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창작동화

할머니와 고향

by 겨울나무

평생을 줄곧 시골에서 땅냄새만 맏고 살아가던 할머니가 서울에 있는 아들네 집으로 와서 함께 지내게 된 지도 어느덧 1년이 흘렀습니다.


아들과 며느리의 효성은 요즘 사람들과 달리 지극하였습니다.


할아버지가 긴 병으로 돌아가시게 되자, 시골에서 혼자 떨어져 쓸쓸하게 지내실 할머니를 애석하게 생각하여 모셔오게 된 것입니다. 그냥 순순히 올라오신 것이 아닙니다. 한사코 싫다고 우기는 걸 반은 강제로 모셔오게 된 것입니다.


"이제 어머님이 사시면 얼마나 더 사시겠어요? 그러니 이제부터는 제가 편안히 잘 모실 테니 아무 걱정 마시고 그저 우리돌과 같이 지내주세요. 어머니는 그저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아주시기만 하면 돼요.”

아들과 며느리는 틈이 나는 대로 할머니를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렇게 위로해 드리곤 하였습니다. 말만 그런 게 아니라 정말 정성껏 모시기 위해 말 한 마디에도 신경을 쓰면서 되도록이면 서운한 마음이 들지 않도록 정성껏 모시고 있었습니다.


제법 큰 회사에 다니고 있는 아들은 그동안 절약과 저축을 열심히 하여 남부럽지 않을 정도로 제법 넉넉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럴듯한 집도 한 채 마련했습니다. 자동차도 한 대 굴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할머니가 평소에 좋아하는 맛있는 음식도 때때로 마음껏 사드릴 수 있었고, 가끔 용돈도 넉넉히 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된 일인지 아들이나 며느리가 그토록 정성을 다해 극진히 모셔주기는 했지만 할머니의 마음속은 늘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뭔가 허전하고 쓸쓸하고 외롭기가 그지없었습니다.


“에이구, 이런 답답한 데서 도대체 무슨 재미로 사살아가고 있누!"


할머니의 입에서는 언제나 자신도 모를 한숨이 새어나오곤 하였습니다. 그렇다고 아들 내외 앞에서 뭐라고 똑 부러지게 꼬집어 불평을 늘어놓을 수도 없는 일이어서 할머니의 속만 점점 답답해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는 안 될 일이지만, 할머니는 아들 내외가 어쩌다 다정하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만 보아도 문득 할아버지 생각이 떠오르곤 하였습니다.

할머니는 도무지 어느 한 곳에 마음을 붙이고 살아갈 수가 없을 정도로 허전하고 쓸쓸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할머니는 자신도 모르게 아들 내외의 눈을 피해 슬그머니 손자가 혼자 놀고 있는 방으로 들어가곤 하였습니다.


"얘, 이 할미가 재미있는 옛날이야기 하나만 해 줄까?”


할머니는 한창 장난감 놀이에 정신이 팔려있는 손자를 덥석 안아 무릎에 앉힌 다음 이렇게 말을 걸었습니다. 그러나 손자는 매우 귀찮다는 얼굴로 그때마다 할머니를 뿌리치고는 다시 장난감만 가지고 놉니다.

“할머니! 또 옛날에 할아버지하고 지내시던 시골 얘기를 하시려고 그러시는 거죠?”

“아니, 이번에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란 말이야. 이 녀석아.”


“그럼 시골에서 도깨비나 귀신 이야기가 아니면 또 백 년 묵은 구미호 얘기를 하시려고요.?”

“그래, 맞았다. 넌 그런 얘기가 재미있다고 하지 않았니?”

그나마 손자에게 조그만 기대라도 걸었던 할머니의 마음이 다시 쓸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야기는 벌써 몇 번이나 듣고 또 들은 얘기인데 무슨 재미가 있겠어요. 그리고 우리 선생님이 귀신이나 도깨비 같은 건 이 세상에 없는 건데 괜히 사람들이 꾸며낸 이야기래요.”


손자는 그런 이야기는 이미 흥미를 잃었다는 듯 여전히 장난감만 가지고 노는 일이 정신을 팔고 있었습니다. 그런 손자를 보자 힘이 빠진 할머니는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는 그 길로 곧장 앞뜰로 나왔습니다.


