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창작동화

숙이와 오토바이

by 겨울나무

고개를 푹 숙인 채 학교를 향해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는 숙이의 발걸음이 오늘따라 몹시 기운이 없어 보입니다. 당장이라도 등에 메고 있는 책가방을 동댕이치고 어디론가 도망을 가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무거운 발걸음을 겨우겨우 한 발 두 발 옮겨놓고 있습니다.

”누가 뭐라고 듣기 싫은 소릴 해도 넌 그저 못 들은 체하고 공부만 열심히 하면 돼. 알았지?“


집에서 나올 때, 책가방을 챙겨주며 걱정스런 표정으로 타일러 주던 엄마의 말이 문득 떠오릅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더 이상 학교에 다니고 싶은 생각은 이제 눈곱만큼도 없습니다. 당장 이대로 발길을 되돌려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자꾸만 꿈틀거립니다.

‘엄만, 아직도 내 맘을 몰라서 그래’


가만히 생각해 보면 지금 엄마도 숙이의 마음을 조금도 이해해 주는 것만 같다는 생각에 서운하기 그지없습니다. 이제 숙이의 눈에는 이 세상 모든 것이 귀찮고 짜증스럽게만 보입니다.


우선 만나기가 무섭게 귀찮게 놀려대는 학교 친구들이 그렇게 미울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런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는 선생님이나 엄마가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습니다.


숙이가 이렇게 된 것은 순전히 아빠 때문이었습니다. 아니 더 자세히 말하자면 그놈의 원망스러운 오토바이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어느덧 1년 전의 일이었습니다. 숙이는 3학년까지는 줄곧 서울에서 학교를 다녔습니다. 그리고 4학년 때, 이곳 시골 학교로 전학해 오게 되었습니다. 숙이는 서울에서 살 때, 조그만 사업을 하는 아빠, 그리고 엄마와 함께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숙이는 공부도 잘하고 마음씨도 고와서 선생님, 그리고 엄마와 아빠의 사랑을 한몸에 받으며 마냥 행복한 나날을 마음껏 누리며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였습니다. 조금씩 기울어지기 시작한 아빠의 사업은 걷잡을 수 없이 무너져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별 수 없이 그나마 남아있던 집까지 모두 팔아 버리고 이곳 시골로 이사를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숙이는 원래 마음씨도 착하고 공부를 잘 해서 친구들은 물론 선생님에게도 인기가 아주 그만이었습니다. 그래서 친구들 모두가 그런 숙이를 몹시 부러워하였습니다. 그리고 어딘지 모르게 시골 아이들과 다르게 옷차림이 단정하고 마음씨조차 착한 숙이에게 친구들 모두가 서로 친해지고 가까이 해보려고 숙이 곁으로 모여들곤 하였습니다.


그래서 숙이는 낯선 시골이긴 하였지만, 친구들과 금방 학교 생활에 그런대로 차츰 재미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서울과 달리 단 한 가지 좀 어려운 것이 있었습니다. 매일 십 리나 되는 먼 학교길을 걸어 다니는 일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처음엔 좀 힘이 들었지만 차츰 습관이 되다 보니 그런대로 재미를 붙일 수도 있었습니다. 학교에 오갈 때 같은 동네 친구들과 어울리며 재미있는 이야기로 웃음꽃을 피우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어떤 때는 흙바닥에 그대로 털썩 주저앉아 공기놀이와 구슬치기, 그리고 소꿉놀이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한편으로는 서울에서 가까운 학교에 다닐 때보다 훨씬 더 재미가 있었습니다.

또, 여름에 비가 많이 온 날은 개울가로 맨발로 달려가서 해가 지는 줄도 모르고 붕어와 미꾸라지, 그리고 송사리를 잡는 것도 여간 재미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 모두가 서울에서는 느껴볼 수 없는 즐거운 일들이었습니다.


숙이가 그렇게 한창 시골 생활에 재미를 붙이며 익숙해지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날따라 아빠는 매일 먼 길을 다니고 있는 숙이가 안돼 보였던지 숙이를 향해 느닷없이 이런 말을 꺼냈습니다.


”숙아, 너 그동안 학교에 다니기가 너무 힘이 들었지?“

“아뇨, 전혀 힘들지 않아요. 서울보다 오히려 훨씬 더 재미있어요.”


숙이는 아빠의 물음에 대뜸 힘이 들지 않는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아빠는 숙이가 몹시 안 돼 보였던지 다시 엉뚱한 말을 꺼냈습니다.


