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에서 바라본 북한 땅]
휴전선에서 가까운 통일로에 소문난 약국이 하나 있습니다. 약국의 지붕 위에는 흰 바탕에 까만 글씨로 눈에 잘 띄게 커다란 글씨로 쓴 간판이 걸려 있었습니다.
<통일로 약국>
그렇습니다. 이 약국이 바로 약을 잘 지어주기로 소문이 난 ‘통일로 약국’이었습니다. 이 약국에 서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고는 오직 이 약국의 주인인 아니가 지긋한 약사 아저씨 한 분뿐이었습니다.
약사 아저씨의 고향은 북한입니다. 6.25 때 가족들을 모두 잃고 홀로 월남했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가족들의 행방이나 생사도 전혀 모릅니다. 약사 아저씨는 그동안 남한에 내려와 고학으로 갖은 고생을 다하면서 마침내 어엿한 약사가 된 것입니다.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남북적십자사 회담이 열리기 전까지만 해도 이 약국의 이름은 ‘평화 약국’이었습니다. 그 뒤 북한 적십자회의 대표가 회담을 하기 위해 서울로 오게 되자 불시에 통일로라는 이름으로 멋진 도로가 깔리게 되었습니다. 그들을 환영해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약사 아저씨는 통일로가 완공되자 먼저 달고 있던 간판을 서둘러 내렸습니다. 그리고는 통일을 염원하는 마음으로 ‘평화 약국’ 대신 ‘통일로 약국’이란 간판으로 바꿔 달게 되었습니다.
이 ‘통일로 약국’에는 예나 지금이나 조금도 변함없이 날마다 손님이 들끓었습니다. 그만큼 약사 아저씨의 조제 솜씨가 뛰어났기 때문이었습니다. 제아무리 심한 병도 이 아저씨가 지어주는 약만 먹으면 씻은 듯이 거짓말처럼 병이 잘 낫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니 그보다는 약사 아저씨가 그만큼 손님들에게 공손하고 친절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어쩌다 한 번 찾아왔던 손님들도 놀랄 정도로 빠른 약의 효과, 그리고 약사 아저씨의 친절을 잊지 못해 다시 찾아오곤 하였습니다. 제약회사에서 그냥 받아다 파는 약이 아닙니다. 약사 아저씨 스스로 연구하고 개발해서 새롭게 제조해 주는 약이었습니다.
이제 ‘통일로 약국’이라는 말만 들어도 휴전선 부근 임진강 근처는 물론 대한민국 땅에서는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이름이 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약국이 용하다는 소문은 날이 갈수록 꼬리에 꼬리를 물고 마치 연기처럼 멀리멀리 번져 나가고 있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아저씨의 꿈은 약사였습니다. 장차 약국을 차려 놓고 아픈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고 싶었던 아저씨의 꿈은 결국 이루어지고 만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아저씨의 입가엔 언제나 흐뭇하고 행복한 미소가 떠날 줄을 몰랐습니다.
‘더 부지런히 공부해서 앞으로도 더 많은 사람들을 질병에서 벗어나게 해드려야지!'
어쩌다 손님이 뜸할 때마다 약사 아저씨는 언제나 입버릇처럼 자신도 모르게 이렇게 중얼거리곤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소파에 몸을 의지한 채 습간처럼 의학 서적을 뒤적거리곤 하였습니다. 지금보다 더 효과가 좋은 약을 만드는 방법에 대해 더 공부하고 연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기에 아저씨는 잠시도 편히 쉴 시간이 없습니다. 드나드는 손님들의 약을 지어 주어야 하고, 또 틈이 나는 대로 책을 보며 연구를 하거나 이런저런 약을 조제하다 보니 하루가 짧았습니다.
그러나 약사 아저씨는 이처럼 매일 바쁜 나날을 보내면서도 지금까지 귀찮은 기색을 보이거나 짜증을 낸 일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단 한 명의 환자라도 더 고쳐주기 위해 그만큼 큰 기쁨과 보람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날도 여느 때와 같이 약사 아저씨는 의학에 관한 서적을 뒤적거리며 한창 정신이 팔려있을 때였습니다.