뜰에 있는 꽃밭에서는 갖가지 꽃들은 반가운 낯으로 할머니를 맞이해 주고 있었습니다. 정성을 들여 가꾼 화분의 예쁜 꽃들도 할머니를 향해 방긋 웃고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쪼르리고 앉아서 마치 어린애처럼 이 꽃, 저 꽃을 살펴보면서 모처럼 허전한 마음을 달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이맛살을 찌푸립니다. 모두가 시골에서는 전혀 구경조차 할 수 없었던 베추니아, 사루비아, 튜우립, 고무나무, 소철 등 하나같이 낯선 꽃들뿐이었기 때문입니다.


“어이구, 이게 다 무슨 꽃들이지? 하나같이 낯선 다른 나라에서 들어온 꽃들이로구먼!”

할머니는 이렇게 혼자 중얼거리다가 문득 또 다시 시골에서 정성껏 물을 주고 기르던 봉숭아, 채송화, 맨드라미, 과꽃, 그리고 해바라기 등이 보고 싶고 그리워졌습니다.


할머니는 이번에는 담장 가까이 다가가서 저 먼 곳을 둘러보았습니다.


"아이구, 맙소사, 콩나물시루가 따로 없구먼. 저렇게 집들이 콩나물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으니, 저 속에서 답답해서 무슨 수로 살아들 간담. 용하다 용해.“

할머니는 너무나 답답한 마음에 금방 숨이 막힐 것처럼 가슴이 답답하였습니다. 그러자 할머니는 문득 또 다시 시골이 그립고 할아버지의 모습도 눈에 선하게 떠올랐습니다.

드넓은 벌판에서 소를 몰며 한가롭게 일하는 농부들의 정겨운 모습, 깨끗하고 맑은 하늘, 그리고 아침저녁으로 집집마다 굴뚝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밥을 짓는 연기 냄새, 졸졸 흐르는 맑은 시냇물, 만나는 이웃마다 정답게 주고 받는 티없이 맑고 정감어린 다정한 인사……, 할머니는 그만 안타깝고 허전한 마음에 긴 한숨을 내쉬고 말았습니다.


“지옥이 따로 있나? 이게 바로 지옥이지!”


할머니의 눈에는 어느 새 눈물이 글썽거리고 있었습니다. 고향을 송두리째 영영 잃어버리고 말았다는 아쉬움과 서운함에 마음속으로 슬피 울고 또 울었습니다.


"어머님! 거기서 뭘 하고 계세요? 어서 진지 드셔야지요.”

어느 틈에 뜰로 나온 며느리가 이상한 예감에 은근히 할머니의 눈치를 살피며 할머니의 손을 잡고 이끌었습니다.


“어머님! 요즘 무슨 언짢은 일이라도 있으셔요?”

“아니다. 일은 무슨…… 주책없이 괜히 옛날 생각이 나서 그러는 모양이다.”

이렇게 대답하는 할머니는 애써 허전한 표정을 감추는 빛이 역력하였습니다.


할머니는 누가 뭐라고 해도 그 옛날 마냥 행복하기만 했던 시골에서의 생활, 그리고 특히 할아버지와의 같이 지냈던 일을 활은 쉽사리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아들 내외가 극진히 정성을 다해 효성을 다한다 해도 할머니의 텅빈 가슴속의 응어리는 그 무엇으로도 풀어낼 수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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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다시 여러 날이 지났습니다.


그러나 할머니의 표정은 더욱 우울해지기만 했습니다. 그리고 할머니는 요즈음에 와서 어딜 그렇게 다니시는지 외출을 하는 날도 잦앙지고 있었습니다. 보통 이른 아침에 아무 말도 없이 슬쩍 나가면 저녁때가 돼야만 집으로 돌아오곤 하였습니다.

그럴 때마다 할머니의 두 눈은 퉁퉁 부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런 할머니의 눈치를 알아차린 아들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어머님, 요즈음 어딜 그렇게 자주 나가세요? 점심은 어떻게 하시고요? 다음부터는 어디 가실 일이 있으면 미리 말씀을 하세요. 제가 자동차로 편히 모셔다 드릴 테니까요.”


"아니다. 그럴 거까지는 없다. 답답해서 그냥 바람 좀 쏘이러 다니는 건데 자동차는 무슨……. 넌 회사 일만 해도 바쁠 텐데 그런 걱정 말거라.“


할머니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그때마다 이렇게 얼버무리곤 하였습니다.


