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을 딛고 일어선 음악가(24)

[베토벤(1770~1827)]

by 겨울나무

독일의 본에서 태어난 베토벤은 서양 고전음악 작곡가이다.

그는 13세 때에 이미 궁정의 오르간 연주자가 되었고, 1787년에는 빈으로 유학하면서 모차르트의 칭찬을 받기도 하였다. 그 후 작곡에 전념한 끝에 1795년에는 피아노 소나타인 ‘비창’ ‘피아노 협주곡 제3번’등을 작곡하기도 하였다.


불행 속에서 음악가로 출발하다


베토벤은 할아버지 때부터 궁정 음악가를 지낸 집안의 아들로 그의 아버지는 술을 너무 지나치게 좋아해서 언제나 집이 가난하였다. 그래서 베토벤에게 음악을 가르쳐 돈을 벌어들이게 할 욕심을 품게 되었다. 궁정이란 옛날 임금이 기거하던 집을 이르는 말이다.


아버지는 베토벤에게 잠시도 쉬는 틈을 주지 않고 피아노를 치게 하였다. 결국 베토벤은 아버지의 강요에 의해 돈벌이를 목적으로 어릴 때부터 가난 속에 힘든 음악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던 것이다.

베토벤은 집안이 너무 가난하여 초등학교도 다니다가 중도에서 그만 두고 말았다.


그는 어린 나이에 이미 예배당에서 오르간 연주자의 조수가 되어 음악적인 재능을 인정받았다. 13세 때에는 정식으로 궁정의 오르간 연주자가 되어 집안 살림을 도울 수 있게 되었다.


음악을 하게 된 동기야 어쨌거나 차츰 음악의 꿈을 키우게 된 베토벤은 1787년 17세 때 음악의 도시 빈으로 가서 음악 공부를 하게 되었다.

빈에서 모차르트를 만나 재능을 크게 칭찬받으며 음악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고국으로부터 뜻밖의 소식이 들려왔다. 어머니가 갑자기 위독하다는 편지를 받고 고향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그리고 어머니의 장례를 치른 뒤, 베토벤은 다시 평소에 그를 아끼던 어느 귀족의 도움으로 다시 빈으로 가게 되었다.

1792년부터 빈에서 하이든 등의 가르침을 받던 베토벤은 차츰 그의 재능과 이름을 널리 떨치기 시작하였다. 그때 그가 작곡한 것은 주로 피아노곡으로 피아노 소나타인 '비창'과 '피아노 협주곡 제 3번‘ 등이었다.

강한 의지력으로 운명을 딛고 일어서다


그러던 중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게 되자 그는 두 동생의 생활까지 도맡게 되었다. 그러나 그런 어려운 생활속에서도 그는 음악에 대한 정열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의 음악 재능은 나날이 발전하였고, 좋은 곡도 계속 내놓게 되었다.

그러나 베토벤에게는 잠시도 편안할 날이 없었다. 동생들은 계속 손을 벌리며 그를 기롭혔으며 그는 귓병까지 생겨 소리를 잘 들을 수도 없었다. 음악가로서 소리를 듣지 못한다는 것은 이미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이에 크게 실망하게 된 베토벤은 결국 자살을 결심하고 두 동생 앞으로 유서를 쓰기에 이르렀다.



"가을의 나뭇잎이 땅 위에 떨어지듯 나의 희망도 모두 말라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그는 문득 다시 마음을 다져 먹게 되었다.

'사람은 무엇인가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동안에는 자기 스스로 제 목숨을 끊어서는 안 된다. 그렇다. 아무리 힘은 들어도 좋은 함으로써 살의 보람을 찾자!’


베토벤의 마음속에 있는 불타는 창작욕이 그의 자살을 단념하게 했던 것이다. 그후 그는 새로운 포부와 의지를 불태우며 잇달아 많은 명곡을 발표하게 되었다.


피아노를 위한 다단조 소나타 '월광곡', 다장조 소나타 발트시타인', '제 2교향곡‘ 제3교향곡 ’영웅‘ 등이 바로 그 무렵에 작곡한 작품들이다.



'영웅 교향곡’


1804년에 완성된 응대하고 강렬한 생명이 넘치는 '영웅 교향곡'은 당시 늘 나폴레옹을 영웅으로 생각하였던 베토벤이 나폴레옹을 위해 작곡하여 바친 곡이었다고 한다.


그 후, 황제가 된 나폴레옹이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르는 횡포를 알게 된 베토벤은 너무 분노하여 ‘영웅 교향곡’ 표지에 적혀 있던 ‘나폴레옹’이란 이름을 찢어버리고 악보를 내동댕이쳤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그 뒤에도 베토벤은 '제 4교향곡‘, ’제 5교향곡‘, ’제 6교향곡‘을 비롯하여 피아노곡과 바이올린곡 등 수많은 명곡들을 작곡하였다. 그 중에서도 '제 5교향곡'은 운명의 문을 열어젖히고 나가는 인간의 강인하고 억센 힘이 잘 나타난 곡으로 유명하다.


슬픈 운명에도 결코 굴하지 않는 그의 강인한 정신이 그 곡을 듣는 이들의 마을을 거세게 두드림을 주는 것이다.

또한, 제 6교향곡인 '전원'은 그가 좋아하였던 시골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노래한 곡이라 할 수 있다. 어떻든 그와 같은 명곡들이 짧은 기간 동안 한 사람의 힘으로 나왔다는 것은 정말 놀랄 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환희의 찬가 '제 9교향곡'


그러나 1815년 무렵. 아침이 밝아오면 반드시 저녁의 어두움도 있는 법, 그처럼 유명했던 그의 명성도 결결 내리 막길을 걷기 시작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롯시니의 음악이 유행하기 시작하여 그는 시대에 뒤떨어진 음악가란 소리를 듣기 시작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의 귀는 이제 차츰 더 들리지 않더니 상대방의 이야기도 듣지를 못해 글로 써서 의사를 통하게 되었다.


그처럼 그의 앞에는 깊은 절망이 가로놓여 있었다. 그러나 그는 또 다시 용기를 내어서 지나간 과거를 되돌아보고 마지막 정리를 이룩하려는 결심을 붙태우고 있었다.


마침내 1824년 5월, '제 9교향곡'의 발표 연주회가 빈의 극장에서 열리게 되자, 귀가 들리지 않는 베토벤을 위하여 그 당시 유명한 악사들이 모두 출연하였고, 극장은 대 만원을 이루었다.


마지막 악장의 우렁찬 환희의 합창으로 연주가 끝나자, 관중석에서는 우레같은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러나 귀가 먹은 베토벤에게는 그 소리를 들을 수가 없었다. 그 모습을 딱하게 여긴 악단 단원 중의 한 사람이 베토벤의 몸을 돌려 관중석으로 향하게 하자, 베토벤은 그때야 비로소 크게 성공했다는 것을 알고 눈시울을 적셨다고 한다.


그토록 오랜 시련 속에서도 오직 굳센 의지의 힘으로 운명의 벽을 넘어섰던 베토벤의 우렁찬 승리의 메아리는 오늘날까지 우리들의 가슴 속에 오래오래 빛나고 있는 것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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