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창작동화
화가 할아버지는 꼭두새벽부터 일찍 일어나서 서둘렀습니다. 그리고 그림 그릴 도구를 챙기기에 바빴습니다. 화가 할아버지는 곧 이젤이랑 수채화 물감을 챙겼습니다. 팔레트와 붓도 챙겼습니다. 화가 할아버지는 마치 소풍을 가는 아이들처럼 벌써부터 설레고 마음이 들떴습니다. 오늘은 모처럼 큰마음 먹고 오랜만에 고향엘 찾아가 볼 생각이었습니다.
“아, 오늘은 마침내 내 생전에 가장 멋진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될 게야.”
고향을 떠나온 지 어느덧 50여 년이 흐르도록 단 한 번도 고향을 찾아가 보지 못한 화가 할아버지입니다. 고향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가 아닙니다. 그동안 타향을 떠돌면서 오직 그림 그리기에만 몰두했기 때문입니다. 아니 그보다는 고향을 떠날 때, 화가로 크게 성공하기 전에는 절대로 고향 땅을 밟지 않겠다는 무서운 결심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평생을 오직 그림만을 열심히 그려 왔지만, 아쉽게도 아직 화가로서 크게 성공을 하지는 못한 화가 할아버지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계속 미루다가는 그 조그만 꿈조차 끝내 이루지 못할 것만 같아 불안하였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오늘 결심을 하게 된 것입니다. 화가 할아버지는 오늘날까지 평생을 두고 꼭 이루고 말겠다는 조그만 소망이 있었습니다. 언젠가는 자신이 태어난 정든 고향 마을을 한번 멋지게 그려 보고 싶은 것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벼르고 벼르다가 마침내 오늘 큰마음 먹고 길을 나서기로 한 것입니다.
“아, 우리 고향도 이젠 많이 변했겠지!”
이윽고 고향으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은 화가 할아버지는 초점 없는 눈으로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갖가지 풍경들을 바라보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그리고 마음은 이내 그 옛날 고향에서 자랄 때 뛰어놀던 여러 아련한 추억으로 흠뻑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아, 그때가 정말 좋은 시절이었지! 아암, 좋은 시절이었고말고.’
두어 시간 동안 속력을 내며 힘차게 달리던 버스가 소리 없이 멈추는가 싶더니 기사 아저씨의 안내하는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손님, 다 왔습니다. 내리십시오!”
화가 할아버지는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정신을 차리고 주섬주섬 짐을 챙겨 버스에서 내렸습니다.
“고맙소. 그럼 수고해요.”
화가 할아버지가 내린 곳은 고향 마을로 들어서는 입구였습니다. 그곳은 그 옛날, 성황당이 자리를 잡고 있던 나지막한 고갯마루였습니다. 잠시 성황당이 있던 자리를 바라보고 있던 화가 할아버지의 표정은 그만 실망의 빛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곳은 분명히 성황당이 있던 곳이었습니다. 늙은 벚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고, 바로 그 밑에는 돌무더기가 산더미처럼 쌓인 성황당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황당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그 대신 양쪽산을 연결하는 거대한 터널이 뚫려 있었습니다. 길 역시 그 옛날 소달구지가 흙먼지를 날리며 오르내리던 길이 아닌 초현대식 아스팔트 도로로 확 바뀌고 말았습니다.
“아니, 그새 달라져도 이렇게나 달라지다니?”
화가 할아버지는 허전함과 실망의 빛을 감추지 못하면서 산길을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산길을 따라 약 이삼십 분만 걸어 올라가면 고향 마을이 한눈에 잡힐 듯 훤하게 내려다보이는 산봉우리가 나타나게 됩니다. 젊은 시절에 화가 할아버지가 시간이 날 때마다 가끔 올라가곤 하던 산봉우리였습니다. 그리고 성악을 한답시고 토셀리의 세레나데와 같은 가곡들을 목청껏 소리소리 지르며 부르곤 하던 추억이 듬뿍 묻어 있는 산봉우리입니다. 흰 눈이 무릎까지 쌓이는 한겨울에는 산토끼를 잡겠다고 자주 오르던 산이기도 합니다. 마을 친구들과 여럿이 큰 몽둥이를 하나씩 들고 추운 줄도 모르고 이리 뛰고 저리 뛰어다니던 추억이 지금도 눈에 선하기만 합니다. 몇 번이나 쉬고 또 쉬어 가면서 마침내 산봉우리까지 힘겹게 올라왔습니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맨 먼저 눈길이 향한 곳은 고향 마을이었습니다.
