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창작동화

해님만이 아는 비밀

by 겨울나무

“띠리링~~ 띠리링~~”


한동안 회사 일에 열중하고 있던 박 사장의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렸습니다. 박 사장의 무심코 휴대폰을 귀로 가지고 갔습니다. 휴대폰에서는 다급한 아내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여보! 동, 동석이가 글쎄…….”


“뭐어? 동석이가 어떻게 됐다는 거야? 아, 알았어요. 금방 갈게.”


전화를 받은 박 사장의 얼굴이 무쇠처럼 굳어졌습니다. 그리고는 곧 서둘러 외출 준비를 서둘렀습니다.


“이봐요, 미스 김! 갑자기 집에 급한 일이 생겨서 잠깐 나갔다 와야 되겠어요. 그러니까 오 기사한테 빨리 자동차 좀 대기해 놓으라고 해요.”

“네, 알겠습니다.”


박 사장은 몹시 당황한 표정이 되어 급히 사장실을 뛰쳐나가고 말았습니다. 미스 김은 무슨 영문인 줄을 몰라 어리둥절해진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사장이 나간 출입문만 한동안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아니 동석이가 학교엘 안 갔다니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요?”


얼마 뒤, 집으로 달려온 박 사장은 아내를 보자마자 다급하게 물었습니다.


“그, 글쎄 나도 잘 모르겠어요. 나도 조금 전에 선생님으로부터 동석이가 결석했다는 전화를 받고 나서야 겨우 안 일인걸요.”


엄마의 얼굴빛은 이미 백짓장처럼 하얗게 질려 있었습니다.


“경찰에 신고는 했고?‘

”당신 이야기 듣고 나서 신고하려고 아직 안 했어요. 그럼 지금 바로 신고해야 될까요?“


”물론이지. 그런 당신은 신고부터 해놓고 학교에도 다시 연락을 해 보고 동석이가 갔을 만한 곳을 모두 알아 봐여. 난 나대로 알아볼 테니 말이오. “

“네, 알았어요. 그래도 동석이를 못 찾으면 어쩌죠?"


”그럴 리가 있겠소? 너무 걱정하지 말고 우선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해봐요."


박 사장 역시 약간 겁먹은 표정으로 이렇게 말하고는 곧 자동차에 몸을 싣고 어디론가 쏜살같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정말로 뜻밖의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처럼 아끼고 사랑하던 동석이가 갑자기 행방불명이 된 채로 감쪽같이 사라졌다니 좀처럼 이해할 수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바로 어제 오후의 일이었습니다.


“딩동~~~딩동~~~”


엄마가 마침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급히 뛰어나가 동석이를 반갑게 맞이했습니다.


“아이고, 우리 동석이가 왔구나. 그래 오늘 시험지는 받아왔니?”


엄마는 동석이를 만나기가 무섭게 시험지부터 찾았습니다. 동석인 아무 말 없이 책가방을 뒤적거리더니 시험지 몇 장을 꺼내 엄마한테 내밀었습니다.


엄마는 약간 긴장한 표정으로 시험지를 받아 한 장 한 장 넘겨 봅니다. 그러는 동안 엄마의 표정이 활짝 밝아졌습니다. 얼굴 가득 미소가 번지고 있었습니다. 다섯 과목의 시험지가 모두 백 점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동석이가 이렇게 모두 만점을 받아오기는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반에서 늘 1, 2등을 다투고 있는 동석이어서 점수가 늘 좋은 편이기는 했지만 오늘처럼 모두 백 점을 받아오기는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그럼 이번엔 병훈이는 어떻게 됐니?”

“…….”


엄마는 너무 흥분이 된듯 대뜸 병훈이의 성적부터 묻게 되었습니다. 병훈이는 반에서 늘 1등을 차지할 정도로 공부를 잘하는 친구였습니다.


동석이는 엄마의 물음에 여전히 잔뜩 풀이 죽은 얼굴로 고개만 조금 흔들고 있었습니다.


“그럼 이번에는 기어이 네가 1등을 하게 된 거로구나. 그런 거니?”


“…….”

시험지.png



동석인 엄마가 하도 좋아서 쩔쩔매며 묻는 바람에 이번에도 힘없이 고개만 끄덕였습니다.


“아이고, 우리 동석이가 기어이 해내고 말았구나. 정말 잘 했다, 잘했어.”


기쁨과 흥분을 참다 못한 엄마는 그만 동석일 덤썩 껴안고 있었습니다. 그런 엄마의 눈에서는 어느새 기쁨의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좋은 일이 있을 때마다 으레 지금처럼 눈물을 흘리곤 하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버린 엄마였습니다.


그러나, 엄마가 좋아하면 좋아할수록 어쩐 일인지 동석이의 마음은 점점 더 괴롭기만 합니다. 더욱 아프기만 했습니다. 동석이 얼굴빛은 아까보다 차츰 더 어두운 그림자가 번져가고 있었습니다.


사실 엄마는 지금까지 동석이에게 유난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랑을 쏟으며 살아왔습니다. 오직 동석이 하나만을 바라고 살아왔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단 한 가지 엄마의 힘과 정성만으로 이룰 수 없는 것이 한 가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동석이의 시험 성적이었습니다. 엄마는 그동안 고액 과외를 시키는 등, 갖은 방법을 다 동원해가면서 동석이를 1등 자리에 앉혀 놓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그게 그렇게 마음처럼 쉬운 게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애를 써보아도 1등은 늘 병훈이 차지였던 것입니다.


