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창작동화

잃어버린 영광

by 겨울나무

”얘, 영순아, 미라 구두하고 내 구두는 찾아 놓았니?“

"네, 사모님, 현관에 미리 꺼내 놓았어요."


”그래? 그럼 구두는 잘 닦아놓았고?“

”네, 사모님.“


”미라야, 넌 옷 다 있었으면 어서 떠날 준비는 하지 않고 뭘 하느라고 그렇게 방구석에서 꾸물거리고 있니?“

"응 알았다니까, 엄마.”


엄마가 하도 정신없이 서두르는 바람에 방에 있던 미라가 거실로 뛰어나왔습니다.


"아니, 넌 조금 전에 금방 빗어준 머리가 어쩌다가 벌써 이렇게 흐트러졌니? 얘, 영순아, 어서 이리 와서 미라 머리 손질 좀 해다오“

”네, 알겠어요, 사모님.“


엄마의 등쌀에 일하는 도우미 언니도 허둥지둥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습니다.


”따르릉, 따르릉~~~“


그때 갑자기 거실에 있는 전화기의 벨이 요란스럽게 울렸습니다. 도우미 언니가 급히 수화기를 들었습니다.

”예, 사장님, 네 지금 떠나실 준비가 다 되었습니다. 네네, 알겠습니다. 사모님! 사장님한테서 전화 왔어요.“


엄마는 챙기고 있던 가방을 동댕이치듯 바닥에 털썩 내려놓으며 수화기를 받아 들었습니다.


”네에? 뭐라고요? 갑자기 긴급회의가 있어서 못온다고요? 아니 그럼 미라하고 단둘이 가라고요? 미정이요? 그앤 아직 학교에서 안 돌아왔죠. 네, 네, 회의가 끝나는 대로 바로 와주어야 해요.“

엄마는 몹시 짜증스런 표정으로 수화기를 내려 놓았습니다. 그리고는 시계를 한번 들여다보더니 미라의 손목을 잡고 부리나케 현관문을 서둘러 나섰습니다.


엄마는 식구들의 정신을 온통 쏙 빼놓고 나서야 서둘러 집을 나섰습니다. 미라 역시 엄마가 하도 서두르는 바람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습니다.


오늘 엄마가 이렇게 기뻐서 허둥지둥 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엄마는 다른 것은 다 좋은데 미라나 미정이가 남한테 지는 것만큼은 절대로 그냥 참고 넘어가지를 못하는 성격입니다. 그게 큰 문제였습니다. 그러기에 혹시 다른 아이들이 미라 자매보다 공부를 잘하거나 어쩌다 상을 받는 것을 보면 질투가 나서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못된 성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엄마는 미라와 미정이에게 항상 무슨 상이라도 받아오게 하기 위해 지금까지 무척 많은 노력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바로 며칠 전의 일이었습니다. 그날 오후, 학교 공부가 끝날 무렵에 선생님은 누런 색깔의 서류봉투 하나를 손에 들고 여러 아이들 앞에서 설명했습니다. 선생님은 몹시 기분이 좋은 듯 활짝 웃는 표정으로 싱글벙글하고 있었습니다.

“자, 여러분, 아주 기쁜 소식 한 가지를 전해 주겠어요. 저번에 미라가 신문사와 방송국 공동 주최로 공모했던 대회에 미라가 응모했었어요. 그런데 그 그림이 전국에서 최우수 특상을 받게 되었어요. 여러분 다 같이 박수!”

선생님의 설명이 끝나자 아이들은 부러운 눈으로 미라를 바라보며 손바닥이 아플 정도로 힘차게 박수를 치고 있었습니다.


“히야, 미라는 참 좋겠다!”

“야아, 부럽다, 부러워!”


“축하한다. 미라야. 근데 그냥 넘어가면 안 되는 거 알지 응?”


반 아이들은 손뼉을 치면서 교실이 떠나갈 듯이 저마다 한 마디씩 떠들어대며 소리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미라는 너무나 뜻밖의 일이어서 마치 꿈이라도 꾸는 듯 한동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날, 선생님한테서 당선 봉투를 건네받은 미라는 어떻게 집에까지 왔는지 모릅니다.

“아니, 뭐야? 우리 미라가 그린 그림이 전국에서 최우수 작품으로 당선었다고? 정말 우리 미라 잘했다, 잘했어.”


통지서를 받아 본 엄마는 너무나 기쁨을 이기지 못해 그만 미라를 와락 껴안았습니다. 그런 엄마의 눈에서는 어느새 기쁨의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엄마는 그다음날부터 동네방네로 돌아다니며 미라의 자랑을 늘어놓기에 바빴습니다. 그리고 그것도 모자랐는지 친구나 친척들한테까지 이 소식을 알리고 자랑하기 위해 휴대전화가 불이 날 정도였습니다. 그런 엄마의 모습을 보면 어쩌면 미라가 당선이 된 게 아니라 마치 엄마가 당선된 것처럼 보이기도 하였습니다.