”삐이거억~~~“
약국의 출입문이 슬그머니 열리더니 웬 낯선 청년이 하나 들어섰습니다.
“어, 어서 오십시오. 어떤 약을 찾으시는지요?”
약사 아저씨는 얼른 보던 책을 덮어버리고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면서 반갑게 손님을 맞이하였습니다. 정장 차림의 중년 신사는 잠시 사방을 두리번거리고 나더니 약간 머뭇거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습니다.
“저어, 약을 좀 지으러 왔습니다만…….”
“아, 그러세요. 어디가 편찮으십니까?”
약사 아저씨는 직업적으로 우선 신사의 안색을 살펴보면서 물었습니다.
“저어…….”
신사는 여전히 머뭇거리면서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고 쭈뼛쭈뼛하면서 얼른 말을 꺼내지 못했습니다.
“손님, 어디가 편찮으신지 말씀을 하셔야 약을 지어 드리죠.”
약사 아저씨는 몹시 궁금한듯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신사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신사는 약사 아저씨의 물음에는 대답도 없이 약간 겁에 질린 표정으로 다시 한번 사방을 두리번거리고 나서 물었습니다.
“이 약국이 틀림없이 통일로 약국이죠?”
“예, 그렇습니다만…….”
뜻밖의 질문에 약사 아저씨의 표정이 약간 굳어지고 말았습니다. 말투도 어딘가 투박하고 거칠었습니다.
“아, 그럼 잘 찾아왔나 보군. 그럼 이 약국에서는 무슨 약이든지 지어줄 수 있습니까?”
“예, 어디가 불편하신지 말씀만 하십시오. 제 자랑 같습니다만 지금까지 제가 지어드리는 약을 먹고 낫지 않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으니까요.”
약사 아저씨는 자신 있게 대답했습니다.
“아, 그래요? 그렇다면 저어, 비뚤어진 사람의 마음을 바로 잡아주는 약을 좀 지어 주십시요.”
“예에? 사람의 마음을 바로 잡다뇨? 그렇다면 혹시 우울증약 말씀이신가요?”
“아, 아닙니다. 그런 게 아니고요. 저는 사람의 마음을 바꾸어 놓을 수 있는 약을 찾고 있는 겁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너무 어이가 없다는 듯 약사 아저씨의 눈이 둥그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지금까지 수십여 년간 약국을 하고 있지만 이렇게 까다로운 손님은 처음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약사 아저씨는 하도 어이가 없어서 한동안 신사의 얼굴만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신사가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저는 약사님이 하도 유명하다는 소문을 듣고 큰 기대를 걸고 찾아왔는데 그게 아닌 모양잉군요. 자 그럼 실례가 많았소.”
신사는 이렇게 대꾸하고는 곧 약국문을 열고 나가려고 하였습니다.
“손님, 잠깐만!”
약사 아저씨는 약국문을 열고 나가려는 신사를 갑자기 붙잡아 세웠습니다. 지금까지 약이 떨어져 못 준 적은 있어도 치료 방법을 몰라 손님을 그냥 보낸 적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럼 그런 약이 있단 말이오?”
신사는 나가려던 발걸음을 멈추고 퉁명스럽게 물었습니다.
“손님이 찾는 그 약은 찾는 손님이 드물어서 마침 제조해 놓은 것이 떨어졌는데 열흘 후에는 틀림없이 준비해 놓겠습니다.”
약사 아저씨의 설명을 들은 신사는 눈이 벌쩍 띄어서 다시 물었습니다.
“그게 정말이오?”
“예 틀림없고말고요. 열흘 후에 다시 꼭 오십시오.”
“아 그래요? 그럼 열흘 후에 올 테니 꼭 좀 부탁합시다.”
“예, 예 염려 마십시오.
