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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나무 Sep 03. 2020

서빙고 나루에서의 끔찍했던 추억 (2)

[6.25 피란 이야기]

- 지난 회에 이어서-


우리 군의 비행기 몇 대가 아까부터 한강 하늘 위에 낮게 떠서 마치 매가 공중을 날 듯 빙빙 계속 맴을 돌고 있었다. 적군들이 얼음을 타고 강을 건너오는 것을 막기 위해 폭격을 하기 위해서라고 하였다. 그러고 보니 당장이라도 곧 폭격을 가할 기세였다.      


우린 정신 없이 세 식구만 간신히 무사히 건너온 뒤에야 아직 아버지가 건너오지 못하신 것을 뒤늦게야 알게 되었다. 우리가 건너온 저쪽 강가를 바라보니 아버지는 아직도 지게에 무거운 짐을 잔뜩 등에 진 채 강가 여기저기를 헤매며 정신없이 허둥거리고 있었다.    

  

등에 진 짐도 무거웠지만 이미 얼음이 거의 다 녹아버린 상태여서 특히 강가 가장자리에 얼었던 얼음은 발을 딛기가 무섭게 깨지곤 하여 아버지는 아예 건너올 생각조차 못하고 이리저리 허둥거리고만 있었던 것이다.  

    

그 모습을 한동안 바라보고 있던 어머니가 비장한 결심이라도 한 듯 우리 남매에게 말했다.    

 

“이거 아무래도 안 되겠다. 내가 다시 건너가서 어떻게 해서라도 아버지와 같이 와 볼 테니 혹시 아버지와 어머니가 강에 빠져 죽게 되면 너희들끼리 어디라도 가서 죽지 말고 살아야 한다, 알았지?”       


"......"


난 그때 어머니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별로 실감이 나지 않아서 그랬는지, 아니면 체념을 했기 때문에 그랬는지 그냥 덤덤한 표정으로 고개만 끄덕일 수밖에 별도리가 없었다.


자칫하면 부모를 한꺼번에 잃게 된 순간인데도 별로 겁이 나지도 않았으며 만일 어머니와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별수 없이 누나를 의지하며 같이 살아가겠다고 가볍게 생각했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그만큼 어리석고 철부지였었던 것 같다.      

 

그 길로 어머니는 급히 얼음이 다 녹은 강을 건너 용케도 우리가 건너왔던 강가 아버지에게로 달려가셨다. 우리 남매는 멀거니 선 채 아버지와 어머니가 어떻게 건너오게 될까 하는 걱정을 하며 바보처럼 멀거니 바라만 보고 있었다. 아니 바보가 아니라 해도 그럴 수밖에 별도리가 없는 일이었다.


강건너로 달려간 어머니는 일단 아버지가 진 지게를 내려놓게 하였다. 그리고는 지게를 짐을 실은 그대로 얼음판 위에 눕혔다. 그다음에는 얼음에 쓰러뜨려 놓은 지게에 우선 밧줄을 단단히 묶어 맸다. 그리고 아버지가 그 밧줄을 잡고 앞에서 끌고, 어머니는 작대기를 이용하여 뒤에서 지게를 밀기 시작하면서 얼음 위를 미끄러지며 달려오고 있었다.      


앞에서 끌고 있는 아버지, 그리고 그 뒤에서는 작대기로 밀고 있는 어머니, 이렇게 세 덩어리가 하나가 되어 앞에서 힘껏 당기고 뒤에서는 힘껏 밀게 되자 달려오는 속도가 매우 빨랐다.


그러나 무게를 견디지 못한 얼음은 심하게 밑으로 쑥 가라앉았다 올라오기를 반복하고 있어서 곧 얼음이 깨지면서 모두 가라앉을 것만 같았다. 그것을 보는 나는 조마조마하고 아슬아슬하여 불안하기가 짝이 없었다.

          

그리고 조금 뒤, 하늘이 도왔는지 아버지와 어머니는 강에 빠지지 않고 무사히 우리 곁으로 오게 되었다. 나도 모르게 저절로 긴 한숨이 나왔다.      


“아, 이제 우리 모두 살았구나!”      


어머닌 우리 남매를 꼬옥 껴안으며 눈물을 흘리셨다. 우리 남매는 여전히 뭐가 뭔지를 몰라 얼떨떨하기만 하였다. 아버지는 아직도 불안감에서 벗어나지 못했는지 눈이 벌겋게 충혈도니 채 제 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하마터면 졸지에 가족을 모두 잃어버릴 뻔했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뜨르르륵~~~ 따따따땅~~~~”  

   

지금까지 하늘 위에서 빙빙 맴을 돌고 있던 비행기가 갑자기 얼음을 향해 일제히 폭격을 하기 시작했다.


요란한 폭격 소리와 함께 얼음장들이 공중으로 높이 날아다니며 한강을 덮고 있던 얼음들은 모두 날아가고  순식간에 물바다가 되고 말았다. 그와 함께 몇 명인지는 잘 알 수는 없지만, 뒤늦게 얼음판을 건너오고 있던 피란민들도 폭격에 의해 안타깝게도 모두 강물 속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그나마 우리 가족은 운이 좋은 편이었다는 생각을 가끔 해보곤 한다. 우리 가족들도 조금만 더 늑장을 부리고 지체를 했더라면…….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아슬아슬하면서도 아찔한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정말 끔찍한 추억이었다.      


