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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나무 May 12. 2020

한 치 앞의 일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것이 인생이라고 하였다. 그러기에 태어날 때는 순서가 있어도 가는 것은 순서가 없다는 말도 자주들 하기도 한다. 행복 역시 행복 순이 아니듯이…….    

 

또 어떤 심한 사람은 매일 잠자리에 들 때마다 벗어놓은 신발을 내일 아침에 다시 신을 수 있을지 어떨지 몰라 불안하다고도 말하는 사람도 볼 수 있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정말 그런 말들이 틀림없이 맞는 말이다. 

      

그런데 요즈음에는 과거와 달리 다행스럽게도 인간의 수명이 점점 연장되고 있어서 100세 시대라는 말이 크게 유행한 지도 이미 오래전의 일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한때는 ‘내 나이가 어때서’란 대중가요가 열풍을 일으키키도 했고, ‘백 세 인생’이라는 가요도 크게 유행을 하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기도 한다. 나이가 들어 더 오래 살고 싶은 사람들은 이 노래의 가사가 얼마나 희망적이고 솔깃하며 위안이 되는 고무적인 노랫말이 아니겠는가.  

    

 사실 현대 의학의 발전 덕인지 아니면 옛날과 달리 각자 건강의 중요성을 크게 느낀 나머지 운동을 열심히 하고 조심을 해서 그런지 모를 일이다.  

    

인간 수명이 점차 늘어감에 따라 한동안 인생은 60부터라는 말이 유행을 하며 떠들썩하더니 요즈음에는 한 수 더 떠서 인생은 70부터라는 말도 등장하게 되었다. 그래서 60에 환갑 잔치를 한다는 일 역시 옛날의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그래서 그런지 요즈음 노인정에서는 70대가 된 노인은 노인 취급을 받지 못하고 노인정에서도 막내로 잔심부름을 하는 역할을 담당한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다. 


어쨌거나 희망적이며 좋은 현상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인생이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는 아니겠지, 하는 마음으로 오늘도 편안하고 안일한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내일 당장 생을 마감할 것을 미리 안다면 그 누가 있는 재산이나 생활용품과 일용품들을 애지중지 아끼며 알뜰하게 살아갈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특히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들의 대부분은 그 옛날 가난했던 시절에 검소하고 절약하지 않으면 어려웠던 그때의 정신과 습관이 몸에 배어 그런지 엄청 아끼는 습관이 몸에 배어있는 것 같다.

      

오래 입거나 신어서 이제는 버릴 옷가지나 신발, 그리고 그릇 등 새것들은 모두 잘 보관하고 모셔둔 채 헌 것만을 고집하며 지나칠 정도로 아끼며 살아가고 있다. 돈도 그렇다 있으면 있는 대로 쓰는 게 아니라 되도록 아끼고 쓸 줄을 모른다. 마치 천 년 만 년까지 살아갈 것처럼…….     


알뜰하기로 친다면 나의 어머니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날 갑자기 돌아가신 뒤에 살림살이 정리를 해보니 한숨이 나오고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     

 

우선 이불 보따리를 보니 그랬다. 돌아가실 때까지 다 해져버린 이불을 끝까지 덮고 사셨다. 이불이 없어서가 아니다. 단 한 번도 덮지 않은 이불이 몇 채씩이나 고이 모셔두고 있었다.   

   

신발장도 마찬가지였다. 여기저기서 선물로 받은 개봉도 하지 않은 채 단 한 번도 신어보지 않은 신발들이 여러 켤레나 되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웬 질그릇 독과 항아리, 그리고 숟갈이나 젓가락, 접시 냄비 등……, 단 한 번도 써보지 못하고 고이 모셔둔 살림살이가 어찌나 그렇게 많은지 모를 일이었다.    

  

따지고 보면 그 모두가 언제 돌아가실 줄도 모르고 아껴 두었다가 나중에 쓰기 위해 보관해 두셨던 것이리라. 결국, 다 떨어진 헌 것만 쓰다가 아깝게도 새것은 한번도 써보지 못한 채 돌아가시고 만 것이다.    

