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싸리나무

by 겨울나무

아주 깊고 깊은 산골짜기였습니다.


그곳에는 수정같이 맑은 물이 돌돌거리며 흘러내리는 아름다운 계곡이 있었습니다.


이 계곡은 경치가 좋기로 널리 소문이 퍼졌습니다. 계곡을 흐르는 물은 너무나 차서 한여름에도 발을 담그기조차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해마다 여름철만 되면 수많은 사람들이 더위를 피해 구름처럼 어김없이 모여들곤 하는 곳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 계곡을 따라 위로 한동안 더 올라가다 보면 보기만 해도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아슬아슬하게 생긴 기암절벽이 있었습니다.


절벽은 마치 날이 잘 선 도끼로 찍어 빚은 듯 우람하고도 험상궂은 모습으로 우뚝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절벽 꼭대기에는 허리를 한참 뒤로 젖히고 보아야 겨우 보일까 말까 할 정도로 까마득하게 높았습니다.

“히야! 이렇게 무시무시한 절벽을 보기는 난생처음인걸."

“그러게 말이야. 올려다보기만 해도 저절로 현기증이 나는걸. 어이구, 어지러워라.”


더위를 피해 계곡으로 놀러 왔던 사람들은 어쩌다 절벽 꼭대기를 한 번씩 쳐다볼 때마다 감탄을 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여름날이었습니다.


이 계곡을 찾아온 손님 중 한 사람이 망원경으로 까마득히 높은 절벽 꼭대기를 바라보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냥 맨눈으로 보기에는 절벽이 너무 높아 미리 망원경을 준비해 온 모양이었습니다.


한동안 절벽 위의 이곳저곳을 흥미로운 듯 자세히 살피고 있던 그 사람이 입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감탄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말았습니다.


“히야! 저건 싸리나무가 아니야? 그거 참, 희한한 일도 다 보겠군. 흙 한 줌 없는 바위틈에서 어떻게 저토록 튼튼하게 잘 자라고 있지?”


그는 한동안 망원경을 눈에서 떼지 못한 채,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일이라는 듯 입을 크게 벌리고 있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정말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었습니다. 절벽 맨 꼭대기에 있는 거대한 바위 틈에서는 건강학 튼튼하게 자란 싸리나무 한 그루가 낭떠러지 아래를 말없이 내려다보며 자라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싸리나무가 이곳에서 자리를 잡고 살아온 지도 어언 십여 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 긴 세월 동안 싸리나무는 가슴을 에일 듯한 힘든 외로움과 고통을 견뎌내며 자라느라 여간 고생을 한 게 아니었습니다.


"아! 나도 남들처럼 귀여운 아기라도 곁에 하나만 있어도 이렇게 외롭지는 않을 텐데…….”


너무나 오랜 세월을 외로움과 고통으로 보낸 싸리나무는 벌써부터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해마다 아기 하나라도 얻기 위해 무던히도 많은 고생을 하였던 것입니다.


아기 하나를 얻고 싶은 싸리나무의 노력과 정성은 그야말로 피눈물이 날 정도로 대단하였습니다.

해마다 여름철이 돌아오면 흰 바탕에 빨간 점박이 무늬가 드문드문 박힌 예쁜 꽃을 활짝 피우기에 바빴습니다. 싸리꽃이었습니다. 싸리나무는 오직 그 꽃을 피우기 위해 그 무섭도록 뜨거운 햇볕의 고통까지 이겨내며 견딜 수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여러 날이 지나자 싸리꽃은 마침내 몰라볼 정도로 토실토실 귀엽게 여문 씨를 매달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싸리나무는 어서 빨리 가을이 돌아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곤 하였습니다.

그러나 싸리나무의 간절한 소망은 그때마다, 그리고 해마다 보기 좋게 허무하게 산산조각이 나곤 하였습니다.

싸리나무.jpg

해마다 가을이 되면 정성껏 가꾼 씨를 조심스럽게 떨어뜨려 보았지만 그때마다 씨앗은 번번이 안타깝게도 낭떠러지 밑으로 데구르 곤두박질을 치곤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쩌다 운이 좋아 바위 위에 씨가 떨어졌다 해도 미처 뿌리를 내려보기도 전에 산새들의 먹이가 되거나 모진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하나같이 얼어죽기가 일쑤였습니다.


