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창작동화

하늘을 뚫은 소년

by 겨울나무

일요일 아침이 밝았습니다.


동철인 아침 늦게야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어젯밤에 밤이 새도록 이런 저런 걱정을 하다가 밤늦게야 겨우 잠이 들었던 것입니다. 몸이 무겁고 찌뿌드드합니다. 더 자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더 잘 수가 없었습니다. 어제 준수와 단단히 약속한 일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짜아식, 공부만 잘하면 단 줄 아는 모양이지.”


동철인 혼자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밖으로 나갔습니다. 아침부터 잔뜩 찌푸린 날씨도 동철이의 마음처럼 답답하기만 합니다. 금방이라도 소나기를 퍼부을 듯 후텁지근합니다.


“인제 일어난 거야? 오빤 잠꾸러기 게으름뱅이야.”


그때 밖으로 나가서 놀고 있던 윤희가 뛰어들어오며 동철일 놀리며 빈정거립니다.


“빨리 밥 먹고 밭으로 나오랬어, 엄마가.”

“오늘은 밭에서 뭘 하는데?”


“엄마는 아침 일찍 아빠랑 고개 너머 밭으로 김매러 갔어. 오빠가 일어나면 호미를 가지고 빨리 나오랬어.”

그렇지 않아도 걱정거리가 태산 같은데 김을 매러 밭으로 나오라니 동철이는 그만 김이 팍 새고 말았습니다.

“쳇!”

“진짜라니까. 오빠가 안 나가면 난 야단 맞는다니까.”


동철인 아무 대꾸도 없이 뒤꼍으로 부지런히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오빠, 어딜 가는 거야? 빨리 밭에 가지 않으면 나만 혼난단 말이야.“

“글쎄 알았다니까 왜 자꾸만 보책 이 야단이니?”


“치이, 괜히 나만 가지고 야단이야.”


동철인 짜증을 참다못해 윤희를 향해 버럭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 바람에 찔끔 놀란 윤희는 겁이 났는지 이렇게 대꾸하고는 슬그머니 밖으로 나가버리고 말았습니니다.


동철이는 지금 김매는 일 같은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그보다는 준수와의 약속이 더 중요하고 급했던 것입니다.


“음, 이거 하나만 가지고 가면 문제 없을 거야!”


동철인 뒤꼍 굴뚝 옆에 세워져 있는 긴 바지랑대를 들었다 놨다 해 보면서 만족한 듯 혼자 중얼거리고 있었습니다. 그 바지랑대는 엄마가 빨래를 널어 둘 때만 아껴 쓰는 장대였습니다.


동철이가 이번에는 부엌과 광으로 부리나케 뛰어다니더니 새끼줄과 부엌칼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지금 동철이의 마음이 몹시 조급합니다. 한 시 급히 준수와 약속한 뒷산으로 올라가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짜아식! 그까짓 백 점만 받으면 단가? 흥, 어디 너 두고 봐라.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주고 말 테니까.”

동철이는 연신 이렇게 혼자 투덜대면서 이번에는 바지랑대 끝에 부엌칼을 단단하게 묶어놓고 있었습니다.

동철이와 준수는 한마을에 살고 있는 친구입니다. 더구나 같은 4학년이고 한 반입니다.


둘이는 가까운 이웃에 살면서 어려서부터 사이가 몹시 친했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학교를 다니면서부터 둘의 사이는 슬며시 멀어지고 있었습니다. 준수는 뛰어나게 공부를 잘하는 편이었고, 동철이는 그렇지 못한 것이 큰 원인이었습니다.


그러나 동철이의 생각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공부를 잘하는 그런 친구가 있다는 게 오히려 여간 고맙고 자랑스러운 게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준수의 생각은 그게 아닌 모양이었습니다. 동철이를 볼 때마다 공부를 못한다고 놀려대기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그것도 혼자가 아닙니다. 학교 아이들이나 동네 아이들이 모두 한패가 되어 놀려대곤 하는 것입니다.


