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란 조선 시대 때 도를 다스리는 각도의 최고 우두머리로 지금의 도지사와 같은 벼슬의 명칭이었다.
허적은 유난히 강직한 성격이어서 공과 사의 구분이 뚜렷하여 법을 지키는 일에는 단 한 치의 양보도 없음은 물론 더구나 사사로운 일에는 전혀 타협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 당시 권세를 마음껏 누리던 조 씨라는 인조의 후궁이 있었다.
조 씨는 워낙에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후궁이라는 이름을 등에 업고 지나칠 정도로 세력을 부리고 있었다. 백성들을 상대로 제멋대로 뇌물을 받아 모으는가 하면 자신의 욕심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겁도 없이 그 어떤 잘못도 서슴지 않고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괴롭히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의 잘못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그 누구도 말릴 엄두조차 낼 주가 없었다. 잘못했다가는 언제 어떤 화를 당하게 될지 몰라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조 씨가 뜬금없이 자신이 거느리고 있는 종을 전라 감사 허 적에게 보내왔다.
종을 보내게 된 용건은 조 씨가 허 적에게 해서는 안 될 일을 은밀히 처리해 달라는 부탁을 해오게 되었던 것이다.
자초지종을 자세히 들은 허 적은 벌컥 화를 내며 조 씨가 보낸 종을 크게 꾸짖게 되었다.
"뭐가 어쩌구 어째? 이 세상엔 법이 있거늘 나를 감히 어떻게 보았기에 법을 어겨가면서까지 이런 못된 일을 해달라고 하더란 말이냐? 당장 썩 물러가지 못할꼬!”
그러나 허 적이 이렇게 화가 나서 소리쳤지만 조 씨가 보낸 종은 겁을 먹기는커녕 오히려 거드름까지 떨며 물러가지 않고 버티고 있었다.
"나으리, 후궁 조씨의 부탁을 감히 거절하시다가는 아마 몸에 해로우실 겁니다. 그리고 뜻하지 못한 화를 입을 수도 있다는 걸 왜 모르십니까?“
이에 허 적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아올라서 다시 소리치게 되었다.
"아니, 네 이놈! 얻다 대고 감히 그런 헛소리를 지껄이고 있느냐? 썩 물러가지 못할꼬!”
"허어, 일개 전라 감사 신분으로 조 씨의 부탁을 거절하고도 그 벼슬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좋은 게 좋은 거니 그러지 마시고 후궁 조 씨의 말씀을 따라주십시오.“
그러자 허 적은 아까보다 더 화가 나서 소리치게 되었다.
"뭐야? 네놈을 점잖게 타일러 서울로 보내려 했거늘 무엄하기가 짝이 없으니 그냥 돌려보낼 수 없구나. 여봐라! 저 놈을 당장 묶어서 땅바닥에 꿀려 놓으렷다!“
허 적이 이렇게 소리쳤지만, 종은 여전히 허세를 부리고 있었다. 감히 자신을 함부로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계속 거들먹거리며 소란을 피우고 있었다.
할 수 없이 허 적은 너무나 당돌하고 괘씸한 종을 법대로 엄한 형벌을 내렸다.
그러나 종은 끝끝내 반항하며 무엄하게 굴고 있었다. 그러지 형벌을 가하고 있던 관리가 허 적에게 귀뜸을 하게 되었다.
"나으리! 이 사실을 후궁 조씨가 알게 되면 정말 안 좋을 것 같으니 이쯤에서 형벌을 거두심이 어떠신지요?”
"그런 걱정마라. 나는 법대로 법을 지켰을 뿐이니 겁날 것 하나 없느리라.“
그후, 허 적은 이 사실을 낱낱이 글로 적어 후궁 조 씨에게 보내게 되었다.
허 적의 글을 받아본 조 씨는 낯빛이 굳어지며 덜컥 겁을 내게 되었다. 누가 뭐라고 해도 법을 법대로 철저히 처리하고 있는 허 적이 두렵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번 일에 대해 주위 사람들에게 절대로 소문을 내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만일 이 당당하지 못한 소문이 왕의 귀에 들어간다면 자신이 불리해질 것이라는 생각에 지레 겁이 났기 때문이었다.
옛말에 도둑질을 한 사람은 다리를 오그리고 자고, 도둑을 맞은 사람을 다리를 뻗고 잔다는 속담이 있다.
이처럼 법을 철저하게 지키는 사람은 아무리 그 어떤 일이 닥쳐도 두려워할 일이 없는 것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