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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나무 Aug 01. 2020

어느 여교사의 특별한 육아법

70년대 초의 어느 날, 작은 용달차 한 대가 흙먼지를 뒤로 날리면서 시골 초등학교 앞으로 달려왔다.      


용달차는 학교 정문 바로 앞에 있는 어느 가정집 마당에 와서 멈췄다. 용달차가 멈추자 조수석에 앉아 있던 젊은 여자 하나가 차에서 급히 내렸다. 그리고는 곧 기사와 둘이서 이삿짐을 하나하나 그 집 건넌방으로 운반하기 시작했다. 그 집 건넌방 하나를 세를 얻어 온 여자였다.      


여자는 아주 젊은 편이었지만 화장도 하지 않은 얼굴이었다. 옷차림 역시 전혀 멋이라고는 내지 않은 그냥 수수한 차림이었다. 이삿짐이 간단해서 그런지, 그리고 미혼이어서 그런지 이삿짐을 옮기는 사람이라고는 오직 그 여자와 기사뿐이었다. 어느 누구든 이사를 하게 되면 으레 집안이나 친구들 중에 몇 사람씩은 와서 들여다보는 것이 우리나라의 풍습인데 이 여자의 경우는 예외였다.     

   

그 여자는 이곳 시골 초등학교로 새로 부임해온 교사였다. 첫 발령을 받아 부임하게 되었는지, 아니면 몇 학교를 거쳐 왔는지는 모를 일이었다.    

  

학교는 한 학년에 2개 반씩 편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한 학급당 5, 60명의 학생을 가르치던 시절이어서 요즈음에 비하면 전교 학생 수는 그리 적은 편은 아니었다.      


이사를 올 때 아무도 들여다보는 사람이 없었기에 마을 사람들은 모두 그 여자가 처녀일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여교사는 그 집 건넌방에서 혼자 자취를 하면서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이웃을 만날 때마다 그 누구에게라도 먼저 상냥하고 공손하게 인사도 잘 했다. 좀 배운 사람이라고는 하지만 전혀 거만한 티를 내는 법도 없었으며 얌전하고 예의가 바른 여자였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과도 차츰 가깝고 친하게 지낼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어쩌다 가끔 그 여선생이 자취를 하고 있는 방에 어떤 남자가 드나들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주 건장하면서도 배도 크게 나오고 몸집이 뚱뚱한 남자였다. 인상도 험악하고 우락부락하면서 몹시 불량하게 생긴 남자였다.


누군가는 갑자기 애인이 생긴 거 아니냐고 수군거렸다. 친척일 것이라고도 하였다. 그런 얌전한 선생이 혼자 사는 집에 어쩌다 그렇게 불량해 보이는 남자가 드나들게 되었느냐며 혀를 끌끌 차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그 불량스럽기 짝이 없어 보이는 남자가 잠깐씩 그냥 드나드는 정도가 아니었다. 물론 잠깐 들렀다가 갈 때도 있긴 했지만, 어떤 때는 며칠씩 그 방에서 같이 묵다가 가기도 하였다. 그가 그 여교사의 남편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한참 뒤의 일이었다.     


동네 사람들은 그 남자가 그 여교사의 남편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뜻밖이라는 듯 그리고 몹시 안쓰럽다는 듯 또다시 혀를 끌끌 찼다. 어쩌다 그렇게 얌전하고 예의 바르고 착한 여자가 그런 불량배로 보이는 남자와 같이 살게 되었는지 사람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하였다.        


그 여교사가 그 남자를 만나게 된 것은 인천교대 재학시절이었다. 어느 날 그녀가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백차(지금의 경찰 순찰차) 한 대가 달려오더니 그녀의 옆에 와서 멈추었다. 그리고는 멋진 경찰복차림의 경찰관이 백차에서 내리더니 그 여자 앞을 가로막았다. 그리고는 다짜고짜로 잠깐 만나보고 싶으니 시간 좀 내달라고 하였다. 그녀는 더럭 겁이 난 표정으로 지금은 시간이 없다며 그 자리를 도망치듯 피해 뛰었다.      