엄마와 미라를 티운 택시는 신문사를 항해 쏜살같이 신나게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엄마는 택시 안에서도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기사 아저씨에게 또 자랑을 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하였던 모양입니다.


“아저씨! 시간이 없으니 조금 더 속력을 내주시겠어요?

“네, 알겠습니다. 아직 30분이나 남았으니까 아무 걱정마십시오.”

“그건 그렇지만 1분이라도 늦으면 안 돼요. 우리 애가 글쎄 신문사에서 모집한 미술대회에서 특선 수상을 하게 되어 지금 시상식에 참석하러 가는 길이거든요. 호호호…….”


그러자 기사 아저씨가 뒷자리를 힐끔 돌아보면서 축하해 주었습니다.


“우와아, 그러시군요. 축하드립니다. 전국에서 특선이라니 이거 보통 영광이 아니겠군요. 꼬마 아가씨, 축하해요. ”

“네, 아저씨 감사합니다.”


미라도 아저씨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였습니다. 그러자 아저씨가 다시 입을 열더니 다시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습니다.


“급한 것은 알겠습니다만, 이런 때일수록 차를 급히 몰다가는 이것저것 다 놓치고 낭패를 볼 수도 있습니다.”


“이것저것 다 놓치다니 그게 무슨 말씀이죠?”


엄마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기사 아저씨에게 얼른 되물었습니다.


“옛 속담에 급히 먹는 밥이 쉽게 체한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무슨 일이든지 급할수록 서두르지 말고 차근차근 꼼꼼하게 해야 실패가 없듯이 차를 몰 때도 마찬가지죠. 급하다고 해서 차를 급히 몰다가 만일 사고라도 난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그렇게 되면 상을 받을 받기는커녕 운이 나쁘면 생명까지 모두 잃게 될 게 아닙니까, 손님!"


“아니, 이렇게 기분 좋은 날에 재수 없게시리 뭐가 어쩌고 어째요?”


기사 아저씨의 빈정대는 듯한 말투에 엄마는 그만 기분 나쁘다는 듯 벌컥 화를 내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니 기사 아저씨의 말은 귀에 거슬리기는 했지만 어떻게 보면 조금도 틀림이 없는 말이었습니다.

드넓으면서도 화려하게 꾸민 시상식장에 도착해보니 벌써 전국에서 모인 수많은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미리 와서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습니다. 엄마와 미라는 직원들의 친절한 안내에 따라 식장 맨 앞에 마련된 좌석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다소 긴장이 되기도 하였지만 마치 공주와 황후라도 된 듯 여유있고 당당한 발걸음으로 자리에 가서 앉았습니다.

식장 앞에 마련된 긴 테이블에는 금빛과 은빛으로 빛나는 대형 트로피와 상패, 그리고 메달과 페넌트들이 즐비하고도 단정하게 진열되어 더욱 사람들의 눈을 더욱 황홀하게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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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에, 그럼 지금부터 시상식을 거행하였습니다. 내빈 여러분께서는 모두 자리에서 앉아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이윽고 사회자의 사회에 따라 엄숙하게 국민의례가 끝나고 시상 순서가 되자 미라의 이름이 이 맨 처음으로 불려졌습니다. 미라는 갑자기 두근거리는 가슴과 후둘거리며 떨리는 다리를 겨우 진정하면서 시상대 앞으로 나갔습니다. 상품으로는 미라의 키만큼이나 크고 금빛 찬란한 대형 트로피를 받았습니다.

미라가 트로피를 받자 객석에서는 마치 소나기와 같은 박수 소리가 시상식장 안을 흔들어놓고 있었습니다. 사방 여기저기서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는 바람에 눈이 부시고 도무지 정신을 사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어떻게 자리로 돌아왔는지 모릅니다.


미라가 그렇게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못하고 어리둥절하고 있는 동안 어느새 시상식이 모두 끝나는가 했더니 그때 다시 안내 방송이 들려오고 있었습니다.


“오늘 최우수상을 받은 이미라 어린이와 학부모님, 그리고 미라 어린이의 담임 선생님께서는 잠깐 자리에 남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곧 이어 텔레비전 생방송을 진행하겠습니다.