전에는 그렇게 사이가 좋았던 준수였습니다. 그런 준수가 마음이 그렇게 싹 변할 줄은 몰랐습니다. 미웠습니다. 밉기만 한 게 아니라 억울하고 분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생각 같아서는 주먹으로 혼을 내주고 싶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가끔 혼을 내주기도 하였습니다. 준수는 공부는 잘했지만, 힘으로는 동철이를 당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쩌다 준수를 주먹으로 몇 대 때리고 나면 준수는 엄마한테 쪼르르 달려가서 고자질을 합니다. 그러면 그때마다 준수 엄마가 무서운 얼굴로 동철이를 다그칩니다.


“야, 너 공부도 못하는 녀석이 감히 누구한테 손찌검이야, 너 또 그럴래?”

“자꾸만 빵점짜리라고 놀리니까 때리지, 괜히 때려요?”


동철이도 못마땅한 얼굴로 씨근덕거리며 대꾸합니다.


“너 빵점짜리란 말이 그렇게 억울하고 듣기 싫으면 너도 공부를 잘하면 될 거 아니니?”

“…….”


동철이는 더 이상 대꾸를 하지 못하고 여전히 억울한 듯 식식거리기만 하였습니다. 공부라면 자신이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동철이는 이제 학교에서나 동네에 와서도 늘 외톨이가 된 느낌입니다. 그렇게 된 원인이 모두 준수 때문이었다는 것을 생각할 때마다 준수가 그렇게 밉고 야속할 수가 없었습니다.

야속하고 밉기는 학교 선생님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도덕 시간에 분명히 바른 예절을 가르칩니다. 그런데 아무 죄도 없는 남을 이렇게 아무 이유 없이 괴롭히고 놀려대는 준수는 모법생이라며 자주 상을 받기도 합니다. 그런 아이가 무슨 모범생이라고 번번이 상을 주고 있는지 동철이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한때는 동철이도 공부를 열심히 해 보려고 굳은 결심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준수를 이길 수 있는 그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밤을 꼬박 새우며 공부를 해보기도 하였습니다. 공부시간에도 선생님의 말씀을 한마디도 빼놓지 않고 열심히 들어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을 해보았지만, 그놈의 공부라는 것은 마음먹은 대로 쉼게 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 내가 어리석었어. 그까짓 우유병 같은 놈은 그저 힘으로 누르는 게 훨씬 더 빠르다니까.”


동철이는 이렇게 혼자 중얼거리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습니다. 우유병이란 준수를 보고 하는 말입니다. 동철인 언제부터인지 동철이를 부를 때 이름 대신 우유병이라고 불렀습니다. 항상 방안에 틀어박혀 공부만 열심히 해서 그런지 준수의 얼굴은 늘 우유병처럼 하얗게 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어제 오후의 일이었습니다.


동철인 학교 공부가 끝나기가 무섭게 급히 교문을 빠져나왔습니다. 준수보다 먼저 집으로 가는 길목에 가서 기다리고 있다가 준수를 다시 혼내줄 생각이었습니다.


아까 학교에서 국어 시간에 준수한테 창피를 당한 생각을 하면 더 이상 참고만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국어 시간에 선생님은 몇몇 아이들한테 돌아가며 책을 읽게 하더니 이번에는 동철이에게 읽어보라고 지명을 하였습니다.


동철이 차례가 되자 아이들은 미리부터 킥킥거리며 웃음을 참느라고 애를 쓰고 있었습니다. 동철이는 금세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면서 마지못해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습니다. 국어책을 읽을 생각을 하니 자신도 모르게 다리가 후들후들 떨립니다. 가슴도 마구 뜁니다. 그래도 용기를 내어 아랫배에 힘을 주면서 몇 줄을 더듬거리며 읽어내려가고 있을 때였습니다.


“너 지금 책을 읽고 있는 거냐, 장님이 경을 읽는 소리냐? 에라이, 빵점짜리 더듬더듬아, 낄낄낄…….”

