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기에 재상인 황희 정승은 높은 벼슬자리에 있으면서도 항상 인자한 마음씨와 따뜻한 성품으로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었다고 한다.
또한 신분이 낮은 종도 양반과 다름없이 평등하게 대해 주기로 소문이 난 분이었다.
어느 날, 황희 정승의 그런 소문을 들은 세종대왕이 그를 불러 친히 묻게 되었다.
"황 정승께서는 개를 싫어하신다고요? 개란 원래 주인을 섬기고 따르는 짐승이 아니 겠소?“
그러자 황희 정승이 이에 대답했다.
"상감마마, 주인에게 때로는 목숨까지 바치는 충성스러운 동물이 바로 개이거늘 소신이 어찌 개를 싫어할 까닭이 있겠사옵니까.”
“그렇지요. 그런데 왜 집에서 개를 기르지 않으시죠?”
“소신의 집에는 도둑이 들어온다 해도 훔쳐갈 물건이라고는 없기에 개를 기를 필요성을 않기 때문이옵니다. 그러니 개에게 먹일 밥거리가 있으면 차라리 그것을 가난한 거지에게 주는 것이 백번 나을 것 같아 개를 기르지 않고 있사옵니다.”
세종대왕은 황 정승의 갸륵한 마음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묻게 되었다.
"소문을 들으니 황 정승께서는 매일 아침에는 반찬 없는 밥, 저녁에는 죽을 드신다는데 그게 사실이오?“
그러자 황 정승은 약간 쑥스러운 표정이 되어 다시 입을 열었다.
"소신은 현재 나라에서 주는 후한 녹을 받고 있사옵니다. 때문에, 고기반찬도 늘 상에 올릴 수 있사오나 죽을 먹는 것은 소신의 입맛에 죽이 맞기 때문이옵니다. 그리고 남은 식량은 가난한 사람을 도울 수도 있으니 그거야말로 일거양득이 아니옵니까? 소신의 마음은 항상 흐뭇하고 행복하오니 마마께옵서는 아무 근심 마시옵소서."
황희 정승의 설명을 세종대왕은 다시 크게 감탄한 나머지 지금까지 호의호식하며 지내던 자신의 그릇된 생활을 깊이 반성하며 부끄럽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늘 검소한 생활을 하면서 가난한 사람을 도와 주고 있는 황 정승의 정신을 반드시 본받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또한 황 정승의 집 울타리에는 오래 묵은 큰 복숭아 나무가 한 그루 자라고 있었다. 그래서 해마다 복숭아가 먹음직스럽게 익어가는 가을철만 돌아오면 동네 개구쟁이 아이들이 앞을 다투어 나무에 올라가서 복숭아를 따 먹기에 여념이 없었다.
어느 날 황 정승은 아이들이 정신없이 복숭아를 따고 있는 모습을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가 아이들을 향해 큰 목소리로 일렀다.
"애들아, 너희들이 복숭아를 따 먹는 것은 좋지만 절대로 나뭇가지를 부러뜨려서는 안 된다. 그리고 다 따지 말고 몇 개는 남겨두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나도 복숭아 맛을 좀 볼 수 있을 게 아니겠느냐!"
이처럼 황 정승은 어진 마음으로 항상 아이들까지도 몹시 사랑하였다고 한다. ( * )
두 번째 일화
또한 황희 정승은 어쩌다 사람들이 서로 다툼이 있을 때마다 중간 입장에서 화해를 잘 시키기로 유명했던 분이다.
어느 날, 그날은 마침 황희 정승댁에 모처럼 귀한 손님이 오기로 된 날이었다. 그런데 여자 종들이 사소한 일로 말다툼을 하느라고 시끌벅적하면서 소란을 떨고 있었다.
“손님이 오시니까 우선 음식 준비를 하는 게 순서가 아니야?”
여자 종 하나가 이렇게 말하자 다른 여자 종이 펄쩍 뛰면서 대꾸하였다.