안내 방송을 들은 엄마의 미라는 그만 어리둥절해서 눈이 휘둥그래지고 말았습니다. 도무지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설마 텔레비전 방송에까지 나오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조차 못했던 일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미라와 엄마, 그리고 담임 선생님, 이렇게 세 사람은 안내에 따라 신문사에 임시로 마련된 스튜디오로 따라갔습니다. 아, 그런데 미라와 엄마는 반갑고 신기해서 또다시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스튜디오에는 이미 텔레비전으로만 보았던 예쁜 여자 아나운서가 엄마와 미라를 보자 먼저 반갑게 인사를 하였기 때문입니다.


유리벽으로 된 바깥에서는 카메라와 조명기를 든 아저씨들이 아나운서와 세 사람의 모습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고 대형 이동식 카메라를 이리저리 밀고 다니는 아저씨들은 카메라의 위치와 초점을 맞추기에 분주하였습니다.


엄마와 미라는 마치 동물원에 갇혀있는 동물들처럼 꼼짝도 못하고 그들의 눈치만 보기에 바빴습니다.

이윽고 한 아저씨의 첫 신호에 따라 예쁘게 생긴 여자 아나운서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고운 목소리로 입을 열기 시작하였습니다. 목소리가 그렇게 고울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나와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그리고 우리 방송국과 신문사 공동 주최로 전국적으로 공모한 미술 대회에서 영예의 특상을 하게 된 미라 양에게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이번 대회는 이미 잘 아시다시피 어린이로서는 우리나라 최고의 영예로운 상이기에 더욱 그 가치가 높다고 보겠습니다. 그럼 먼저 미라 양의 당선 소감부터 들어보는 순서를 갖도록 하겠습니다. 미라 양! 상을 받은 소감, 그리고 평소에 그림 공부를 어떻게 해왔는지에 대해 간단히 말씀해 주시겠어요?”


아나운서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마이크를 미라에게 내밀었습니다.

“…….”


미라는 갑자기 뜻밖에 닥친 일이어서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으며 말문이 막히고 말문이 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얼굴이 빨개져서 아무 말도 못하고 있는 미라를 보자 아나운서가 안타까운 듯 다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습니다.


“자, 너무 긴장하지 말고 그저 미라가 생각나는 대로 편안한 마음으로얘기해 주면 돼요, 자, 어서!”

“…….”


미라는 여전히 벙어리가 된 듯 말을 못하고 이번에는 고개까지 푹 숙이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스튜디오 안은 다시 안타까움에 숨이 막힐 듯한 침묵이 한동안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지금까지 초조한 표정으로 미라를 지켜보고 있던 엄마가 그만 소리를 빽 지르고 말았습니다.


“아니, 얘가 갑자기 벙어리가 됐나, 왜 바보처럼 대답을 못해!”


엄마가 소리치는 바람에 이번에는 미라가 갑자기 울먹이면서 엄마를 향해 마주 빽 소리를 질렀습니다.


"몰라, 몰라! 난 아무것도 다 모르겠단 말이야. 그러니까 엄마가 대신 다 대답해 보란 말이야!“

”아, 아니 얘가 갑자기 미친 거 아니야!“

그러자 방송은 곧 중단되고 이를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의 표정이 모두 어둡게 일그러지고 말았습니다. 스튜디오 안은 금방 어수선해지면서 미라는 그 틈을 이용하여 그만 도망치듯 밖으로 뛰쳐나가고 말았습니다.

한참 뒤,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에 엄마와 미라는 뒷좌석에 나란히 앉아 있었습니다. 엄마의 표정은 아침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마치 바람 빠진 풍선처럼 맥이 빠진 채 원망스럽고도 못마땅한 얼굴로 미라만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미라는 엄마의 그런 시선을 피해 차창 밖으로 펼쳐지고 있는 바깥 풍경만을 멀거니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엄마는 지금까지의 미라의 태도를 전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그리고 씁쓸하다는 듯 입맛을 다시면서 가끔 긴 한숨만 토해내고 있습니다.


지금 미라의 마음도 엄마 못지 않게 몹시 답답합니다. 그리고 마치 큰 죄를 저지른 사람처럼 부끄럽기도 하고 불안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그 모두가 다 엄마 때문이었습니다.

그건 엄마가 더 잘 아는 사실입니다. 미라가 이번에 특상을 받게 된 것은 미라가 그린 그림을 미대에 다니고 있는 언니가 손질을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엄마가 손질을 좀 해달라고 언니에게 부탁을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시상식에서 수치를 당하게 된 것은 그 모두가 어쩌면 무작정 상 받기만을 그토록 바라고 소망하던 엄마의 성급한 성격 때문이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택시는 점점 더 속력을 내면서 집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택시 뒤에 얌전하게 놓여있는 트로피가 햇빛을 받아 찬란한 빛을 반사하며 엄마와 미라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는 듯 반짝 웃고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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