어느새 해님이 서산으로 기우는가 싶더니 하루종일 계곡에서 시끌벅적하게 떠들어 대며 더위를 식히던 사람들의 목소리도 차츰 조용해지고 있었습니다. 밤이 되면 계곡이 너무나 써늘하고 춥기 때문에 해가 지기 전에 서둘러 집으로 돌아간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방이 차츰 조용해지자, 싸리나무는 또다시 습관처럼 그동안 가슴속에 쌓였던 외로움과 쓸쓸함이 밀려오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런 괴로움들은 다시 커다란 슬픔으로 변하여 그만 목구멍이 메일 지경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고는 괴로움과 슬픔을 억지로 참아 내기 위해 어금니를 잘근잘근 깨물었습니다.


'아아! 나만 왜 이렇게 힘들고 견디기 어려운 곳에 태어나서 이토록 모진 고생을 하며 살아가야만 한단 말인가!‘


아닌 게 아니라 싸리나무는 정말 지금까지 오랜 세월을 너무나 괴롭고 견디기 어려운 나날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그동안 까마득하게 높은 절벽 위에 늘 혼자 동그마니 선채 외로움과 슬픔을 달래며 긴 세월을 차마 죽지 못해 견디어 왔던 것입니다. 늘 겪어오는 일이지만 낭떠러지 밑은 내려다보기만 해도 언제나 조마조마하게 현기증이 나고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습니다.

견디기 어려운 것은 그뿐만이 아닙니다. 먹고 살아 나갈 양식조차 마음대로 구하기 힘든 거대한 바위 위에 몸을 의지한 채, 굶주림을 밥 먹듯 하며 살아가기란 이만저만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또, 한여름이면 손바닥만한 그늘 한 점 없는 낭떠러지 위에서 무쇠라도 녹일 듯 이글거리며 무섭게 쏟아져 내리는 뜨거운 햇볕을 온몸으로 받으며 참아 내야 했습니다. 그리고 더욱 견디기 어려운 것은 사나운 비바람과 함께 해마다 한 차례씩 사납게 심술을 부리는 태풍이었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해마다 겨울철이 오면 모진 눈보라와 북쪽에서 불어오는 칼날 같은 삭풍을 맞아가며 맨몸으로 견뎌야 했습니다. 정말 하루하루 세상을 살아 나간다는 것 그 모두가 괴로움과 고통, 그리고 허전함과 슬픔의 연속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한동안 하다 보니 싸리나무의 눈에서는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고개를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마치 약이라도 올리듯 싸리나무를 바라보며 방긋 웃고 있는 해님을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애원하듯 입을 열었습니다.

“해님! 제발 저를 좀 살려 주세요. 네에? 정말 너무나 괴로워서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어요.”


싸리나무의 목소리를 듣게 된 해님은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갑자기 정색을 하면서 되물었습니다.

“또 지난번에 얘기했던 것처럼 여기보다 더 살기 좋은 곳으로 옮겨 달라는 부탁을 하고 싶어서 그러는 거 아니냐? 정말 그런 거였어?”


“네, 제발 부탁입니다. 이제는 정말 너무나 외롭고 고통스러워서 더 이상 견딜 수가 없는걸요.”


싸리나무가 이번에는 어깨까지 들먹이며 안타까운 목소리로 애원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해님은 한결 더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싸리나무를 달래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왜 네 고생을 모르겠니? 아암, 알고 있고말고. 내 얘길 잘 들어보렴. 넌 지금까지 그 누구도 견디기 어려운 많은 고생을 용케도 잘 이겨냈다. 그 덕분에 앞으로는 더욱 어려운 고생을 참을 줄 아는 대단한 힘도 길러졌고……. 참, 넌 아직 그 소식을 모르고 있겠구나? 며칠 전, 심한 태풍이 몰아칠 때, 저 아래 산 밑에 살고 있던 커다란 나무들이 수없이 무참하게 부러지면서 쓰러졌다는 소식 말이야. 그 나무들이 왜 그렇게 쉽게 부러져버리고 말았는지 알고 있니? 그게 바로 고생이라고는 전혀 모르고 편한 곳에서 호강만 하며 살아온 결과란다. 젊어서 고생은 천금을 주고도 못 산다는 말을 넌 듣지도 못했니? 어떻게 생각하니? 넌 이래도 네 자신이 몹시 불행하다는 생각이 드니?”


“……?“

해님은 이렇게 다정한 목소리로 싸리나무를 달래주고는 어느 틈에 서산 너머로 훌쩍 몸을 숨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싸리나무는 해님이 설명해 준 이야기가 무슨 말인지 얼른 이해가 가지 않아 한동안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온몸에서는 거짓말처럼 왠지 알 수 없는 힘과 용기가 용솟음치듯 샘솟아 오르고 있었습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