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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나무 May 25. 2020

난 그럴만한 자격이 못됩니다

[자칭 자격이 못된다고 말하는 사람이 진정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중국 초나라 때 오릉이란 마을에 자종이란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는 나이가 들자 스스로  벼슬자리에서 물러나 지금은 한가롭고 평온한 생활을 즐기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던 중이었다.    

   

어느 날, 왕은 자종이 몹시 어질고 현명하며 정치에도 능하다는 소문을 듣고 나랏일을 다시 같이 해보고 싶은 욕망을 갖게 되었다.    

  

왕은 곧 심부름꾼을 시켜 자종에게 상당한 금과 비단을 잔뜩 실어 보내면서 높은 벼슬자리를 주겠으니 모셔오라고 명령하였다.  

    

심부름꾼의 이야기를 들은 자종은 잠시 망설이던 끝에 부인과 의논을 하게 되었다.    

  

“왕이 나를 대신으로 맞으려고 하오. 내가 만일 지금 대신이 되면 우리 팔자는 크게 달라지게 될 거요. 당신 생각은 어떻소?”

 

자종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은 부인이 한동안 생각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당신은 이미 나이가 들어 오래전에 벼슬을 버리고 지금은 짚신을 삼으며 아쉬운 것이 없이 잘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지금 이렇게 살아가는 것도 아주 행복하고 평안한데 어찌하여 큰 마차를 부리고 맛있는 음식을 더 갖고 싶은 욕심을 부리십니까?”    

 

부인의 말을 잠자코 듣고 있던 자종은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이윽고 심부름꾼이 있는 방으로 갔다.     


“보시다시피 나는 이미 이렇게 늙은 몸인데 왕을 모신다면 얼마나 오래 모실 수 있겠소? 왕을 제대로 모시지도 못하고 곧 죽을 바에야 아니 모신 것만 못하니 차라리 이 일은 사양하겠습니다.”     


자종은 이렇게 욕심을 버리고 심부름꾼에게 자신의 결심을 분명히 전하게 되었다. 그리고는 왕이 곧 또 다시 벼슬자리를 권유할 것이라는 생각에 아무도 모르는 깊은 산속 마을로 곧 이사를 가고 말았다.   

   

이 이야기는 무슨 일이든지 냉철하게 살피고 판단하여 분명히 할 줄 아는 사람만이 늘 아무 근심이나 걱정없이 밝은 생활을 할 수 있음을 알려주는 가르침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도 오래전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이와 비슷한 가슴 뭉클하고도 신선한 실화가 있었다.      


그 당시 박대통령은 월간 ’사상계‘라는 잡지를 애독했다고 한다. 그 잡지의 발행인은 누구나 잘 알고 있는 바로 장준하 선생이었다.   

     

다른 잡지들은 독자들이 외면하는 바람에 여기저기서 폐간을 거듭하고 있을 때에도 유독 ’사상계‘만은 오히려 독자들의 수가 점점 불어나고 있었다고 한다. 그 비결은 과연 어디에 있을까? 

    

 믿을만한 소식통에 의해 그 연유를 듣고 보니 그럴 만도 했다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여 본 적이 있다.    

  

진실은 언젠가는 반드시 통하게 된다는 말이 있다. 그때 사상계에 실리는 원고의 고료는 다른 여느 잡지들의 두 배 정도를 지불했다고 한다. 그 대신 전혀 꾸밈이나 거짓이 없는 순수한 내용과 진실만을 싣는 것이 발행 의도의 최우선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사상계에 필진이 되기 위해서는 전혀 꾸밈이나 거짓이 없는 순수한 마음으로 진실된 내용만을 글로 써야만 실리게 된다고 하였다. 공연히 없는 사실을 부풀려 상대방을 비방하거나 어떤 목적을 위해 일부러 흠집을 내는 그런 글은 실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기에 진실에 목마른 사람들은 누구나 사상계를 애독하게 되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된다.   