그렇게 비웃고 있는 것은 저 앞자리에 앉아있는 준수의 목소리였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웃음을 참고 있던 아이들은 일제히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하하하…….”

”호호호…….”

순간 무안을 당한 동철이는 자리에 털썩 주저앉더니 준수의 뒤통수만 노려 보고 있었습니다. 당장이라도 주먹으로 두들겨 패주고 싶었습니다. 아이들은 여전히 깔깔 웃어대며 동철일 힐끔힐끔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때 보다 못한 선생님의 아이들을 꾸짖는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아니 왜들 그렇게 웃고 있지? 친구가 책을 읽을 때는 항상 조용히 들어야 한다고 그랬지?”

선생님의 엄한 꾸중 소리에 아이들은 금방 조용해졌습니다. 다행히도 그다음에 선생님은 동철이를 더 시키지 않고 다른 아이의 이름을 부르면서 읽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다음부터 동철이는 공부시간이 다 끝나도록 책을 읽는 소리도, 선생님의 목소리로 전혀 귀에 들어오지를 않았습니다.


그리고 공부 시간이 끝날 때까지 오직 준수만을 무서운 눈으로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교문을 급히 빠져나온 동철인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았습니다. 잔뜩 성이 난 우거지상이 되어 씨근덕거리며 부리런히 걷고 있었습니다. 이윽고 고갯길로 접어들게 되었습니다. 참나무와 나무, 그리고 소나무들이 울창한 산길이었습니다.

“짜아식, 오기만 해봐라. 내가 그냥 넘어갈 줄 알고?”


동철인 아무 곳에나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이 산길은 2학년 때까지만 해도 준수와 사이좋게 같이 다니던 길입니다. 동철인 문득 그때가 마냥 그리워졌습니다. 다시 그때가 돌아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그렇게 다정하던 준수가 지금은 눈의 가시처럼 원수로 변해 버린 것입니다. 동철이가 한창 준수의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저벅저벅 발걸음 소리에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마침내 기다리고 기다리던 준수가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동절인 순간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벌떡 일어서며 준수를 무섭게 노려봅니다. 가슴 속에서 다시 울컥 뜨거운 피가 끓어 오릅니다. 그리고는 준수를 향해 소리쳤습니다.


“야, 임마, 우유병! 너 잘 만났다. 어서 이리 와봐!”

“……!”


그 바람에 깜짝 놀란 준수는 그 자리에 우뚝 선 채 표정이 굳어지고 말았습니다. 동철이는 죽일 듯이 두 눈을 부릅뜨고 도끼눈을 뜬 채 준수가 있는 곳을 향해 천천히 다가가고 있었습니다.

겁에 질린 준수는 마치 고양이 앞에 쥐 꼴이 되어 아무 말도 못하고 동철이의 눈치만 슬금슬금 살핍니다. 순간 그런 준수가 불쌍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나 가슴속에서 치밀어오르는 분노는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


“철썩! 철썩!”


울분을 참다못한 동철이는 우선 준수의 뺨을 몇 대 보기 좋게 후려갈겼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성이 난 목소리로 준수에게 물었습니다.

“야, 이자식아! 내가 너한테 뭘 잘못했길래 매일 그렇게 못살게 굴고 있지? 어디 말 좀 해보라구!”

“…….”


준수는 뺨을 맞은 것이 아팠는지 손을 얼굴에 대고 훌쩍훌쩍 울고 있었습니다. 동철인 그래도 성이 풀리지 않은 듯 씨근덕거리며 이번에는 준수위 궁둥이를 발로 걷어찹니다. 학교에서는 그렇게도 자신만만하고 저밖에 없던 준수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단둘이 만났을 때는 아무 대꾸도 못하는 것을 보자 그런 준수가 더욱 얄미웠습니다.


