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녁에도 성만이는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옛날이야기를 참 재미있게 들었습니다. 성만이가 조르는 바람에 할아버니는 매일 한두 가지씩은 들려주곤 합니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옛날 이야기 밑천은 좀처럼 바닥이 나지를 않았습니다.
옛날에 유난히 싸움을 잘했던 장군들의 이야기, 효성이 지극한 소녀의 이야기, 그 누구에게라도 질 줄을 모르는 용맹스럽고 씩씩한 청년의 이야기,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이야기 등, 어디서 그렇게 많은 이야기가 술술 나오는지 신기하기만 합니다.
그중에서도 할아버지의 옛날 이야기는 귀신이나 마귀, 그리고 도깨비가 나오는 이야기가 대부분입니다. 늘 그 이야기가 그 이야기 같은데도 질리지 않고 재미있었습니다.
“자, 오늘은 여기까지만 듣고 고단할 테니 그만 자거라, 응?”
“네, 그럼 할아버지도 안녕히 편안히 주무세요.”
성만이는 곧 이불자락을 머리까지 뒤집어쓰고 잠을 청해 보지만 웬일인지 궁금해서 좀처럼 잠이 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할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할아버지, 지금도 마귀할멈이나 도깨비가 정말 살고 있단 말이죠?”
"아암, 있구 말구. 여태 할아버지 이야기를 뭘로 들은 거야?“
“그럼 할아버지도 직접 보신 적이 있으세요?”
“난 아직 그런 걸 보진 못했지만, 귀신이나 도깨비를 만나서 혼이 난 사람들이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줄 아니?”
”…….“
문득 성만이의 머리속이 점점 복잡해집니다. 학교 선생님 얘기를 들어보면 그런 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딱 잡아뗍니다. 그런데 동네 아주머니들이나 할아버지들은 그게 아닙니다. 귀신이나 도깨비는 분명히 있다고 번번이 우기곤 합니다. 그건 성만이 할아버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성만이는 가끔 머리를 갸웃거리곤 합니다. 거짓말을 듣고 있는 것 같아서 믿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럼 우리 동네 뒷산 너머 여우산 밑에 있다는 바위 동굴 속에는 아직도 마귀할머니가 살고 있다는 이야기도 정말이란 말이죠?”
“아암, 그렇다니까. 정말이라니까 얘가 자꾸만 그러네."
“에이, 우리 선생님이 그러는데 그런 이야기들은 모두 사람들이 만들어낸 거짓말이라고 그러시던데요?”
“허어, 큰일 날 소리. 그럼 너희 선생님도 한번 혼이 나봐야 믿을 모양이구나. 너 왜 작년에 우리 마을에서 벌어진 일 벌써 잊어버렸니?”
“작년에요?"
”그래. 금순네 오빠가 죽은 일 말이야.“
”…….“
성만인 금순이 오빠 이야기가 나오자 아무 말도 못하고 눈만 깜빡거리고 있었습니다. 그 사건에 관해서는 성만이도 잘 알고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벌써 작년 겨울의 일이었습니다.
마을에서 그처럼 가장 힘이 세고 건강하기만 하던 금순이 오빠가 변을 당하게 될 줄은 아무도 짐작조차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오래 전부터 이 마을에는 무서운 소문이 떠돌고 있었습니다. 여우산 골짜기 밑 동굴 속에 몇백 년이나 묵은 지네가 살고 있다는 소문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누가 그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겁이 난 얼굴로 몸을 부르르 떨곤 하였습니다.
그러나 단 한 사람 금순이 오빠는 그게 아니었습니다. 어쩌다 그런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쓸데없는 헛소문이라며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껄껄 웃어대곤 하였습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에게는 그게 큰 걱정거리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성만네 마을은 사방이 온통 험준한 바위산으로만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여우산 골짜기를 지금까지 가본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골짜기 아래 바위 동굴 속에는 지네나 이상한 괴물들이 살고 있다는 소름이 돋을 정도로 무서운 소문이 조상 때부터 떠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바위 동굴에 대한 무서운 소문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멋도 모르고 동굴 앞으로 지나가기만 해도 죽게 된다는 끔찍한 소문, 바위 동굴 속에는 현재 마귀할멈이 살고 있다는 둥,
그리고 마귀할멈은 얼마나 덩치가 크고 힘이 센지 어쩌다 밤에 걸어다닐 때마다 마치 천둥소리와 같은 굉장히 큰 소리가 멀리까지 들리게 된다는 사람, 마을 사람들 중에 멋모르고 바위 동굴 부근에 갔다가 지금까지 행방불명이 되어 소식이 없게 된 것은 그 사람들 모두가 마귀할멈의 밥이 되었을 것이라는 사람,
그야말로 끔찍한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한도 끝도 없어 퍼져나갔습니다.
