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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나무 Jun 04. 2020

지나가버린 방황의 나날들(2)

[남의 집 마당 쓸어주기 작전]

지난번 넋두리에서도 잠깐 이야기 했던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몹시 부끄러운 이야기이긴 하지만, 나는 나의 앞길에 대한 갈피를 전혀 잡지 못하고 바람에 흔들리듯 이리저리 우왕좌왕하며 오랜 세월 힘들게 방황을 하게 되었다.     

    

감히 겁도 없이 분에 넘치는 화가의 꿈을 키우며 10여년 간 꾸준히 수채화를 그려오다가 그놈의 추상환가 뭔가가 유행하며 붐을 일으키는 바람에 내가 그동안 그린 그림의 인기는 시세로 말하자면 폭락이 되고 말았다.    

  

그렇다고 그때부터 추상화를 시작하기에는 가정 형편이 허락지 않아 결국 오랫동안 염원해 오던 화가의 꿈을 접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나로서는 그런 결정이 몹시 서운하기도 하고 안타까우며 뼈아픈 고통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림을 포기한 뒤로 다시 두 번째로 새로 시작하게 된 것은 시나리오 창작이었다. 대학에서 그 누구 못지않게 시나리오 작법 익히기에 열정을 다 쏟았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창작으로 이어지면서 몇 해 동안 줄곧 시나리오 창작의 열정을 혼신을 다해 쏟아 부었다.    

   

그렇게 시나리오가 탈고가 되기가 무섭게 학창시절부터 여기저기 응모하기 시작했다. 학창시절에 맨 처음으로 응모한 시나리오는 기분 좋게 예심을 통과하였다. 처녀작이 예심을 통과하자 용기를 얻은 나는 그 후에도 너댓 번 더 응모하게 되었는데 어쩐 일인지 그때마다 번번이 예심에는 뽑히곤 하였다.   

   

그러나 당선작에서는 번번이 쓰라린 고배를 마시곤 하였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훌쩍 5년이란 세월이 흘러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 일조차 마냥 마음놓고 계속할 수 없는 차질이 생기고 말았다.  뚜렷한 직장도 없이 늘 방구석에 앉아서 글만 쓰고 있는 내 모습을 곁에서 바라보고 있는 부모님들의 눈초리가 고울 리가 없었다. 그래서 하루 빨리 제발 그 헛된 짓거릴랑 집어치우고 농사를 짓든지, 아니면 취업을 하라는 독촉이 매일 성화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기로로 몰리게 된 나는 고육지책으로 답답한 마음에 지금까지 쓴 시나리오 원고 뭉치를 모두 챙겨 들고 학창시절에 나를 가르쳤던 교수를 찾아가게 되었다. 그동안 내가 쓴 시나리오를 읽어보고 시나리오 작가로서의 가능성을 확실하게 타진해 달라는 부탁을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내가 쓴 시나리오의 줄거리를 대충 듣고 난 교수는 그동안 어디어디에 응모했었는가를 물었다. 그래서 영화 잡지사, 또는 영화사에 응모했었다는 나의 대답에 한참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더니 ‘결국 호랑이 입에다 날토끼를 넣었다’는 아리송한 답변을 듣게 되었다.      


그 뒤부터는 다시 시나리오 작가의 미련은 아직 남아있지만 당분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자! 그럼 이제부터는 또 어떤 일을 찾아서 해야 한단 말인가! 그렇다고 이대로 집으로 돌아가서 부모님의 농사일을 돕는다는 것은 아예 흥미도 없을뿐더러 마음이 허락지도 않았다. 그리고 아직도 배가 불러서 그런지 덜컥 새삼스럽게 적성에 맞지도 않는 어떤 직장에 뛰어들어가서 생소한 일을 하고 싶은 마음도 전혀 없었다.   

   

그렇게 며칠을 고민 끝에 궁여지책으로 문득 새로운 일거리 하나를 생각해 내게 되었다. 영화를 직접 촬영하는 작업에 참여해 보고 싶다는 결심을 굳히게 된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래, 내가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바로 그거였어!”    

 

영화 제작에 직접 참여해 보게 되면 아무래도 내가 지금까지 그토록 오랫동안 열정을 가지고 써본 시나리오 창작에도 큰 도움이 될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아직도 채 식지 않은 시나리오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실오라기 같은 희망마저 버리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이튿날 나는 굳은 결심을 하게 된 나는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청량리를 출발하여 종로 돈의동으로 향해 부지런히 걷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청량리에서 종로까지는 꽤나 먼 거리이다. 아마 도보로 빨리 걸어도 1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였을 것이다.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다 보니 버스나 전차를 탈 여유조차 없었다. 그리고 돈의동에는 내가 오랫동안 늘 좋아하고 마음에 드는 그리고, 그 당시 꽤나 잘 나가는 영화감독을 일단 만나보기 위해서였다.