신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약국을 나가버렸습니다. 순간 약사 아저씨의 표정은 금방 근심과 걱정으로 가득해지고 말았습니다. 얼떨결에 약을 준비해 놓겠다는 무책임한 약속을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맥이 쭉 빠져버린 약사 아저씨는 그만 소파에 털썩 주저앉아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는 초점 잃은 눈으로 고개를 들어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천장에 매달린 동그란 모양의 전등이 눈에 어른거리면서 금방 둥그런 다른 모습으로 변해버립니다. 그리고 동그런 모양 위에 조금 전에 약국에 들렀던 신사의 얼굴이 겹쳐서 나타납니다. 그 얼굴은 다시 차츰 낯모르는 어떤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변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아, 아니 이럴 수가!“
약사 아저씨는 순간 소스라치게 놀란 얼굴로 소파에서 벌떡 일어섰습니다. 지금 약사 아저씨의 눈에 어리던 그 얼굴, 그것은 지금까지 꿈에도 잊지 못하던 약사 아저씨의 동생 병철이가 틀림없었던 것입니다.
약사 아저씨는 미친 듯이 자리를 박차고 벌떡 일어섰습니다. 그리고는 곧 급히 약국 문을 열어젖히면서 밖으로 뛰쳐나가면서 미친 듯이 크게 소리치고 있었습니다.
”병철아! 아우야!“
“병철아! 병철아아~~~!”
그러나 아무리 동생의 이름을 부르면서 이리 저리 사방을 뛰어다니면서 찾아보았지만 그 신사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약속했던 열흘이 흘렀습니다.
약사 아저씨는 이날이 오기를 얼마나 애타게 기다렸는지 모릅니다. 혹시 그 신사가 다시 나타나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서 얼마나 가슴 졸이며 불안한 나날을 보냈는지 모릅니다.
평생 그토록 그립고 보고 싶었던 동생을 50여 년이 지난 뒤에 기적적으로 만나보고 되었으니 충분히 그럴만도 하였습니다.
약사 아저씨는 들뜬 흥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아침부터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머리에 들어올 리가 없었습니다. 시간을 때우기 위해 건성으로 책장만 뒤적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토록 애타게 기다리는 신사는 해가 다 지도록 좀처럼 나타날 줄을 몰랐습니다.
약사 아저씨는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을 가누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리고는 밖으로 뛰쳐나갔습니다. 사방을 두리번거리면서 동생의 어서 나타나기만을 초조하게 기다립니다.
“얘가 빨리 와야 마음의 치료를 해 줄 수 있을 텐데! 그 애는 보나마나 머리 속에 북쪽에 나쁜 생각들로 가득 차서 이미 마음이 온통 시꺼멓게 썩어 있을 거야.”
약사 아저씨는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초조한 마음으로 다시 약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책을 뒤적이며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을 달래고 있을 때입니다.
“삐이거억~~~”
그때 마침 약국 문이 요란한 소리늘 내며 열렸습니다. 약사 아저씨는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며 출입구 쪽을 멀거니 바라봅니다. 여느 때 같으면 ‘어서 오십시오’하고 공손히 손님에게 인사를 했을 약사 아저씨입니다.
아! 지금 약국 출입문을 열고 들어선 사람, 그 사람은 틀림없는 열흘 전의 그 신사, 아니 6.25때 헤어진 아저씨의 동생임이 틀림없습니다. 약사 아저씨의 눈에는 금방 무서운 불꽃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안녕하시오? 열흘 전에 부탁한 약을 사러 왔는데 어떻게 준비는 되었소?”
신사는 첫마디부터 퉁명스런 말투로 약사 아저씨에게 물었습니다.
“아아, 무, 무슨 약을……?”
약사 아저씨는 선뜻 어떻게 대답해 주어야 할지 몰라 이렇게 얼버무리고 있었습니다.
“아니, 뭐라구요? 그럼 아직도……?”
순간, 신사의 표정이 사납게 일그러지면서 다그치듯 퉁명스럽게 소리치고 있었습니다.
“아, 아닙니다. 준비는 다 되었습니다만, 구체적으로 어떤 마음을 바로 잡고 싶어서 그러시는지?”
“……?”