사실 할머니가 요즈음 자주 집을 나가는 것은 서울에서 가까운 곳에 모신 할아버지의 묘를 자주 찾아가곤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는 마침내 자리에 눕고 말았습니다. 할아버지의 묘에 갔다가 갑자기 쏟아지는 비를 흠뻑 맞고 그예 몸살이 난 것입니다. 아니 그보다는 오랫동안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일어난 병인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할머니의 병환은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심해져 갔고 있었니다.

"영감! 나 혼자 어떻게 살라고 혼자만 매정하게 떠나셨단 말이우, 시골을 잃고 영감을 잃은 난 이제 더이상 견딜 수가 없어요.“


할머니는 가끔 헛소리로 시골타령이고, 오직 할아버지 이야기뿐이었습니다.


"여보! 어머님 병환이 점점 더 심해지시는 것 같으니 어쩌면 좋죠? 약을 드려도 소용이 없고 의사 선생님을 불러 몇 번 왕진을 해도 아무 소용이 없으니 아무래도 입원을 지겨드리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아내가 며칠 동안 걱정을 하다가 남편에게 물었습니다. 아내의 물음에 남편도 아무 말도 못하고 한숨만 쉬면서 한동안 생각하다가 입을 천천히 입을 열었습니다.


"내 생각으로는 지금 어머님의 병은 입원을 해도 쉽게 나을 것 같지가 않아요. 내가 그동안 생각해 둔 것이 있으니 당분간은 전처럼 내 말대로 왕진만 해보도록 해요.“


그다음 날, 여느 때와 달리 아침 일찍 집을 나간 남편은 점심때가 조금 넘어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니, 오늘은 웬일이세요? 벌써 퇴근하신 거예요?”


아내가 깜짝 놀란 얼굴로 커다란 눈이 되어 물었습니다.


“잠깐만 가만히 있어 봐요.”


남편은 이렇게 대답하고는 곧 금방 자동차로 싣고 온 큼지간 화분 2개를 들고 들어왔습니다. 하나는 싱싱하고 탐스럽게 자란 난초, 그리고 또 하나는 함박꽃이 활짝 피어있는 화분이었습니다.


아내가 궁금한 표정이 되어 다시 물었습니다.


"이게 뭐예요? 그리고 느닷없이 어디서 가지고 온 웬 화분들이예요?“


”으응, 어머님이 사시던 시골집 뒤뜰에 가서 캐다가 다시 심은 화분들이거든. 그리고 흙도 시골집 뒤뜰에서 파온 것으 그대로 넣어 심은 거고. 이 화분들을 어머님 방에다 갖다 놓을 테니 정성껏 잘 길러보도록 해봐요.“

”……?”


아내는 무슨 영문인지를 도무지 알 수 없었습니다. 두 사람은 화분을 들고 곧 어머님의 방으로 들어가서 어머님이 보기 좋게 진열해 놓았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할머니가 힘이 없는 어리둥절해진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아니, 그건 갑자기 웬 화분들이니?"


“어머니, 제가 방금 시골집 뒤뜰에 가서 캐왔어요. 어머님이 좋아하실 것 같아서요.”

아들이 할머니의 눈치를 살피면서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요?


지금까지 어둡기만 했던 할머니의 안색이 차츰 환하게 밝아지면서 오랜만에 흐뭇한 미소를 띄우며 웃고 있었습니다.


“뭐라구? 이게 바로 우리 시골집 뒤뜰에서 해마다 여름이면 탐스럽게 피어나던 함박과 난초란 말이지? 이 흙도 우리 시골집의 흙이구? 어디 좀 보자꾸나.”

할머니는 너무나 좋아서 자리에서 억지로 일어나더니 화분이 놓인 곳으로 가더니 킁킁 소리까지 내며 흙냄새를 맡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난초와 함박꽃을 번갈아 어루만져 보면서 마치 어린애가 된 것처럼 기뻐서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마치 잃어버렸던 고향을 되찾았다는 느낌에 그리고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만나기나 한 것처럼 즐거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래, 이제야 정말 고향 냄새를 맡을 수 있게 되었구나. 애비야, 정말 고맙다, 고마워.”


할머니는 여전히 함박꽃과 난초를 번갈아 어루만지면서 아들에게 진심으로 고맙다는 듯 고개를 연신 끄덕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런 할머니의 눈에서는 기쁨과 감격의 눈물이 넘쳐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런 할머니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아들과 며느리도 어느새 안도의 한숨과 기쁨의 눈물이 저절로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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