“쯧쯧쯧… 아니, 저럴 수가 있나!”
순간, 화가 할아버지는 맥이 쭉 빠진 채 그만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마을의 모습이 달라져도 너무 몰라볼 정도로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고향을 송두리째 잃어버리고 말았다는 생각에 그렇게 실망스럽고 허탈할 수가 없었습니다. 가슴이 미어질 듯 아프기도 했습니다. 해마다 왜가리와 백로가 소란스럽게 우짖으며 떼로 몰려와서 둥지를 틀고 살아가던 아래 동산은 깎아뭉개진 채 지금은 당치도 않은 자동차운전면허시험장이 번듯하게 들어서 있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화가 할아버지가 태어나고 자란 초가집도 흔적조차 없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 자리엔 가든이란 큰 간판이 걸린 큼직한 음식점이 들어섰습니다. 공인중개사 사무실과 갖가지 음식점들도 즐비하게 늘어섰습니다. 60여 채나 되던 초가집도 모두 2층 양옥집으로 변했습니다. 마을 여기저기에는 커다란 공장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마을 앞을 가로질러 뻥 뚫린 아스팔트 도로 위로는 신호등에 따라 수많은 자동차가 분주하게 오가고 있었습니다. 겨울밤이면 석유 등잔불을 켜 놓고 화롯가에 모여 앉아 감자를 구워 먹거나 할머니의 옛날 이야기를 듣던 그 옛날의 마을이 아니었습니다.
“아, 이건 정녕 꿈에도 그리던 나의 고향이 아니야!”
화가 할아버지는 좀처럼 자리에서 일어설 줄을 몰랐습니다. 고향 마을을 그리고 싶었던 마음이 싹 가시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한동안 그렇게 넋이 빠진 표정으로 앉아 있던 화가 할아버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러고는 무슨 생각에서인지 이젤을 세워 놓더니 도화지 위에 연필로 밑그림을 열심히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도화지 위에는 60여 채의 초가집이 그려지고 있었습니다.
초가집 굴뚝에서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습니다. 마을 앞 실개천에서는 어레미와 깡통을 든 아이들이 미꾸라지와 메기, 붕어 등 물고기를 신나게 잡고 있었습니다. 몇 백 년이나 묵었음직한 느티나무 그늘에서는 장기를 두는 어르신들도 보이고, 느티나무 가지에 걸려 있는 그네에서는 마을 처녀들이 모여 신바람이 날 정도로 그네를 뛰고 있었습니다. 물이 가득 고인 마을 앞 논바닥 흙탕물에서는 벌거숭이가 된 아이들이 해가 지는 줄도 모르고 개헤엄을 치며 즐겁게 놀고 있었습니다. 아랫마을의 뒷동산 나뭇가지마다에는 수백 마리가 넘는 백로와 왜가리 떼가 몰려와서 시끄럽게 울부짖고 있었습니다.
“아, 참 그걸 깜빡했구나!”
화가 할아버지는 문득 어릴 제 같이 놀던 이웃집 갑순이와 금순이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곧 갑순이랑 금순이랑 같이 사이좋게 어울리며 소꿉놀이를 하던 모습도 그려 넣었습니다.
“그렇지. 이게 바로 내가 꿈에도 그리던 그 옛날 우리 마을의 모습이라구!”
화가 할아버지는 어느 새 신바람이 나서 밑그림 위에 정성껏 색칠을 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화가 할아버지가 꿈에도 잊지 못하고 늘 그리워하던 그 옛날 고향의 모습이 도화지 위에 점점 더 선명하고 아름답게 되살아나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