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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나무 May 13. 2020

글을 쓴다는 것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귀여운 법]

한때는 나와 특별히 가깝게 지내던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평소에 틈이 나는 대로 열심히 글을 쓰는 사람이었다. 그가 쓰는 글은 늘 두 가지 장르의 글이었다.      

그중 한 가지는 성인들의 시, 그리고 어린이들이 즐겨 읽을 수 있는 동시였다. 그래서 그런지 그는 늘 특별히 나를 따르고 좋아하는 것 같았다. 나 역시 글을 좀 쓴답시고 늘 바쁜 척하고 있어서 특별히 나와 통하는 바가 있고 좋아하나보다 하고 생각하며 나도 그런 그가 싫지는 않았다.

       

그는 이미 50대 중반의 적지 않은 나이였는데 20대부터 동시와 시를 열심히 써왔다며 그동안 써놓은 글도 꽤나 많다고 하였다.      


그렇다고 그는 정식으로 등단한 사람도 아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자신이 글을 그 어느 곳에도 응모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하였다. 그럴 생각도 없다고 하였다. 그저 글이 좋아서 읽고, 쓰고 싶을 때 쓰는 것이 자신의 취미이고 그것으로 그만이라고 하였다.      


글을 쓰는 일을 사랑하는 사람이기에 가끔 만날 때마다 서로 글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어보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가 쓴 글을 읽어보고 특별히 마음에 드는 글은 내가 좀 친분이 있는 잡지사에 부탁해서 몇 차례 실리기도 하였다.       


그는 자신이 쓴 글이 잡지에 실릴 때마다 몹시 자랑스럽고 흐뭇해했다. 그리고 분이 좋아 이대로 그냥 넘어갈 수 없다며 술 한잔을 사곤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또 다른 욕심이 생긴 것 같았다. 지금까지 자신이 쓴 글들을 모아 책으로 내고 싶다고 하였다. 그리고 특히 동시집은 어느 화백을 꼭 집어 마음에 든다며 그 화백이 삽화를 그려주면 더욱 좋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난 자비로 출판을 하려면 돈이 좀 많이 들 거라며 그래도 괜찮겠느냐고 물었더너 그런 건 조금도 걱정 말라고 하였다. 얼마가 들든 책만 낼 수 있으면 된다고 하였다. 남달리 여유가 좀 있는 사람이어서 그랬던 것 같다.       


마침 그가 선호하고 있는 화백은 나와 전부터 친분이 좀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난 며칠 안으로 가부를 알아봐 주겠노라고 대답했다.       


그다음날부터 나는 우선 그 화백을 찾아 연락해 보기로 했다. 그리고 다행히 연락이 닿아 사정 이야기를 해봤더니 마침 현재 그 화백은 그림도 그리고 출판사도 겸하고 있으니 한번 만나보자고 쾌히 승낙을 하였다. 매우 다행이었다.     

 

일이 이렇게 쉽게 풀리게 될 줄이야!    

 

그렇게 해서 일사천리로 마침내 동시집과 시집 등 두 권의 책이 세상에 나와 빛을 보게 되었다. 출판한 책값은 내가 특별히 부탁을 한 것이어서 아주 저렴한 값으로 발간하게 되었다며 드디어 책이 나왔다. 게다가 나에게 추천사까지 써달라기에 쓸 줄 모르는 추천사까지 써서 실리게 되었다.     

  

동시집과 시집은 편집이며, 디자인이며, 삽화 등, 내 마음에도 쏙 들었다. 그래서 나도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얼마 뒤, 그도 기분이 좋다며 나와 다시 술자리에 마주하게 되었다. 그는 기분이 좋을 때마다 으레 술이 빠지지 않았다. 술대접이 으레 공식인 것 같았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그의 언행은 지금까지와는 달리 갑자기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돌변하고 말았다.

      

기분 좋게 술을 한동안 마시던 그가 나를 바라보며 정색을 하며 들려준 이야기는 정말로 뜻밖이었다.