그 당시만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찰 백차를 몰고 다니는 경찰관들을 보기만 해도 너무나 멋지고 좋아 보였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큰 골칫거리가 아니었다. 오갈 때 매일 백차를 몰고 쫓아다니며 그녀를 괴롭혔기 때문이었다. 그땐 경찰이 할 일이 그렇게도 없었나 보다. 아니면 그 경찰이 근무를 제대로 안하고 땡땡이를 치고 다녔는지는 모를 일이다. 그녀는 마치 거머리처럼 몇 달째 쫓아다니고 있는 그 경찰관으로 인해 그렇게 무섭고 두려운 마음에 일손이 제대로 잡힐 리가 없었다. 공부도 제대로 할 수 없었고 잠도 제대로 잘 수 없었으며 모든 일상이 엉망이 되고 말았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마침내 무서운 일은 벌어지고 말았다.      


그녀는 오늘도 학교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리고 오늘도 다시 그 경찰관을 만나게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두근거리는 가슴을 달래면서 무사히 집에 막 도착했을 때의 일이었다.      


아, 그녀의 집 대문 앞에 어느새 그 꿈에도 보기 두려운 그 경찰관이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매일 쫓아다녔으니 그녀의 집을 알아두는 일쯤은 아마 식은 죽 먹기였을 것이다.      

그녀가 놀란 가슴을 간신히 진정시키면서 별 도리없이 대문 앞으로 천천히 다가가고 있을 바로 그때였다. 그가 갑자기 한 손으로 그녀의 목을 바짝 조르더니 또 다른 한 손에는 미리 준비해온 칼을 목에 갖다 대며 마치 저승사자와 같은 험악한 목소리가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 목소리가 그토록 전율을 느낄 정도로 두렵고 무섭게 들려올 수가 없었다.      


“너 나하고 결혼할래 안 할래. 응? 만일 네가 거부하면 알지?”     


하며 그녀의 목을 곧 죽일 듯이 바짝 죄어오는 것이 아닌가. 그녀는 숨이 막혀 곧 죽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마지못해 곧 죽을 것만 같은 생각에 캑캑거리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구애의 방법은 험악하기 짝이 없었지만 그렇게 목을 조르고 칼로 위협해서 결국 결혼승낙을 받아내고야 말았다는 것이다. 세상에 이런 날벼락이 어디에 또 있단 말인가.

      

요즈음에는 여자의 뒤꽁무니를 잠깐 따라다니기만 해도 신고만 하면 바로 스토커라는 범죄로 인정되어 잡혀가는 세상이다. 그런 걸 보면 그때만 해도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그 뒤의 일을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어쨌거나 그 칼을 목에 대고 위협한 끔찍한 사건으로 인해 그 두 사람은 나중에 결혼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렇게 무섭고 공포스러운 남자와 마지못해 결혼식을 올리게 된 그녀의 심정이야 오죽했으랴. 그렇게 해서 그때부터 두 사람은 한 가정을 이루게 된 것이었다.   

   

어쨌거나 그녀는 이곳 작은 학교로 오게 된 것이다. 어찌 된 일인지 이사 오는 날도 코빼기도 보이지 않건 남자는 그 후 여러 날이 지난 뒤부터 가끔 그녀의 집에 잠깐 들렀다 가기도 하고 며칠씩 묵었다가 가기도 하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남자는 경찰직을 오래전에 그만두었다고 하였다. 그의 말은 적성에 맞지 않아 사펴를 냈다고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생각은 그 말을 그대로 믿지 않았다. 그 누구도 겁을 내지 않았으며 항상 제 배짱이 꼴리는 대로 제멋대로 살아가는 성격이어서 아마 경찰직을 원만히, 그리고 성실하게 수행한다는 것은 기대할 수도 없는 일이었으리라.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아마도 큰 사고를 내고 쫓겨난 것이틀림없을 것이라는 추측을 하고 있었다.       


소문에 의하면 경찰직을 그만둔 그는 그 뒤부터 지금까지 택시 운전을 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이사를 오는 날은 급히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서 못 왔다 하더라도 명색이 가장이니 이제 정신을 차리고 가정만큼은 제대로 지켜야 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그런데 그는 그게 아니었다. 제 버릇 개에게 주지 못한다더니 정신을 차리려면 아직 먼 것 같았다. 그야말로 나이 먹은 철부지에 그런 폭군이 따로 없었다.      


택시를 한답시고 어딜 나가서 혼자 버는 돈은 제멋대로 혼자 모두 탕진을 해버리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서 어쩌다 집에 들어오는 날은 영락없이 돈이 모두 바닥이 나고 다 떨어진 빈털터리 상태로 집으로 돌아오곤 하였다. 그리고는 그때마다 아내에게 돈을 요구하곤 하였다. 


