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둘째 시간은 수학 시간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아까부터 나눗셈에 대해 열심히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현옥인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선생님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있는 게 아닙니다. 지금 현옥이의 마음은 저도 모르게 마음은 십 리 밖 엉뚱한 곳으로 줄달음을 치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의 목소리는 마치 꿈결 속에서 들리는 고운 자장가의 멜로디처럼 멀리서 들려오고 있습니다. 지금 현옥이의 눈에 어리는 것은 수학을 가르치는 선생님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며칠 전 출근길에 교문을 들어설 때의 선생님의 모습이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현옥인 운동장 한구석에 있는 늑목 위에 높이 올라앉아 선생님의 모습만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지금 선생님의 옆에는 현옥이와 같은 반인 길자가 바짝 붙어서 히히덕거리며 따라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는 몇 명의 다른 아이들이 따라가고 있습니다.
길자는 양쪽 손에 가방을 하나씩 들고 갑니다. 그중 하나는 길자의 가방이고, 또 하나는 선생님의 가방입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운동장에서 놀고 있던 아이들이 선생님을 보자 공손히 아침 인사를 합니다. 선생님도 밝고 환한 표정으로 일일이 인사를 받아주고 있었습니다.
이윽고 교무신 현관 앞까지 따라간 길자가 선생님의 가방을 넘겨드리고는 신바람이 난 얼굴로 교실을 향해 가벼운 걸음걸이로 걸어갑니다. 교실쪽으로 걸어가도 있던 길자가 문득 늑목 위에 앉아 있는 현옥이를 힐끗 바라봅니다. 현옥인 길자와 시선이 마주치자 못 볼 것이라도 본 듯 얼른 외면을 해버리고 맙니다.
”현옥아, 안녕!“
늑목 위에 앉아 있는 사람이 현옥이임을 알아차린 길자가 먼저 반가운 목소리로 아침 인사를 합니다. 그러나 현옥인 얼른 외면을 한 채 못들은 척 합니다.
”…….“
”저 애가 갑자기 귀가 먹었나? 현옥이 안녕!"
“으응, 아, 안녕!”
그제서야 현옥인 겨우 마지못해 아는 체를 합니다.
길자는 정말 좋겠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선생님과 언제든지 학교에 오갈 때마다 같이 다닐 수 있었으니까요. 더구나 선생님과 길자는 학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같은 동네에서 살고 있으니까요.
현옥인 그런 길자가 몹시 부러웠습니다. 길자처럼 늘 선생님과 함께 다니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의 가방을 들고 다녀보고 싶기도 했습니다. 아무리 가방이 무거워도 무겁기는커녕, 얼마든지 들고 다닐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길자와 현옥 둘이서는 반에서 공부를 아주 잘하는 아이들입니다. 그래서 두 아이는 항상 다정하게 잘 어울리기도 하였습니다. 선생님도 공부를 잘하는 길자나 현옥이를 사랑스럽다는 듯 매우 귀여워하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공부는 물론, 재미있는 운동도 여간 잘 가르쳐 주는 분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쉬는 시간이면 아이들과 함께 무슨 놀이를 하든지 같이 어울려 놀기도 합니다. 어떤 때는 아이들이 구슬치기나 딱지치기 같은 놀이를 할 때에도 같이 잘 어울리기도 합니다. 그럴 때 선생님의 모습은 영락없이 아이들 같아 보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공부 시간만 되면 그게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순하고 착해 보이기만 하던 선생님이지만, 갑자기 호랑이보다 더 무섭고 엄격한 선생님으로 변해버리고 맙니다. 그렇다고 너무 무섭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가끔 아이들이 배꼽이 빠질 정도로 재미있고 우스운 이야기도 잘해 줍니다.
어제부터인지는 잘 모르지만, 현옥인 그런 선생님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싶다는 욕심이 꿈들거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그처럼 사이좋게 지내던 길자가 이제와서는 차츰 눈에 가시처럼 여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어쩌다 선생님과 길자가 다정하게 이야기를 주고 받거나 걸어다니는 모습만 보여도 속에서 갑자기 불덩이가 치밀어오르곤 하였습니다. 그러기에 어떤 때는 길자는 물론 선생님까지 공연히 미워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선생님과 잠시라도 떨어져 있으면 못 견딜 정도로 외롭고 쓸쓸한 생각이 드는 것은 무슨 까닭인지 현옥이 자신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선생님을 모시고 우리 집까지 한번 가볼 수 있을까!’