  

혹시 이웃에서 가져다 쓸 사람이 있나 수소문을 해 보았으나 모두가 삻단다. 고물상에 문의를 해보았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아 그 모두를 스티커를 붙여서 처리하기가 어찌나 번거롭기도 하고 어려우며 힘이 들기도 하고 아깝던지…….   

       

그래서 나중에 그 얘기를 어떤 사람에게 해보았더니 그는 언제 어떻게 될지 몰라 항상 자신은 옷이든 신발이든 항상 새것부터 우선 입거나 신고 다닌다는 말에 이해가 가기도 하였고, 그게 훨씬 더 현명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있었다.     

  

가만히 살펴보면 우리 주변에 이런 일들이야 매일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곤 하겠지만, 나 역시 이처럼 뜻밖의 일을 한번 경험한 적이 있었다.      


어느 날 저녁 해가 질 무렵이었다. 


갑자기 아파트 1층 현관에서 누르는 인터폰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고 있었다.


난 그때 몸살기가 있어서 자리에 누워있는 상태였다. 간신히 몸을 가누고 일어나서  수화기를 들어보고는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선뜻하고 눈살까지 찌푸려지고 말았다. 더럭 겁부터 났기 때문이었다.    

    

벨을 누르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과거 직장 동료로 나보다 서너 살 위의 연상이었다. 용건을 듣고 보니 그는 퇴근하자마자 내 생각이 나서 갑자기 오게 되었단다. 그리고 오랜만에 술 한잔을 같이 나누고 싶어서 친절히 찾아온 것이란다.    

  

어찌 보면 참 반갑고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난 겁부터 났다. 그래서 성의는 매우 고맙지만 지금 몸살기가 있어서 누워 있는 중이니 다음에 마시자며 사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지금 몸살기가 문제가 아니었다. 그보다 더 두려운 것은 그의 주량을 도무지 이길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집에까지 찾아온 사람을 돌려보낸다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오늘 그와 마지못해 그대로 끌려가게 된다면 난 그야말로 그땐 쓰러지고 말 것이 틀림없었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나도 어지간히 술을 좋아하고 주량도 꽤나 센 편이라고 자부하고 있는 사람 중의 하나였다. 

그래서 과거에 그 사람과 같은 직장에 있을 때 어쩌다 그 사람과도 가끔 술자리를 같이 해 보았지만 그 사람은 도저히 이길 자신이 없었다. 그때마다 지나친 과음으로 그 이튿날은 직장까지 결근을 할 정도로 고생을 했던 경험이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은 주량만 센 것이 아니었다. 성격 또한 끈질기고 고집도 유별났다.  


일단 술을 마시기 시작하면 절대로 한 군데서 마시지 않았다. 난 이미 술에 취해 몸을 가누기가 어려운데도 딱 한 잔만 더 하자며 적어도 두 세 군데는 더 들러서 마셔야만 한다. 그렇게 되면 그땐 무슨 술을 마신 것인지 쌀뜨물을 마신 것인지 맛도 모르고 그저 마셔댈 수밖에 없었다.         

 

내가 이리 비틀 저리 비틀거리며 그만 마시자고 애원을 해봐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이튿날 직장에 가보면 그는 이미 먼저 출근한 상태였다. 그리고는 어제 그렇게 많이 과음을 했음에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술 마신 티가 없이 멀쩡하기만 하다.   

    

아무튼 술로는 상대하지 못할 공포스러운 사람이 바로 그였다. 


그리고 그다음 날 이른 아침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어제 그 사람을 그대로 돌려보낸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려 마음 한구석이 찝찝하던 중에 어디선가 전화가 걸려 왔다.      


얼른 받아보니 바로 어제저녁에 술을 마시자고 왔던 그 사람의 큰아들이었다. 그의 큰아들 역시 정부 기관의 높은 자리에 앉아 일하게 된 지 10여 년이 넘는 이른바 엘리트였다. 그가 이른 아침부터 전화를 걸게 된 용건이 몹시 궁금했다.        


