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창작동화

푸른 메아리

by 겨울나무

하늘이 푸릅니다. 나뭇잎도, 대지도 온통 푸른 물감을 들인 듯 파랗게 물들고 있는 5월입니다.


“엄마, 엄마! 유리컵 좀 찾아 줘! 유리컵이 어디 있지?”


성난이는 학교에서 돌아오기가 무섭게 숨이 턱에 찰 정도로 소리치고 난리을 칩니다.


“아니, 유리컵은 갑자기 어디에 쓰려고 이 야단법석이니, 법석이?”

"글세, 쓸 데가 있어서 그러니까 잔소리 말고 어서 찾아달라니까.“


”허이구우, 아무리 내 뱃속으로 낳긴 했지만 네 속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라니까.“


엄마는 이렇게 못마땅한 듯 투덜거렸습니다. 그러면서도 성난이가 하도 서두르며 보채는 바람에 별 수 없이 유리컵 한 개를 얼른 찾아다 주었습니다.


“참, 엄마! 나무 젓가락 있지? 그것도 있어야 된단 맡이야.”

“뭐라고? 나무젓가락은 또 어디다 쓰려고?”


“그것도 꼭 필요하니까 그렇지. 그러니까 어서 나무젓가락도 빨리 찾아오라니까, 응?”

“아니, 얘가 누굴 닮아 이렇게 성미가 급할까? 어이구, 네 등쌀에 엄만 지레 늙어 죽어버리고 말겠다.”


엄마는 좀 귀찮다는 표정으로 젓가락까지 찾아다 주고 는 다시 부엌으로 걸어갔습니다.


책가방을 마루 바닥에 동댕이 친 성난이는 유리컵과 나무젓가락, 그리고 헌 신문지와 손수건을 가지고 수돗가로 급히 뛰어나갔습니다.


성난이는 우선 우선 수도 꼭지를 돌려 유리컵에 물을 가득하게 받았습니다. 그리고는 컵 속에 신문지를 가늘게 찢어서 대여섯 가닥 찢어 넣고는 나무젓가락으로 조심스럽게 휘저었습니다.


“이제 이 컵에 손수건을 슬쩍 덮었다가 젖히기만 하면, 헤헤…….”


성난이는 이제야 매우 만족해진 듯 혼자 중얼거리면서 일단 유리컵을 세면대 위에 조심스럽게 올려 놓았습니다. 그리고는 손수건으로 컵을 덮었습니다. 그런 성난이의 표정이 표정이 제법 진지합니다.


그다음에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겨우 진정해가면서 마치 진짜 마술쟁이라도 된 듯 '얍!' 하고 기압소리를 지름과

동시에 손수건을 홱 젖혔습니다.


“이잉……?”


유리컵 속을 들여다본 성난이의 눈이 금방 실망스러움에 보름달처럼 커졌습니다.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분명히 유리컵 안에 있던 신문지가 국수로 변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국수가 되기는커녕 신문지 조각들은 물에 흠뻑 젖은 채 그대로 늘어져 있었습니다.


속이 몹시 상하게 된 성난이는 유리컵에 있는 물과 신문지를 모두 쏟아 버렸습니다. 그리고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시작합니다. 이번에는 꼭 성공하고 말겠다는 생각으로 다시 처음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두 번, 세 번, 자꾸만 되풀이해보았지만, 성난이가 바랐던 대로 신문지는 끝까지 국수로 변해 주지는 않았습니다.


“엄마! 이리 나와 봐! 이거 왜 안 되냔 말야?”


금방 울상이 된 성난이가 이번에는 부엌을 향해 급히 빽 소리를 질렀습니다.


“으이그, 아니, 뭐가 안된다고 바쁜 사람을 부르고 생트집을 부리고 이 야단이니?”


깜짝 놀란 엄마가 이번에도 눈이 둥그래서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뛰어나왔습니다.


“엄마, 그때그때 엄마도 시장에서 같이 봤잖아? 그때 요술장이 아저씨는 신문지로 국수를 만들어 먹었는데, 난 그게 왜 안 되느냔 말이야?”


