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만 들어보고 아직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서울, 엄마가 그곳으로 남의 집 일을 하러 간 지도 벌써 눈 깜짝할 사이에 한해가 훌쩍 한해가 흘러버렸습니다.
애숙이는 요즈음 매일 엄마가 오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다리는 엄마는 외도 않고 좀처럼 아무 소식도 없습니다.
'혹시 고된 남의 집 살림살이에 시달려 엄마가 병이라도 난 게 아닐까!‘
한 달에 한 번쯤은 어김없이 집에 내려 왔다 가곤 하던 엄마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어떻게 된 일인지 도통 모를 일입니다. 다녀간 지 두 달이나 훨씬 넘도록 아무 소식이 없습니다.
애숙이는 속이 답답하고 애가 타서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는 아빠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빠는 매일 남의 집으로 일을 갔다가 저녁 늦게야 집으로 돌아오곤 합니다. 그리고는 집으로 돌아기가 무섭게 혹시나 하고 엄마의 소식부터 묻곤 합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힘없이 고개를 젓는 애숙일 볼 때마다 긴 한숨만 쉬곤 합니다. 엄마가 없는 집안이 이렇게 생기가 없고 기운이 빠질 줄은 미처 생각조차 해본 일이 없었습니다.
“정말 웬일로 이렇게 안 오는 걸까? 못 오면 못 온다고 편지라도 보내주면 좋을 텐데!”
애숙이는 오늘도 얼른 저녁밥을 지어 놓고는 급히 바깥마당으로 나섰습니다.
옹기종기 이웃끼리 정답게 붙어있는 초가집 굴뚝마다에서는 저녁밥을 짓는 연기가 꾸역꾸역 솟아오릅니다. 땅거미가 내리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온통 어둠 속에 갇혀버립니다.
“바강, 바강~~ ”
마을 여기저기서 벼를 터는 탈곡기 돌아가는 소리가 점점 더 요란한 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하루 종일 일에 지쳐 성이라도 난 듯 아까보다 한충 더 요란한 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아빠는 그 탈곡기 소리들이 모두 잠잠해져야 겨우 집으로 돌아오곤 합니다.
집집마다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가 마치 뱀장어처럼 몸을 뒤틀며 하늘로 올라가고 있는 하늘을 멍하니 쳐다봅니다. 잿빛으로 물든 하늘에서는 벌써 성급한 엄마별과 아빠별들이 여기저기 하나둘씩 얼굴을 드러내며 아기별들을 찾느라고 분주합니다.
아마 엄마별들도 저녁밥을 지어 놓고 놀러 나간 아기별들이 들어 오기를 기다리는 모양입니다. 정말 밤하늘의 별들은 무척 한가롭고 평화스러워 보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습니다.
"으아앙~~ 으아앙~~~“
지금까지 방에 누워 잠을 자고 있던 아기가 깨어나 울음을 터뜨립니다. 엄마가 늦게 낳아준 애숙이 동생입니다.
아기 울음소리에 깜짝 놀란 애숙인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급히 부엌으로 뛰어들어갑니다. 그리고는 밥솥에 얹어 두었던 미음 그릇과 숟가락을 꺼내 들고 급히 방으로 들어갑니다. 울고 있는 아기를 익숙하게 무릎에 앉히고는 죽을 조금씩 먹입니다.
”으응, 우리 아기 배가 몹시 고팠구나!“
아기는 어느새 울음을 뚝 그치더니 애숙이가 떠 넣어 주는 미음을 허겁지겁 받아먹습니다. 아마 몹시 배가 고팠던 모양입니다.
그런 동생의 모습을 보자 애숙이는 문득 불쌍하다는 생각에 눈물이 나옵니다. 엄마가 서울로 올라간 뒤부터는 기껏 한 달에 한 번씩 젖 구경을 해 보는 동생입니다.
아기는 반 그릇이 넘는 죽을 거의 다 먹고 나서야 도리질을 하면서 입에 넣어 주는 미음을 도로 내뱉습니다. 아마 실컷 먹은 모양입니다.