그런 동굴이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동굴이지만 누구나 겁이 나서 가볼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해가 진 뒤에는 물론 대낮에도 얼씬도 못하는 동굴이었습니다.
작년 가을 금순이 오빠는 드디어 겁도 없이 그 산골짜기로 나무를 하러 떠났던 것입니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은 기겁을 하며 말렸습니다.
”이 사람아, 자네 도대체 정신이 있나 없나? 어쩌자고 그곳으로 나무를 하러 가겠다는 거야? 죽고 싶지 않으면 당장 그만두게.“
”아무리 겁이 없고 힘이 세다고는 하지만 고집을 피울 일이 따로 있지.“
그러나 금순이 오빠의 고집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성까지 내면서 마주 소리쳤습니다.
“아, 글쎄, 요즘 세상에 그런 게 어디 있다고 이 야단들이세요? 쓸데없는 말씀들은 그만두시고 이따가 제가 나무를 해 오는 거나 구경하시라니까요.”
그날, 오후 금순네 식구는 물론 마을 사람들 모두가 마을 어귀에 있는 고목 나무 밑으로 모였습니다. 그리고는 금순이 오빠가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해가 질 때까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기다려 보았지만, 금순이 오빠는 좀처럼 나타날 줄을 몰랐습니다.
“허, 그렇게 고집을 부리더니만, 아까운 청년 하나 또 잃어버린 모양이구먼. 쫏쯧쯧…….”
사람들 중에는 벌써부터 잘못된 일이라며 중얼거리기도 하였습니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 뛰어가 알아보고 싶기도 하였지만 누구 하나 선뜻 나설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바위 동굴 근처에 가기만 해도 잘못될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한동안 서로 눈치만 살피고 있다가 문득 좋은 생각이 난 듯 누군가가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
“여보게 들, 이렇게 가만히 있을 게 아니라 우리 이렇게 해보는 게 어떨까?”
“어떻게?”
“우리 모두 다 같이 도끼나 쇠스랑 같은 농기구를 가지고 함께 가 보는 게 어떨까?"
“옛기 이 사람아, 그렇게 해서 해결이 된다면 얼마자 좋겠나. 문제는 마귀할멈의 독이 무서워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단 말일세.”
마을 사람들이 한동안 이러쿵저러쿵하며 떠들썩하고 있을 바로 그때였습니다. 한 사람이 갑자기 여우산 모퉁이를 기리키며 소리치고 있었습니다.
“어엉? 여보게 들, 저기 좀 보게!”
그 바람에 마을 사람들 모두가 산모퉁이 쪽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아, 그런데 지금 여우산 모퉁이를 바라보니 꼭 죽었을 줄로만 믿었던 금순이 오빠가 들아오는 모습이 보이는 게 아니 겠어요.
기쁨에 넘친 마을 사람들은 모두 환성을 지르며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금순이 오빠를 보자 마을 사람들의 눈은 또다시 휘둥그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그것도 그럴 것이 금순이 오빠는 지금 눈동자가 벌겋게 상기되고 온몸을 심하게 부들부들 떨며 곧 쓰러지기라도 할 듯 비틀거리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금순네 아버지가 급히 다가가더니 몹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아들의 손을 덥석 잡으며 물었습니다.
“아니, 너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저어, 저…….”
금순이 오빠는 혀도 제대로 말을 듣지 않는 지 부들부들 떨면서 말을 더듬고 있었습니다.
“아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똑똑히 말을 해야 알아듣지.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그, 글쎄 진짜 마, 마귀가 나타나더니…….”
금순이 오빠는 여전히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고 부들두들 떨기만 하였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틀림없이 마귀한테 먹히고 말 뻔했다며 일단 금순이 오빠를 업고 집으로 돌아와서 눕혔습니다.
그러나 밤새도록 헛소리를 하며 심하게 앓더니 마침내 그날 밤을 넘기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그 뒤부터 동네 사람들은 바위 동굴에 대한 두려움이 더욱 커져서 조금만 어두워도 바깥출입도 제대로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정말 마귀나 귀신이라는 게 있는 걸까!’
성만인 여전히 잠을 이루지 못한 채 생각은 어느새 다시 바위 동굴로 가 있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어느새 할아버지는 코를 골고 계셨습니다.
성만인 갑자기 언젠가 읽었던 카네기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카네기는 어려서부터 담력을 기르기 위해 일부러 유령이 많이 나온다는 공동묘지 길을 걸어서 집으로 돌아오곤 하였습니다.
