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경리 아가씨

[분단의 비극, 그리고 달라진 언어의 비극]

by 겨울나무

일요일 낮이었다.


성길 씨 내외가 소파에 앉아서 TV를 시청하며 모처럼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딸 혜영이는 오늘도 이웃집 친구네 집으로 숙제를 하러 가고 집에는 단 두 사람뿐이었다.


TV에서는 요즈음 한창 잘 나가는 유명 의사가 나와서 대학을 졸업하고도 오랫동안 직장을 구하지 못한 나머지 정신적으로 발생하기 쉬운 각종 트라우마와 질병, 그리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예방법과 치료방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그리고 직장인들이 역시 각종 스트레스로 인해 걸리기 쉬운 병에 대해서도 열심히 설명하고 있었다.


한동안 정신을 팔고 TV 시청을 하고 있던 성길 씨가 문득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걱정스러운 낯이 되어 먼저 입을 열었다.


“참, 여보, 우리 회사의 경리 직원 가시나 알지?”


“내가 그 아가씨를 어떻게 알아요. 그리고 가시나가 뭐예요. 가시나란 말은 계집아이의 사투리라고요. 이제 알았어요? 그건 그렇고 TV를 보다 말고 그 아가씨 얘긴 갑자기 왜 꺼내고 그래요?”


“허허, 한마디 했다가 되로 주고 말로 받은 꼴이 되고 말았잖아. 그 아가씨 며칠 전에 회사를 그만뒀거든.”

아니 요즈음 직장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던데 그 좋은 직장을 왜 그만두었어요?“


”그러게 말이야. 그런데 그렇게 똑 부러지게 똑똑하고 싹싹하던 아가씨였는데 그 아가씨 알고 보니까 오래전부터 ① 잊음증을 앓고 있었더군.“

”아니 왜요?“


”왜요라니? 남이 왜 그런 병이 걸렸는지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나중에 소문을 들어보니까 아마 그 잊음증 때문에 사장한테 야단을 많이 맞았나 봐. 내 가 보기엔 얼굴도 ②갈람하고 작은 편에 ③다리매도 그만하면 미끈하게 빠진 꽤 예쁘고 멋진 아가씨였는데 정말 안 됐어.“

성길 씨는 이렇게 대답하고는 그 아가씨가 은근히 보고 싶은 듯 잠시 천장을 멀거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아내가 약간 질투가 난 듯 눈을 약간 흘기며 입을 열었다.


”으이그, 남자들이란……. 그래 그 아가씨가 그렇게 예쁘고 멋있었단 말이에요? "


“아암, 예쁘다마다.”


“그럼 나보다도 더 예쁘고 멋있었단 말이죠?”


“그렇다니까. 만날 집안에 틀어박혀서 ④ 집안거두매나 하고 있는 ⑤ 가두녀성하고 직장여성하고 비교하면 되나? 어림도 없는 소리지.”


“아니 뭐예욧! 지금 그 말 당장 취소하지 못해욧!”


아내는 금방 성질이 나서 성길 씨의 팔을 힘껏 꼬집고 말았다.


“아야, 아아얏! 알았어, 알았어. 그래 당장 취소할께.”


성길 씨는 그만 본전도 못 찾고 비명을 지르며 취소하고 말았다. 그러자 아내가 조금 누그러진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그나저나 그깟 잊음증 하나 때문에 회사를 그만두었다니 얼른 이해가 가지 않네요.”

“그건 그렇지. 그런데 그 아가씨 나중에는 그 잊음증이 악화되면서 심한 ⑥ 슬픔증까지 걸리고 말았거든.”

“아아, 그랬구나! 그 병 심해지면 몹시 무서운 병이라고 하더라고요. 가끔은 자살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신도 모르게 높은 곳에 올라가서 떨어져 죽는 사람도 있고…….


”아암, 무서운 병이고 말고. 그래서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자진해서 사표를 낸 모양이더라구.“


성길 씨는 그 아가씨가 몹시 안 됐다는 듯 연신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었다. ( * )





< 북한말 풀이 >


① 건망증 ② 갸름하다 ③ 각선미 ④ 가사(家事) ⑤ 가정주부 ⑥ 우울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