   

어느 날, 박정희 대통령이 아랫사람을 불러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사상계에 계속 글을 싣고 있는 필자 중의 한 사람을 지목하며 그 사람을 당장 국무총리 자리에 앉혀보고 싶으니 모셔오라는 지시를 내리게 되었다.       


아마 박 대통령은 정치적인 문제를 그 누구의 편도 들지 않고 신랄하면서도 진실되게 다루고 있는 글의 내용을 읽고 그 글을 쓴 필자에 대해 매료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이런 사람이야말로 같이 일을 하게 되면 아무 탈이나 시끄러움이 없이 국가 발전에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야심을 일으키게 했던 것 같다.     

 

아랫사람들은 곧 그 필자를 수소문하여 찾아낸 다음 그를 찾아가서 박 대통령의 뜻을 정중히 전하게 되었다. 이런 기회가 힘 하나 들이지 않고 제 발로 저절로 찾아오다니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이며 하루아침에 대단한 출세란 말인가.  

   

그러나 크게 기뻐할 줄 알았던 필자의 태도는 그야말로 뜻밖이었다. 기뻐하는 기색은커녕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한마디로 정중히 거절하게 된 것이었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사양하겠습니다. 저는 글은 좀 쓸 줄 아는 사람이긴 하지만 정치에 대해서는 전혀 문외한입니다. 그러니 죄송하지만 정치에 대해 박식한 다른 사람을 찾아보도록 하십시오.”      


아랫사람들은 아무 말도 못하고 다시 청와대로 돌아가서 대통령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게 되었다. 그러자 대통령은 어이가 없었다. 이런 좋은 자리, 그리고 하루아침에 출세할 수 있는 이런 좋은 기회를 마다하는 사람이 아직도 이 세상에 있다니! 그래서 그 필자가 더욱 마음에 들게 되었다.     



그래서 박 대통령이 다시 분부를 내리게 되었다. 내가 꼭 뵙고 싶으니 다시 한번 찾아가서 반드시 모셔오도록 하라는…….     


아랫사람들은 다시 그 필자를 찾아가서 박 대통령의 간곡히 모셔오라고 한다는 이야기를 전하게 되었다. 그러나 필자는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전혀 변함이 없었다. 그래서 결국 끝까지 국무총리 자리를 거절했다는 믿을만한 소식통에 의해 들었던 이야기이다.        


요즘 정치를 하겠다는 후보자들의 유세장에 가보면 십중팔구는 자신의 능력을 스스로 부풀려 과대평가하기를 좋아한다. 그리고 모든 능력이 상대방보다 우월한 것으로 드러내며 어떻게 해서든지 상대방의 이런저런 흠집을 드러내며 자신만큼은 모든 게 깨끗하고 순수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반드시 자신이 당선이 돼야만 이 나라가 바로 설 수 있다고 역설을 일삼곤 하는 모습을 자주 보아왔다. 상대방이 당선되면 이런저런 이유로 절대로 안 된다며 그렇게 되면 나라가 망한다며 펄펄 뛰기도 한다. 그야말로 난장판이요, 아수라장이 아닐 수 없다.      


그런 행태들은 결코 인격이 도야된 교양이 있는 정치인의 태도가 아니라고 본다. 그래서 어쩌다 그 후보의 말을 그대로 믿고 뽑아보고 난 뒤에는 후회가 따를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따라서 믿을 수 없는 게 정치판이라 말하지 않던가.       


그럼 과연 어떤 사람이 참되고 진정한 정치인이란 말인가.  

    

난 개인적으로 이렇게 생각하고 있으면 또한 그런 사람이 나타나기를 진심으로 원하고 있다. 나의 그런 개인적인 생각은 이미 앞에서 두 가지 예화로도 설명한 바가 있다.   

   

누가 어떤 높은 자리에 앉으라고 아무리 권유를 해도 난 절대로 그럴만한 자격이 없다고 그 자리를 극구 사양할 줄 아는 사람, 그리고 어디까지나 덕을 쌓은 겸손한 사람이야말로 진정 그런 자리에 앉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고…….      


혹시 나 혼자만의 허황된 과대망상인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오려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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