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덥고 지루하기만 했던 여름도 차츰 물러가면서 가을이 성큼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날씨가 제법 선선해지자 엄마 닭과 아빠 닭은 아기 병아리들을 거느리고 들판으로 나들이를 나왔습니다.
아기 병아리들은 모두 다섯 마리였습니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장아장 걸음걸이가 아직 서툴고 가녀린 모습들입니다.
난생 처음 모처럼 바깥 구경을 나온 아기 병아리들은 마음이 들떠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새롭고 신기하게만 느껴졌습니다.
엄마 닭과 아빠 닭은 행여나 아기 병아리들이 다칠세라 앞과 뒤에 서서 따라 다니면서 아기 병아리들을 보살피느라고 진땀을 빼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아기 병아리들이 그동안 몰랐던 새로운 것들을 가르치기에 바빴습니다.
이윽고 산더미처럼 높게 쌓아 올린 짚가리 앞에 다다르자 엄마 닭이 주의를 주었습니다.
“얘들아! 저렇게 높은 곳에는 아예 올라갈 생각을 하지 마라. 그러다가 떨어지기라도 하면 정말 크게 다치는 거예요. 알았지?“
”응, 알았어, 엄마.“
그다음에는 땅에 뚫려있는 속이 컴컴한 굴속을 가리키며 또다시 주의를 주었습니다.
”얘들아, 저런 굴속도 함부로 기웃거려서는 안 돼. 두더지나 뱀, 그리고 사나운 쥐들이 숨어있다가 너희들을 한 입에 덥석 삼켜버릴 수도 있단 말이야, 알았지?“
그렇지 않아도 가뜩이나 잔뜩 겁에 질려 있던 아기 병아리들은 엄마 닭의 말에 몸을 바짝 움츠리며 놀란 얼굴로 되물었습니다.
“에구머니나! 그렇게 무서운 짐승들이 있어요?”
“아암, 그런 짐승들 말고도 이 세상에는 그보다 더 덩치가 크고 무서운 짐승들이 얼마든지 많단다.”
그러자 아기 병아리들이 이번에는 아빠 닭을 바라보며 물었습니다.
"그럼 우리 아빠도 그런 짐승들을 못 이겨요?“
"아빠가 이길 수 있는 짐승들도 있긴 하지만 그보다는 아빠의 힘으로는 도저히 당해 낼 수 없는 무서운 짐승들이 더 많단다.”
아빠 닭은 조금 민망한 얼굴로 대답하였습니다. 그러자 아기 병아리들은 금방 서운하고 못마땅한 표정이 되어 입을 씰룩이고 있었습니다.
"그럼 이렇게 밖으로 나와서 돌아다니다가는 위험하기도 하지만 큰일이 날 수도 있겠네요?
“아암, 그렇다니까. 그러니까 혹시 낯선 짐승들을 만나면 무조건 피하거나 도망치는 것이 상책이란다.”
아기 병아리들은 겁에 질린 채, 엄마 닭과 아빠 닭이 안내하는 대로 다시 천천히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아기 병아리 한 마리가 갑자기 놀란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엄마! 엄마! 저기 저건 또 무슨 짐승이에요?”
아기 병아리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니 커다란 족제비 한 마리가 눈 깜짝할 사이에 숲속으로 사라져버리는 모습이 눈에 띄었습니다.
“어이구,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구나. 저건 족제비라는 짐승이란다.”
“왜 큰일이 나요?”
“저 녀석도 우리들을 잡아먹는 아주 무서운 놈이거든.”
“그래요? 그런데 어떻게 그처럼 총알처럼 빨리 달려요?"
“그렇게 달리지 않으면 족제비도 더 무서운 짐승한테 잡아 먹힐 수도 있거든.”
“그럼 족제비보다 더 무서운 짐승도 있어요?"
“아암, 그렇구말구. 아까 아빠가 그렇게 말씀하시는 걸 못 들었니?”
“그럼 엄마나 아빠는 족제비처럼 빨리 달릴 수 없어요?”
“그렇단다. 족제비만큼 달리지도 못하지만 그보다는 그놈도다 힘이 약하기 때문에 이길 수도 없는 거란다."