카네기는 어린 나이에 매일 저녁 늦게까지 남의 집 일을 하다가 집으로 돌아가곤 하였습니다. 캄캄한 밤길을 더구나 어린 나이에 혼자 집으로 간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가까운 지름길이면서도 가로등불빛으로 환하게 밝은 길이었습니다. 또 하나는 멀기도 하지만 등불도 없는 컴컴한 그리고 음산하기 짝이 없는 공동묘지가 있는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가깝고 환한 길을 두고 공동묘지가 있는 컴컴한 길을 택했던 것입니다. 앞으로 큰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담력을 길러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매일 손에 땀을 쥐며 집으로 돌아오곤 하였지만, 귀신은커녕 결국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았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래, 할아버지가 해주신 옛날이야기는 모두 거짓말이었어. 그리고 금순이 오빠가 그렇게 된 것도 마귀할멈이 독을 넣은 게 아니라 그냥 병이 나서 죽은 게 틀림없을 거야.”
그렇게 밤이 지나고 다시 그다음 날 아침이 밝았습니다.
성만인 오늘도 같은 마을에 사는 친구 종현이와 함께 놀다가 저도 모르게 다시 마귀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게 되었습니다.
“종현아, 넌 동굴 속에 정말 마귀할멈이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니?"
“그러엄, 그걸 말이라고 해?”
“네가 그걸 어떻게 믿는데?"
”어떻게 믿기는, 그럼 넌 어른들이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니?“
이번에는 종현이가 성만이에게 되물었습니다.
”그럼 넌 마귀할멈이 없다구 생각하니?“
”물론이지.“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
“선생님이 그러셨잖아. 그런 건 모두 거짓말이라구."
”선생님이 뭐 그런 것도 다 아시는 줄 아니?"
“그러엄."
”아니야. 귀신이나 마귀는 이 세상에 분명히 있단 말이야.“
”글세, 없다니까 자꾸 우기고 있네.“
”허허, 있다니까.“
”글세 없다니까."
성만이와 종현이의 입씨름은 좀처럼 끝이 날 줄을 몰랐습니다. 입씨름으로 해결이 안 되자 결국 성만이와 종현인 말만 들어도 무시무시한 바위 동굴을 직접 찾아가 보기로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성만인 종현이를 이겨보기 위해 일단 바위 동굴을 직접 가 보기로 약속을 하긴 했지만, 후회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제야 드디어 궁금증을 풀 수 있게 되었다는 기쁨에 속이 후련하기도 하였습니다.
‘음, 이거 하나만 가지고 있으면 제아무리 무섭다는 마귀할멈도 꼼짝 못하게 될 거야!’
한달음에 집으로 급히 달려온 성만인 광으로 들어가 도끼 하나를 집어 들고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그런 성만이의 눈에서 무서운 빛이 번쩍이고 있었습니다.
성만이는 도끼 하나를 들고 어느 틈에 다시 조금 전에 종현이와 약속한 고목 나무 밑으로 달려왔습니다. 고목 나무 밑에는 종현이도 벌써 나와 있었습니다. 종현이는 한 손에 도끼 하나를 들고 있는 성만이를 보자 두 눈이 휘둥그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야, 너 그건 왜 가지고 나온 거야?”
“왜라니? 귀신이든 뭐든 나타나기만 하면 찍어버릴려고."
”마귀나 귀신이 없다더니만."
“그, 그렇긴 하지만 혹시 산짐승이라도 나오면 찍어죽여야 할 거 아니니.”
“…….”
성만인 막상 바위 동굴에 갈 생각을 하니 마음이 몹시 초조해지면서 떨렸습니다. 문득문득 할아버지의 옛날이야기에 나오던 마귀할멈이 벌써부터 눈앞에 어른거리며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두려움과 초조함은 한 걸음 한 걸음 동굴이 있다는 곳이 가까워질수록 점점 더 커져만 갑니다. 도끼를 쥔 오른손에 더욱 힘을 주었지만 차츰 다리까지 맥이 빠지면서 떨리고 있었습니다. 가슴이 심하게 두근거리고 숨도 가빠지고 있었습니다. 종현인 겁이 잔뜩 난 표정으로 숨소리조차 죽이고 아무 말 없이 성만이의 뒤만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이따금 다람쥐와 산쥐들을 부스럭소리를 내며 도망치는 소리에도 기겁을 해서 놀라곤 합니다.