그녀는 할 수 없이 그동안 월급을 받아 모아둔 돈을 번번이 고분고분하게 내줄 수밖에 없었다. 만일 요구하는 돈을 주지 않았다가는 당장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일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그 여선생은 가끔 볼 때마다 얼굴이며 눈두덩이며 성할 날이 드물었다. 그녀의 얼굴에 멍이 들고 상처가 난 날이면 여지없이 남편이 집에 왔가가 간 날이었다. 어쩌다 요구하는 돈이 모자라면 아내를 사정없이 그리고 무참히 두드려 팼던 것이다.     

 

술도 몹시 좋아하는 남자였다. 늘 말술을 퍼마시고 다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웃집에나 아는 사람한테 가서 돈을 빌려오라며 폭력을 행사하곤 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가끔 이웃이나 동료들한테 돈을 빌리는 일이 빈번했다. 그러나 돈을 빌려주는 일도 한두 번이지 누가 그렇게 번번이 빌려줄 수 있단 말인가.      


그 후 언젠가는 택시도 그만두고 버스를 운행하고 있다고 하였다. 어느새 다시 버스 기사가 된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재주가 좋은 편인 것 같았다. 직장도 제 마음대로 수시로 바꿀 수 있는 그런 사이었다.       


그러나 새로 직업을 잡았다 해서 오래 가지는 않았다. 무슨 직업이건 제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제멋대로 미련없이 그만두기를 밥 먹듯 하였다. 그러다가 결국 나중에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백수건달로 놀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해서 집안 살림을 돌보아가며 조용히 살아갈 위인이 아니었다. 여전히 제멋대로 밖으로 며칠씩 쏘다니다가 용돈이 떨어지면 다시 집으로 돌아오곤 하는 헬리콥터 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그렇게 살아가는 동안에 여교사는 그 와중에도 임신을 하더니 아기를 낳았다. 그리고 아기가 자라 이제 막 방바닥을 기어 다닐 정도로 성장했다. 그때부터 여선생의 생활은 더욱 고되고 모진 세월을 보내야만 했다. 직장에 다니며 혼자 아기를 기른다는 일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남편이라도 집에 있으며 그나마 좀 나았을 것이다. 하지만 어디론가 기약없이 떠났다가 돈만 떨어지면 느닷없이 집으로 돌아와서 오직 용돈만 요구하는 그런 남편은 이제 차라리 없는 편이 훨씬 더 나은 웬수요, 애물단지가 되고 말았다.      


하도 답답하다 못해 어떤 때는 주인아주머니한테 잠깐 부탁해 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것도 한두 번이지 농사를 짓는 바쁜 가정이어서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도 딱하게 여긴 이웃에서 가끔 아주머니들이 와서 봐주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요즘 같으면 탁아소 같은 곳에 잠깐 맡길 수도 있겠지만 그 시절에는 그런 곳이라고는 전혀 없었던 때여서 그건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할 수 없이 그녀는 겨우 아침만 먹여놓고 아기를 빈방에 혼자 놀게 놔두고 문을 굳게 잠근 다음 출근을 할 수밖에 없었다. 빈방에 혼자 남은 아기가 금방 까르르 울며 엄마를 찾고 있었지만, 직장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귀에서는 아기의 울음소리가 연신 들려오고 불쌍한 생각이 들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가슴이 찢어질 듯한 그 울음소리를 뒤로 한 채 소리없이 울며 냉정하게 학교로 달려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오전 수업이 끝나기가 무섭게 급히 집으로 달려와야 했다. 오전 내내 어기의 모습이 눈에 밟혀 아이들을 제대로 가르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보면 으레 방바닥은 난장판이 되고 말았다. 아기가 계속 울고 있거나 어떤 때는 너무 울다 지쳐 방바닥에 아무렇게나 혼자 누운 채로 잠이 든 아기를 껴안고 소리를 죽여 울 때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편안히 잠이 든 아기를 언제까지나 편안히 그냥 자게 내버려 둘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얼른 깨워서 젖이라도 먹이고 다시 학교로 달려가야 하기 때문이었다. 아기만 먹이는 게 아니었다. 자신도 금싸라기 같은 그 짧은 시간 내에 뭐라도 얼른 먹고 점심 요기를 때워야 했다. 아기한테 큰 사고가 나지 않고 무사히 있었다는 것, 그것만 해도 여간 다행한 일이었다.     