엄마는 은경이가 지금짜지 수선을 떤 이유를 이제야 알아차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웃으면서 대답했습니다.


“호호호……. 엄만 또 무슨 큰일이나 난 출 알았구나. 네가 여태 그 아저씨 흉내를 내보려고 이 야단이었구나. 그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요술장이 아저씨들이나 할 수 있는 거란 말이야, 이 맹꽁이 아가씨야, 호호호…….”


성난이는 여전히 뽀로통해진 얼굴로 다시 물었습니다.


“웃지만 말고 대답 좀 해봐. 왜 그 아저씨들은 되는데 난 안되느냔 말이야?”

“그 아저씨들은 사람의 눈을 감쪽같이 속일 수 있는 재주가 있으니까 그렇지.”


“아니야. 진짜 국수를 맛있게 먹는 것도 내가 두 눈으로 똑똑히 본 걸. 그때 엄마도 같이 봤잖아.”

“글쎄 아저씨가 먹은 국수는 진짜지만, 신문지를 넣은 컵과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재빠른 솜씨로 바꾼 거라니까.”


“내가 그때 똑똑히 봤는데 컵 바꾸는 걸 못 본 걸.”

“우리 성난이가 눈치챌 정도로 바꾼다면 그건 요술쟁이가 아니지.”


엄마의 설명을 들은 성난이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더욱 더욱 울상이 된 얼굴로 다시 물었습니다.


“그럼 엄마도 그 요술 못해?”

“호호호, 원 애두 참, 엄마가 어떻게 그런 걸 할 줄 알면 이렇게 부엌에서 밥이나 하고 있겠니? 그러니까 쓸데없는 소리 좀 그만하고 어서 들어가 공부나 하렴.”


엄마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이렇게 대꾸하고는 바쁜 둣 다시 부억으로 들어가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럼 난 어떻게 하지?”


성난이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조금 전보다 더 걱정스러운 얼굴이 되어 그 자리에서 한동안 움직일 줄을 몰랐습니다.


성난이가 갑자기 요술을 부려보려고 단단히 결심을 하게 된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학교에서의 일이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잘 알다시피 내일은 기다리고 기다리던 특별활동시간이 들어있는 날입니다. 내일 특별활동 시간에는 여러분들이 그동안 가지고 있던 숨은 재주를 마음껏 자랑해 볼 수 있는 장기 자랑 시간을 마련해보기로 하겠어요. 무용이나 독창, 그리고 그 밖에 무엇이든 다 좋으니까 한 가지씩 꼭 준비해 오도록 하셔요. 알았죠?”


“우와아, 신난다!”


선생님의 이야기에 아이들은 일제히 기쁨에 넘쳐 환성을 지르고 야단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제 각기 옆에 앉은 짝에게 내일 자신이 자랑할 장기에 대해 미리부터 신바람이 나서 설명을 하며 야단법석을 떨고 있었습니다.


성난이는 성난이 대로 한동안 어떤 것을 해야 할지 곰곰이 생각하다가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오른 듯 손을 번쩍 들더니 선생님을 향해 큰소리로 물었습니다.


“선생님! 내일 장기 자랑 시간에 마술을 해도 되죠?”

“물론이죠. 성난이는 노래만 잘하는 줄 알았더니 언제 마술도 배운 모양이구나?”


성난이가 마술을 하겠다는 말에 아이들의 기대는 한껏 부풀었습니다. 그래서 교실 안이 아까보다 더 시끄러워지면서 마치 시끄럽게 개구리가 울어대는 한여름의 논바닥의 풍경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학교 공부를 모두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 성난이의 발걸음이 그 어느 날보다 상쾌하고 가벼웠습니다. 한시라도 빨리 집으로 가고 싶었습니다. 기가 막히게 멋진 마술로 친구들을 깜짝 놀라게 해주기 위해서는 미리 많은 연습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엄마를 따라 시장에 갔던 성난이는 약을 팔며 마술을 부리는 아저씨를 흥미롭게 구경한 적이 있습니다.