수학을 가르치고 있는 선생님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던 현옥인 문득 그런 엉뚱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길자처럼 매일 선생님과 함께 다니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습니다. 단 한 번만이라도 선생님과 단 둘이서 현옥이네 집까지만 가볼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할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을 집으로 한번 모실만한 그런 형편도 아니다 보니 그게 걱정입니다.
현옥이는 학교에서 좀 멀리 떨어진 산골짜기에 살고 있습니다. 논과 밭길을 지나 갈대가 우거진 넓은 들을 건너야 합니다. 그리고 높은 산을 넘어가면 조그만 인삼밭이 나옵니다. 그 인삼밭 울타리 안에 오막살이 초가집 한 채가 있는데 그게 바로 현옥이네 집입니다.
현옥인 아버지가 없습니다. 현옥이가 어렸을 때 돌아가셨기 때문에 현옥인 엄마와 함께 단 두 식구가 외롭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인삼밭은 오래 전부터 현옥이 엄마가 혼자 가꾸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에 얽매인 엄마는 잠시도 틈을 낼 수 없을 정도로 늘 바쁩니다. 더구나 닭과 돼지도 기르고 있어서 엄마는 잠시도 앉아 있을 사이가 없이 늘 바쁘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엄마, 이번 운동회 때는 꼭 구경가는 거지, 응?"
“그러엄, 이번엔 아무리 바빠도 틈을 내서 한번 구경을 가야하고말고.”
현옥인 학교에서 운동회를 할 때나 소풍을 갈 때, 그리고 학예회 같은 큰 행사가 있을 때마다 엄마한테 매달리며 졸라보곤 하였습니다.
그러나 엄마는 그때마다 바쁜 일이 생기곤 하여 현옥와의 약속을 어쩔 수 없이 어기곤 하였습니다.
그런 엄마의 사정을 현옥이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 죄도 없는 엄마를 가끔 원망하가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엄마가 학교에 와본 것이라고는 입학할 때, 그것도 무리해서 대엿새 데리고 다녔을 뿐, 그 후 현옥이가 5학년이 되도록 단 한 번도 학교에 와 본 적이 없습니다.
그것은 선생님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현옥이가 5학년이 되도록 현옥이네 집에 가정방문을 한 선생님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아마 현옥이네 집이 너무나 먼 산골짜기에 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러나 지금 현옥네 선생님은 달랐습니다.
“현옥인 집이 멀다고 그랬지? 그러나 언제 시간을 내서 현옥이 집에 가서 어머님을 찾아뵙긴 해야 하는데 좀처럼 시간이 나질 않네.”
선생님은 언제 시간이 날 때 현옥이네 집에 가정방문을 한다늘 말을 하곤 하였습니다. 그때마다 현옥인 하늘 높이 날아갈 것처럼 기분이 좋았습니다. 힘이 불끈 솟아오를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렇게 산바람이 날 수가 없었습니다. 아마 현옥이는 그래서 선생님을 더욱 따르고 좋아했는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정말 언제나 우리 집에 와 주실 수 있을까!’
아직까지 나눗셈을 열심히 가르치고 있는 선생님을 초점 잃은 눈으로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습니다. 한동안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있던 현옥이는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갑자기 두 눈이 갑자기 활짝 밝아지며 커다랗게 되었습니다.
‘아하! 그렇게 하면 간단할 일을 가지고 왜 여태까지 그런 생각을 못했었지!’
현옥이의 입가엔 어느새 해맑은 미소가 번지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선생님이 가정방문을 해주기만 바라고 있던 자신이 너무나 어리석었습니다. 현옥이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마냥 좋아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자, 이제 이만하면 다들 잘 알겠죠?”
나눗셈을 푸는 방범에 대해 모두 마친 선생님의 음성이 어렴풋이 들려옵니다.
“네!”
반 아이들이 자신있는 목소리로 힘차게 큰목소리로 대답하는 소리에 현옥이는 그만 감짝 놀라 그제야 제 정신으로 돌아와 칠판을 바라봅니다.
어느 틈에 칠판에는 현옥이로서는 전혀 모를 나눗셈 계산문제가 가득하게 적혀 있었습니다.
“자, 그럼 이 문제를 앞으로 나와서 풀어볼 사람!”
