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건건이와 색쌈

[분단의 비극, 그리고 달라진 언어의 비극]

by 겨울나무

일요일 아침이었다.


“여보, 식사하세요! 혜영아, 밥 먹자!”


주방에서 아내가 부르는 소리가 들리기가 무섭게 거실에 앉아 신문을 보고 있던 성길 씨도, 방에 있던 딸 혜영이도 식탁 앞으로 모여들었다.


혜영이는 워낙에 입이 짧고 식성이 까다로운 편이었다.


그런 혜영이어서 오늘도 식탁에 차려진 반찬들을 두리번거리며 살펴보기만 하다가 이내 못마땅한 표정으로 투정을 부리기 시작했다.


“왜 만날 반찬이 이 모양이야?”

“왜 또 그러니? 엄마는 그나마 네가 좋아하는 반찬을 정성껏 준비하느라고 얼마나 애를 썼는데 넌 번번이 그놈의 반찬 타령이더라.”


아내의 말에 이번에는 성길 씨도 덩달아 맞장구를 치며 끼어들었다.


①건건이들이 이렇게 그득한데 또 무슨 건건이를 찾고 있니? 이거 보렴. 여기 네가 좋아하는 ②색쌈도 있고, ③칼파스도 있지 않니?”


그러자 이번에는 혜영이가 여전히 못마땅해진 얼굴로 성길 씨를 바라보며 공연히 짜증을 부렸다.


“아빤 남한으로 온 지 벌써 10년이 훨씬 지났다고 그랬지?”

“아암, 그랬지. 그런데 그건 왜?”


“그런데 왜 툭하면 남들이 알아듣지도 못하는 그런 북한말을 아직까지 쓰고 있느냔 말이야.”


성길 씨는 그제야 혜영이의 말뜻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조금은 쑥스러운 표정이 되어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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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 아빠가 그만 깜빡 잊고 또 실수를 했구나. 아빠가 습관이 돼서 북한에서 쓰던 말이 불쑥불쑥 나오는 걸 어쩌겠니. 네가 이해를 좀 해주렴.”


그러자 이번에는 엄마가 웃으면서 아빠 대신 혜영이를 달래주게 되었다.


“그래. 아빠가 아직도 남한 말이 익숙하지 않아서 그러는 거야. 그러니까 네가 좀 이해하렴.”


그리고 아내가 이번에는 성길 씨를 향해 나무라듯 한마디 하였다.


“그러니까 당신도 혜영이 앞에서는 항상 말조심을 하라니까요.”


“아, 알았어. 혜영아, 아빠가 앞으로는 북한 말을 안 쓰도록 더 조심할게. 그럼 이제 된 거지?”


아빠의 말에 혜영이는 그제야 기분이 조금 풀렸는지 아무 말 없이 천천히 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러자 성길 씨와 아내도 그제야 안심이 된 듯 즐거운 표정으로 식사를 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식사를 하고 있던 성길 씨가 문득 그 옛날 북한에서 힘겹게 살아왔던 과거가 다시 머리에 떠오른 듯 혼잣말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아아, 난 정말 생각해 볼수록 행복한 사람이란 말이야.”


성길 씨의 말에 아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새삼스럽게 그건 또 무슨 소리예요?”


그러자 성길 씨가 한동안 생각에 잠겨 있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가 북한에서 살던 일이 갑자기 생각나서 그래. 지금도 마찬가지이겠지만 내가 북한에서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온 어린 시절은 그야말로 ④애옥살이요, ⑤강심살이었다 이 말이야. 아암, 그렇고말고.”


그러자 아내가 곧 성길 씨를 향해 가볍게 눈살을 찌푸리며 성길 씨를 향해 나무라듯 입을 열었다.


“아니, 방금 전에 조심하겠다고 약속까지 해놓고 또 북한 말이 나와요?”


“아참, 그랬었지. 내 정신 좀 봐라. 헛허허…….”


성길 씨의 입에서는 그런 북한 동포들의 모습이 떠오를 때마다 몹시 안타깝고 측은하다는 듯 연신 허탈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혜영이도 덩달아 몹시 안 됐다는 듯 언짢아진 표정으로 아빠를 향해 입을 열었다.


“아빠, 그럼 북한 동포들은 지금도 그렇게 모진 고생을 하며 힘겹게 살아가고 있단 말이지?”


“아암, 그렇고말고. 지금 이 시각에도 북한에서는 굶주림과 힘든 노동에 시달리다 못해 죽어가는 사람들이 날이 갈수록 점점 더 늘어가고 있단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매일 마음껏 먹고 있는 밥과 건건이야말로 거기 비하면 복에 겨운 게 아니겠니? 그런 걸 생각하면 우린 정말 지상낙원에서 살아가고 있는 거란 말이야. 헛허허…….”

성길 씨는 북한 주민들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매우 안타깝고도 가슴이 아프다는 듯 연신 허탈한 웃음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 )







< 북한말 풀이 >


①반찬 ②계란말이 ③소시지 ④ 가난에 찌든 삶 ⑤ 견딜 수 없을 정도로 힘든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