      

그때는 유명 영화감독이나 가수, 그리고 배우 등 유명인들의 주소와 이름이 연예계 잡지 하단 페이지마다 실려 있어서 그들의 주소를 알아내기에는 별 무리가 없었다.      


첫날은 그렇게 돈의동까지 걸어가서 일단 내가 원하던 그 감독이 그 집에 실제로 살고 있는지의 여부를 확인해 보는 것만이 목적의 전부였다. 그래서 실제로 감독이 그 집에 확실히 살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만 하고 다시 집으로 되돌아왔다.      

 

그다음 날이었다. 난 다시 새벽같이 일어나서 어둠을 뚫고 돈의동을 향해 부지런히 걸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그 집 앞에 도착하자 대문을 두드렸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생겼는지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너무나 당돌하고도 무모한 짓이 아닐 수 없었다. 


감독이 살고 있는 그 집은 생각보다 그리 크지 않은, 그리고 어딘가 모르게 허술해 보이고 조금은 초라해 보이는 단독주택으로 된 기와집이었다.    

  

대문을 두드리자 잠시 뒤에 젊은 여인 하나가 나오더니 대문을 열어주었다. 새벽같이 남의 집 대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약간 수상해 보였던지 여인은 약간 경계하는 듯한 둥그렇게 된 눈빛으로 내게 물어왔다. 


“무슨 일이시죠?”     


난 간단한 내 소개와 함께 여기 살고 계시는 감독님과 같이 일을 좀 해보고 싶은 욕심에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뵙게 되었다고 예의를 다해 설명하게 되었다. 


그러자 여인은 금방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바로 건넌방을 향해 작은 목소리로  누군가를 불렀다. 

      

“아하! 우리 집 건넌방에 사시는 감독님 말씀이시군요. 이봐요, 새댁! 잠깐만 나와 봐요. 누가 찾아오셨는데요.”      

아하, 나중에 알고 보니 내가 지금 만나려고 마음먹은 그 영화감독은 이 집 주인이 아니라 건넌방에서 세를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유명한 사람이라면 충분히 고급 주택에 떵떵거리며 살고 있을 줄로 알았는데 그게 아니어서 좀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잠시 뒤, 주인 여자가 들어가고 이번에는 건넌방에서 주인보다 조금 더 젊은 여인이 나왔다. 그리고 내게 용건을 물었다. 내가 다시 자세히 설명했더니 나를 방으로 안내했다.     

 

실례를 무릅쓰고 방으로 들어가 보니 거기에는 내가 평소에 늘 그토록 만나보고 싶어 했던 그 영화 감독이 내복 차림으로 이불도 개지 않은 채 일어나 앉아 있었다.     


몹시 피곤한 기색이 역력해 보이는 감독은 웬 불청객이 찾아왔나 하고 몹시 귀찮아 하는 표정이 역력하였다. 더구나 어젯밤에는 밤을 새워 로케 촬영을 끝내고 조금 전에 집으로 돌아와 이제 막 겨우 눈을 좀 붙이고 있던 중에 불청객이 찾아왔으니 얼마나 원망스럽고 짜증스러우며 귀찮은 일이었는가!     


난 그런 중에도 다시 내 소개를 간단히 하고 감독님과 일을 같이 좀 해봤으면 해서 이렇게 무례를 무릅쓰고 찾아뵙게 되었다는 용건을 설명하였다. 그러자 감독은 바로 손사래를 치며 귀찮다는 듯 한마디로 나의 부탁을 거절하고 말았다. 인원이 다 차서 더 이상 사람을 쓸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난 미리부터 그런 대답이 나올 것을 예상하고 시작한 일이었다. 그리고 나의 예상은 그대로 적중했으며 감독의 말 역시 당연히 예측했던 대답이었다. 이 세상에 어디 사람이 없어서 일을 못하는 곳이 어디 있겠는가. 그리고 세상에 내가 마음먹은 대로 쉽게 되는 일이 어디 있겠는가.      


난 더 이상 보채지 않고 기회가 닿는 대로 다시 뵙고 싶다는 말만 남기고 바로 그 집에서 쫓겨나듯 뛰쳐나오고 말았다. 일단 작전상 후퇴를 하였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더 이상 보채 봤자 처음부터 이미지만 더 안 좋아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날 일단 집으로 돌아온 나는 종일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어떻게 하면 그 감독과 같이 일을 좀 해볼 수 있게 되는 방법이 있을까 하고……. 난 막말로 그때나 지금이나 백도 없고 가진 것도 없는 사람이다 보니 누구한테 부탁을 해볼 수도 없는 일이었다.    

  

아! 그러다가 문득 머리에 좋은 생각이 하나 떠올랐다. 백도 없고 가진 것도 없는 사람이니 일이 될 때까지 몸으로 때워보는 수밖에 없겠다고…….   