미음을 먹인 애숙이가 이번에는 동생을 안고 일어서서 방안을 왔다 갔다 하며 얼러줍니다. 다시 잠을 재우기 위해서 학교에서 배운 자장가를 고운 목소리로 불러 줍니다. 그러자 조금 뒤 아가는 다시 눈을 살며시 감더니 이내 잠이 듭니다. 조심스럽게 아가를 아랫목에 눕힌 다음 아기의 가슴을 가볍게 토닥토닥 두드려 줍니다. 그러자 아기의 눈이 점점 감기면서 다시 꿈나라를 찾아가고 있습니다.
애숙이는 그런 아기가 몹시 사랑스럽다는 듯 잠이 든 아기의 얼굴을 유심히 내려다 봅니다. 정말 티 한 점 없이 착하고 귀엽기가 그지없는 불쌍한 동생입니다. 이번에는 아기의 뺨에 살짝 입을 맞춰줍니다. 그러자 아기는 쌔근쌔근 고운 숨소리를 내며 깊은 꿈나라를 찾아갑니다.
그제야 애숙이는 해맑은 웃음을 지으며 안심이 된 듯 살며시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혹시나 아기가 잠이 깰세라 벽장문을 조심스럽게 살며시 열었습니다. 학습장과 연필, 그리고는 학교에서 배우던 국어책과 산수책을 꺼내 방바닥에 펴 놓습니다. 틈이 날 때마다 혼자 읽어보고 써 보고 익혀 보는 교과서들입니다.
작년 가을, 애숙이는 겨우 4학년을 끝마칠 무렵에 학교를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넉넉지 못한 살림살이 때문에 엄마가 어쩔 수 없이 서울로 떠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때부터 애숙이는 집안 일과 아기를 돌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학교를 그만두게 된 것입니다.
엄마가 서울로 떠난 뒤부터 애숙이는 집안 일을 모두 도맡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선 젖먹이 동생을 돌봐야 했고 아빠의 끼니, 그리고 빨래도 해야 했습니다. 공부도 혼자 해야 했습니다. 엄마가 하던 일이 그렇게 많고 힘이 들다는 새삼 깨닫게 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애숙이는 보통 다른 아이들과는 달랐습니다. 조금도 힘들어하거나 짜증을 내지도 않았습니다. 당연히 제가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했는지 아무런 불평 한마디 없이 그 힘들고 많은 일들을 열심히 해나갔습니다. 아마 엄마가 서울로 떠날 때 엄마가 약속했던 일이 크게 한몫을 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애숙아, 더도 말고 내년 봄까지만 꾹 참고 기다려 주렴. 엄마가 돈을 많이 벌어 가지고 오면 그때 네가 좋아하던 가방이나 신발도 엄마가 모두 사 줄게.”
애숙이는 벽장에서 꺼낸 산수책을 펴놓고 연습장에 나눗셈을 열심히 풀어 봅니다. 한동안 열심히 나눗셈 공부를 하던 애숙이가 그만 깜짝 놀랍니다. 연습장이 겨우 한 장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른 때 같으면 한 달에 한 번씩 내려올 때마다 다른 건 몰라도 연습장만은 꼬박꼬박 사다주던 엄마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엄마가 내려왔가가 간 지 두 달이 넘었기 때문에 연습장도 다 쓰고 더 이상 쓸 것이 없게 된 것입니다. 그러자 1년 전 엄마와 헤어질 때의 마음 아팠던 일이 다시 떠오릅니다.
엄마가 서울로 떠나던 날, 애숙이는 엄마의 치맛자락에 매달리며 슬프게 슬프게 엉엉 울면서 통곡을 하게 되었습니다.
“안 돼! 안 된단 말이야, 엄마가 없으면 난 누구하고 살란 말야. 싫어! 싫어! 엉엉엉…….”
엄마도 애숙이의 그런 모습을 보고는 차마 뿌리치지 못하고 그만 애숙이를 얼싸안고 같이 통곡을 하고 말았습니다.
“애숙이 너까지 이러면 엄만 어떡하란 말이니? 우리 애숙이 정말 착하지, 흐흐흑…….”
"싫어, 싫단 말야. 절대로 못 가! 못 간단 말이야, 엉엉엉…….“
아무리 달래봐도 떨어지지 않고 끝까지 매달리며 울어대는 그 모습을 보자 아빠도 눈두덩을 부비며 외면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정말 생각해 볼수록 너무나 가슴 아프고 슬펐던 추억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결국, 엄마는 애숙이가 하도 매달리며 가지 말라고 애걸을 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하룻밤을 더 묵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다음 날, 애숙이가 잠에서 깨어보니 옆에 있어야 할 엄마는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애숙이가 일어나기 전에 몰래 이른 새벽에 떠났던 것입니다.