발로 엉덩이까지 걷어차이게 되자 준수는 너무나 아팠는지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며 고갯길을 급히 올라갑니다. 도망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동철이가 달려가서 얼른 준수의 앞을 가로막았습니다.

“어쭈, 이 자식 봐라. 어딜 도망치는 거야? 그래 난 빵점짜리지만 넌 공부를 잘하면 얼마나 잘하니, 어디 말 좀 해보란 말이야.”


그러자 이번에는 준수도 매를 맞은 것이 너무 아프고 분했는지 울먹이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습니다.

"그럼 잘하고말고. 너보다는 훨씬 잘한단 말이야. 이 빵점짜리야.“

"어쭈 너 아직도 내 주먹맛을 덜 본 모양이구나? 그럼 너 더 맞아볼래?”

동철인 준수의 멱살을 바짝 잡고 더욱 성이 나서 무섭게 소리쳤습니다. 그러자 준수도 이번에는 못마땅하다는 듯 입을 열었습니다.


“그까짓 힘만 세면 단 줄 아니?”

“아쭈 요게 겁도 없이 기어오르고 있네. 그래 힘만 세면 그만이다. 어쩔래?”


준수도 이젠 조금도 지지 않고 대꾸합니다.


“그까짓 힘센 것이 공부 잘하는 거하고 같은 줄 알아?”

”어라! 이게 점점, 그래, 같다. 공부보다 더 쎄다, 어쩔래? 너 그럼 내 힘이 얼마나 쎈지 구경 좀 해볼래?“


“그래, 구경 좀 시켜줘 봐.”

“쳇! 난 이래 봬도 말이지. 너처럼 우유병 같은 놈하고는 상대가 안 된단 말이야. 그럼 뭘 해 볼까? 네가 시키는 대로 할 테니 어디 말해 보라구.”


“으음, 그럼 너 동네 힘센 어른들도 이길 수 있어?"

”아암, 그야 물론이지. 그걸 말이라고 하고 있니?"


“그럼 우리 집에서 기르고 있는 황소도 한 손으로 들어 올릴 수 있어?"

“그러엄.”


동철이는 솔직히 그런 것은 자신이 없었지만, 준수한테 지기 싫어서 뭐든지 다 할 수 있다고 자신만만하게 대답했습니다.


“피이, 거짓말.”

“야, 임마, 피라니? 내가 언제 거짓말하는 것 봤어?”


“그럼 정말이란 말이지?"

“글쎄, 정말이라니까.”


“그럼 지금 당장 내가 보는 앞에서 해봐.”

“우리 집 황소를 번쩍 들어보란 말이야.”


준수의 말에 동철인 더럭 겁이 났습니다. 그러나 이제 와서 못한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그래서 얼른 이야기를 다른 방향으로 돌렸습니다.


“야야 시시하다. 고작 그까짓 황소를 들어보란 말이지? 난 그보다 더 어렵고 힘든 것도 해낼 수 있단 말이야.”

동철이의 의외에 말에 준수는 궁굼하다는 듯 얼른 되물었습니다.


“그보다 더 어려운 게 뭔데?"

“음, 난 말이지. 내가 마음만 먹으면 하늘도 뚫을 수 있단 말이야.”


“피이, 거짓말.”

“뭐어? 너 내 말 아직도 못 믿는구나? 정말이라니까.”


“그럼, 지금 당장 하늘을 뚫어 봐. "

“지금은 안돼.”


“왜 안 되는데? 그럼 언제 뚫을 수 있는데?”

“으음, 내일은 뚫을 수 있어.”


“너 그거 거짓말 아니지?”

“그렇다니까. 그럼 넌 어떡할래 ? "


”뭘 어떻게 해?“

“만일 내가 하늘을 뚫으면 넌 어떻게 할 거난 말이야?"


“음, 그땐 나도 네가 시키는 대로 뭐든지 다 할게."

“너, 그거 정말이지?"


“그렇다니까."