 

그렇게 아무리 서둘러 점심을 때운 다음 다시 눈에 밟히는 아기를 간신히 떼어놓고 다시 학교로 달려가곤 했지만 번번이 지각을 하기가 일쑤였다. 그러나 그 사정을 제대로 모르는 학교에서는 그런 여교사를 좋아할 리가 없었다. 따뜻한 말로 위로는커녕 그럴 거면 당장 학교를 그만두라고 오히려 듣기 싫은 소리를 들을 때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래저래 여교사는 엉엉 소리 내어 울지는 않았지만, 속으로는 늘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 

     

그러는 동안 아기가 더 성장하여 이제는 스스로 일어날 수도 있게 되었다. 그러자 여선생의 걱정은 더욱 커졌다. 엄마가 없는 빈방에서 늘 엄마를 찾으며 울며불며 잠이 들곤 하며 혼자 불쌍하게 잘 자라주었지만, 이제부터가 더 큰 문제였다.      


아기가 스스로 혼자 일어설 수 있게 되자 방에 있는 물건들을 제멋대로 다니며 건드리고 넘어뜨리고, 아무것이나 입으로 가지고 가곤 하였다. 대단히 위험한 일이었다. 그래도 여교사는 매일 아기를 빈방에 홀로 남겨둔 채 하루 종일 학교에 나갈 수밖에 없었다. 여간 불안하고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어느 날, 여교사는 답답함을 견디다 못해 동료 여교사에게 하소연을 늘어놓게 되었다. 이기를 어쩌면 좋겠느냐고……. 한동안 여교사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동료 교사 역시 답답하다는 듯, 그리고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아기를 집에 두고 나올 때는 길다란 띠를 하나 마련해서 허리에 매고 나머지 한쪽은 문고리 같은 곳에 단단히 고정해 두면 어떻겠느냐고. 그러면 아기가 큰 사고를 당하지는 않을 게 아니냐고…….   

  

옳았다. 그 말이 옳았다. 여교사는 그다음날부터 학교에 출근할 때마다 아기의 허리에 긴 끈을 동여맨 다음 그 한쪽 끝은 문고리에 고정해 놓았다. 마치 개에게 목줄을 매달아 놓은 것처럼……. 그것은 사람이 살아가는 게 아니라 차라리 큰 비극이었다.      


그 후, 여교사는 그때 마침 학교 부근에 교회가 하나 새로 생겼는데 주일마다 그 교회를 나가고 있었다. 어디 한 곳 의지할 곳이 없어서 그랬는지 아기를 업은 채 열심히 교회에 나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길에서 나를 만나자 뜻밖에도 책 한 권을 읽어보라며 권했다. 새로 나온 책이라며 내게 꼭 권하고 싶었다고 하였다. 난 너무나 고맙기도 하고 뜻밖이었다. 책의 제목은 <맥밀런 S. I 란 작가가 쓴 ‘고뇌를 극복하는 길’이었다.    

   

난 고마운 마음에 여고사가 빌려준 책을 열심히 읽어보았다. 그책에 담긴 내용은 주로 술과 담배와 여자에 관한 이야기들이었다. 그리고 술과 담배와 여자를 가까이 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그들의 수명을 여려 해 동안 조사해서 통계를 낸 내용들이었다.    

  

결론부터 먼저 말하자면 ‘과유불급’ 즉 넘치는 것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이야기였던 것 같다. 술과 여자와 담배를 지나치게 즐기게 되면 수명이 짫아진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게 남는 대목이 있었다. ‘담배 한 개비를 태을 때마다 결국 네 관에다 못을 하나씩 박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나는 지금도 그 해로운 담배를 끊지 못하고 태우고 있다.     

 

그 여선생은 아마 내가 담배를 너무 많이 피우는 것을 보고 그 책을 권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불행한 생활을 하던 와중에도 남의 건강을 생각을 해주는 그 마음씨가 너무나 곱고 정감 어린 분이 아닐 수 없었다.    

   

지금쯤 그분은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몹시 궁금하면서도 걱정이 되곤 한다.


아마 지금까지 그분의 아기도 잘 살아 있다면 거의 50살은 가까이 되었으리라. 개처럼 허리에 끈을 묶은 채 짐승처럼 불행하게 자라난 그 아기 말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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