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로 떳떳하게 살아가기(18)

[김안국 (1478~ 1543)]

by 겨울나무

김안국은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性理學)이다.


성리학(性理學)이란 중국 남송에 주희가 집대성한 유학의 한 파이며 이 성리학이 우리나라에 들어오게 된 것은 고려 말기이다.

이 성리학은 우리 고유의 사상은 아니었으나 그 후 조선의 통치이념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성리학은 길재, 정도전, 권근, 김종직, 이이, 이황에 이르러 조선의 성리학으로 체계화하게 되었다.

조선 시대 중종 임금 때의 성리학자인 김안국은 어려서부터 김안로와 가까이 지내는 친구 사이였다.

이름은 서로 비슷했지만, 그들 두 사람의 성격은 서로 너무나 달랐다. 그러면서도 어떻게 친구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김안로는 출세를 위한 일이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성격이어서 주변 사람들의 존경을 받지 못하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김안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출세를 위해 수단과 벙법을 가리지 않았았기에 이미 높은 벼슬자리에 앉아 있어서 그 누구도 그를 대놓고 흉을 보거나 욕을 하지 못하고 뒤에서만 수군거리며 흉을 보곤 하였다.


그의 친구인 김안국은 친구인 김안로로부터 단 한 번이라도 덕을 보겠다든가, 그를 통해 어떤 이득이나 더 큰 출세를 하려고 해본 적이 없이 정직하게 살았다. 그리고 김안로가 잘못을 저지를 때마다 조금도 겁을 내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꾸짖을 때가 많았다.

어느 날, 김안국의 형제가 그만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아무 죄도 없이 주위 간신들의 모함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소문을 듣게 된 김안로는 감옥으로 김안국을 찾아오게 되었다. 그리고 감옥에 갇혀 있는 다른 사람들은 모두 그대로 두고 김안국만 빼주겠다고 큰소리를 치고 있었다.


”내가 특별히 생각해서 자네만 감옥에서 빼주기로 했다네.“


김안로가 이렇게 약간 거드름을 떨며 자신의 지위에 대한 힘을 자랑하자 반가워하며 고마워할 줄 알았던 김안국의 반응은 그게 아니었다. 오히려 기분이 나쁜 나쁜 매우 못마땅한 표정으로 김안로를 나무라고 있었다.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는 자네가 어떻게 그렇게 자네 마음대로 사사롭게 법을 집행할 수가 있단 말인가? 죄가 있다면 누구나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할 것이고, 죄가 없다면 다 풀어 주는 것이 법도이거늘 어찌 친구라고 하여 나 하나만 꺼내 주겠다는 말인가. 그런 마음으로 어떻게 공명정대하게 나랏법을 지켜나갈 수가 있겠는가?“


김안로는 금방 얼굴이 벌개지면서 크게 무안을 당하고 말았다.


그로부터 얼마 뒤, 김안로는 결국 역적모의를 했다는 죄로 벌을 받아 죽고 말았다.

김안로가 죽자 지금까지 그를 따라다니며 벼슬자리를 얻음은 물론 김안로에게 아첨을 일삼던 무리들은 발을 뚝 끊고 김안국의 문상조차 가지 않았다. 역적으로 몰려 죽은 사람의 집에 드나들다가 자칫 모함을 받아 죽을지도 모를 일이어서 겁이 났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김안국만은 떳떳하게 김안로의 집에 문상을 가려고 길을 나서게 되었다. 그러자 주변 사람들이 펄쩍 뛰면서 이를 말렸다.


"아무리 절친했던 친구사이였다고는 하지만 역적의 집에 문상을 가는 매우 위험한 짓이니 아무래도 그만두는 게 좋을 듯 합니다.”


그러자 아무 염려 말라는 듯 김안국이 대답했다.

"그렇긴 하지만 그와 나의 우정은 변할 수가 없는 것이오. 내가 지은 죄가 없으니, 공명정대한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나의 문상을 탓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오.“


김안국은 이렇게 대답하고 나서 당당하게 김안로의 집에 문상을 가게 되었다.


그때 문상을 온 사람은 김안국 한 사람뿐이었다고 한다.


김안국이 떳떳하게 이렇게 행동할 수 있었던 것은 평소에 늘 올바르고 공명정대하며 떴떳한 행동을 해 왔기 때문이라 하겠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