“그럼, 앞으로 빵점짜리라고 놀리지도 않고 옛날처럼 나하고 다시 사이좋게 지낼 수 있니?”


“그야 물론이지.”

“좋아, 그럼 약속하는 거다.


동철이는 준수와 전처럼 사이좋게 지낼 생각을 하니 갑자기 신바람이 났습니다. 두 아이는 서로 손가락까지 걸면서 약속을 하였습니다.


오랜만에 동철이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지고 있었습니다. 신바람도 났습니다.


“그럼, 너 내일 아침에 우리 집 뒷동산으로 나와. 내가 반드시 하늘을 똟어놓고야 말 테니까.”

“좋아, 너 거짓말 하면 안 된다?"


“그야 두말하면 군소리지.”


결국, 동철인 그런 도무지 말도 되지 않는 약속을 덜컥해놓고 준수와 헤어졌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근심과 격정으로 밤을 새울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공연히 괜한 약속을 했다는 후회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만인 이번에 이 어려운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준수한데 전보다 더 큰 놀림을 당할 것이 뻔한 노릇이어서 그게 더 걱정이었습니다.

동철이는 밤새도록 이런저런 궁리 끝에 결국 바지랑대와 부엌칼을 생각해 냈던 것입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정성을 다해 힘껏 노력만 한다면 꼭 이룩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동철이는 마침내 바지랑대 끝에 부엌칼을 꽁꽁 동여맸습니다. 몇 번이나 힘껏 흔들어 보았지만 칼은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음, 이만하면 됐어.”


동철이는 곧 바지랑대를 들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리고는 급히 뒷동산을 향해 올라가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늘은 아까보다 더 많은 먹구름으로 덮여가고 있었습니다.


어느새 약속한 늙은 전나무가 서있는 뒷동산에 다다랐습니다. 그때 마침 저 아래 언덕으로 준수가 부지런히 올라오는 모습이 보입니다.


“야, 여기랴구. 빨리 올라와!”


준수가 숨을 헐떡이며 올라오더니 바지랑대 끝에 칼이 매달린 것을 바라보며 궁굼한 표정으로 물었습니다.

“아니, 그건 뭐니?"

“내가 하늘을 뚫는다고 했잖아. 넌 그저 잠자코 구경만 하고 있으란 말이야.”


“너 정말 그걸로 하늘을 뚫을 수 있다구?”

“그렇다니까 귀찮게 자꾸 묻고 야단이네."


“그걸로?

”응, 그렇다니까.“


“하하하……. 너 정말 웃기는 놈이구나. 그걸로 어떻게 하늘을 뚫는다고 그러니?”


준수는 하도 어이가 없어 저도 모르게 깔깔 웃음이 터져나왔습니다.


“야, 임마, 웃긴 왜 웃어? 모르면 잠자코 보고 있기만 하란 말야. 자, 이제부터 보라구."


준수가 웃는 바람에 동철이가 벌컥 화를 내고 말았습니다. 그리고는 손바닥에 침을 바르더니 비장한 각오를 한 듯 전나무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갔습니다. 그리고는 전나무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자꾸만 미끄러지고 힘은 들었지만 동철이는 있는 힘을 다해 계속 나무 위로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한 손엔 바지랑대를 꼭 쥔 채 계속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이윽고 전나무 맨 꼭대기까지 용케 올라갔습니다.


준수는 나무 위로 높이 올라간 동철이를 조마조마하게 가슴을 졸이며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습니다. 동철이가 어떻게 하늘을 뚫는다는 것인지 그 다음 일이 몹시 궁금하였습니다.


전나무 맨 위로 올라간 동철이는 바지랑대의 맨 밑의 손잡이를 잡더니 전나무에 몸을 안전하게 의지하고 천천히 일어섰습니다. 그렇게 위태로워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는 두 팔을 번쩍 들어올린 다음 발돋움을 하였습니다. 그다음에는 바지랑대를 쥔 두 팔을 하늘을 향해 사정없이 원을 그리며 마구 휘두르기 시작했습니다. 있는 힘을 다해 휘두르고 있었습니다.


