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를 만나는 날

[창작동화 -재미있는 동화도 읽고, 맞춤법도 익히고]

by 겨울나무

버스가 복잡한 골목 여기저기를 부지런히 누비며 자주 멈췄다 가기를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노란 색깔로 치장한 아담하고 예쁘게 생긴 버스입니다.


버스는 멈추었다가 출발하기를 자주 합니다. 마치 택배라도 하듯 여기저기에 꼬마손님들을 한두 명씩 내려 주고는 또다시 달리곤 합니다.


버스에 타고 있는 손님들은 모두가 어린이집에 다니는 꼬마들입니다. 꼬마들은 무슨 얘깃거리가 그렇게 많은지 모릅니다. 버스는 언제나 꼬마 아이들의 재잘거림으로 잠시도 조용할 틈이 없이 시끄럽습니다.


”야 은주야, 너네 엄마 혹시 너네 아빠하고 이혼한 거 아니니?“


소영이가 느닷없이 은정이를 바라보며 물었습니다.


"이혼? 그게 무슨 말인데?“


은주는 아직 이혼이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합니다. 그래서 얼른 되물었습니다.


”헤헤헤..., 이런 바보, 넌 아직 그것도 모르니? 아빠랑 엄마가 떨어져서 따로 사는 게 이혼이란 말이야, 이 멍충아.“


소영이의 말에 은정이는 슬그머니 기분이 상하고 언짢아졌습니다. 사실, 지금 은정이 엄마와 아빠는 오래전부터 떨어져서 살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은정이는 지금까지 틈만 나면 친구를 앞에서 아빠 자랑을 늘어놓곤 하였습니다. 미국에 가서 돈을 많이 벌고 있는 중이라고 늘 입버릇처럼 아빠 자랑을 하던 은정이였습니디. 그런데 갑자기 이혼한 게 아니냐고 묻고 있으니 기가 막힐 일이었습니다.


은정이가 금방 뽀로통해진 목소리로 펄쩍 뛰며 소리쳤습니다.


”그런 거 아니란 말이야. 모르면 잠자코 있기나 해. 우리 아빤 지금 돈을 많이 벌기 위해 미국에 가서 따로 살고 있다니까.“


그러나 소영이는 은정이의 말을 더 이상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피이, 웃기자 마, 그렇다면 미국에 간 아빠가 왜 한 번도 오질 않는 거니?“


은정이는 자신의 말을 믿지 않은 소영이 때문에 더욱 속이 상하고 약이 올라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정말 진짜라니까. 우리 아빠가 가끔 미국에서 편지도 보내 주고 있다니까. 그럼 우리 아빠가 보내준 편지를 보여줘야 믿을래?”


“됐어. 알아들었으니까 이제 그런 거짓말 좀 그만해. 내가 그런 말에 속을 줄 아니?”


은정이는 나무나 억울하고 분한 마음에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만 으앙 하고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얘들아, 왜 그래? 서로 사이좋게 놀아야 착한 어린이가 되는 거야.”


은정이의 울음소리를 들은 선생님이 얼른 다가와서 달래주는 바람에 버스 안은 잠시 조용해졌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소영이의 말도 틀린 말은 아니었습니다. 어린이집에서 소풍을 갈 때, 그리고 재롱 잔치를 하거나 운동회를 할 때도 은정이 아빠의 얼굴을 봤다는 사람은 그 누구도 없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은정이 역시 그럴 때마다 문득 아빠가 보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엄마는 늘 이렇게 달래 주곤 하였습니다.


"은정아, 아빠가 많이 보고 싶지? 하지만 조금만 더 참고 기다려 주렴.“


그리고 엄마는 가끔 은정이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곤 하였습니다.


아빠는 은정이가 두 살이 되던 해에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 미국으로 떠났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돈을 많이 버는 대로 곧 돌아온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입니다. 곧 돌아온다던 아빠는 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돌아오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은정이는 아빠와 너무 어릴 적에 헤어졌기 때문에 아빠의 얼굴조차 기억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빠가 보고 싶고 그리울 때마다 할 수 없이 으레 벽에 걸려 있는 아빠의 사진을 바라보곤 하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벽에 걸려 있는 마음씨 좋게 생긴 아빠는 늘 은정이를 액자 속에서 바라보며 환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른 아침이었습니다. 오늘은 드디어 그토록 손꼽아 기다리고 기다리던 아빠가 돌아오는 날입니다. 은정이는 들뜬 마음에 간밤에는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엄마, 어서 일어나서 아빠 마중 갈 준비해야지.“


은정이는 이른 아침부터 엄마를 흔들어 깨웠습니다. 다른 때 같으면 어림도 없는 일입니다. 워낙에 아침 잠이 많은 은정이여서 엄마가 으레 몇 번을 흔들어 깨워야 겨우 일어나곤 했던 은정이었습니다.


"아직 기차가 올 시간이 멀었다니까. 조금만 더 자고 일어나도 되니까 그렇게 하자, 응?"


"마중 나갈 준비하고 그럭저럭 하다 보면 늦는단 말이야. 그러니까 어서 일어나라니까!“


"으이구, 네 성화에 잠자기는 다 글렀나보다. 은정이는 아빠가 그렇게도 보고 싶은 모양이구나?"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그럼 엄마는 아빠가 안 보고 싶어?"


"보고 싶지 않다니? 그나저나 아빠가 널 알아보기나 하실는지 모르겠구나."


"아참, 그런데 아빠 마중하러 공항으로 가지 않고 왜 기차 정거장으로 마중을 가는 거야?“


은정이의 물음에 순간 엄마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고 말았습니다.


"넌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니? 아빠가 비행장은 너무 멀어서 기차 정거장까지 온 다음에 만나자고 그랬다니까."