“숙아, 힘이 들어도 조금만 더 참고 학교에 다니고 있으렴, 앞으로 아빠가 다시 돈을 많이 벌면 다시 서울로 전학시켜 줄 테니 말이야, 허허허…….“

”글쎄, 괜찮다니까요. 난 여기서 졸업할 때까지 다니고 싶다니까요.“

”이런 녀석 하고는, 넌 그렇게 시골이 좋으니?“

”그렇다니까요.“


”야, 임마, 촌사람이 돼도 좋다 이거지?“

”푸후훗…….“


그다음날이었습니다.


오늘따라 아침 식사를 빨리 끝낸 아빠는 부지런히 밖으로 뛰쳐나갔습니다. 그리고는 지금까지 집안 한쪽 구석에 고이 간직해 두었던 오토바이를 꺼내 여기저기 말끔하게 손질을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숙이가 얼른 나오기를 기다렸습니다.

조금 뒤, 아빠는 밥을 먹고 나온 숙이를 번쩍 들어 오토바이 뒷자리에 태웠습니다. 숙이가 아무리 싫다고 하였지만 아빠는 막무가내였습니다.


”부르르릉~~~“


마침내 숙이를 태운 오토바이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어느새 동네를 빠져나왔습니다. 그리고 앞산 고개를 넘어 흙먼지를 뽀얗게 날리면서 학교길을 쏜살같이 달리고 있었습니다.


”부르르릉~~~“


저만큼 앞에서 학교를 향해 부지런히 걸어가고 있던 아이들이 오토바이의 요란한 소리에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며 신기한 듯 모두 손을 흔들어 보입니다. 시골에 살면서 그런 오토바이를 처음 구경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빠! 나 이제 여기서 빨리 내려 줘.“

”아니 왜?“


”저기 가고 있는 친구들이란 같이 걸어가고 싶어서 그래, "

“아니야. 오늘은 그냥 타고 가라니까.”

숙이를 태운 오토바이는 삽시간에 아이들의 옆을 쏜살같이 지나치면서 그냥 달려고 있었습니다.

“야아! 저거 숙이다 숙이!”


뒤에 탄 아이가 숙이임을 알아차린 아이들이 환성을 지르며 저마다 있는 힘을 다해 오토바이의 뒤를 따라 달려갑니다. 숙이는 뒤쫓아 달려오고 있는 아이들을 향해 연신 손을 흔들어 줍니다. 아빠는 그러나 점점 더 속력을 내며 힘차게 달리고 있었습니다. 오토바이를 쫓아가고 있던 아이들이 그만 힘이 빠져 하나둘 걷기 시작합니다. 아이들이 차츰 멀어져가면서 점점 작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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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숙이의 마음이 왠지 편하지 않았습니다. 찬구들을 떼어버리고 혼자만 편안히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 게 미안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다음 날도, 또 그다음 날도 아빠는 숙이가 싫어하는 눈치는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는 날마다 숙이를 오토비이로 학교 가지 태워다 주곤 하였습니다. 그리고 학교 공부가 끝날 때쯤이면 어김없이 다시 태우러 오곤 하였습니다.


아빠가 그럴 때마다 숙이는 번번이 짜증을 내며 걸어다니겠다고 하였지만, 아빠는 그게 아니었습니다. 힘이 들다며 날마다 태워다 주고 태워 오는 것이 아빠의 일과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어느 날의 오후였습니다. 학교 공부를 마친 숙이가 그날도 오토바이 뒤에 타고 집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오토바이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교문을 빠져나오더니 어느 틈에 큰길로 들어서는 삼거리에 다다랐습니다. 삼거리에는 조금 먼저 학교를 빠져나온 대여섯 명의 숙이네 반 친구들이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부르르릉~~~ 부르르릉~~~“


그런데 오늘은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오토바이가 부르릉 소리를 요란하게 내면서 달리고 있었지만, 오늘따라 웬일인지 친구들이 외면하며 못본 체하고 있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저마다 입을 삐죽거리며 모두가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오늘따라 친구들의 태도가 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며 막 뒤를 돌아보려는 바로 그때였습니다.


”절룩발이! 벼엉시인……!“


갑자기 친구들이 다 같이 입에 손나팔을 만들어대고 숙이를 향해 소리치고 있었습니다. 숙이는 친구들이 다 함께 소리 지르고 있는 그 소리가 무슨 소리인지를 얼른 알아들을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친구들의 외침 소리가 아까보다 더 크게 다시 들려왔습니다. 설마 했지만, 그것은 분명히 숙이를 향해 비웃음 소리였습니다.