“후유~~”
1년 전의 일이 생생하게 떠오르자 애숙이의 입에서는 또 다시 답답한 한숨이 저절로 나옵니다.
날은 어두웠지만, 아직도 벼를 털고 있는 탈곡기의 소리는 좀처럼 그치지를 않고 들려오고 있습니다. 아마 아직도 타작이 끝나지 않은 모양입니다.
애숙이는 내년 봄에는 엄마가 오면 무엇을 사달라고 부탁할까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빨간 책가방? 예쁜 그림이 그려진 운동화? 줄무늬가 있는 주름치마? 그러자 애숙이의 표정은 어느새 환하게 밝아집니다. 생각만 해도 그 모두가 꿈같은 일이었습니다.
사실 애숙이는 학교에 다닐 때 운동화나 책가방 같은 것은 단 한 번도 신어보지를 못했습니다. 책가방도 그랬습니다. 다 해져버린 무명 보자기에 책을 싸 가지고 다니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신발은 흰색 고무신도 아닌 딱딱한 검정 고무신이었습니다. 그 역시 너무 신어서 바닥이 구멍이 날 때마다 꿰매 신고 다니는 신발이었습니다.
어느덧 탈곡기 소리가 슬그머니 귓가에서 점점 멀어지는가 했더니 이번에는 어딘선가 멀리서 버들피리 부는 소리가 들려오가 시작합니다.
“삘리리~~~ 삘리리~~~”
버들피리 소리는 차츰 또렷하고 분명하게 애숙이의 귓가에 들려오고 있었습니다. 애숙이는 저도 모르게 슬그머니 일어나더니 피리 소리에 이끌리듯 피리 소리가 들리는 곳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합니다. 왜 그랬는지 모를 일입니다. 어서 피리를 만들어서 불어보고 싶다는 생각에 부지런히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습니다.
“애숙아!”
애숙이는 문득 발걸음을 멈추고 서서 사방을 두리번거립니다. 분명히 어디선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입니다.
“너, 우리 딸 애숙이 아니니?”
연거푸 두 번째로 들린 그 목소리, 그것은 정말 지난 1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그리워하고 보고 싶어하던 엄마의 목소리임이 틀림없었습니다.
“엄마아---”
순간 애숙이는 얼마나 반갑고 기쁜지 금방 얼굴빛이 환하게 밝아졌습니다. 가만히 살펴보니 지금 막 저쪽 성황당 언덕길을 넘어선 엄마가 머리에는 짐을 잔뜩 이고 양쪽 손에는 큰 보따리까지 하나씩 들고 몹시 무거운 듯 쩔쩔매며 내려오고 있는 게 아니겠어요.
“엄마아---”
애숙이는 반가움에 엄마를 연거푸 소리쳐 부르며 엄마를 향해 힘껏 달려갑니다. 이윽고 엄마한테 가까이 달려간 애숙이는 기쁨에 넘쳐 엄마의 품에 덥석 안기고 말았습니다. 지금 엄마의 손에는 애숙이가 늘 갖고 싶었던 빨간 책가방이며 운동화랑 없는 것 없이 그 모두를 무겁게 들고 있었습니다. 기쁨을 참다 못한 애숙이는 엄마의 품을 뻐져나오며 물었습니다.
“엄마, 왜 이제야 오는 거야? 내가 그동안 얼마나 기다렸는 줄 알아?"
“으응, 미안하게 됐구나. 엄마가 돈을 좀 더 많이 벌어 가지고 오느라고 늦었단다. 그래, 그동안 집에 별일은 없었고?”
“응.”
"우리 애숙인 어디 아프진 않았구?“
“응”
“엄마가 없는 동만 얼마나 고생이 많았니. 에이그, 불쌍한 것 같으니라구…….“
“엄마, 그럼 이제 아주 오신 거죠?”
“그러엄, 그러니까 이렇게 네가 좋아하는 선물을 모두 한꺼번에 다 사온 게 아니겠니. 그리고 이제부터는 우리 애숙이도 다시 학교에 들어가서 그전처럼 열심히 공부를 해야지.”
애숙이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오랜만에 그리웠던 엄마와 함께 걷고 있습니다. 짐은 무거웠지만 발결음은 날아갈 듯 가벼웠습니다.