"저요! 저요!"
"저 좀 시켜주세요!"
선생님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반 아이들마다 손을 번쩍 들고 자신이 나가겠다고 야단법석을 뻘고 있었습니다. 현옥이도 덩달아 저도 모르게 어리둥절해서 손을 들었습니다. 설마 나에게 물어보라고 시키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 하나만을 믿고 말입니다.
한동안 누굴 시킬까 하고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던 선생님의 시선이 마침내 현옥이의 눈과 마주쳤습니다. 현옥인 순간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습니다. 자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갑자기 가슴이 유난히 두근거립니다.
“자, 그럼 현옥부터 나와서 풀어볼까?”
순간, 현옥이의 두근거리던 가슴은 철렁 내려앉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오늘따라 앞으로 얼른 나가지 않고 우물쭈물하고 있는 현옥일 보자 아이들의 이상한 듯 모두 현옥이한테로 눈이 쏠리고 말았습니다.
“현옥이 너 어디가 아픈 거 아니니?”
선생님도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어봅니다. 전 같으면 이름이 불리기가 무섭게 앞으로 자신있게 뛰어나가곤 하던 현옥이었기 때문입니다.
“아, 아뇨.”
현옥이가 더욱 빨개진 얼굴로 고개를 흔들며 작은 목소리로 대답하였습니다. 그런 현옥이의 모습을 보자, 아이들이 의외라는 듯 모두 까르르 웃어 댑니다.
“하하하……. 쟤가 갑자기 왜 저런다니?”
”그러게 말이야. 별 꼴을 다 보겠네. 호호호…….“
“자, 그만들 웃고 조용히 좀 해요. 아마 현옥인 지금 몸이 좀 안 좋은 것 같아요. 그럼 이번에는 다른 사람!”
그러자 아이들은 이번에도 손을 번쩍 들고 자신을 시켜달라고 소리소리 지르고 있습니다. 마치 어미새가 잡아온 먹이를 서로 먼저 먹겠다고 입을 크게 벌리고 아우성을 치는 새끼제비들의 모습들처럼…….“
그리고 조금 뒤 누군가가 지명되자 칠판 앞으로 신바람이 나서 뛰어나갔습니다.
현옥인 부끄러운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매우 위험한 순간을 잘 넘겼다는 생각에 안도의 함숨을 내쉬게 되었습니다.
그럭저럭 그날 공부는 모두 끝이 났습니다. 그리고 반장의 구령에 따라 선생님에게 인사만 하면 제각기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습니다. 누군가가 느닷없이 선생님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주 작은 목소리였습니다.
”선생니임!“
그것은 바로 현옥이의 목소리였습니다. 선생님에게 인사를 하기 ㅣ위해 차렷 자세로 있던 아이들의 시선이 모두 현옥이에게로 쏠렸습니다.
“응, 그래. 선생님한테 무슨 할 말이라도 있니?”
선생님이 현옥이를 바라보며 궁굼한 얼굴로 물었습니다. 선생님의 물음에 현옥인 또다시 가슴이 두근거리며 얼굴까지 화끈거렸습니다.
“왜 그러지? 물어볼 말이 있으면 어서 말해 보렴. 어서!”
선생님도 몹시 궁금한 듯 고개를 약간 갸웃거리며 현옥이가 어서 대답해 주기를 기다립니다.
“아, 아니어요. 아무 것도…….“
오늘따라 이상해진 현옥이의 엉뚱한 대답에 반 아이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야, 무슨 애가 그러니? 선생님을 불렀으면 무슨 말을 해야 할 게 아니니?”
그러자 이번에는 길자도 나서서 한마디 나무라듯 한마디 거들었습니다.
“그러게 말이야. 아마 현옥이가 오늘은 머리가 잠깐 이렇게 됐나 봐, 그치?”
길자는 손가락을 머리에 갖다 대고 원을 그리면서 킬킬거렸습니다.
길자의 그 말을 듣는 순간 현옥인 도무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바람에 없던 용기가 가슴속에서 불끈 솟아올랐습니다. 그래서 크게 용기를 내어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우리 엄마가요. 선생님께 꼭 드릴 말씀이 있다고 오늘 우리 집으로 꼭 모시고 오랬어요.”
현옥이의 목소리는 조금 전과는 달리 힘이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여유있는 표정으로 저쪽에 앉아 있는 길자를 힐끔 바라보기도 하였습니다.