아저씨의 마술은 그 어느 것 하나 신기하지 않은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엄마는 먼저 집으로 가게 하고 혼자 해님이 서산으로 꼴깍 넘어갈 때까지 넋을 잃고 구경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저씨의 많은 마술 중에서도 특히 성난이가 흥미로웠던 것은 신문지를 찢어 국수를 만들어 먹는 마술이었습니다. 그리고 어찌나 맛있게 먹는지 자신도 모르게 입에 고였던 침을 꼴깍 삼키기도 하였습니다.


‘히야! 앞으로는 신문지만 있어도 먹고 싶을 때마다 국수를 마음 대로 만들어 먹을 수 있겠구나!’


마술 구경을 한 뒤부터 늘 이런 생각을 해오던 성난이는 마침내 이번 장기 자랑 시간에 그 마술을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깜짝 놀라게 할 생각이었던 것입니다.




그날 저녁이었습니다. 성난이는 밤늦도록 아무리 궁리를 해도 별다른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에이, 이럴 줄 알았으면 괜히 마술을 하겠다고 미리 약속을 했잖아.“


성난이는 내일 학교에 가서 창필ㄹ 당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큰 걱정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아니, 그보다도 잔뜩 기대를 하고 있던 친구들이 실망을 하게 되고 웃음거리가 될 일이 더 걱정이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좀처럼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괜찮아. 꼭 마술만 해야 된다는 법이 어디 있니? 그 대신 네가 잘하는 노래를 대신 불러도 될 게 아니겠니? 그러기로 하고 그만 자렴. 아마 그런 것쯤은 선생님이나 친구들로 이해해 줄 거야.”


성난이가 하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걱정을 하는 바람에 엄마가 이렇게 댤래주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선생님과 아이들이 실망할 일을 생각하면 그럴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성난이의 깊은 한숨소리에 따라 밤도 점점 더 깊어가고 있었습니다.


앵무새.png


그다음 날 장기 자랑 시간이었습니다.


“오늘은 어제 예고한 대로 지금부터 여러분의 장기 자랑 시간을 시작하겠어요. 모두들 준비는 됐겠죠?”

“예!

“빨리 시작해요, 선생님!”


성급한 아이들은 벌써부터 마음이 한껏 부풀어서 야단들이었습니다.


“네, 좋아요. 오늘 이 시간엔 특별히 5월의 푸른 하늘과 맑은 공기를 마음껏 마시고, 또한 넓은 장소에서 마음껏 자유로운 시간을 즐겨보기 위해 특별히 학교 분수대 옆 잔디밭으로 장소를 정했어요. 자, 그럼 지금부터 질서있게 조용히 분수대 옆으로 출발하세요.”


“얏호!”

“야아, 신난다!”


선생님의 주의에도 아랑곳없이 아이들은 다시 환성을 떠뜨리며 마치 고삐 풀린 송아지의 모습이 되어 우르르 밖으로 몰려나가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잔디밭으로 나온 아이들의 마음은 저마다 들떠 있었습니다.


푸른 하늘, 푸른 잔디, 그리고 연두색깔로 곱게 단장한 싱그러운 나무들, 어디를 보나 즐겁지 않은 곳이 없었습니다.


이윽고 아이들은 목두 잔디밭에 자리를 잡고 둘러앉자, 선생님의 진행에 따라 기다리고 기다리던 장기 자랑은 시작되었습니다.


순서에 따라 허리를 잔뜩 구부린 채 허공에 궁둥이를 멋대로 흔들며 유행가를 먹청껏 부르는 아이, 준비해 온 탈을 쓰고 북을 치며 탈춤을 추는 아이, 등에 옷을 잔뜩 집어 넣고 익살스럽게 곱추춤을 춤을 추는 아이 등, 정말 언제 어느새 그런 재주들을 익혔는지 아이들의 장기는 좀처럼 그칠 줄을 모르고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구경을 하고 있는 아이들은 너무 재미있다는 듯 제각기 손뼉을 치거나 배꼽을 쥐고 깡총깡총 뛰기도 합니다. 웃음을 참다못해 아예 땅바닥에 데굴데굴 구르며 웃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너무나 웃어서 눈물을 찔끔찔끔 흘리는 아이들도 많았습니다.