“얘, 동석아, 그까짓 병훈이 하날 그래 못 누르니?”


시험지를 받아 올 때마다 엄마는 늘 이런 식으로 동석이를 나무라며 부담을 주곤 하였습니다. 엄마는 답답하고 안타깝다 못해 살이 마를 지경이었지만, 엄마가 그럴수록 동석이는 큰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괴롭고 힘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시험을 볼 때마다 1등을 해보라고 다그치고 있는 엄마가 미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병훈이까지 미워지고 있었습니다. 병훈이 하나만 없어도 1등은 보나마나 동석이 차지가 될 테니까요.


그러던 중 이번에야말로 어렵게 1등을 하게 된 동석이가 갑자기 행방불명이 되었다니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한나절이 지나도록 여기저기를 마치 이 잡듯이 뒤지며 찾아보았지만 동석이의 소식은 끝내 알아낼 길이 없었습니다. 학교와 경찰에도 여러 차례 연락을 해보았지만 두 군데 모두 감감소식이었습니다.


엄마는 하루 종일 거실에 서서 서성거리며 안절부절을 못합니다. 혹시 잘못된 게 아닌가 하고 문득 끔찍한 생각이 머리에 떠오르기도 합니다. 안절부절을 못하던 엄마가 이번엔 슬그머니 동석이의 공부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동석이의 방 이곳저곳을 살펴보고 있던 엄마가 놀란 눈이 되어 갑자기 커다랗게 되고 말았습니다.

아! 엄마는 마침내 그제야 동석이의 소식을 알 수 있었습니다. 동석이의 책상 위에 동석이가 남겨 놓고 나간 쪽지가 거기에 있었던 것입니다.


엄마는 떨리는 손으로 쪽지를 편 다음 천천히 읽어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편지를 든 엄마의 손이 연신 덜덜 떨리고 있었습니다.

엄마!
우선 저를 용서해 주세요. 어제 백 점짜리 시험지는 제 실력으로 받은 점수가 아니었어요. 시험을 보던 날, 저는 눈 앞이 캄캄해졌어요. 이번에는 엄마 말대로 꼭 1등을 해서 엄마의 마음을 기쁘게 해드리고 싶었어요.
그러나 시험지를 받고 보니 모르는 문제가 너무 많아 눈앞이 캄캄해짖고 말았어요. 그래서 저는 병훈이 시험지도 몰래 훔쳐보고, 책도 몰래 보면서 시험을 볼 수밖에 없었어요. 엄마의 마음을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서는 그 방법 밖에 없었어요.
그리고 어제 엄마가 모두 백 점을 받은 시험지를 받아 보고 기뻐서 쩔쩔매는 모습을 보면서 제 마음은 너무 아프고 괴로웠어요. 그리고 그렇게까지 나쁜 짓을 해가며 엄마를 기쁘게 해 드리지 않으면 안 되었던 제가 너무 불쌍하고 미웠어요. 그걸 보고 좋아하는 엄마는 저보다 더 불쌍해 보였고요.
그리고 앞으로 제가 2등이나 3등으로 떨어지게 되면 엄마는 더 큰 충격을 받게 되겠지요. 그리고 엄마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는 저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그런 나쁜 짓을 해야만 하겠지요? 저는 이제 계속 1등을 차지할 자신도, 그리고 계속 1등하기를 바라는 엄마와 같이 살아갈 자신도 없어졌어요.
이제 저는 학교도 엄마 아빠도, 그리고 친구들도 모두 싫어졌어요. 두렵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어요. 저는 그래서 계속 엄마 밑에서 그런 불안하고 힘든 나날을 보내기보다는 차라리 집에서 나와 거지가 되더라도 내 맘대로 자유로운 생활을 하는 것이 훨씬 편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끝으로 저를 다시는 찾지 마세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적는 그런 엄마 밑에서 살아갈 자신이 전혀 없어요. 그럼 엄마 아마 오래오래 행복하게 안녕히 계셔요.
저를 먼저 용서해 주시고 엄마, 그리고 아빠, 오래오래 행복하세요.
동석이 올림



“아니 얘가 어쩌면 이럴 수가?”


편지를 다 읽고 난 엄마의 얼굴에 가느다란 경련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넋이 나간 사람처험 멍하니 창밖을 내다봅니다. 엄마의 눈에서는 어느새 굵은 이슬이 맺히고 있었습니다.


’그래, 엄마가 잘못했다. 이제부터는 1등을 못해도 좋으니 제발 다시 집으로 돌아와 주기만 해다오.‘


엄마는 몇 번이고 마음속으로 이렇게 다짐하고 나더니 급히 외출할 준비를 서둘렀습니다. 이번에는 직접 동석이를 찾으러 다니기 위해서였습니다.

어느 틈에 해님만이 서산마루에 걸린 채 새빨개진 얼굴을 반쯤 내밀고 소리없이 웃고 있었습니다.


아마 해님만이 동석이가 간 곳을, 그리고 동석이의 괴롭고 답답한 심정을 이해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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