아저씨의 몫을 번번이 잊지 않고 챙겨 주곤 하는 엄마였습니다.



“아니, 우리 미나가 설날 아침부터 뭐가 못마땅해서 이모양이지?”



그새 아침 운동을 갔다가 돌아온 아빠가 미나가 훌쩍이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 걱정이 되어 물었습니다. 아빠의 목소리를 들은 엄마가 주방에서 급히 달려왔습니다. 그리고 엄마가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



“아마 우리 미나가 무슨 이상한 소리를 듣고 지금 오해를 하고 있는 모양이에요. 미나야, 엄마 말이 맞지?”



미나는 그런 엄마의 목소리가 듣기조차 싫다는 듯 침대에 그대로 엎드린 채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상한 소리라니 뜬금없이(*) 그게 무슨 말이요?”



그러자 엄마가 조금은 쑥스러운 표정이 되어 아빠에게 설명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엄마의 이야기를 자세히 듣다 보니, 그 경비 아저씨는 다름 아닌 엄마가 학교에 다닐 때 존경하던 은사님이셨습니다.



“하하하, 그래서 우리 미나가 엄마를 빼앗길까봐 은근히 걱정이 되었던 모양이구나. 하하하~!”



아빠가 갑자기 큰 소리로 웃었습니다.



‘난 여태까지 그런 줄도 모르고 바보같이….’



그동안 답답하기만 했던 미나의 가슴이 한꺼번에 봄눈 녹듯 풀리는 느낌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오늘은 엄마와 같이 정성껏 끓인 떡국과 갈비 쟁반을 들고 경비 아저씨에게 세배를 가겠다는 말을 엄마에게 꼭 전해야만 할 것 같았습니다. 미나는 그런 엄마가 전보다 더욱 자랑스럽고 사랑스럽게 느껴졌습니다.


밖에서는 조금 전보다 더 크고 탐스럽게 생긴 함박눈이 펄펄 내리면서 새해 아침을 마음껏 축복해 주고 있었습니다.(*)









※ 알쏭달쏭 우리말 익히기



♣ ‘뜬금없다’와 ‘뜻밖’의 구별


※ 뜬금없다(형용사) : ‘사람이나 그 언행이’ 갑작스럽고 엉뚱하다.


예) 뜬금없는 그의 말에 나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내가 한 말이 뜬금이 없었는지 그는 무척 당황한 표정이었다.



※ 뜻밖(명사) : 주로 ‘뜻밖의’, ‘뜻밖이다’ 꼴로 쓰이며 생각이나 예상을 하지 못함을 이르는 말


예) 그녀는 뜻밖의 사고를 당해 약속 시간을 지키기가 어려웠다.

어머니가 너의 결혼을 승낙하셨다니 정말 뜻밖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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