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창작동화
공부 시간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이들이 서둘러 밀물처럼 교실을 빠져나갑니다. 마치 해방이라도 된 듯 신바람이 나서 소란스럽게 떠들어 대며 우르르 몰려 나갑니다. 철구도 아이들 틈에 끼어 운동장으로 나왔습니다. 운동장에는 어느 틈에 종수가 나와 있었습니다. 몇몇 아이들과 같이 서성거리는 걸 보면 보나마나 오늘도 축구를 한 판 벌이려는 게 뻔합니다.
“야, 절구통! 너도 꼴에 축구를 해 보려고 왔냐? 넌 절대로 끼워 줄 수 없으니까 좋은 말로 할 때 당장 빠지라고.”
아니나 다를까. 철구가 가까이 다가가기도 전에 종수가 거드름을 떨며 소리쳤습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다른 친구들도 재미있다는 듯 덩달아 한마디씩 놀려 대기 시작하였습니다.
“으하하…. 네가 축구를 하겠다고? 넌 얼른 집에 가서 절구질이나 열심히 하란 말이야. 알겠냐?”
“그래, 맞아. 절구통 주제에 축구는 무슨 얼어 죽을 축구를 하겠다고. 으하하하….”
철구는금세속이 상하고 약이 바짝 올랐습니다. 뭐라고 한마디 대꾸를 해 주고 싶었지만 그럴 만한 용기가 없었습니다. 만일 그랬다가는 지금보다 훨씬 더 큰일을 당할 게 불을 보듯 뻔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철구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무엇 하나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었습니다. 우선 공부만 해도 그랬습니다. 성적은 늘 뒤에서부터 등수를 세는 게 훨씬 빠를 정도로 바닥에 가까웠습니다.
게다가 몸도 허약한 편이어서 축구나 야구는 물론이고 달리기를 할 때에도 꼴찌를 도맡기가 일쑤였습니다. 그렇다고 특별히 잘생긴 얼굴도 아니었습니다. 그러기에 지금까지 친구들에게 늘 따돌림을 받을 때가 많았습니다.
‘치이, 언제 내가 축구를 하겠다고 그랬나?’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한 철구는 어쩔 수 없이 집을 향해 터벅터벅 힘없는 발걸음을 옮겨 놓고 있습니다. 오늘따라 철구의 어깨에 매달린 책가방이 더욱 무겁게만 느껴집니다.
“치이, 하필이면 철구가 뭐야? 차라리 절구통이라고 이름을 지어 주든지….”
철구는 이제 자신의 이름조차 못마땅하였습니다. 이름만이 아닙니다. 이제는 집도 학교도 친구도 모두가 하나같이 마음에 들지 않고 못마땅하게만 느껴집니다. 그러기에 갈수록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기가 죽은 채 혼자 놀고 있을 때가 많았습니다. 그런 철구의 모습을 지켜보는 엄마는 이만저만 걱정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때마다 늘 똑같은 말로 용기를 북돋아 주곤 하였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라. 누구나 남보다 잘하는 재주는 한 가지씩 있게 마련이란다. 그러니까 아무 걱정 말고 조금만 더 참고 기다려 보렴. 너도 언젠가는 친구들보다 훨씬 더 잘하는 일이 꼭 생기게 될 테니까. 알겠지? 파이팅!”
‘치이, 만날 거짓말만 해 주는 엄마도 미워.’
그러던 어느 날 미술 시간이었습니다. 반 친구들은 마치 이 시간이 빨리 오기를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모두가 신바람이 나서 그림 그리기에 정신이 없었습니다. 철구도 마지못해 책상 위에 엎드린 채 도화지 위에 열심히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기 역시 재주가 별로라고 생각한 철구는 친구들한테 또다시 놀림을 받을 일이 벌써부터 큰 걱정이었습니다.
“어디, 그림을 잠깐 보여 주겠니?”
바로 그때, 어느 틈에 다가온 선생님이 철구가 한창 그리고 있는 그림을 들고 친구들 앞으로 성큼성큼 나가셨습니다.
“자, 여러분! 잠깐 철구가 그린 이 그림을 잘 보세요.”
철구는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지면서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자신이 그린 그림을 보고 친구들이 또다시 비웃고 놀려 댈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철구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책상 위에 엎드리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습니다.
“여기 바닷가에 넓고 시원스럽게 확 뻗어 나간 도로를 좀 보세요. 마치 실물처럼 살아 있는 것 같지 않아요? 그림은 이렇게 그려야 하는 거예요. 정말 대단한 솜씨예요.”
친구들은 숨소리마저 죽인 채 선생님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어엉? 창피를 당할 줄 알았는데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순간, 철구는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신의 귀를 의심하기도 했습니다. 칭찬을 받은 철구는 이렇게 기쁜 일이 생길 줄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전혀 생각조차 못하고 있었습니다. 곧 하늘이라도 날아오를 듯, 붕 떠오를 것만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토록 어둡기만 하던 세상이 갑자기 환해지고 양쪽 어깨에서는 이상하게도 불끈 힘이 솟아오르고 있었습니다.
“자, 도로와 바다를 그린 것 좀 보세요. 가까운 곳은 진하게 그리고 먼 곳은 차츰 옅은 색깔로 원근을 아주 잘 표현하였어요. 그리고 그늘진 곳과 밝은 곳을 잘 살려 명암도 실물을 보는 것처럼 아주 잘 그렸어요. 이렇게 열심히 노력한다면 철구는 장차 훌륭한 화가가 될 것이 틀림없어요.”
선생님의 칭찬은 한도 끝도 없이 길게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친구들은 몹시 부러운 듯 철구를 힐끗힐끗 곁눈질로 바라보며 여전히 선생님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철구는 이제 싸움을 아주 잘하고 축구도 잘하는 종수가 전처럼 부럽지 않았습니다. 야구와 태권도를 잘하는 성만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공부도 잘하고 피아노도 잘 치는 은주도 전혀 부럽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야호! 그래, 오늘부터는 열심히 그림을 그릴 거야.’
철구는 여전히 책상 위에 엎드린 채 지금 한창 벅찬 꿈에 젖어 있습니다. 이제 누가 뭐래도 머잖아 훌륭한 화가가 되고야 말겠다는 희망에 찬 꿈에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