난 우선 어제 아버지가 우리집에 왔었지만 몸이 아파 못나갔었다는 말을 전해 주었다. 그랬더니 그렇지 않아도 아버지 일로 전화를 하게 되었다며 아버지가 어제 저녁에 그만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말을 전해 주었다. 

     

이 무슨 청천벽력같은 일이란 말인가. 좀처럼 믿어지지 않는 거짓말 같은 소리를 들은 나는 나도 모르게 입이 딱 벌어진 채 자초지종을 묻게 되었다. 그러자 아들은 차분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바로 어젯밤 그는 나와 같이 술 마시기가 어려워지자 그 길로 술집으로 갔단다. 그리고 술을 마음껏 마신 뒤에 아무 일 없이 집으로 돌아왔단다.     

 

집으로 들어온 그는 방바닥에 누워 잠이 들어있는 손자가 귀엽다며 손자 곁으로 가서 손자의 손을 잡고 같이 누웠단다. 그래서 그때 그 모습을 본 부인이 손자를 귀여워하는 것은 알겠지만, 오늘은 과음한 것 같으니 손자는 다음에 만지기로 하고 얼른 방으로 들어가서 일찍 쉬라고 권하였단다. 


그리고 자리에 누울 때부터 아무 대꾸도 없고 아무 반응도 없어서 자세히 살펴보니 그대로 움직이지 않고 숨을 거두고 말았단다.    

  

갑자기 벌어진 뜻밖의 일이어서 가족들은 그때부터 허둥지둥하다가 우선 급한 대로 부인이 바늘을 가지고 와서 남편의 손끝마다 피를 내기 위해 찔러보았다고 한다. 


혹시나 도로 정신이 돌아올까 해서였다. 그러나 그게 그 사람의 마지막이며 끝이었던 것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아무 탈없이 건강하고 멀쩡해서 술을 마시던 사람, 그사람 자신도 이렇게 갑자기 생을 다할 줄을 미처 까맣게 짐작조차 못했던 일이었겠지.     

 

한 사람의 생명이 이렇게 허무하게 끝날 줄이야. 정말 생각할수록 새삼 너무 허무하면서도 가슴 아픈 추억이 아닐 수 없었다.  

    

그는 곧 신촌 세브란스 영안실로 옮겨지고 3일장을 치루기로 하였다. 


그러나 그것도 마음 대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하루가 지나고 보니 어쩐 일인지 3일장으로 예정되었던 장례는 7일장으로 갑자기 연장되고 말았다.     

 

나중에 그 연유를 알고 보니 갑자기 비명에 세상을 등진 사람들은 가족들 임의 대로 장례도 지낼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사람은 재산이 꽤나 많은 사람이었다.      


그런 관계로 경찰에서 혹시나 가족 중에 누군가가 보험금 등, 재산을 노리고 고의로 사망하게 되었는지 아닌지를 확인하고 조사하기 위해 검찰까지 나서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날 손가락에 바늘로 찌른 자국까지 누가 왜 찌르게 되었는가까지 낱낱이 조사를 받았다고 한다. 그런 조사를 받기 위해서는 결국 이래저래 시일이 걸리게 되어 7일장으로 바뀌었던 것이다.  

    

유비무환!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우리네 인생, 그래서 어느 나라에서는 이미 18세가 되면 유서를 써보게도 한다고 하였다. 그러기에 나도 이젠 버킷 리스트라도 미리 미리 작성해 두는 것도 좋은 방법의 하나가 아닐까 생각해 보기도 한다.  

    

그러니 어쩌란 말인가.     


우리는 오늘도 건강하게 하루하루 보내고 있다. 


따라서 살아있는 동안만이라도 최선을 다해 꿈을 활짝 펴거 열심히 살아보는 것, 그것이 바로 정신 건강에도 큰 도움이 되는 현명한 판단이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된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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