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는 어린 시절부터 철학에 관한 처적을 즐겨 읽었으며 또한 스승들로부터 철학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하였다.
그리고 그는 어려움과 역경을 이겨 나가기 위해서는 참는 힘을 길러야 한다고 생각하여, 낡은 옷차림에 맨발로 거리를 돌아다니는 유별난 성격의 소유자이기도 하였다.
태어날 때부터 건강한 체격이었는데 게다가 그런 힘든 단련을 쌓았기 때문에 그는 병이라고는 전혀 모르고 성장했다.
그러던 어느 날, 소크라테스는 문득 어디선가 무슨 소리가 들려 오는 이상한 소리를 듣게 되었다.
젊은이들에게 진리를 가르치던 소크라테스의 나이 40세에 이르렀을 때였다. 평화롭기만 하던 그리스에서는 아테네와 스파르타 간에 싸움이 일어나 나라 형편이 몹시 어지럽게 되었다.
결국 아테네가 싸움에서 패하게 되자, 나라와 백성들은 하루아침에 타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이에 평소에 정의와 진리를 사랑하던 소크라테스의 마음은 매우 안타깝고 걱정스러은 가운데 늘 오직 백성들의 걱정으로 가득찼다.
'모든 택성들의 병든 마음을 고쳐주기 위해 난 어떤 일을 해야 할까?‘
하고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던 어느 날, 소크라테스의 귀에 문득 누군가가 젊은 시절에 들려주었던 적이 있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소크라테스여! 지금 당장 거리로 나가 젊은이들에게 진리의 도리를 가르쳐 주시시오!”
그 말은 곧 소크라테스의 깊은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소리이기도 하였다. 그때부터 소크라테스는 거리로 나가 청년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먼서 아테네의 바르지 못한 그릇된 정신을 꾸짖으면서 이를 올바르게 가르치게 되었다.
거리로 나간 소크라테스는 많은 사람들에게 인간의 참된 모습과 바른 인간 정신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늘 재산이나 명예 따위 따위의 욕망에 사로잡히지 말고 높은 덕을 쌓는 인간이 될 것을 가르쳤다.
인간이 자기 자신 속에서 덕을 찾아내지 못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는 자기 자신 역시 덕에 대하여 아는 바가 없다고 생각한 나머지 지혜를 사랑하고 지혜를 찾으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리고 항상 자기 자신은 '지혜 있는 사람' 이 아니라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 이라 말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자기가 공부하는 있는 철학이라는 것은 지혜를 사랑하며 또한 그것을 찾는 활동이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오늘날 '철학'이라는 용어도 소크라테스에 의해 유래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는 젊은이들에게 용기, 절제, 지혜, 정의 등, 덕에 대해 질문하고 상대편의 그 대답을 통하여 참된 덕을 깨우치게 하는 일에 힘을 기울였다.
그러한 소크라테스 식의 문답법은 뒤에 플라톤에 의하여 발전된 '변증법'의 기초가 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소크라테스는 항상 인간이라면 무엇보다도 먼저 ’자기 자신을 알라‘고 가르치곤 하였다.
결국 그가 남긴 '너 자신을 알라'는 한마디의 명언은 지금까지 길이길이 후세까지 빛나는 명언으로 남게 되었으며 철학을 함에 있어서 중요한 근본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늘 신발도 신지 않은 채 남루한 옷을 걸치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거리에서 그의 생각을 널리 전하였다. 티끌만치도 아무런 욕심이 없었던 그는 자신이 생각할 때 믿어 의심하지 않는 바른 행동을 실천하는 일에 대해서는 추호의 망설임도 없었다.
그는 그 당시 사회와 정치가와 학자들의 잘못을 들추어 꾸짖으며 서민들과 더불어 오직 진리와 참된 길만을 지키고 보존하려는 일에 총력을 기울였다.
어떤 권세나 권력에 전혀 의지하지 않고 자신이 생각하고 믿는 바를 거침없이 이야기하는 그의 가르침을 많은 청년과 시민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하였다.
그러나 일부 권력자와 학자들은 그런 그를 몹시 싫어하고 미워하기도 하였다. 그 결과 소크라테스는 청년들을 그릇된 길로 유혹하고 이끌어서 나라에 해를 끼치는 위험한 인물이라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마침내 재판까지 받기에 이르렀다.
결국 소크라테스는 아무 죄가 없었지만 70세의 나이에 법정에 서게 되었다.
그는 재판관 앞에서도 자신의 뜻을 거침없이 당당하게 주장했다.
"나는 내 이야기를 언제 까지나 계속할 것이며, 언제까지나 진리를 찾을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그렇게 굽힐 줄 모르고 당당하게 말했으나 마침내 사형 판결이 내렸다. 그리고 사형 날짜를 기다리며 감옥에 갇혀 있을 때, 많은 제자들이 외국으로 망명할 것을 여러 차례 권했으나 그는 제자들의 권유에 따르지 않았다.
"나라의 법이 아무리 나쁜 법이라 해도 나라의 법은 반드시 지키는 것이 도리이니라.”
소크라테스는 마지막으로 이 말 한마디를 남긴 뒤, 바로 독약을 마시고는 이 세상과 영영 작별을 하게 되었다.
한평생을 가난 속에서 살면서 진리를 찾고 진리를 가르치다가 억울하게 이 세상과 작별을 하였지만, 그는 고대 그리스의 대 철학자로,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상가로 손꼽히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마지막으로 간수가 내미는 독약을 받아들고 간수에게 부탁을 하게 되었다.
"천국으로 가는 길에 무사히 여행할 수 있도록 기도를 하고 싶은 데 허락해 주시오.“
그리고는 제자 크리톤에게도 마지막 유언 한 가지를 남겼다.
"나는 아스구레퍼오스한테 닭 한 마리의 빚을 졌다네. 그것을 꼭 갚아 줄 것을 부탁하네."
그리고 마지막으로 평온한 낮으로 기도를 끝낸 뒤 태연히 독약을 마셨다. 이렇게 세계적으로 유명한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조용히 숨을 거두고 말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