     

“난 이 세상에서 가장 못난 놈들이 바로 너처럼 신춘문예에 당선됐거나 어느 문학지에 추천을 받아 작가라고 으쓱거리는 바보 같은 놈들이란 말이야. 넌 다른 놈들처럼 으쓱거린 적은 없는 것 같지만 말이야.”

     

그것은 나를 향한 난생 처음 들어보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엉뚱한 질책이었다. 난 뜨끔하였다. 그의 충고나 다름없는 듣기에 거북한 이야기는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나는 너무나 뜻밖이어서 그저 머리통을 한 대 호되게 맞은 듯 무슨 대답을 해주어야 할지 몰라 마치 죄를 지은 사람처럼 그저 고개만 끄덕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제 알고 보니 그는 지금까지 전혀 보지 못했던 아주 독특한 사람이었다.      

 

계속 이어지고 있는 그의 지론을 듣다 보니 그의 말도 어느 정도 일 리는 있었다.  

    

글은 내가 좋아서 쓴 것이며 내가 심혈을 기울여가며 정성을 다해 쓴 글인데 감히 누가 내 글을 평가하고 심사를 하느냐는 것이 그의 주관이었다. 그리고 누가 감히 건방지게 남의 글을 읽어보고 당선도 시키고 낙선도 시키느냐며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글을 심사하는 녀석들은 도대체 글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으며 그게 누구냐고 했다. 그리고 심사를 한다는 그들은 나보다 과연 얼마나 뛰어난 글을 더 잘 쓸 수 있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냐는 역설을 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낙선된 글이나 당선된 글의 차이가 과연 어디에 있느냐고도 하였다. 또한, 글은 심사하는 사람의 소위 입맛에 따라 결정되기도 하기 때문에 같은 똑같은 글을 다른 사람이 심사를 했을 때는 반대로 낙선작이 당선작으로 바뀔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심혈을 기울여 쓴 글을 함부로 심사를 해달라고 누구한테 맡기고 싶지 않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어디에 응모를 해본 적이 없다고 하였다. 그건 내가 고생을 해서 낳은 귀여운 자식을 생판 낯도 모르는 남한테 맡기는 일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고 하였다.        


그러기에 자신은 누구한테 심사를 의뢰했다가 혹시 천덕꾸러기가 될 게 두려워 지금책을 낸 것처럼 자신이 쓴 글을 내가 직접 책으로 내게 되었다고도 하였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계획이라고도 하였다.      

그리고 그는 그 뒤에도 자신이 그동안 쓴 글을 정성껏 퇴고하여 책을 무려 8권까지 자비로 낸 사람이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의 말도 전혀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았다.       


요즈음 브런치에 올라오는 글들을 보면서 난 가끔 스스로 위축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어찌나 글을 그렇게도 잘들 쓰고 있는 작가님들이 많은지, 정말 깜짝깜짝 놀랄 때가 너무 많다.    

   

그러나 더 이상 위축되지 말고 다시 열심히 써보겠다는 용기를 내어 열심히 쓰기로 마음 먹었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귀엽다고 한단다.


그의 말대로 아무리 부족한 글이라 해도 그건 엄연히 내 글재주가 거기까지이고 어차피 내가 힘들여 탄생시킨 내 자식과 같은 대견스러운 글이 아니던가.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고 하였다. 이만하면 됐다. 뜻만 잘 통한다면 그만 아닌가.    

  

동가홍상아라 하였다.   

   

지금보다 더 매끈하고 잘 다듬어진 글을 쓸 수 있다면 그 이상 무엇을 더 바랄 것인가. 그리고 과연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 그리고 누구에게 찬사를 받기 위해 그토록 더 잘 다듬어진 글을 쓰고 싶다는 쓸데없는 욕심을 부린단 말인가!      


오늘은 공연히 쓸데없는 넋두리가 너무 길어진 것 같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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