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의 비극, 그리고 달라진 언어의 비극]
일요일 오후였다.
성길 씨가 오늘따라 자리를 못 잡고 안절부절을 못하고 있었다. 종일 방구석에 틀어박혀서 TV를 보다가 흥미가 없으면 책을 보기도 하다가 너무 따분하고 싫증이 난 모양이다. 하긴 토요일인 어제부터 계속 집안에서만 틀어박혀 지내다 보니 몸이 쑤실 만도 했을 것이다.
전 같으면 휴일이면 가끔 친구들을 만나 술도 마시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던 성길 씨였다. 그러나 지금은 어림도 없는 일이다.
그놈의 코로 나와인지 입으로 나와인지 때문에 그럴 수도 없다. 벌써 여러 달 동안 휴일마다 방콕을 하다 보니 그럴 만도 했다.
“집에 있기가 그렇게 답답해서 그래요?”
아내가 그런 성길 씨의 눈치를 알아차리고 성길 씨를 향해 입을 열었다.
“아암, 힘들고말고. 이거 온몸이 ①그닐그닐해서 어디 견딜 수가 있어야지.”
“으이그, 지금 당신만 그런 게 아니라 요즈음은 다들 그렇게 어렵고 힘들게 살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딴생각하지 말고 꾹 참고 견디어보도록 해요.”
“그걸 누가 몰라서 그래? 너무 답답하니까 그렇지. 그나저나 이럴 때 ②가시집이라도 있었다면 바람도 쐴 겸 얼른 다녀오면 기분이라도 전환이 될 텐데 말이야. 나한테는 당초부터 가시집이 없었으니 그럴 수도 없고, 그거 차암…….”
성길 씨의 아내는 원래 어렸을 때부터 고아였다. 그래서 이런저런 힘든 고생을 다해 가면서 살다가 그나마 운이 좋아 성실한 성길 씨와 눈이 맞아 같이 살게 된 것이다.
운이 좋은 건 성길 씨도 마찬가지였다. 탈북한 뒤로 아는 사람 하나 없이 낯선 땅에서 혼자 외롭고 힘들게 지내다가 아내를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성길 씨의 푸념 섞인 말에 아내의 표정이 금방 어두워지고 말았다.
“또 쓸데없는 소리. 그런 얘기는 갑자기 왜 또 꺼내고 그래요? 가령 가시집이 있다 해도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어딜 가나 자유롭지 못하고 위험하잖아요.”
“아, 미안, 미안……. 내가 주책없이 나도 모르게 공연한 말을 꺼내고 말았네. 그건 그렇고 말이야. 이렇게 시간이 많을 때 당신과 같이 ③갈음을 해보고 싶어서 그랬지.
당신 만날 돈을 한푼이라도 아끼느라고 ④지은옷만 걸치고 지내고 있잖아. 그러니까 이렇게 시간이 날 때 당신 ⑤동강옷이나 한 벌 맞춰서 쭉 빼입고 나하고 같이 거리로 나간다면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다시 한번 더 쳐다보게 될걸. 당신의 얼굴이고 몸매며 워낙 너무 아름답고 예뻐서 말이야. 허허허…….”
성실 씨의 능청에 어두워졌던 아내의 표정이 금방 밝아지고 말았다. 그래서 약간 눈을 흘기며 다시 입을 열었다.
“에이그, 말은 청산유수지. 당신 그럴만한 여유가 있기나 하고요? 만날 돈이 없어서 죽는 소리는 혼자 다하면서……. 이제 헛소리 좀 그만하고 정 할 일이 없으면 낮잠이나 한번 자보도록 해요.”
“하하하, 누가 아니래. 우리도 어서 ⑥동거살이 만큼은 얼른 벗어나야 기를 좀 펴고 살 수 있을 텐데 말이야. 허허허…….”
오늘따라 연신 너털웃음을 흘리고 있는 성길 씨의 웃음이 왠지 쓸쓸하고 기운이 없어 보였다.( *)
① 근질근질하다 ② 처가 ③ 나들이 ④ 기성복 ⑤ 투피스 ⑥ 셋방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