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창작동화

자전거 아저씨

[어떤 해후]

by 겨울나무

새 학기 첫날의 이른 아침입니다.


“땡~~ 땡~~ 땡~~”


마침내 교무실 앞에 매달린 종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져나갑니다. 지금까지 운동장에서 뛰어놀고 있던 아이들이 각자 제자리로 달려가더니 질서 있게 줄을 맞춰 섭니다. 조금 뒤에는 교무실에서도 선생님들이 우르르 몰려나오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저마다 기대에 찬 눈빛으로 선생님들을 바라보면서 웅성거리기 시작합니다. 과연 어느 선생님이 앞으로 1년 동안 자신을 맡아 가르치게 될지 너무나 궁금한 순간이었습니다.

준영이도 자리에 선 채 이마에 흐르는 땀을 연신 옷소매로 닦아냅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친구들과 어울려 열심히 축구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도 앞에 서 있는 선생님들을 번갈아가며 바라보기에 바쁩니다.


준영이는 아까부터 교장 선생님 바로 옆자리에 서 있는 새로 부임해 온 선생님에게로 자꾸 시선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보면 볼수록 언젠가 어디서 만나본 사람 같아 보였습니다. 그러면서도 아주 친밀감을 느낄 수 있는 아주 낯익은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분이 정작 누구인지 좀처럼 생각이 나지 않기에 준영이로서는 여간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저 분을 어디서 봤더라!’


준영이가 이렇게 머리를 짜내며 열심히 기억을 더듬고 있을 때 교무주임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새로 오신 선생님이 어느새 구령대 위로 성큼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이 인사말을 하고 있었지만 준영이는 여전히 누군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조금 더 선생님의 목소리를 듣고 난 뒤에야 마침내 아차 하고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아하, 바로 자전거 아저씨였구나!”

그러나 또 다시 준영이는 절대로 그럴 리가 없다는 생각에 설레설레 고개를 저였습니다.


준영이가 이렇게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그다음에는 다른 선생님의 인사 소개도 끝이 났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기다리고 기다리면 담임 발표를 교감 선생님이 마이크를 잡고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아이들은 새로 자기 반의 선생님의 이름이 호명될 때마다 '야!' 하는 기쁨의 함성을 질러대곤 하였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5학년 1반인 준영이 담임 선생님을 소개할 차례였습니다.


“에에 또, 5학년 1반을 맡아 주실 선생님은 이번에 우리학교로 새로 오신 오석준 선생님, 그리고 5학년 2반은…….”


그러자 갑자기 준영이는 더욱 어리둥절해지고 말았습니다. 담임 소개를 마친 교감 선생님은 그 뒤로도 계속 무슨 말을 하고 있었지만 준영이의 귀에는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들어올 리가 없었습니다.

세상에 이런 인연이 어디에 또 있을 수 있을까요? 새로 오신 오 선생님, 아니 지금까지 자선거 아저씨로만 알고 있던 그분이 준영이네 반 선생님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준영인 마치 꿈을 꾸고 있는 듯 좀처럼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아침 조회가 모두 끝나고 아이들은 제각기 학급별로 새로 맡은 담임 선생님의 주의사항을 듣기 위해 모두 교실로 들어갔습니다. 준영이는 교실로 들어가면서도 자전거 아저씨에 대한 기억을 더 자세히 되살려 보기 위해 더욱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준영이는 학교에 입학할 때부터 인가가 몹시 드문 시오리 길이란 먼 길을 줄곧 걸어 다녀야 했습니다. 더구나 준영이네 집은 큰 길가에서 멀리 떨어진 외딴집이기 때문에 물론 같이 다닐 친구도 없었습니다.

어쩌다 한 집 또는 많아야 대여섯 집씩 띄엄띄엄 있는 학교길이어서 땅거미가 질 오후 무렵부터는 그나마 인적이 뚝 끊어지고 무섭기도 하였습니다. 게다라 가끔 산짐승들의 우짖는 소리가 들리는 길이어서 그럴 때마다 소름이 끼칠 정도로 무서운 산길을 혼자 다닌 것입니다.