점점 더 길이 험해지는가 했더니 이제는 험한 바위와 나무가 너무 우거져서 어디가 어딘지 분간하기조차 어려웠습니다. 그만큼 사람들의 발길이 얼씬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한동안 잔뜩 겁먹은 얼굴로 뒤따라오던 종현이가 떨리는 목소리로 애원하듯 입을 열었습니다.
"어이, 성만아, 우리 그만 집으로 돌아가는 게 어때, 응? "
“이런 바보, 여기까지 왔다가 도로 가다니 그게 말이 돼?”
성만이도 어쩌면 종현이보다 더 무서웠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 이렇게 대꾸하고는 여전히 앞으로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오게 되었는지 모를 일입니다.
마침내 무성한 숲과 서로 뒤엉킨 가시덩굴이 있는 험한 곳은 대부분 다 지나간 것 같았습니다. 이제 앞에 보이는 산모퉁이만 돌아가면 바위 동굴이 나타나게 됩니다.
“앗!”
한동안 숨소리를 죽이며 걸어가던 성만이가 갑자기 기겁을 해서 놀라며 비명을 지릅니다. 무엇인가 성만이의 옷소매를 잡아당겼기 때문이었습니다. 성만이는 간이 콩알만해져서 정신을 차리고 자세히 보니 그것은 작년 겨울에 금순이 오빠가 버리고 간 지게였습니다. 지게에 옷소매가 걸렸던 것입니다.
“후유~~~”
겨우 안정을 되찾은 성만이의 입에서는 그제야 안심이 된 듯 한숨을 내쉽니다. 옆에서 겁을 먹고 있던 종현이도 안심이 된 듯 저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습니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한동안 걸어가고 있던 성만이가 문득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그 바람에 종현이도 덩달아 따라서 그 자리에 섰습니다. 약 열 발자국 앞에 드디어 바위 동굴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야, 종현아, 저기 좀 봐!”
“……!”
종현이는 알았다는 듯 여전히 겁에 질린 얼굴로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습니다.
"종현아, 우리 동굴 앞으로 가까이 가 볼까?”
“싫어. 난 싫다구.”
“괜찮아. 우리 가보자, 응?”
"글세 싫다니까.“
종현인 더욱 겁에 질린 얼굴이 되어 뒷걸을질을 하더니 이번에는 바위 뒤로 몸을 숨겼습니다.
”이런 겁쟁이 같으니라구. 그런 나 혼자 가본다.“
성만인 어쩔 수 없다는 듯 종현일 그 자리에 남겨둔 채 동굴 앞으로 한 걸음 두 걸음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이윽고 동굴 앞에 다다른 성만인 굴 앞에 우거진 숲과 거미줄을 헤치고 굴속을 조심스럽게 들여다봅니다. 얼마나 굴이 크고 깊은지 굴속이 온통 컴컴해서 잘 보이지를 않았습니다.
성만인 한동안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여 봅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습니다.
”저벅! 저벅! 저벅……!”
조용하기만 하던 동굴 속에서 갑자기 이상한 발자국 소리가 들립니다. 겁이 난 성만인 얼른 종현이가 있는 쪽을 바라 봅니다. 바위 뒤에 착 붙어 숨어 있는 종현인 보이지도 않습니다.
‘아마 몇백 년 묵은 여우나 마귀할멈이 내가 온 걸 눈치 챈 모양이지!‘
성만이가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도끼를 쥔 손에 힘을 단단히 주고 동굴 속을 조심스럽게 살피고 있을 때였습니다.
“꽝! 꽝! 꽝!”
이번엔 굴속이 모두 무너져내리는 듯한 굉장한 폭음이 굴속을 흔들었습니다.
’음, 이제야말로 내가 온 줄 알고 잡아 먹으러 나오는 모양이군. 어디 나오기만 해봐라.‘
성만이가 이렇게 바짝 긴장한 표정으로 굴속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을 바로 그때였습니다. 지금까지 말로만 들어 온 마귀할멈이 이상한 지팡이를 짚고 해괴한 웃음소리를 내면서 분명히 걸어 나오는 것이 는에 띄었습니다. 얼른 보기엔 남자 같게 생긴 마귀할멈, 그러나 그것은 아무리 봐도 남자의 모습으로 도술을 부린 마귀할멈임이 틀림없었습니다.
“이얏! 어디 덤빌 테면 덤벼라!”
성만인 순간 벌떡 일어나더니 도끼를 사정없이 마구 휘두르며 소리치고 있었습니다.
“야! 이 마귀할멈아. 남자로 변장하면 누가 모를 줄 알았느냐? 어서 이리 나와 보란 말이야!”