엄마 닭의 대답 소리는 조금 민망하고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힘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엄마 닭과 아빠 닭은 아기 병아리들이 앞으로 병아리들에게 다가올 갖가지 어려운 일들에 대해 자세히, 그리고 열심히 설명을 해주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맛이 있어 보여도 절대로 먹어서는 안될 덫에 매달린 미끼 이야기, 맛있는 먹이를 쉽게 구할 수 있는 방법, 그리고 넓은 개울에 빠지지 않고 건너는 방법 등, 수도 없이 많은 이야기들을 들려주었습니다.
“얘들아, 이렇게 높은 곳에서 밑으로 뛰어내릴 때는 어떻게 하는지 말이지, 우선 힘껏 점프를 한 다음에 이렇게 날개를 펴 가지고 아래를 향해 천천히 내려가면 절대로 다치지 않고 내려올 수가 있단 말이야. 어때? 정말 쉽고 재미있지?”
아빠 닭은 조금 높은 곳에 올라가서 날개를 활짝 편 다음, 뒤, 몇 차례나 계속 뛰어내리기를 되풀이하면서 시범을 보여주기도 하였습니다.
“짝! 짝! 짝!”
“우와아, 우리 아빠 정말 멋지다!”
아기 병아리들은 아빠의 모습이 여간 멋있고 자랑스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손뼉을 치며 환호성을 지르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아기 병아리 하나가 물었습니다.
“아빠, 그럼 우리들도 아빠처럼 뛰어내릴 수 있어요?”
“그건 안 돼! 너희들은 아직 어리니까 이 다음에 커진 다음에 할 수 있는 거란다. 엄마나 아빠처럼 이렇게 날개가 튼튼하게 커진 다음에 말이야. 알겠니?"
아빠 닭은 공연히 그런 걸 가르쳐 주었다는 생각에 금방 겸연쩍은 얼굴로 이렇게 대답해 주었습니다.
“당신두 참 딱하기두 하슈. 저 아이들을 낳느라고 지난여름에 그 한증막 같은 더위에 내가 둥우리 속에서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그러다가 자식들을 죽으면 어쩌려구 그런 걸 가르치고 있수?”
"그래그래, 그건 당신 말이 옳아요. 난 미처 그런 건 생각하지 못하고 그만…….“
아빠 닭은 그만 부질없는 짓을 했다는 생각에 금방 벌개진 얼굴로 겸염쩍은 듯 뒤통수를 긁고 있었습니다.
그때 아기 병아리 한 마리가 갑자기 크게 소리 쳤습니다.
“엄마! 저기 하늘 꼭대기에서 비행기처럼 빙빙 맴을 돌고 있는 건 뭐야?”
그 순간 엄마 닭과 아빠 닭의 얼굴이 금방 새파랗게 질려 버리고 말았습니다.
아기 병아리가 방금 가리키고 있는 높은 하늘에서는 먹잇감을 구하기 위해 보기만 해도 무시무시한 솔개가 빙빙 맴을 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왜 그래, 엄마?”
“아빠, 저게 뭔데 왜 그렇게 놀라셔요?”
금방 안색이 새파랗게 질려 버린 엄마 닭과 아빠 닭의 눈치를 살피면서 아기 병아리가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쉿! 조용히 하렴! 그리고 급히 나를 따라와!”
엄마 닭과 아빠 닭은 여전히 새파랗게 겁에 질린 얼굴로 아기 병아리들을 이끌고 급히 숲 속으로 숨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뒤의 어느날이었습니다.
아기 병아리들 중의 하나는 정말 아무리 생각해도 궁금하고 기분이 나빠서 좀처럼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엄마 닭을 향해 다시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투정을 부리고 있었습니다.
“엄마, 도대체 우린 이게 뭐야?”
“뭐가 또 못마땅해서 또 시작이니? 넌 다른 형제들과 달리 꽁지 털에 까만 점이 박혀서 그런지 언제나 말도 많고 불만도 많더구나.”
엄마 닭이 약간 못마땅하다는 투로 대꾸하였습니다. 그러자 아기 병아리가 여전히 불만이 가득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습니다.
“말이 많은 게 아니란 말이야. 우린 다른 짐승들처럼 힘이 있다거나 빨리 달릴 수가 없잖아. 또 새들처럼 높이 날아다닐 수도 없으면서 만날 다른 짐승들한테 잡아먹힐 게 두려워서 늘 가슴을 졸이고 피해 다녀야만 하니 얼마나 기분이 나쁘냔 말이야.”