“지지배배~~ 지지배배~~~”
보리밭 위에서 재주를 부리며 놀고 있던 종달새도 기분이 좋은 듯 고운 노랫소리로 애숙이를 마음껏 축하해 주고 있었습니다. 양지쪽 산모퉁이에서 아롱거리는 아지랑이도, 파릇파릇 돋아나는 새싹들도 그 모두가 애숙이를 환영해 주고 있었습니다.
엄마와 애숙이는 어느 새 마을 근처 개울에 다다르게 되었습니다. 애숙이가 먼저 성큼 건너뛰려는 순간 그만 돌부리에 채어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쿵!”
애숙이는 그만 개울물에 잠겨 있는 돌에 이마를 부딪치고 말았습니다. 지금까지 쥐고 있던 보따리들이 모두 흩어지면서 이리 뒹굴고 저리 뒹굴며 개울물에 떠내려가고 있었습니다.
“엄마야~~~!”
“어이구, 이를 어쩌면 좋으니? 많이 다치지는 않았니?”
겁에 질린 엄마가 애숙이를 얼른 일으켜보려고 애를 써 보지만 쉽지 않습니다. 이마의 상처가 심했는지 몹시 고통스러워하며 쉽게 일어나지를 못합니다. 아무리 일어나려고 애를 써 보지만 마음처럼 쉽지를 않습니다. 그렇게 일어나 보려고 쩔쩔매고 있을 바로 그때였습니다.
“애숙이 너 저녁은 먹은 거니?”
갑자기 어렴풋이 들려오는 아빠의 목소리에 깜짝 놀란 애숙이는 그만 잠에서 깨어 벌떡 일어났습니다. 애숙이는 그동안 배를 깔고 엎드린 채 공부를 하다가 그만 깜빡 잠이 들었던 것입니다.
얼떨떨해진 표정으로 아까 개울에서 다친 이마를 만져 봅니다. 방바닥에 조금 부딪히긴 했지만 별로 아프지는 않았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너무나 허무하고 서운하기 짝이 없는 꿈을 꾸었던 것입니다.
“녀석두, 그렇게 피곤하면 먼저 자지 그랬니.”
애숙이는 부시시 정신을 차릭고 일어나 책과 연필을 주섬주섬 정리하여 벽장 속에 다시 넣어 두고는 등잔에 불부터 켭니다. 어두웠던 방안이 금세 환하게 밝아졌습니다.
“아빠, 저녁은 잡수셨어요?”
“그래, 난 먼저 일하는 집에서 먹고 왔다. 오늘도 엄마한테서는 아무 소식이 없었고?”
“…….“
애숙이는 대답 대신 힘없이 고개만 좌우로 흔들었습니다. 아빠는 다시 긴 한숨을 쉬면서 깊은 잠이 든 아기를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들여다봅니다.
”아참, 아빠가 깜빡했구나. 배가 고플 텐데 우선 이거나 먼저 먹어보렴”
아빠는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애숙이가 좋아하는 하얀 쌀밥으로 된 먹음직한 누룽지 한 덩어리를 내놓았습니다. 애숙이는 신바람이 났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된 일인지 지금 바로 먹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응, 아직 배는 안 고파. 그럼 누룽지는 잠깐 바람 좀 쐬고 와서 이따가 먹을게.“
애숙이는 답답한 마음에 방문을 슬그머니 열고 집 밖으로 나왔습니다. 밤이 되자 늦가을의 밤공기가 제법 서늘하게 느껴집니다.
밤하늘을 가만히 우러러봅니다. 어느 틈에 나왔는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예쁜 아빠별, 엄마별 그리고 아기별들이 정답게 모여 정답게 소곤거리고 있는 것이 보입니다. 마치 좁쌀을 뿌려 놓은 듯 예쁘고 고운 수많은 별들이 저마다 행복하게 반짝이고 있습니다.
아마 지금 아기별들은 엄마가 맛있게 차려준 저녁밥을 배불리 먹고 나서 지금 한창 아빠별이 들려주는 재미있는 옛날이야기를 듣고 있는지 조용히 눈만 깜빡거리고 있습니다.
오늘따라 하늘나라 별들의 가족들의 그런 모습들이 부러울 정도로 몹시, 그리고 한없이 행복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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