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전의 주인을 찾습니다’(19)

[홍기섭의 일화 (1776~1831)]

by 겨울나무

조선 시대 때, 참봉 홍기섭이란 매우 양심적인 사람이 살고 있었다. 참봉이란 조선 시대 때 가장 말단직인 종9품 벼슬을 말한다.


말이 벼슬이지 말단인데다가 너무나 청렴강직한 성격이어서 그의 집 살림살이는 그야말고 너무 가난하여 끼니걱정은 물론 그날그날 땔감조차 넉넉하지 못하여 매우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이렇게 가난한 집에 도둑이 들어오게 되었다.


그런데 마루로 올라서서 여기저기를 살펴보았지만 훔쳐 갈 만한 물건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이번에는 혹시 곡식이나 반찬감이라도 가지고 갈 생각으로 장독이랑 부엌도 샅샅이 뒤지게 되었다. 그러나 역시 쌀 한 톨은커녕, 먹을 양식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오직 빈 솥단지 하나만 부엌에 덩그러니 걸려 있었다.


"찢어지게 가난하다는 말은 이런 집을 두고 한 말이로구나. 명색이 벼슬자리에 앉은 양반이 어쩌면 이렇게 가난할 수가 있을까?“


도둑은 너무 기가 막힌다고 생각다 못해 오히려 자신이 도둑질 해 모아 가지고 다니던 엽전 꾸러미를 솥에 넣고 그 집을 나오게 되었다.


그 이튿날 아침이었다.


계집종은 양식이 없어 밥은 할 수 없지만 군불이라도 지펴볼 생각으로 부엌으로 나왔다. 그리고는 무심코 솥뚜껑을 열어보고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도둑이 넣고 간 엽전꾸러미가 눈에 띄었기 때문이었다.


계집종은 곧 엽전 꾸러미를 들고 한달음에 주인에게 달려갔다.


"마님, 이것은 아마 하늘이 내리신 물건인 듯합니다. 이 돈으로 양식과 땔감을 장만하면 당장의 궁색 함을 면할 수 있을 것 같사옵니다.“


그러나 계집종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난 홍기섭은 엄하게 꾸짖었다.

"시끄럽다! 그 돈이 어찌 하늘이 내린 돈이겠느냐. 누가 나를 불쌍하게 여기고 몰래 갖다 놓은 것 같으니, 당장 주인을 찾아 돌려주어야 하겠다.“


참봉은 곧 ‘돈 주인은 와서 찾아가라'고, 대문에 방을 써 붙이게 되었다.


그 이튿날이 밝았다.


어젯밤에 도둑질을 하러 왔던 도둑은 그 뒤의 일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여 참봉네 집으로 다시 와서 동정을 살펴보게 되었다. 그리고는 대문에 붙어있는 이상한 방울 보고는 계집종을 불러 슬그머니 그 사연을 묻게 되었다.


<돈의 주인을 찾습니다>


자초지종을 듣고 난 도둑은 그만 찔끔하면서 크게 느낀 바가 있어 홍기섭의 앞으로 나가 무릎을 꿇고 사죄를 하게 되었다.


"제가 어젯밤에 물건을 좀 훔칠 생각으로 참봉 댁에 들어왔던 놈입니다. 그러나 너무도 빈곤한 살림살이를 하고 계신 것 같아 솥 속에 엽전을 넣어 두고 갔습니다. 오늘 이처럼 어른의 거울 같은 양심을 보니 저 자신이 무척 부끄럽기 그지없습니다. 앞으로는 깨끗이 손을 씻고 새사람이 되겠습니다. 부디 용서하여 주십시오.”


홍기섭은 도둑이 진심으로 회개하는 모습을 보자 크게 기뻐하며 도둑에게 장차 도움이 될만한 말을 많이 해주고 돌려보내게 되었다.


이 홍기섭의 손녀가 후에 헌종의 비가 되었다. 그 손녀가 곧 명헌왕후였던 것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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