  

내가 문득 생각해 낸 좋은 생각이란 날마다 그 집에 가서 마당을 쓸어주는 일이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감독의 마음도 흔들리게 될 것이 틀림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 다음날 새벽, 난 큼직한 마당 빗자루 하나를 들고 다시 돈의동을 향해 부지런히 걸어갔다. 그리고는 그 집 마당을 말끔히 그리고 열심히 쓸고 난 뒤에 집으로 돌아왔다. 아마 누가 그 광경을 목격했다면, 그리고 그 미련한 곰처럼 미친행동을 하는 것을 누군가가 알게 되었다면, 아마 영락없이 미친 사람 취급을 당했으리라.      


내가 생각해 봐도 그야말로 무모하기 짝이 없는 미친 짓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어쨌거나 난 누가 뭐라고 하건 말건 나 자신은 왠지 그저 기분이 좋기만 했다. 마당을 깨끗이 쓸고 집에 돌아와 가만히 생각해 보니 왠지 뿌듯하고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그다음 날도 그리고 그다음 날도 나의 그런 미친 짓거리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계속되풀이 되고 있었다. 정말 그런 미친 짓은 이 세상엔 또다시 없으리라.    

 

그렇게 나흘인가 닷새째 되는 어느 새벽이었다. 그날도 나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한창 감독네 집 마당을 깨끗이 쓸고 있었다. 그런데 대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감독이 집을 나서지 않는가! 부인이 따라 나와서 배웅을 하고 있었고…….     


감독은 나를 보자 나에게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난 마당을 쓸던 일손을 멈추고 허리를 90도 이상 구부리며 공손히 인사를 하였다. 그러자 감독이 내게 물었다.      


“요즘 다른 때와 달리 마당이 매일 깨끗해 보이던데 당신이 그동안 쓸었던 거요?”     

“네, 그렇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매일 마당을 쓸어주고 있는지 도대체 그 이유가 뭐요?”      


난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리며 몹시 기뻤다. 그동안 이런 날이 오기만을 그토록 학수고대하며 기다려온 것이 아니던가. 그래서 난 분명히 그 자리에서 내 뜻을 밝히게 되었다.    

   

“네, 별로 아는 것도 없고 능력도 없는 사람이지만, 감독님과 꼭 한번 같이 일을 해보고 싶은 게 저의 소원입니다. 그러니 사람 하나 살려주시는 셈 치고 딱 한 번만이라도 일을 좀 시켜주십시오.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부탁입니다.”     


그러자 감독은 매우 난처한 얼굴로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상식이겠지만, 지금은 어떻게 바뀌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때는 스탭진 즉,  감독(연출부)밑에 3명의 조감독을 쓰는 게 상례였다. 그리고 그나마 이미  자리가 모두 채워져 있다는 설명이었다. 조명부나 촬영부, 그리고 진행부도 부장 밑에 각각 3명씩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이미 모든 인원이 채워져 있어서 내가 일할 자리는 전혀 없다는 설명이었다.   

  

그러나 사정이 그렇다고 해서 그냥 순순히 물러설 내가 아니었다. 사정이 절박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난 다시 나의 간절한 뜻을 감독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물론 사람이 다 차지 않은 자리가 어디 있겠느냐고 했다. 그리고 난 돈을 벌고 싶어서가 아니며, 전혀 보수 같은 것은 받고 싶지 않다고 하였다.       


또 현재 조감독이 3명이라면 나를 조감독이 아닌 심부름꾼이라고 생각하시고 부디 촬영 현장에 따라다니며 배울 수 있게만이라도 해달라고 간절히 애원하게 되었다.      


그리고 모든 어려운 일, 힘든 심부름이란 심부름은 모두 나에게 맡겨달라고 하였다. 기꺼이 열심히 몸 바쳐 뛰어보겠다는 나의 굳은 결심을 모두 털어놓게 되었다. 그리고 내 점심밥 같은 것도 전혀 걱정 말라고 하였다. 집에서 매일 싸 가지고 와서 따로 먹을 것이니 그런 걱정은 전혀 하지 말라고도 하였다.    

    

나의 간절한 이야기를 다 듣고 난 감독은 더 이상 어쩔 수 없었는지 잠시 쓴웃음을 짓더니 마침내 입을 열었다.  


“정 생각이 그렇다면 고생이 되더라도 내일부터 같이 일해 보도록 합시다.”   

  

그래서 순 어거지로 그다음 날부터는 드디어 네 번째 조감독이라는 이름으로 극영화 제작하는 일에 참여하게 되었다.     


뜻이 있으면 이루어진다는 말이 있다. 그렇게 해서 나는 지금까지 해온 일과는 전혀 다른 엉뚱한 일은 다시 새로 시작하게 되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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