성만이의 성난 목소리는 고요하기만 했던 여우산 골짜기를 무섭게 흔들어 놓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동굴 입구까지 나온 마귀할멈은 킬킬거리고 웃기만 하면서 어서 들어오라고 손짓을 하고 있었습니다.
“싫어, 싫단 말아야. 잔소리 말고 어서 나와 이 도끼 맛을 보라니까, 어서!”
미친듯이 소리를 지르며 도끼를 휘두르고 있는 성만일 보자 마귀할멈은 갑자기 얼굴 표정이 싸늘하게 번하더니 무섭게 성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꼬마 녀석이 겁도 없군. 정 안 들어오겠다면 하는 수 없지. 낄낄낄…….”
마귀할멈은 여전히 낄낄거리고 웃으면서 성만일 향해 한 걸음 내딛고는 괴상하게 생긴 지팡이를 재빨리 뻗더니 성만이의 목에 걸기가 무섭게 굴속으로 잡아끌었습니다.
성만이는 발버둥을 치면서 목에 걸려 있는 꼬부랑 지팡이를 벗겨내려고 있는 힘을 다해 기를 쓰고 있었지만 생각처럼 쉽지를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성만인 너무 놀란 충격으로 결국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정신을 잃은 성만이 귀에 이번에는 굵직한 남자 어른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옵니다.
“얘야, 정신 좀 차려라. 어서 정신 차리란 말이야.”
성만인 간신히 정신을 가다듬고 살며시 눈을 떠봅니다.
"얘, 정신 차리라니까. 어린 녀석이 왜 이런 위험한 곳에 혼자 와 있는 거지?“
자꾸만 흔들면서 깨우는 바람에 성만이는 그제야 겨우 정신을 차리게 되었습니다. 가만히 살펴보니 웬 낯선 아저씨가 한 사람이 엽총을 옆에 놓고 성만일 흔들어 깨우고 있었습니다.
“아 아저씨는……?”
“그래, 이제야 정신이 드는 모양이구나. 난 보다시피 사냥꾼이란다. 그런데 넌 누군데 이런 깊은 산속에 혼자 와서 누워 있는 거지?”
”……?”
성만인 여전히 어리둥절해진 표정으로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며 두리번거리기만 합니다. 지금 성만이가 누워있는 오른쪽에는 바위 동굴이 보이고 아저씨의 주위엔 아저씨가 잡은 열 마리나 넘는 산토끼들이 피를 홀리며 제멋대로 쌓여 있었습니다.
"제가 어떻게 여길……?”
“허허허, 뭐? 그건 오히려 내가 물어볼 말이지. 글쎄 내가 저 동굴 속에서 사냥을 하고 나오다 보니까 네가 여기 이렇게 정신을 잃고 누워있는 게 아니겠니?”
아저씨의 말을 듣고 보니 그제야 성만이는 모든 것을 겨우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럼 이렇게 많은 산토끼들을 모두 저 바위 동굴 속에서……?”
“그래, 몇 마리만 빼고는 모두 저 동굴 속에서 잡았단다. 이렇게 많이 잡기는 오늘이 처음인걸, 언제 한 번 또 와야겠다.“
아저씨는 몹시 흐뭇한 표정으로 껄껄 웃고 있었습니다.
”그럼 아저씨, 저 동굴 속에서 혹시 마귀할멈 못 보셨어요?"
“아니, 뭐? 마귀할멈? 허허허, 요즈음에도 그런 걸 믿고 있니? 그런 건 옛날이야기 속에서나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겠니?“
성만인 그대로 땅바닥에 누운 채로 고개를 돌려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유난히도 맑고 드높은 하늘은 지금 성만이의 마음속처럼 시원스럽게 느껴집니다.
“자, 이제 정신이 들었으면 그만 내려가 볼까?”
사냥꾼 아저씨가 성만일 조심스럽게 일으켜 줍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습니다.
“성만아, 얼마나 무서웠니, 응?”
깜짝 놀라 뒤를 보니 지금까지 바위 뒤에 숨어 있던 종현이가 울상이 된 표정으로 뛰어옵니다.
"아니, 넌 또 누구니?“
사냥꾼 아저씨가 어리둥절해서 물었습니다.
“제 친구예요.”
“음, 그래?”
성만인 종현이를 바라보며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싱긋 웃어보였습니다. 종현이도 성만이를 마주보며 씽끗 웃었습니다.
어느 틈에 해님도 서산마루에 걸린 채 겨우 이마만 내밀고 있었습니다. 성만인 이제 그 어떤 것도 무섭지 않습니다. 아저씨가 곁에 있어서가 아닙니다.
저녁 노을이 세 사람의 얼굴을 점점 더 빨갛고 예쁘게 물들여가고 있었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