“아니, 어머니께서 갑자기 나를? 집에 무슨 일이 있니?”
선생님도 의외라는 듯 금세 커다랗게 된 눈으로 되물었습니다.
“네, 그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바쁘시겠지만 그냥 꼭 모시고 오라고 하셨거든요.”
“그래? 갑자기 무슨 일로 그러셨을까? 좋아요. 그럼 조금 뒤에 꼭 가보도록 할 테니 현옥는 잠깐 남아있도록 해요.”
“네,”
선생님이 남아서 기다리고 있으라는 말에 현옥이는 신바람이 났습니다. 세상이 온통 제 것이 된 것처럼 그렇게 날아갈 듯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윽고 반장의 구령에 따라 선생님과 인사를 마치고는 모두 교실을 우르르 빠져나갑니다. 몇몇 아이들이 현옥이 곁으로 슬그머니 다가와서 부러운 눈빛으로 무슨 일이냐고 자꾸 물어봅니다.
“글쎄, 그건 나도 자세히 모르는 일이라니까.”
현옥이는 목에 힘까지 주면서 제법 거만스럽게 대답하였습니다. 아이들이 자꾸 묻는 걸 보면 몹시 부러워하는 눈치가 역력하였습니다.
조금 뒤, 아이들이 교실을 모두 빠져나가자, 운동장으로 나온 현옥인 너무나 즐거운 마음에 저절로 나오는 콧노래를 부르면서 늑목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그리고는 열 번, 스무 번, 계속해서 늑목 위를 오르내립니다. 숨이 차고 힘이 듭니다. 그래도 즐겁기만 합니다. 선생님한테 거짓말을 해놓고도 이렇게 마냥 즐거울 줄은 생각조차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선생님이 나오기만을 기다리며 한동안 늑목 위를 오르내리던 현옥인 너무나 숨이 차고 힘이 듭니다. 잠깐 오르내리기를 멈추고 프른 하늘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맑고 파아란 하늘은 지금 현옥이의 가슴 속처럼 마냥 시원스럽고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그때 어느 틈에 늑목 밑에서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현옥아, 오래 기다렸지? 자, 어서 늦기 전에 빨리 가보자.”
“네, 선생님, 이렇게 일찍 나오셔도 돼요?”
현옥인 반색을 하는 목소리로 이렇게 대답하고는 허둥지둥 늑목 위에서 급히 내려왔습니다.
“아직 퇴근 시간은 멀긴 했지만, 급한 일이 생겨서 가정방문을 가야 되겠다고 말씀드리고 일찍 나왔단다.”
현옥인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습니다. 선생님을 모시는 일이 이렇게 쉬운 것을 그동안 공연히 바보처럼 지금까지 고민만 하고 있었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하였습니다.
“집에 가려면 아직 멀었니?”
어느새 풀숲이 우거진 논길을 지나 밭길로 들어서자 걸음을 재촉하고 있던 선생님이 물었습니다.
“그럼요. 아직 멀고말고요. 힘드시죠, 선생님?”
“나야 괜찮지만, 이렇게 먼 길을 다니는 현옥이가 정말 힘이 들겠구나. 자, 어서 부리전히 가보자.”
선생님은 다시 발걸음을 재촉하면서 손을 불쑥 내밀었습니다. 현옥인 좀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얼른 선생님의 손을 잡았습니다. 그리고는 또 행복에 겨워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아마, 길자는 나처럼 이렇게 선생님과 손을 잡고 걸어보지는 못했을 거야. 후후훗…….“
현옥인 지금 이 순간이 마냥 즐겁고 흐뭇하기만 합니다. 마침내 갈대가 우거진 숲을 지나고 산고개를 넘자, 저 멀리 현옥이네 집이 보입니다.
“저기 보이는 게 현옥이네 집이란 말이니?”
선생님은 숨이 찬 듯 잠깐 발걸음을 멈추고 서서 현옥이네 집을 바라보며 물었습니다.
“네, 맞아요. 너무 오막살이죠? 후후훗…….“
“오막살이라니? 그보다도 이렇게 경치가 좋고 공기가 맑은 곳에서 살고 있으니 현옥인 정말 좋겠는걸. 아마 그래서 네가 공부를 그렇게 잘하는 모양이구나.”
“에이, 선생님두. 너무 흉이나 보지 마셔요.”