우린 다시 이제야 한시름 내려놓고 모래톱에서 짐을 챙겨 피란을 가기 시작했다. 한강 모래톱 여기저기에는 그동안 여러 날 내린 눈들이 바람에 날리며 한데로 모이고 쌓여 어떤 곳은 배꼽까지 찰 정도로 높게 쌓여 있었다.


그런데 그때 앞장서서 몇 걸음 천천히 걸어가고 있던 어머니가 무엇을 발견했는지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고 혀를 끌끌 차고 있었다.      

 

“어이구, 세상에 이럴 수가 있나. 이걸 어쩌면 좋으니!”     


어머니가 잠시 머리에 이고 있던 보따리를 내려놓고 보고 있는 것은 눈 속에 파묻혀 있는 갓난아기였다. 포대기에 둘둘 말아 쌓인 채 눈 속에 파묻혀 있는 아기는 울지도 않고 우리 가족들을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우리 가족들을 바라보며 귀여운 모습으로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아기의 포대기 앞쪽에는 작게 생긴 삶은 감자 몇 알이 놓여 있었다. 아기의 엄마가 피란을 가다가 너무 힘에 겹고 지쳐 그만 아기를 버리고 간 것이라고 하였다. 이런 비극이 또 어디 있을까!  


그 뒤에도 확실한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그렇게 버려진 아기를 두 명은 더 본 것 같았다.  

   

난 언젠가 어느 젊은 여성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 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들은 여성들은 한마디로 딱 잘라 내 이야기를 이구동성으로 부정하고 있었다. 아니 부정 정도가 아니라 그런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은 다시는 꺼내지도 말라고 펄쩍 뛰며, 그리고 듣기 싫다며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난 그 이야기를 꺼냈다가 그만 뜻밖의 무안을 당하고 만 셈이었다. 그리고 그다음부터는 이 이야기를 되도록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 여성들이 내 이야기를 듣고 당장 거짓말이라고 싫어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백번 그 여성들의 심정이 이해가 가고도 남는다. 어머니의 몸을 모두 바쳐서라도 자식하나만은 반드시 살려보겠다는 강한 희생정신과 모성애를 가지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어머니들이 아니던가!      

  

그러나 그때 아기를 버리고 갔던 그때의 어머니들의 심정도 한번쯤은 헤아려 주었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그러기에 당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도무지 이해해 주지 못할 수도 있는 일일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모성애와 살신성인 정신을 발휘하여 기차나 자동차에 치여 하마터면 생명을 잃을 뻔한 자식을 간신히 살려내고 그 대신 어머니가 목숨을 잃게 된 안타까운 사건이 얼마나 많던가. 그리고 내 몸의 일부를 떼어서 자식에게 바치고 죽어가는 자식의 생명을 소생시킨 거룩한 어머니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건 어디까지나 그 모두가 순간적인 일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전쟁은 그런 상황과는 다르다. 아무리 배가 고프고 힘에 겨워도 약 한 달이나 두 달만 견디어 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확실한 보장만 있었다면  아마 그렇게 아기를 버릴 어머니는 한 명도 나오지 않았을 수도 있는 것이 아닐까.


그야말로 지독하도록 강한 모성애와 거룩한 희생정신을 발휘해 가면서라도 견디어 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전쟁은 사정이 사뭇 다르다 하겠다.


전쟁으로 인해 그때 어머니들은 벌써 몇 달째나 굶주림에 지치고 피란에 지쳐 언제 자신도 죽게 될지 모르는 몸이고 내 몸 하나 지탱하지 못할 정도로 지치고 지친 상태라 하겠다. 


우선 엄마가 못 먹어서 젖은 나오지 않아 아기에게 젖도 못 먹이고, 지치고 지친 상태에서 그리고 언제 폭격을 맞아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어떻게 아기를 끝가지 몸에 품고 다닐 수가 있단 말인가.     


또한, 어머니들 모두가 다 그렇게 아기를 버리고 간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당시 가뜩이나 지고 지친 몇몇 어머니들은 다른 어머니들이 버린 아기를 보는 순간, 순간적으로 충동심리 내지는 군중 심리라는 게 발동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남들이 버리고 가는 것을 목격하고 자신도 순간적으로 버릴 수밖에 없는…….         

  

어쩌면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도 거짓말을 몹시 잘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돌을 맞을 수도 있겠다는 각오로 이 글을 올려본다. 그래도 난 아무런 대답을 할 수도 없고 이제 와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때 그 생생했던 상황을 사진으로 남겨놓았거나 그 밖에 다른 증거가 내겐 전혀 남아 있지 않으니까 그저 아쉬움만 남을 뿐이다.( * )        



                                                                           - 서빙고 나루에서의 끔찍했던 추억 2회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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