1학년이나 2학년 때는 그나마 아빠나 엄마가 가끔 마중도 나와주고 배웅을 해줄 때도 있었지만 그나마 3학년으로 올라가서부터는 그나마도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엄마나 아빠가 늘 논이나 밭 일로 몹시 바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어쩌다 학교에서 늦게 돌아오다가 혼이 몹시 난 날은 그때마다 학교 근처로 아시를 가지고 엄마 아빠한테 조르곤 했던 준영이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준영이가 3학년 1학기 때의 일이었습니다. 그날도 준영이는 학교 공부를 마치고 혼자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오고 있는 길이었습니다.


“따르릉~~ 따르릉~~”


그때 뒤에서 갑자기 웬 아저씨 한 분이 자전거를 타고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얘야, 어디까지 가는 길이지?”

"선바위 앞 외딴집이요.“


“음 그래, 그거 잘 됐구나. 나도 마침 그쪽 방향으로 가는 길이니까 이 뒤에 올라타렴.”


아저씨는 곧 자전거를 멈추더니 준영이를 인자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뒤에 얼른 타라고 손짓을 하였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힘이 들어서 지친 준영이는 여간 기분이 좋고 고마운 게 아니었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 아저씨는 준영이가 다니는 학교에서 조금 떨어진 이웃 학교에 다니고 있는 선생님이었습니다.




“엄마! 나 말이지 오늘 자전거 타고 왔어!”


여느 때 같으면 으레 지친 걸음걸이로 어깨가 축 늘어져서 집으로 돌이왔어야 할 준영이입니다. 그런데 그날따라 어떻게 된 일인지 준영이는 신바람이 나서 집으로 뛰어들어오며 소리치고 있었습니다. 그때 마침 부엌에서 저녁밥을 부지런히 짓고 있던 엄마가 웬일인가 하고 커다란 눈으로 준영이를 바라보며 물었습니다.

“아니, 자전거를 타고 오다니 뚱딴지같이 그게 무슨 소리냐?"

“후훗, 나 오늘 어떤 아저씨가 자전거를 태워 주어서 선바위 앞까지 데려다주었단 말이야.”


“아니 어떤 고마운 아저씨가 너를 자전거를 태워 주었단 말이니?”

“그건 나도 몰라. 처음 보는 아저씬데 우리 학교에서 좀 떨어진 학교에 다니고 있는 선생님이래. 그리고 매일 태워다 준다고 약속까지 했어.”


“차암, 세상에는 그렇게 고마운 분도 다 있구나.”


준영이는 조금 전에 우연히 자전거 아저씨를 만나게 되었던 이야기를 신바람이 나서 자세히 늘어놓았습니다.


준영이는 그날부터 매일 아침저녁으로 그 선생님 덕분에 자전거 뒤에 타고 다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학교에 갈 때는 으레 아침 일찍 선바위 앞에 서서 선생님을 기다렸다가 타고 가곤 하였습니다. 오후에도 역시 산길로 접어드는 쌍 갈래 길까지 미리 와서 기다렸다가 타고 오곤 하였습니다. 전과 달리 학교에 오가는 길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습니다.


자전거2.jpg


그런 나날을 보내는 동안 준영이는 자전거 아저씨과 점점 더 가까운 사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 선생님을 선생님이라고 부르지 않고 자전거 아저씨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준영이는 매일 자전거 아저씨를 만나서 학교에 오가는 일이 하루 중의 가장 큰 즐거움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던 중 정말 뜻밖의 일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매일 그렇게 준영이를 고맙게 태워다 주고 태워 오던 아저씨가 영영 보이지 않게 된 것은 3학년 2학기 때부터의 일이었습니다.

3학년 1학기를 마치고 여름방학이 되자 준영이는 집에서 쉬게 되었습니다. 집에서 쉬는 동안 자전거 아저씨를 다시 보고 싶은 마음에 단 하루도 잊어본 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개학할 날이 얼른 오기를 손꼽아 기다려보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개학을 하게 되자 선바위 앞에 나가서 자전거 아저씨를 기다려 보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자전거 아저씨는 개학날도, 그다음 날도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새 아저씨한테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닐까!”


준영이는 자전거 아저씨 때문에 이만저만 걱정이 아니었습니다. 또 다시 학교에 다닐 흥미도 없어지고 재미도 잃게 되었습니다. 어깨까지 점점 축 늘어지고 기운도 없었습니다. 그래도 학교에 갈 때나 집으로 돌아을 때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가지고 선바위 앞에 서서 아무리 기다려 보았지만, 자전거 아저씨는 끝내 나타나 주지 않았습니다.