선생님의 말에 현옥의 얼굴이 다시 붉어졌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현옥이의 기분은 마냥 좋기만 합니다.
“아니 흉을 보다니 그게 무슨 소리니? 정말 너무 좋다니까. 그런데 어머니께서 갑자기 왜 날 오라고 하셨는지 정말 모르겠니?”
“…….“
선생님의 물음에 현옥이는 얼른 대답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즐겁고 행복했던 기분이 봄눈 녹듯 모두 순식간에 사라지면서 갑자기 겁이 덜컥 났습니다. 그리고 밝기만 했던 얼굴 표정은 금세 어둡게 변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정말 큰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어디서 그런 용기와 배짱이 나왔는지 현옥이 자신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선생님과 반 아이들한테 감쪽같이 거짓말을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 저기 인삼밭 보이시죠? 지금 저 밭에서 우리 엄마가 일을 하고 계시는 거 보이시죠?”
현옥인 이렇게 말하고는 선생님과 떨어지며 저 혼자 저 멀리 보이는 인삼밭을 향해 갑자기 뛰어가고 있었습니다. 갑작스럽게 달라진 현옥이의 태도에 선생님은 그저 어리둥절한 얼굴로 힘껏 달려가고 있는 현옥이의 뒷모습을 멀거니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아니, 오늘은 왜 이렇게 늦었니?”
지금 한창 바쁘게 밭일을 하고 있던 엄마가 현옥이가 급히 뛰어오는 것을 보자 벌떡 일어서며 물었습니다. 현옥이가 급하게 소리쳤습니다.
“엄마! 저기 우리 선생님이 우리 집으로 오고 계신단 말이야.”
“뭐어? 뭐라고? 선생님이 어쩐 일로 우리 집엘?”
엄마가 깜짝 놀란 얼굴이 되어 흐트러진 옷매무시를 급히 고치며 허둥지둥합니다.
“응, 그렇대두, 저기 오시는 거 보이잖아!”
현옥이가 가리키고 있는 고갯길에는 정말 낯선 신사 하나가 걸어 내려오고 있습니다. 엄마는 어찌할 바를 몰라 더욱 안절부절못하면서 별 도리없이 급히 마중을 나갑니다.
현옥이는 그 자리에 더 이상 머무를 수 없게 되자 허둥지둥 급히 집으로 달려갑니다. 그리고는 방 속에 꼭꼭 숨어 버립니다. 가슴이 사정없이 두 방망이질을 하며 뜁니다. 방에 앉지도 못하고 선 채로 왔다갔다 하면서 사정없이 뛰는 가슴을 두 손으로 꼬옥 누릅니다. 그런 중에도 한편으로는 웃음이 저럴로 나오고 흐뭇하기자 그지없습니다.
“헤헤헤……. 오늘은 기어이 선생님을 우리 집까지 모시고 같이 걸어 봤단 말이야.”
현옥이 입가에서는 마냥 흐뭇한 미소가 피어오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멋도 모르고 선생님을 만난 엄마가 지금쯤 얼마나 당황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니 은근히 걱정이 되고 불안하기가 짝이 없습니다.
불안한 마음을 참다 못해 찢어진 창호지 방문 틈으로 몰래 밖을 내다봅니다. 무슨 이야기가 그렇게나 많은지 지금 한창 엄마와 선생님은 인삼밭 가운데 선 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뜻밖에 변을 당하게 된 엄마도 그렇지만, 거짓말로 우리 집에 오게 된 선생님한테도 너무 죄스럽고 미안한 마음 가득합니다. 그러나 현옥이는 지금 그런 걱정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일이라도 곧 반 아이들한테 자랑을 늘어놓을 생각입니다. 선생님을 모시고 집에까지 정답게 손을 잡고 갔었다는 이야기를 해줄 생각을 하면 그저 즐겁고 마냥 행복하기만 합니다.
조금 멀리에서 들리던 엄마와 선생님의 이야기 점점 가까이 들려오고 있었습니다. 아마 집으로 모시고 오는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그러나 현옥인 지금 그런 것은 조금도 두렵지 않습니다. 현옥이는 여전히 환한 미소로 행복감을 감추지 못한 채 이번에는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아마 현옥이는 지금 그렇게 부럽게 여겨지던 길자도 지금 현혹이 자신만큼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본 적은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습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