“서울띠기, 꼴띠기이~~~”

“걷지도 못하는 다리 병시인~~~”

”쩔룩발이~~~“


숙이는 순간 가슴이 아프고 창피해서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 목소리들 중의 하나, 그것은 분명히 숙이와는 제일 다정하고 친했던 민애의 목소리도 섞여 있었던 것입니다.


숙이는 금방 울상이 된 얼굴로 아빠를 향해 소리쳤습니다.


“아빠, 나 여기서 빨리 내려 줘요. 아빠는 나를 보고 저렇게 놀려대는 소리가 들리지 않으세요?”

“갑자기 무슨 소리가 들린다고 그러니?”

“저 애들이 날 보고 다리 병신이라고 놀려대고 있잖아요!”

“으음, 그까짓 거 신경쓰지 마라. 그건 네가 너무 부러워 약이 올라서 하는 소리라니까.허허허……!“

아빠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이렇게 대꾸하고는 아까보다 더 오토바이의 속력을 내고 있었습니다. 숙이는 약이 오르고 가슴이 답답했습니다. 그렇게도 남의 마음을 몰라주는 아빠가 너무나 밉고 원망스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날 집으로 돌아온 숙이는 울상이 된 얼구로 엄마와 아빠한테 매달리며 애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는 절대로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지 않겠다고 매달렸습니다. 결국 숙이는 그다음 날부터 전처럼 걸어서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친구들은 여전히 쌀쌀하기만 합니다. 숙이가 눈에 띄기만 하면 눈에 보이게 입을 실룩거리며 못 볼 것이라도 본 듯 다른 곳으로 슬그머니 피해버리곤 하였습니다. 어쩌다 한두 명이 숙이와 어울리기가 무섭게 떼로 몰려와서 다른 곳으로 데리고 가곤 하였습니다.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어쩌다 한두 명의 아이들이 숙이와 조금 가까이하려는 눈치만 보여도 그 아이들까지 미워하고 따돌림을 하기가 일쑤였습니다.


숙이이는 이제 그렇게 외로울 수가 없었습니다. 어느 한 곳 의지할 곳이라고는 없었습니다. 그렇게 허전하고 괴로울 수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숙이를 볼 때마다 친구들 모두가 다리 병신이라고 놀려댈 때마다 그렇게 약이 오르고 속이 상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건 숙이와 단짝이며 가장 친하게 지내던 민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갑자기 그렇게 다른 사람으로 변할 수가 없었습니다.


민애는 반에서 가장 힘이 세기도 하지만 인기도 좋은 친구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민애가 친구들을 모두 자기편으로 만들어 놓고 숙이와 절대로 어울리지 못하게 훼방을 놓곤 하였습니다. 그건 공부시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어쩌다 선생님의 설명을 제대로 못 알아들은 숙이가 질문을 할 때마다 번번이 괜히 입을 삐죽거리며 비웃기가 일쑤였습니다.


“치이, 공부를 잘하는 줄 알았더니 그까짓 것도 모르는 병신이 그러면 그렇지, 흥.”


숙이는 이제 학교 생활도, 공부도 모두가 싫어졌습니다. 친구들도 모두 싫어졌습니다. 전에는 그토록 인자하게 느껴지던 선생님, 그리고 엄마도 싫어졌습니다. 그리고 보면 숙이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고 돈을 벌겠다고 다시 서울로 훌쩍 떠나버린 아빠가 가장 원망스러웠습니다. 그런 아빠여서 이제는 보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그렇게 착하고 마음씨 고왔던 민애가 왜……?’


숙이는 지금 혼자 이렇게 중얼거리며 학교를 향해 힘없는 발걸음을 한 발 두 발 내딛고 있습니다. 고개를 푹 숙인 채 기운이 빠진 걸음걸이로 걸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학교에 가서 숙이가 눈에 띄기만 또다시 민애와 반 아이들의 놀림을 받을 생각에 가슴이 점점 답답하고 두렵기도 합니다.


'쩔룩발이이~~~!‘


그때 숙이의 귀에 어디선가 갑자기 놀려대는 리는 소리가 또다시 들려오는 듯 합니다. 그 소리에 깜짝 놀란 숙이가 사방을 두리번거립니다. 그러나 아무리 둘러보아도 주위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환청이었습니다.

“이렇게 내 다리는 멀쩡하고 멀쩡한데 다리 병신이라니……!’


숙이는 일단 안심을 하고 다시 학교를 향해 터벅터벅 걸어갑니다.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고 있는 소처럼 떨어지지 않는 납덩이처럼 무거운 발걸음을 한 발 두 발 힘겹게 옮겨놓고 있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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