"아니야. 넌 몰라도 한참 모르는구나! 손님이 오시면 우선 집안이 깨끗해야지. 그러니까 청소부터 하는 게 순서란 말이야.”
"이런 멍청이, 음식부터 먼저 해야 된다니까.”
"이런 바보, 청소부터 해야 된단 말이야.”
한동안 옥신각신하더니 마침내 한 여자 종이 황희 정승에게 달려와서 일러바치게 되었다.
"대감마님! 손님은 먼 데서 오신다고 하셨지요? 그러니까 먼 길을 오시느라고 시장하실 테니까 음식 준비부터 해놓는 일이 급하지요?“
여자 종의 물음에 황희 정승이 빙그레 웃는 낯으로 대답했다.
“허허허, 오냐, 네 말이 옳고말고.”
그러자 이번에는 다른 여자 종이 조금 샐쭉해진 얼굴로 물었다.
"대감마님! 손님이 집안에 들어서면 우선 집안이 깨끗해야 기분이 좋지요?“
"아암, 그렇고말고.“
"그러니까 집 안 청소부터 하는 게 급한 일이지요?”
그 말을 들은 황희 정승은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였다.
“허허, 듣고 보니 네 말도 좋구나.”
황희 정승의 시원스러운 대답에 여자 종은 그제야 표정이 밝아졌다.
그러자 내 말이 어떠냐는 듯, 먼저 말한 다른 여자 종을 흘겨보며 잘난 체를 하였다.
"거봐. 집 안 청소를 먼저 해야 한다고 하시잖아!"
"아니야. 아까는 음식을 먼저 해야 한다고 분명히 말씀하시는 걸 너도 들었잖아!“
그러자 지금까지 곁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황희 정승의 조카가 못마땅한 얼굴로 따지듯 물었다.
“아니, 듣고 보니 숙부님 말씀은 저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이 말도 옳고 저 말도 옳다고 하시니
도대체 어느 말이 옳다는 말씀입니까? 이쪽이 옳다거나 저쪽이 옳다고 분명히 말씀을 하셔야 하지 않습니
까?“
조카의 말에 황희 정승이 다시 말하였다.
“허허허-- 그래, 듣고 보니 네 말도 틀린 게 아니로구나!”
그러자 이번에는 그 모습을 한동안 말없이 바라보고만 있던 황희 정승의 부인이 참다못해 나섰다.
"대감 같은 분이 지금까지 어떻게 나랏일을 보아 왔는지 몹시 의심스럽습니다. 누가 옳고 그른지를 윗사
람으로서 분명하게 밝혀 주시지 않고,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은 것처럼 어찌 그리 우물쭈물한단 말입니까?"
못마땅한 표정으로 핀잔을 주는 부인의 말에 황희 정승이 다시 대답하였다.
“듣고 보니 당신 말도 옳구려. 허허허~~~”
“……?“
“……?“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여자 종들도, 조카도, 부인도 기가 막혀 입을 벌린 채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이 이야기는 너무나 잘 알려진 이야기이다. 하지만 황희 정승이 어리석고 줏대가 없어서 그런 것은 결코 아니었다. 서로 다툼이 있을 때는 어느 한쪽의 말만 듣지 말고 중간 입장에 서서 이를 이해해 주어야 한다는 깊은 뜻이 숨어 있는 것이다.
사소한 다툼이 자칫 잘못하여 커지게 되면 개인이나 국가의 운명을 망치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이 바로 황희 정승의 생각이었다.
대부분의 다툼이란 사소하고 부질없는 일 때문에 벌어지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이러한 다툼을 보다 슬기롭게 해결해 나가시 위해서는 어느 한쪽만 옳다고 생각할 게 아니라 항상 그 중간 입장에서 생각하다 보면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경우가 많다.
가장 어리석은 것은 남과 다투면서 조금도 양보하려는 마음이 없이 오직 자기 생각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태도라 하겠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