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침없는 발언(12)
[충남 서천, 월남 이상재 선생 생가(1850~1927)]
월남 이상재 선생은 우리 민족이 일본에게 온갖 탄압을 받고 있던 불우한 민족 수난기에 서재필 선생 등과 함께 독립협회를 조직하고 청년운동과 종교운동을 통해 평생을 오직 독립운동에 헌신했던 위인이다.
평소에 그의 거침없는 성품은 상하를 불문하고 너무나 대담하여 누구나 그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간담을 서늘해질 정도였다고 한다.
선생의 손자가 배재학당을 졸업하던 날이었다.
졸업식장에 참석한 이상재 선생이 마침내 축사를 할 차례가 왔다.
"여러분! 여러분은 우리나라 말을 잘 알아들을 수 있으시죠? 난 아직도 일본말을 전혀 할 줄을 몰라서 우리나라 말로 축사를 할 터이니 널리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선생은 단상에 올라서자마자 이렇게 우렁찬 목소리로 첫마디를 시작했다. 그러자 졸업식장은 금방 웃음소리와 박수 소리로 떠나갈 듯하였다.
일본이 우리 말을 쓰지 못하게 했던 그 시절에 이상재 선생의 이런 용기와 거침없는 발언은 식장에 참석한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을 후련하게 씻어 주기에 충분했다.
또한, 선생이 3.1운동에 가담했다가 잡혀 일본 검사에게 직접 고문을 받고 있을 때의 일이다.
선생은 자신의 두 손바닥을 양쪽으로 벌리더니 검사에게 두 손을 다시 합쳐 달라고 명령을 하게 되었다. 영문을 모르는 검사가 의아하게 생각하면서 선생의 두 손을 합쳐 주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다시 명령하였다.
"이번에는 서로 붙은 이 손바닥을 도로 떼어 주시오."
검사는 좀 아니꼽기는 했지만 선생이 시키는 대로 이번에도 서로 붙어있는 손바닥을 도로 떼어 주었었다.
그러자 이번에도 선생의 입에서는 그의 습관 대로 당당하고도 거침없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잘 보았는가? 이렇게 붙었던 손도 금방 떨어지지 않았느냐? 한번 붙으면 언젠가는 다시 떨어지는 것이 진리인 것이니 한일합방도 이와 마찬가지가 아니겠느냐? 내 말이 틀렸느냐?“
선생의 말에 검사는 너무나 기가 막히고 어처구니가 없어 더 이상 문초를 계속하지 못한 채 그만 포기하고 말았다.
이처럼 선생은 특히 일본인 앞에서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거칠고도 속이 시원할 정도로 거침없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기 때문에 때로는 그들에게 많은 깨달음을 주기도 하였다.
또한, 선생은 젊은이들과 함께 어울려 놀기를 좋아하고 유머도 즐겼다고 한다.
어느 날, 그 시대의 명 시인인 변영로 선생이 종로 거리를 걷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누군가가 큰소리로 뒤에서 "변정상 씨! 변정상 씨!"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변정상이란 다름아닌 변영로 선생의 부친의 이름이었다.
이상하게 생각한 변영로 선생이 얼른 뒤를 돌아보니 그렇게 소리치며 부르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이상재 선생이었던 것이다. 그러자 기분이 약간 상한 변영로 선생이 책망하듯 나무라게 되었다.
"선생님, 벌써 노망이 나셨습니까? 부자지간의 이름을 혼동하고 계시다니!“
그러자 이상재 선생은 껄껄 웃으면서 태연한 얼굴로 대답했다.
"야, 이 녀석아! 내가 노망이 나다니? 그럼 네가 변정상의 씨가 아니면 도대체 누구의 씨란 말이냐? 내 말이 틀렸단 말이냐? 하하하……."
선생의 대답 소리를 들은 변영로 선생은 그만 할 말을 잃고 그 자리를 슬며시 피해버리고 말았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