어떤 때는 갑자기 저 비탈길을 따르릉 소리를 내며 쏜살같이 달려와서 ‘오래 기다렸지? 자, 어서 이 뒤에 올라타라’ 하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나 자전거 아저씨는 야속하게도 한 달이 지나고 1년이 지나도 끝내 나타나지 않자 한편으로는 소식도 없이 헤어지게 된 자전거 아저씨가 원망스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그토록 자전거 아저씨에 대한 그리움이 채 가시기도 전에 오늘 우연히 또다시 꿈처럼 자전거 아저씨를 만나게 된 준영이의 눈에서는 어느새 벅찬 기쁨을 이기지 못해 저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고 있었습니다.


자전거 아저씨는 지금 한창 내일부터 수업에 들어갈 여러 가지 계획과 주의 사항들을 열심히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준영이는 지금 그런 소리들이 귀에 들어올 리가 없었습니다. 그저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멀거니 자전거 아저씨의 얼굴만 멀거니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혹시 지금 저분도 나를 기억하고 계실까? 아냐 헤어진 지가 언젠데 모르실 거야!‘


준영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이번에는 인자한 자전거 아저씨의 목소리가 분명히 준영이의 귀에 들려오고 있었습니다.


“그럼 오늘은 모두들 집으로 돌아가도록 하고 준영이만 잠깐 남아서 선생님 이야기를 듣고 가도록 해요, 알겠어요?”

준영이는 순간 소스라치게 깜짝 놀라 정신을 차리고 선생님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만 약간 끄덕이고 있었습니다.


’아아, 선생님은 벌써부터 나를 알아보고 계셨었구나!‘


아이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간 뒤, 텅 빈 교실에는 자전거 아저씨와 영식이 단 둘만이 남아 있었습니다. 준영이가 여전히 뭐가 뭔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자전거 아저씨를 멀거니 바라보고 있을 때였습니다.

“준영야, 그동안 학교에 잘 다니고 있었니? 그동안 아주, 몰라보게 컸구나.”

“…….”


자전거 아저씨가 옛날처럼 변함없이 아주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먼저 말을 걸었습니다. 준영이는 공연히 가슴이 두근거리면서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입을 꾹 다물고 있었습니다.


"아니? 너 어디 아픈 모양이구나?“

“……아, 아뇨. 아프진 않아요.”


준영이가 펄쩍 놀란 얼굴로 급히 대답했습니다.


“그럼 내가 준영이 선생님이 된 게 싫어서 그런 모양이구나?”

“아, 아뇨. 그런 것도 아니어요.”


“ 그럼 무슨 일로 전에는 그처럼 명랑하고 활발하던 준영이가 어떻게 된 일이지? 선생님은 그동안 준영이가 얼마나 보고 싶었었는데. 그리고 지금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어서 얼마나 반가운지 모르는데.“

순간 준영이는 저도 모르게 와락 선생님의 품에 안기더니 어깨를 들먹이며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이런 남자가 부끄럽게 울기는…. 자, 이제 그만 울로 선생님 얼굴을 좀 보렴. 그리고 이제부터 선생님은 준영와 절대로 떨어지지 않고 항상 같이 생활하는 거야, 알았지?“

”…….“


준영이는 대답 대신 여전히 훌쩍이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습니다.


이때 선생님들의 모임 종소리가 갑자기 울렸습니다.


선생님은 종소리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면서 준영이에게 정다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습니다.

“자, 그럼 준영아, 선생님과 내일 또 만나는 거다. 알았지?"


그리고는 준영이를 향해 손을 한번 흔들어 보이고는 교무실로 급히 걸어갔습니다. 준영이도 그 자리에 선 채 선생님을 향해 손을 가볍게 흔들었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교실을 나섰습니다.

아아, 그런데 물어본다고 하다가 깜빡 잊은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거의 2년 동안이나 그동안 아무 소식도 없이 왜 안 보였는지 말입니다. 그러나 그런 건 이제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일 다시 만나서 물어보면 모든 궁금증이 저절로 풀릴 일입니다.


내일부터 다시 자전가 아저씨의 자전거 뒤에 타고 학교에 다닐 생각을 하니 신바람이 저절로 나고 힘이 납니다.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며 집으로 향하고 있는 준영이의 발걸음이 오늘따라 유난히 가볍기만 합니다.

준영이의 머리 위에는 어느새 삼월의 햇살이 유난히도 따갑게 내려비춰주고 있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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