열 번, 스무 번, 서른 번…….

그러나 하늘은 좀처럼 뚫어지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기운이 빠진 동철이의 손과 발이 차츰 떨리기 시작합니다. 이마에서는 연신 굵은 땀방울이 흘러내립니다. 너무 땀이 흘러서 이제는 눈을 제대로 뜰 수도 없었습니다. 하늘이 빙빙 도는 것처럼 어지럽습니다. 그래도 쉬지 않고 있는 힘을 다하여 바지랑대를 계속 휘두르고 있습니다. 저러다가는 지쳐서 나무에서 곧 떨어질 것만 같았습니다.

준수도 겁에 질린 표정으로 동철이만을 멀거니 지켜보면서 초조한 마음에 꼴깍 군침을 삼깁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습니다.


”우르르릉 꽈다당……!“

“으아아악……!”


하늘이 갑자기 두 쪽으로 갈라지는 듯한 무서운 폭음, 그리고 동철이의 비명이 전나무 꼭대기에서 함께 들려오고 있었습니다.


"앗!“


자지러질 듯이 놀란 준수는 그만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마을을 향해 미친 듯이 허둥지둥 뛰어내려가고 말았습니다.




그날 저녁이었습니다.


동철인 긴 꿈에서 깨어난 듯 겨우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습니다. 동철이의 이마에서는 여전히 딸방울이 맺혀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옆에는 엄마와 아빠, 그리고 주사기를 든 의사 선생님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엄마, 여기가 어디야?”


엄마를 알아본 동철이가 힘이 없는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응 그래, 날 알아보겠니? 여긴 병원이란다.”


동철이가 입을 열자 엄마가 반가운 듯 얼른 대답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왜 내가 병원에 있지?“


”하마터면 전나무 위에서 떨어져 죽을 뻔했단다. 그래 어쩌자고 그런 위험한 델 올라갔었니?“


동철인 그제야 겨우 모든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허어, 정말 기적입니다. 다행히도 몸에는 아무 이상 없으니 안심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조금만 안정을 하면 곧 회복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의사 선생님도 안심이 된 듯 이렇게 말하고는 병실 밖으로 나갔습니다.

”주루륵, 주르륵……!”


그때 조금 열려있는 병실 유리창 밖에서 줄기차게 쏟아지고 있는 빗줄기 소리가 동철이의 귀에 들려오고 있었습니다.


“엄마, 밖에 비가 많이 오나 보지?”

“그래, 너무 몹시 퍼붓고 있구나.”


엄마의 대답 소리에 동철이의 표정이 금방 환하게 밝아집니다. 그리고 입가에는 가느다란 미소까지 번지고 있습니다.


“엄마, 저 비 말이지. 내가 하늘을 뚫어놓았기 때문에 내리는 비란 말이야. 알겠어?”

“……?”

“……?”


엄마와 아빠는 말문이 막혀 갑자기 눈이 둥그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나무에서 떨어질 때 혹시 머리를 다쳐서 헛소리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 때문이었습니다.

동철인 아무렇지도 않은 듯 여전히 이상한 말만 늘어놓고 있습니다.

“아까 엄만 못 들었어? 하늘이 두 쪽이 나면서 갈라지는 소리 말이야. 그게 바로 내가 바지랑대로 하늘을 뚫을 때 난 소리였단 말이야.”


“……?”

“……?”


엄마와 아빠는 더욱 눈이 둥그렇게 되어 여전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서로 얼굴만 마주 바라봅니다. 그러나 지금 동철이의 마음속은 시원스럽게 쏟아지는 빗줄기보다 더 후련합니다.

아마 지금쯤 준수도 줄기차게 퍼붓는 빗줄기를 바라보고 있을 것입니다. 기어이 동철이의 힘으로 뚫은 하늘에서 쏟아지는 줄기찬 빗줄기를 말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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