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6년, 미국의 독립 백 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대대적인 박람회가 마침내 필라델피아에서 열리게 되었다.
이 박람회에 벨의 발명품도 전시하게 되었는데 벨의 작품이 전시된 곳은 하필이면 전시회장 구석진 자리여서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자리였다.
그러나 벨은 건물의 계단과 벽 사이의 좁은 장소에 책상을 놓고 그 위에 자신이 발명한 송화기와 수화기를 정성을 다해 전시해 놓았다.
그러나 관람객들은 그 누구도 거들며 보지도 않고 그냥 지나치기만 할 뿐 벨의 작품이 전시된 책상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는 사람은 그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뒤, 드디어 그 날은 심사를 하는 날이었다.
심사위원들이 줄지어 다니면서 출품한 작품들을 하나하나 심사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벨이 출품한 작품을 보고는 하나같이 비웃게 되었다.
”이건 뭐야? 전기로 말을 주고 받는 기계라고? 이런 말도 안 되는 걸 전시회에 내놓다니!“
”흥, 이런 것도 작품이라고 버젓이 내놓다니, 이런 어린애들 장난감 같은 물건은 심사할 가치도 없어.“
심사 위원들은 벨이 전시해 놓은 전화기를 들여다볼 생각도 하지 않고 그냥 지나가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잠시 뒤, 이번에는 가슴 가득 훈장을 주렁주렁 매단 신하 한 사람이 다가왔다. 그리고는 벨을 보자 반색을 하며 인사를 하였다.
”어이구, 이거 벨 선생 아니요? 뜻하지 않은 곳에서 이렇게 또 만나 뵙게 되는군요.“
그 사람은 다름 아닌 브라질의 임금인 ’돈 베드로‘였다. 그는 보스턴 대학에서 벨이 농아 교육을 하는 수업 광경을 보고 너무 감격한 나머지 벨과 이런 저런 많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던 임금이었다.
”벨 선생, 당신의 출품한 작품은 어느 것입니까?“
”예, 페하, 바로 이 작품입니다. 전기를 이용해서 사람의 목소리를 서로 주고 받는 전화기입니다.“
”그래요? 그거 말만 들어도 참 신기한 발명품이로군요.“
’돈 베드로' 임금은 곧 책상 위에 전시되어 있는 수화기를 신기한 듯 귀에 대고 이리저리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한 나라의 임금이 전화기를 유심히 관찰하고 있는 모습을 보자 관람객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본 심사 위원들도 무슨 일인가 하고 다시 되돌아왔다.
그러자 벨은 송화기를 들고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벨이 중얼거리는 소리를 수화기를 통해 들은 임금님은 매우 신기한 듯 소리쳤다.
”허, 그거 정말 신기하네. 기계가 말을 하고 있잖아!“
‘돈 베드로’ 임금이 놀란 얼굴로 이렇게 감탄을 하자 관람객들은 이 신기한 기계를 보기 위해 삽시간에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그리고 수화기를 통해 전선을 타고 들려오는 벨의 목소리를 듣고는 모두가 입이 딱 벌어지고 말았다.
지극까지 그 누구도 거들떠 보지도 않던 벨의 전화기는 삽시간에 대단한 인기를 모으고 말았다.
그 이튿날이었다. 마침내 벨이 전시한 전화기의 책상은 컴컴했던 한쪽 구석에서 밝은 한가운데로 옮겨졌다. 그리고 박람회가 페회되던 날 벨이 출품한 전화기는 최고의 상인 금메달을 받게 되었다.
만일 그 때, 프라질의 임금이 벨에게 말을 거는 인연만 없었더라면 아마 전화기의 발명은 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고 그대로 끝났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농아 학교 선생으로 활약한 벨
벨은 나이가 들자, 런던 대학에서 공부를 마치고 졸업 후에는 아버지를 도와 농아들을 열심히 가르쳤다. 그리고 1870년 아버지와 함께 미국으로 건너간 ‘벨’은 2년 뒤에 는 보스틴 대학의 교수로 임명되어 '음성 생리학' 과 아버지가 생각해낸 '보면서 말하는 법'을 가르쳤다.
그는 또한 음성을 연구하기 시작하면서 음파를 전류에 실어 보내는 방법은 없을까 하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드디어 전화기 발명하다
벨은 그의 조수 와트슨과 함께 다시 연구를 하기 시작하였다.
어느 날, 난청인 아이를 가르치기 위해 진동하는 그림을 조사하던 중에 문득 이 진동을 전류에 보내면, 소리가 먼 곳까지 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는 여러 번의 실험과 연구를 한 끝에 드디어 자석을 이용한 전화기를 발명할 수 있었다. 이 전화기는 전자석이라는 철판을 붙여 소리의 진동이 철판을 떨리게 하여 자석 코일이 그 반응을 일으키게 하는 원리였다.
1876년 3월 10일, 그런 원리로 전화기를 만든 벨은 그 전화기로 조수에게 전화를 걸게 되었다.
"와트슨 군! 일이 있으니 빨리 좀 와 주게.“
이 말이 바로 벨이 전화기를 발명하고 나서 처음으로 전화로 통한 음성이었다.
벨은 1877년 전화 회사를 세우고, 세계에서 가장 큰 전화 회사를 만들었다. 1887년에는 ‘보르다’ 상을 받고 보르다 연구소를 차려 농아 교육 문제, 축음기와 광선 전화를 연구하는 한편, 수상 비행기의 연구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1882년에 미국에 귀화한 뒤, 볼타 실험소를 설립하고, 거기에서 원통형 음반도 발명하게 되었다.
1922년 75세에 그가 숨을 거두자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뜻에서 캐나다 전화 회사는 1분 동안 모든 전화의 통화를 중지하도록 하고 벨의 죽음을 슬퍼하였다고 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