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의 거목(20)

[안중근 의사(1879~ 1910)]

by 겨울나무

안중근 의사는 진사 태훈의 아들로 황해도 해주 출신이다. 아명은 응칠(應七), 본관은 순흥으로 한학을 수학하였으나 한학보다는 무술 연마에 더 힘썼다.


1909년 10월 26일, 의사가 우리 조선의 침략자 우두머리인 이토오 히로부미를 살해했다는 소식에 세상은 그야말로 발칵 뒤집힐 정도였다.

중국 사람들까지 의사를 영웅이라 하였으며 일본은 대한 민국을 당장 박살을 내고 말겠다고 연일 으름장을 놓기에 이르렀다.


의사는 결국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일본 여순 감옥으로 끌려가서 수감되었다. 그리고 사형을 당할 때까지 6개월간 그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감옥에서 의사를 감시했던 일본인들은 대부분이 안중근 의사의 높은 인격에 차츰 큰 감동을 받게 되었다.


감옥의 소장인 일본인조차 다음과 같이 말할 정도였다.


"내가 평생에 만났던 인물 가운데 가장 위대한 인물은 바로 조선의 독립 운동가 안중근 선생이다.“


6개월의 감옥 생활을 하면서 안중근 의사는 200여 점의 붓글씨를 남겼다. 그 대부분은 감옥의 간수들이 안중근 의사로부터 기념을 남기기 위해 받았던 글씨들이었다.


요즈음에도 그때 안중근 의사가 쓴 글씨들은 그 당시 간수로 있던 일본인들의 집안의 가보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


죽음을 앞둔 감옥 생활에서 안중근 의사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일본 간수가 묻게 되었다.


"아니 선생은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까?“


"나라를 위해 마땅히 할 일을 했으니, 어찌 즐겁지 않겠소?“


이에 놀란 일본 간수가 또 묻게 되었다.


"도대체 선생의 그 놀라운 인격은 어디에서 나온 것입니까?"

"진정 의로운 사람이 되려면 하루라도 글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 법이오.“


그제야 일본 간수는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의사는 이처럼 6개월간의 감옥 생활을 하면서도 틈만 나면 책 읽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의사의 그런 훌륭한 인격은 좋은 책을 많이 읽은 독서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안중근 의사는 글씨를 쓰는 일 외에도 틈만 나면 글도 열심히 썼다. 어떻게 하면 동양에 평화를 이루게 할 것인가에 대한 이른바 <동양평화론>이라는 글이었다.

마침내 사형집행 날이 다가왔다. 이에 안중근 의사는 간수를 통해 간절한 부탁을 하게 되었다. <동양평화론>을 다 쓰기 위해서는 15일 정도가 더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이 책을 다 쓰려면 아직 15일 정도가 더 걸릴 것 같으니 사형을 15 일만 더 연기해 줄 수 없겠소?”


안중근 의사의 이야기를 들은 일본인들은 한동안 고심 끝에 안중근 의사의 높은 인격에 감화되어 그의 말대로 사형을 연기해 주게 되었다.

그때까지 일본에서는 한 번도 사형을 연기해 준 적이 없었던 이례적인 일이었다고 하니 그 일만 봐도 안중근 의사의 높은 인격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1910년 3월 26일, 이 날은 마침내 의사의 사형이 집행되는 날이었다.


마지막 면회가 허락되자, 형장에는 고향에서 홍 신부, 그리고 동생인 정근과 공근이 찾아왔다.


동생 공근이 의사에게 침통한 표정으로 마지막 남길 말이 없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의사는 내가 죽은 뒤에 내 시체를 독립된 우리나라에 묻어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리고 다만 우리나라의 독립하는 모습을 보지 못하고 죽는 게 가장 분하고 원통할 뿐이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는 사형장을 향하여 태연히 걸어갔다.


의사의 예를 보듯이 우리들이 품성을 기르고, 보다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독서와 글쓰기 또한 실로 매우 중요한 일이라 할 수 있겠다.

우리가 건강을 유지하려면 영양도 섭취해야 하고 운동도 해야 하듯, 독서와 글쓰기 역시 인격을 도야하는 데 있어서 그만큼 중요한 일이라 하겠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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