선생님도 저절로 터져나오는 웃음을 억지로 참아보려고 애를 쓰면서 아이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하고 있지만 오늘만은 그 모두가 헛수고였습니다.


“자,자, 여러분 조용히 하세요. 그럼 이번 순서는 이러분들이 오랫동안 기다리고 고대하던 성난이의 장기 자랑을 보는 순서를 마련해 보도록 하겠어요. 자, 그럼 다 같이 힘찬 박수 부탁드려요.”


선생님의 말에 따라 우렁찬 박수가 터지면서 그렇게 시끄럽던 자리가 잠시 조용해졌습니다. 그러자 성난이가 마치 죄를 지은 사람처럼 어두운 표정으로 마지못해 아이들 앞으로 나왔습니다.


“저어, 성난이는 오늘 어떤 장기를 보여준다고 했지?”


“…….”


성난이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성난이가 우물쭈물 하는 사이에 어떤 아이가 얼른 대답했습니다.


“마술을 한다고 그랬잖아요.”


그 소리를 듣자 성난이의 가슴에서 갑자기 발동기가 돌아가는 소리를 내며 눈앞이 캄캄해지고 말았습니다.


“저어, 선생님, 마술을 하려고 했는데 준비물을 구하다 못해서 마술은 어렵게 됐어요. 그 대신 노래를 불러도 될까요?”


성난이는 저도 모르게 얼른 이런 거짓말이 입 밖으로 흘러나오고 말았습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이 순간을 어떻게 넘겨야 할지 몰라 걱정이 태산 같았는데 어디서 그런 좋은 생각이 떠올랐는지 성난이 자시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그래? 그야 물론이지. 준비가 안 됐다면 마술은 다음에 보여주기로 하고 그렇게 하도록 해요. 성난이의 별명이 우리 반 가수인데 장기 시간에 노래를 빠뜨려서야 그게 말이 되겠니?"

”후유~~~“


성난이는 그동안 속으로 꾹 참고 있던 안도의 한숨이 길게 나왔습니다. 속이 그렇게 후련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의 얼굴마다에서는 실망의 빛이 가득하였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이 바로 성난이를 향해 입을 열었습니다.


“그럼 성난이가 이번에 부를 곡목은?”

“'어린이 노래'요.”


다시 우렁찬 박수 소리가 터지면서 성난이의 고운 노랫소리가 조용히, 그러나 힘차게 푸른 하늘높이 메아리치기 시작했습니다.


하늘 향해 두 팔 벌린 나무를 같이

무럭무럭 자라나는 나무를 같이


성난이의 꾀꼬리 같은 고운 노래 소리는 마치 파도를 타듯 울려퍼지고 있었습니다. 두 눈을 지긋이 감은 채 먼 하늘을 바라보며 부르고 있는 아름다운 노래 소리는 그렇게 감동적일 수가 없었습니다.


아이들은 조금 전까지와는 사뭇 다르게 물을 끼얹은 듯 조용히 앉아 은경이의 노래하는 모습을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성난이의 노래가 끝나기가 무섭게 아이들이 다시 저마다 떠들어대기 시작했습니다.


”야! 정말 잘한다!“

”앙코르! 앙코오르!”


아이들이 하도 노래를 더 부르라고 야단을 하는 바람에 성난이가 다시 노래를 시작했습니다. 이번에는 ‘푸른 잔디’였습니다.


풀 냄새 피어나는 잔디에 누워

새파란 하늘가 흰구름 보면


성난이의 노래는 다시 푸른 하늘 높이 아름답게 수를 놓으며 멀리멀리 번져가고 있었습니다. 그 노랫소리는 다시 푸른 메아리로 바뀌어 시원스럽게 되돌아오곤 합니다.


마치, 지금 성난이의 가슴 속처럼 후련하고 시원스럽게 들려오고 있었습니다. ( * )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