"아하, 참 그랬었지.“


이렇게 대답을 마친 엄마의 입에서는 왠지 모를 한숨이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표정도 점점 어둡게 그늘이 지고 있었습니다.


엄마의 가슴은 지금 답답하기만 합니다. 아빠가 미국에 가서 돈을 벌고 있다는 말을 그대로 믿고 있는 은정이가 가엾고 불쌍하기도 하였습니다. 한편으로는 그런 은정이를 보기가 몹시 죄스럽기도 하였습니다.


엄마는 지금 혹시라도 은정이가 오늘 눈치라도 채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불안하고 초조하기가 이를 데 없습니다.


사실 엄마는 그동안 아빠 대신 은정이에게 보낼 편지를 써서 항공우편 봉투에 넣어 보낸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 모두가 은정이의 기를 살려주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은정이 생일이 돌아올 때마다 은정이가 좋아하는 선물을 사서 아빠가 보낸 것처럼 엄마가 몰래 부친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러기에 오늘 아빠가 미국에서 온다는 말 그 역시 모두가 거짓말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엄마는 며칠 전부터 아빠를 맞이하기 위한 그럴듯한 준비를 하기 위해 바쁜 나날을 보냈습니다. 아빠가 정말 미국에서 돌아오는 것처럼 은정이에게 보여주기 위해 엄마 혼자 얼마나 많은 신경을 썼는지 모릅니다.


아빠가 새로 갈아입을 양복과 가발, 그리고 여행용 가방은 물론이고, 은정이에게 줄 선물까지 미리 몰래 준비해 놓느라고 몹시 바빴던 것입니다.




이윽고 엄마와 은정이가 아빠를 만나기 위해 서둘러 버스에 올랐습니다. 달리는 버스에서 은정이가 한껏 들뜯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엄마, 이번에 아빠가 오면 다시 미국에 가지 않고 우리하고 아주 같이 사는 거야?”


“그, 글쎄다.”


그렇게 대답하고 있는 엄마의 목소리는 왠지 하나도 힘이 없었습니다. 엄마의 입에서는 다시 가느다란 긴 한숨이 흘러나왔습니다.


"엄마는 아빠 만나는 게 안 좋아? 왜 이렇게 좋은 날 한숨을 쉬고 그래?“


"그러게나 말이다. 이렇게 좋은 날 한숨을 쉬고 있다니, 아마 엄마도 너무 좋아서 그런가 보지 뭐.“


엄마는 이렇게 대답하며 애써 웃음띤 표정을 지어보였습니다.


은정이는 그런 엄마의 눈치를 살피며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한 시간쯤 달리던 버스가 마침내 목적지인 기차 정거장에 도착하였습니다. 은정이는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설레는 마음으로 사방을 두리번거렸습니다. 엄마도 덩달아 이리저리 사방을 두리번거리다가 소리쳤습니다.


"아, 저기 아빠가 보인다!"


"어디, 어디?”


엄마가 가리키고 있는 대합실 입구에는 양복으로 말끔하게 차려입은 웬 신사 한 분이 눈에 띄었습니다. 은정이는 엄마가 이끄는 대로 그 신사를 향해 급히 걸어갔습니다.


"아, 우리 은정이로구나. 그새 몰라보게 많이 컸구나. 얼마 있으면 시집을 가도 되겠는 걸, 하하하!“


아빠가 두 손으로 은정이를 번쩍 안아 올렸습니다. 은정이는 어색하고 쑥스러운 마음에 공연히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있었습니다. 아빠의 냄새, 아빠의 체온이 이렇게 기분 좋게 느껴질 수가 없었습니다.


난생처음 보는 아빠. 양복으로 말끔하게 차려입은 아빠의 얼굴은 어딘지 모르게 약간 핼쑥( * )해 보이기는 했지만, 사진 속의 아빠보다 더 멋지고 잘 생긴 믿음직한 얼굴이었습니다.


"자, 그럼 이제 슬슬 집으로 가볼까?“


아빠는 한 팔로 은정이를 안은 채 다시 버스 정류장이 있는 큰길을 향해 발걸음을 옮겨놓기 시작하였습니다. 아빠의 다른 한 손에 잡힌 큼직한 여행용 캐리어 바퀴가 보도블록에 부딪치며 구를 때마다 다닥다닥 소리가 경쾌하기 그지없었습니다.


난생처음 아빠 품에 안긴 은정이는 너무나 기분이 좋아 마치 활짝 핀 해바라기 꽃처럼 환한 표정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당장 친구들을 만나면 미국에서 돌아온 아빠 자랑을 늘어놓을 생각에 가슴이 더욱 크게 부풀어 오릅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이렇게 기쁘고 좋은 날 아무 말 없이 천천히 뒤를 따라오고 있던 엄마의 눈가에서는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


엄마는 지금 큰 걱정으로 한창 고민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며칠 뒤에는 아빠가 미국이 아닌 다시 담이 높은 그곳에 가서 얼마나 더 있다가 나오게 될지 모를 일입니다.


그러나 그런 사실을 아직도 까맣게 모르고 있는 은정이는 지금 그저 신바람이 나고 즐겁기만 합니다.

( * )






< 우리말 익히기 >


'핼쑥하다' 와 '핼쓱하다’


* '핼쑥하다': 핏기가 없고 파리하다.


<쓰임의 예> 그는 한눈에 보기에도 환자임을 알 수 있을 만큼 얼굴이 핼쑥하였다.

그녀는 핼쑥한 얼굴로 가까스로 웃음띈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참고> '핼쓱하다'와 '헬쓱하다'는 맛춤법에 맞지 않는 말이다.

'핼쑥하다' 또는 '해쓱하다'가 표준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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