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문무왕 때 사찬(沙飡)의 벼슬자리를 가진 구진천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사찬이란 신라 때 17관등 중 여덟째 등급의 벼슬을 이르는 말이다.
그는 벼슬도 벼슬이지만 그 무엇보다도 활을 열심히 만들고 쏘는 기술을 연구하며 평생을 보낸 사람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활만 잘 만드는 게 아니라 남달리 활을 잘 쏘는 기술도 남달리 뛰어났다.
그의 그런 집념은 천 걸음 밖에 있는 사물도 활로 쏘아 명중할 수 있는 ‘천리노’(일명 쇠뇌)라는 놀랍도록 무서운 활과 화살을 만들어 내는데 성공하게 되었다.
그 덕분에 신라의 군사들은 싸움에 나갈 때마다 모두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적의 모습이 멀리 보이기만 해도 천리노로 명중할 수 있었기에 이를 당해낼 적이라고는 그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그 소문은 곧 당나라의 고종에게까지 알려지게 되었고 마침내 구친천을 당나라로 초대하기에 이르렀다.
훌륭한 활과 화살을 만들어 은근히 신라를 빼앗아보려는 속셈으로 활을 만드는 비법을 알아내기 위해 구진천을 초대하게 되었던 것이다.
“여봐라 ! 신라의 구진천이 만든 활이 그토록 멀리 나가고 명중률이 높다고 하던데 그를 당장 초대해 오도록 하여라!”
결국 초대를 받은 구진천은 당나라로 건너가게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당의 고종은 그를 만나기가 무섭게 활과 화살을 만들어 달라는 요구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구진천은 가만히 생각해 보게 되었다.
’만일 내가 천리노를 만들어준다면 당나라 군사들도 우리 신라 군사들과 똑같이 강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절대로 그의 말을 들어주어서는 안 된다‘
그다음 날부터 구진천은 열심히 활을 만들기 시작했다. 아니 열심히 만드는 게 아니라 열심히 만드는 척만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귀한 손님 대접까지 받아가면서 온갖 좋은 재료로 드디어 활과 화살을 완성하게 되었다.
"으하하!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천리노란 말이지?“
당의 고종은 기뻐하며 일단 활을 쏘아보게 하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이란 말인가! 기대에 부풀었던 활은 고작 30 걸음 정도 날아가다 땅에 떨어졌던 것이다.
당의 고종이 실망한 얼굴로 구진천을 향해 묻게 되었다.
"아니 이게 어찌 된 일이오?“
"폐하! 아마도 재료가 당나라 재료이어서 그런 모양이옵니다.“
"그렇다면 당장 신라의 재료를 가져다 만들면 될 게 아니요? 그렇다면 당장 신라에서 재료를 갖다가 만들면 될 게 아니요?”
구진천이 이번에는 다시 신라에서 가지고 온 재료로 활과 화살을 열심히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뒤, 활과 화살은 다시 만들어졌다.
"이번에야 틀림없이 천 걸음을 날아가겠지.“
당의 고종은 몹시 기뻐하며 다시 활을 쏘아 보도록 명령하였다. 그러나 이번에도 결과는 그게 아니었다. 겨우 60 걸음 밖에 안 나갔던 것이다.
"아니 이게 도대체 어찌 된 일이오? 신라의 재료로 만들면 된다더니 왜 이 모양이냔 말이요?“
"폐하! 저도 이 화살이 60 걸음 밖에 안 나가는 이유를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아마도 나무가 바다를 건너오면서 습기를 먹어 그런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러니 죄송한 말씀이오나 도저히 당나라에서는 천리노를 만들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오른 당의 고종이 소리치게 되었다.
"여봐라! 저놈을 당장 처형하라!“
그러자 구진천은 조금도 겁을 먹지 않고 태연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폐하! 천리노는 신라의 활이지 당나라의 활이 아니옵니다. 저를 죽이든 살리든 폐하 마음대로 하십시오.“
구진천의 당당한 태도에 감격한 당의 고종은 부르르 떠는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열어 명령하게 되었다.
”괘씸하긴 하나 과연 조국에 대한 의리를 지키는 대단한 충신이로다. 죽이지 말고 지금 바로 정중히 신라로 돌려보내도록 하여라!“
결국 구진천은 고국인 신라에 대한 의리도 지키고 목숨도 건지게 되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