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의 비극, 그리고 달라진 언어의 비극]
성길 씨가 오늘따라 밤늦게 귀가했다. 오랜만에 회사에서 회식이 있어서였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아내가 반갑게 맞이해 주고 있었다.
“여보, 오늘은 많이 늦었네요. 저녁 식사는 하셨어요?”
“음, 오늘은 좀 그렇게 됐어. 그리고 저녁은 먹고 온다고 미리 말했잖아.”
성길 씨와 엄마의 떠드는 소리를 들은 혜영이도 방에서 급히 뛰어나왔다. 그리고는 성길 씨의 품을 파고들며 눈을 흘겼다.
“아빠, 왜 이렇게 늦게 오는 거야? 아빠가 오길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기나 해?”
성길 씨는 그런 혜영이를 덥석 껴안고 높이 치켜들었다. 그리고는 귀여워 못 배기겠다는 듯 혜영이의 볼에 뽀뽀를 해주었다.
“혜영아, 미안해. 고단할 텐데 왜 여태 자지 않고 있었어?”
“아빠가 집에 안 왔는데 잠이 와?”
“그래그래, 다음부터는 혜영이 말대로 일찍 돌아오도록 노력할게. 알았지?”
성길 씨는 집에서 늦게까지 잠도 자지 않고 기다려주는 아내와 딸이 있어서 너무나 고맙고 행복했다. 오늘따라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그날 밤 잠자리에서 아내가 다시 물었다.
“그나저나 오늘은 무슨 일로 그렇게 늦었어요?”
“응, 내가 아까 회사에서 말한 대로 오늘은 특별히 대표님이 술 한잔을 하고 싶다는 거야. 대표님이 사겠다면서 모처럼 그런 자리를 마련하겠다는데 사양할 수가 있어야지.”
“아니 그건 알겠는데 왜 이렇게 늦었느냐니까요?”
“으응, 그건 오늘 대표님이 한 30년 전에 일본에 갔던 이야기를 어찌나 재미있게 하던지, 그래서 늦었던 거야?”
아내가 구미가 당긴다는 듯 몹시 궁금해진 얼굴로 다시 물었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인데 그렇게 재미가 있었어요?”
“거참, ① 억이 막혀서……. 일본에서는 성교육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정말 알다가고 모르겠다니까.”
“아니 왜요?”
“아, 글쎄 우리 대표님이 젊었을 때 조그만 사업을 좀 해볼 생각으로 일본을 가게 됐다지 뭐야. 일본에서는 어떤 사업들이 흥행하는가를 좀 더 자세히 ② 료해하기 위해서였대.“
“그런데요?”
“그래서 ③ 갈음옷으로 쫙 빼입고 일본에 가서 우선 택시를 잡아타고 시내를 돌아다니게 되었다지 뭐야.”
“그런데요?”
“그날 오후였는데 그때 마침 어느 시가지에 있는 조그만 다리 위를 택시를 타고 건너가게 되었다는 거야. 그런데 여고생쯤 되는 ④ 에미나이들이 교복을 단정하게 입은 채로 그 다리 양쪽에 난간에 기댄 채 한가하게 서 있더래. 화장도 짙게 하고 말이야.
그리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유심히 바라보기도 하면서 누군가를 마냥 기다리고 있는 것 같더래. 그렇게 양쪽에 서 있는 에미나이들이 약 3, 40명쯤은 되더라는군.”
“그래요? 화장도 짙게 하고 그거참 이상하네요. 도대체 집에 가지 않고 누굴 기다리고 있는 걸까요?”
“글쎄, 내 애길 좀 더 들어 봐요. 더 억이 막힌 것은 가끔 그 여학생들이 옆에 놓은 책가방에서 ⑤ 마라초도 아닌 ⑥ 려과담배를 버젓이 입에 물고 연신 피워대더라는 거야. 나 원 억이 막혀서……. 그래서 하도 궁금해서 택시 기사한테 묻게 되었대. 저 학생들이 도대체 집에 안 가고 저기 서서 무얼 하는 것이냐고.”
“그랬더니요?”
“아, 그래서 택시기사의 설명을 듣고는 대표님이 기절을 할 정도로 깜짝 놀랐다는 거야.”
“아니 왜요?”
“그 에미나이들 학교 공부가 끝나기가 무섭게 매일 그 다리 위에 서서 그런다는 거야.”
아내는 점점 더 흥미롭고 궁금하다는 듯 성길 씨의 다음 이야기를 재촉했다.
“도대체 그러는 게 뭘까요?”
“그 에미나이들 다른 게 아니라 이를테면 알바를 하는 거라지 뭐야.”
“다리 위에서 무슨 알바를 해요?”
“용돈이 부족한 여학생들이 매일 그 다리 위로 몰려와서 화장을 곱게 하고 손님을 기다린다는 거야.”
“손님을 기다리다니요?”
“거기 서서 지나가는 남자들만 보면 눈웃음을 치면서 잠깐 같이 잠을 잘 생각이 없느냐고 꼬시는 거라지 뭐야, 글쎄. 허헛참, 억이 막혀서…….”
아내는 너무 기가 차서 말도 안 나온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물었다.
“아니 뭐에요? 말도 안 돼. 그럼 학교에서는 그런 걸 단속하지 않고 무얼 하고 있는 거예요?”
“글세, 누가 아니래. 학교에서도 아마 그런 걸 알면서도 어느 정도 묵인해 주는 모양이야. 려과담배와 라이터는 웬만한 여학생들은 책가방에 다 가지고 다닌다더군.”
“어머나! 무슨 나라가 그래요? 단속을 하고 말려도 시원치 않은 판에……. 그 나라 이제 보니까 성에 대한 관념이 아주 문란하고 뒤떨어진 나라로군요.”
아내의 표정이 못마땅하다는 듯 몹시 일그러지고 있었다. 그런 이야기는 영 듣지 않은 것만 못하고 찝찝하기도 하였다. 그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밤은 점점 깊어가고 있었다.(*)
① 기가 막히다 ② 파악하다 ③ 나들이옷 ④ 계집아이 ⑤ 권련 ⑥ 필터담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