약사 아저씨의 질문에 청년은 아무 대꾸도 못하고 갑자기 안색이 창백하게 일그러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는 약간겁에 질린 표정으로 약사 아저씨의 눈치를 슬금슬금 살피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약사 아저씨가 다시 조심스럽게 다시 물었습니다.
“손님께서 말씀을 하셔야 정확하게 약을 지어들릴 게 아니겠습니까? 어서 말씀을 해보십시오.”
“아, 아닙니다. 그럼 다음에 다시 또 들리겠습니다.”
신사는 몹시 당황한 얼굴로 이렇게 얼버무리고는 급히 약국에서 나가려고 돌아섰습니다.
“아, 잠깐만!”
약사 아저씨는 재빨리 문을 열고 나가려는 신사의 앞을 가로막았습니다.
“아니, 갑자기 왜 이러시오?”
신사는 약간 겁에 질린 표정으로 약사 아저씨를 노려보며 물었습니다. 약사 아저씨는 끓어오르는 흥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긴 한숨을 쉬고 나서 소리쳤습니다.
“병철아! 날 몰라 보겠니? 내가 바로 네 형이란 말이야.”
“아니, 뭐, 뭐라고요?”
순간, 신사의 얼굴에서 심한 경련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신사는 몹시 당황하면서도 약사 아저씨의 얼굴을 위아래로 자세히 훑어봅니다.
“그래도 아직도 이 형을 몰라보겠니?”
“……!?”
두 사람은 한동안 아무 말도 못하고 마치 벙어리가 된 것처럼 서로 멀거니 바라보고만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조금 뒤 신사는 그제야 겨우 기억을 되찾은 듯,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습니다.
“아, 아니? 형님이 어떻게……?”
“그래 맞았다. 내가 바로 너의 형이란 말이다.”
약사 아저씨는 이렇게 소리치면서 청년의 몸을 덥썩 얼싸안았습니다.
“그래, 이게 얼마만이란 말이냐? 그동안 어디서 어떻게 지냈니? 응?”
약사 아저씨가 이렇게 묻자 청년은 갑자기 다시 밖으로 뛰쳐나가려고 약사 아저씨의 뭄에서 몸을 빼려고 애를 썼습니댜.
“형님, 저를 잡지 마십시오. 전 급히 가 봐야 할 곳이 있습니다. 제발 이 팔을 놓으십시오.”
“안돼! 못 놓겠다. 난 지금 네가 어디로 가려는 것도, 그리고 그동안 무슨 일을 해왔다는 것도 어느 장도 짐작하고 있단다.”
“형님! 제가 정말 죽일 놈입니다. 으흐흑…….”
신사는 그제야 할 수 없다는 듯 약사 아저씨의 품속을 깊이 파고들면서 소리내어 흐느끼고 있었습니다.
“형님, 제가 죽일 놈입니다.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아암, 용서해 주고말고. 이게 어디 네 죄란 말이더나? 용서받아야 할 놈은 네가 아니라 너의 마음이 이렇게 시꺼멓게 썩도록 만든 저놈들이 나쁘지.”
“형님! 용서하십시오. 으흐흑…….”
신사는 아까보다 더욱 흐느끼면서 모든 것을 포기한 듯 약사 아저씨의 품을 더욱 파고 들었습니다.
“자, 이제 그만 울고 방으로 들어 가자꾸나. 네 마음이 금방 밝아질 수 있도록 내가 치료를 해 줄 테니까. 자, 어서.”
“형님, 정말 이 어둡고 답답한 함정 속에 갇혀 있는 제 마음이 밝고 시원하게 치료가 될 수 있을까요?”
“아암, 아무 걱정 마라. 우리 대한민국 어느 곳이든지 그런 병을 고칠 수 있는 좋은 약이 벌써부터 마련되어 있단다. 자, 이젠 안심하고 어서 방으로 들어가자꾸나.”
약사 아저씨는 신사를 이끌고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신사, 그 신사야말로 우리가 항상 가장 두려워하는 남파 간첩이었던 것입니다.
‘통일로 약국’!
그래서 통일로 약국이야말로 무슨 병이든 고칠 수 있는 소문난 약국이었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