아기 병아리의 소리를 들은 엄마는 뭐라고 대답해 주어야 할지 몰라 기가 막혀 말이 잘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럼 네가 아예부터 병아리로 태어난 것이 잘못이지, 그걸 이제와서 날더러 어떻게 하란 말이니?”
“치이, 병아리나 닭이라고 해서 다른 짐승처럼, 재빠르게 달리거나 하늘 높이 날지 못하란 법은 없잖아요.”
“그건 네가 아직 철이 없어서 지껄이는 어림도 없는 소리란 말이야. 동물들이란 제각기 자기들 나름대로 특징과 소질을 가지고 태어나게 마련이거든."
“그럼 우린 어떤 특징이나 소질을 가지고 태어난 거지?”
엄마 닭은 어떻게 이해를 해주어야 할지 선뜻 입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한동안 생각에 잠겨 있던 엄마 닭이 마지못해 겨우 입을 열고 설명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우리들은 다른 짐승들과는 달리 특별히 뛰어난 소질을 가지고 있지는 못하지만 그나마 새벽에 목청을 뽑아 늦잠 자는 사람들을 깨우는 일, 그리고 먹잇감이 땅바닥에 흩어져 있을 때 이 튼튼하고 억센 발가락과 발톱을 이용해서 벌레들을 쉽게 잡을 수 있는 일은 그 어느 짐승들도 감히 우리를 따를 수가 없거든.”
“애걔걔, 그까짓 걸 가지고도 소질이라고 자랑스럽게 내세울 수 있단 말이지?”
아기 병아리가 여전히 뾰로통해서 이렇게 대꾸하자, 엄마 닭이 다시 조용히 입을 열었습니다.
"그래. 네 말대로 그건 소질과는 관계가 없지만 우리들은 늦잠을 자는 농부들의 새벽잠을 깨우는 일 말고도 매일 사람들한테 계란을 낳아 주어 건강하게 영양을 제공해 줄 수 있고, 그리고 계란을 팔아서 좀 여유있는 생활을 할 수도 있는 아주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단다. 그러니 닭이나 병아리가 된 것이 얼마나 고맙고 자랑스러운 일이겠니?"
“쳇, 고작 사람들한테 좋은 일만 해주는 것이 자랑스럽다, 이거야? 난 그런 건 다 필요 없어요. 그리고 다른 동물들처럼 꼭 한 가지 소실을 키우고 말겠어요.”
“제발 엉뚱한 생각일랑 그만하고 아서라, 아서! 그게 어디 마음만 먹으면 아무나 되는 일인 줄 아니? 소질이란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타고 나는 거란 말이야. 이 맹추야.”
“흥, 절대로 그렇지 않아요. 난 누구나 마음만 먹고 열심히 노력만 한다면 무슨 소질이든 키울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네 말도 그럴듯하긴 하지만 그건 어느 정도 소질이 있을 때의 얘기라니까.”
“쳇! 결코 그렇지 않다는 걸 두고 보라니까요.”
까만 점박이 아기 병아리는 그만 샐쭉해서 엄마 닭의 곁을 빠져나오고 말았습니다.
밖으로 뛰쳐나온 아기 병아리는 답답한 마음에 푸른 하늘만을 한동안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어디서 날아왔는지 참새 한 마리가 빠른 속도로 힘차게 날아왔습니다.
‘옳지, 참새한테 한 번 부탁을 해봐야 되겠구나!’
아기 병아리는 반색을 하며 참새에게 말을 걸어 보았습니다.
“참새 아저씨, 안녕하세요? 어쩌면 그렇게 번개처럼 하늘을 날아다닐 있죠? 정말 멋져요.”
“멋지기는…….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 뭐.”
참새는 기분이 좋아져서 흐뭇한 얼굴로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대답했습니다.
“그럼 부탁이 한 가지 있는데 들어주시겠어요?”
“부탁이라니? 그게 뭔데? 어디 한번 말이나 해 보렴.”
“저한테도 하늘을 마음껏 날 수 있는 기술을 좀 가르쳐 주시겠어요? 그 대신 참새 아저씨가 드실 양식은 얼마든지 내가 살고 있는 주인집에서 얻어다 드릴 테니까요, 네?”
“허허, 그거참 좋은 생각이긴 하다만 난 지금까지 하늘을 마음대로 날아다니는 닭이나 병아리들을 본 적이 없거든.”
“그래도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배우고 노력하면 저는 틀림없이 그 꿈이 이루어질 거라고 굳게 믿고 있거든요.”
“그래? 그게 정말 가능한 일일까? 그런데 그렇게 잘 나는 법을 배워서 뭘하려구 그러니? 오히려 남의 눈에 잘 띄어서 더 위험할 수도 있을 텐데 말이야.”
“아무리 위험해도 전 괜찮아요. 어쨌든 저는 마음대로 하늘을 날 수만 있으면 되니까요.”
“난 어쨌든 새벽에 목청껏 빼는 수탉의 울음 소리, 그리고 제멋대로 날지는 못해도 매일 계란을 낳아 주인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자라는 너희들이 더 행복해 보이고 부럽던걸. 그러나저러나 그게 정 소원이라면 난 너를 가르칠 재주도 없으려니와 자신도 없으니까 나보다 더 재빠른 제비한테나 한 번 찾아가 보렴.”
참새는 이렇게 대답하고 어디론가 훌쩍 날아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아기 병아리는 참새의 말대로 이번에는 제비를 만나보기로 결심하고 곧 제비를 찾아 나섰습니다.
"지지배배, 지지배배…….“
한동안 여기저기를 헤매던 아기 병아리의 귀에 듣기에도 아름다운 제비들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제비들은 전깃줄에 나란히 앉아 한가롭게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제비 어르신들, 안녕하셔요?"
아기 병아리는 반가운 마음에 공손히 머리 숙여 인사부터 하였습니다. 그리고 제비를 찾아오게 된 용건을 자세히 설명하게 되었습니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제비들 중의 하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습니다.
“글쎄, 우리 제비들이야 나는 속도가 제트기보다 더 빠르기는 하지만 그걸 가르쳐 준다고 해서 너도 우리들처럼 잘 날을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아기 병아리는 제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재빨리 입을 열었습니다.
“소질을 살릴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자신의 노력에 달렸대요. 제비님도 태어나면서부터 잘 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잖아요? 엄마나 아빠한테 열심히 배우고 또 그만큼 노력한 끝에 날 수 있게 된 것이 아니겠어요?”
“네 말을 들어보니 그럴듯하기도 하구나. 어쨌든 정 그렇다면 어떻게 될는지는 잘 모르겠다만 어디 내일부터라도 열심히 해보자꾸나. 내가 힘이 닿는 데까지 열심히 가르쳐 보마.”
"제비님,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아기 병아리는 그만 너무나 기쁨에 넘쳐 코가 땅에 닿을 정도로 몇 번이고 인사를 하고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어딜 쏘다니다가 이제야 오니?“
아기 병아리가 늦게 집으로 돌아오자, 엄마 닭은 눈이 빠지게 기다렸다는 듯 조금 화가 난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병아리 형제들도 못마땅하다는 듯 한 마디씩 쏘아붙였습니다.
"저 앤 맨날 제 고집만 믿고 제멋대로야.”
"누가 아니래. 고집쟁이는 할 수 없어. 맨날 저만 잘난 체 한다니까.”
그러자 아기 병아리는 금방 짜증스러운 얼굴이 되어 병아리들을 향해 퉁명스럽게 쏘아붙였습니다.
“피이, 나야 무얼 어떻게 하든 너희들이 무슨 참견이니? 두고 봐. 난 너희들하고는 아주 차원이 다르게 되고 말 테니까. 알아들었어?”
아기 병아리는 이렇게 대꾸하고는 두 말도 없이 다시 밖으로 뛰쳐나가고 말았습니다.
“아니, 저 애가. 무슨 말버릇이 그러니? 네가 그럼 당장 솔개나 독수리라도 될 수 있단 말이니?”
뒤에서는 화가 머리끝까지 난 엄마 닭의 목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지금 아기 병아리의 눈에는 먼 훗날 제멋대로 재빠르게 하늘 높이 날아다니는 자신의 모습이 떠오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족제비보다도, 사자보다도 더 빠르게 산속을 달리는 자신의 자랑스러운 모습이 선명하게 떠오르고 있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