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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나무 Aug 23. 2020

몹시 존경스러운 사람들②

[가난한 화가 지망생들의 이야기]


‘어머니의 힘은 위대하다’란 말이 있다.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아내의 힘도 이에 못지 않게 위대하고 거룩했던 이야기 한 토막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    

             



가난한 화가의 아내 이야기     

  

그 옛날 어렸을 때부터 화가를 꿈꾸어 온 가난한 젊은이 한 사람이 있었다. 꿈만 꾸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두문불출하고 오직 그림을 그리는 일에 묻혀 살아가고 있었다.      


젊은이는 어느덧 나이가 들어 결혼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결혼은 했지만 가난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겨우 남의 집의 방 하나를 얻어 사글세를 살아가게 되었다.


남편은 직업도 없었다. 그래서 밤과 낮을 가라지 않고 여전히 그림 그리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남의 집 좁은 방에 살림살이를 들여놓고 그림을 그린다는 일은 마음처럼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내는 그나마 다행히 재봉질에 솜씨가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아내 역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재봉질을 하면서 생활비를 벌게 되었다. 비좁은 방 하나에서 한쪽에서는 그림을 그리고 또 한쪽에서는 재봉질을 하면서 살아가는 일 또한 생각처럼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      


그들에게 현재 가장 큰 어려움은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넓은 방을 하나 얻어서 조금이라도 편하게 각자의 일을 할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 외엔 없었다. 그래도 아내는 그 어떤 불평도 없었다.


아니 불편은커녕, 어떻게 하면 남편이 조금이라도 그림을 편하게 그릴 수 있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하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앞으로 더욱 재봉틀을 열심히 돌려야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 뒤부터 재봉틀은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더욱 불이 날 정도로 빨리 돌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먹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말 그대로 목구멍이  포도청이었다.



그렇게 몇 년 뒤, 생활비에서 조금씩 남은 돈을 열심히 저축한 결과 마침내 방이 두 개가 있는 집을 얻게 되었다. 방 하나를 완전히 화실로 정해 놓고 남편이 마음껏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해주고 싶은 아내의 배려였다. 그들은 각자 다른 방에서 한 사람은 그림을, 그리고 다른 방에서는 재봉틀이 쉬지 않고 돌아가게 되었다.  

      

그러나 말이 쉽지 그들의 생활은 너무나 힘겹고 비참하기 짝이 없었다. 남편은 유화를 그리는 사람이었다. 수시로 그림을 그릴 물감이나 재료들을 구입해야 했다. 그리고 다달이  방세도 지불해야 했다. 그야말로 먹을 것을 줄이고 입을 것을 줄여가며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야만 했다.      


그러던 어느 해, 남편은 마침내 처음으로 전국 미술대전에 자신이 그린 그림을 출품하게 되었다. 결과는 실패였다. 안타깝게도 그렇게 정성껏 심혈을 기울여가면서 혼신을 다해 그린  그림이 입선에도 들지 못했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날 너무 낙심한 남편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내에게 고백했다. 그동안 당신만 너무 고생을 시켜서 미안하다며 이제 그림을 포기하고 하다못해 막노동이라도 해서 생활비를 같이 벌어야 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남편의 말을 들은 아내는 펄쩍 뛰며 절대로 그건 안 된다고 만류했다. 이제 겨우 시작인데 벌써 그만두면 그동안 열심히 그림을 그린 보람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느냐며 적극적으로 말렸다.


그리고 난 당신이 그림을 그리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이 얼마나 행복하게 느끼고 있늘 줄 아느냐며 난 더 이상 아무것도 바라는 게 없으며 오직 당신이 그림에 대한 꿈이 이루어지는 그 날까지 옆에서 지켜보고 싶다고 격려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남편은 진심으로 격려해주는 말을 듣고 눈물을 펑펑 흘렸다. 이 세상에 오직 아내밖에 없었다. 그런 아내가 곁에 있기에 하마터면 그림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남편은 다시 힘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그림을 그리는 일에 더욱 몰두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날부터 다시 한쪽방에서는 그림을, 그리고 또 한쪽 방에서는 재봉틀 소리가 좀처럼 멈출 줄을 몰랐다.   

   

그리고 해마다 열리는 미술 대전에 출품하곤 했으나 번번이 쓰라린 낙선의 패배를 맛보게 되었다. 그렇게 힘든 나날을 보내는 동안 벌써 이사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그런 힘겨운 와중에도 한 명인지 두 명인지 기억이 뚜렷하지는 않지만, 아기까지 낳아 정성껏 기르고 있었지만 절대로 일을 쉴 수는 없었다. 그러자 생활은 더욱 힘겨워질 수밖에 없었다.       

    

이에 남편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다시 아내에게 막노동이라도 하러 나가겠다는 결심을 말하게 되었다. 아내에게 그런 결심을 말하게 된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아내는 울며 매달렸다.


제발 그마두지 말고 당신이 하고 싶은 일을 계속하라고……. 그리고 꿈을 이루건 말건 당신이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요, 즐거움이라고…….      


그러던 어느 해, 남편은 마침내 전국미술대전에서 드디어 특선을 수상하는 영광을 얻게 되었다. 이 얼마나 몽매에도 이루고 싶었던 꿈이었으랴. 그날 아내도 울고 남편도 서로 껴안고 마음껏 기쁨의 눈물을 흘리게 되었다.


그 기쁨과 환희란 당사자가 아니면 감히 그 누구도 짐작조차 못하리라. 특선의 영광을 누리기까지 꼭 30년이 걸렸다고 한다.  말이 쉬워 30년이지 어디 30년이 쉬운 일인가!   

 

이 세상에 그 정도로 남편에게 헌신할 수 있는 아내가 과연 얼마나 있을까! 그야말로 아내의 헌신의 힘은 위대했던 것이다.( * )       



가난한 화가 이야기           


이 이야기 역시 아주 오래전, 가난한 화가의 안타깝고도 가슴 아픈 이야기이다.      


서울신문사인가 어딘지 확실한 기억은 나지 않는다. 어쨌든 태평로에 있는 어느 건물에서 미술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그 전시회에서는 전국 각지에서 화가를 꿈꾸는 아마추어 화가들이 심혈을 기울여 그린 그림들이 전시되고 있었다.      


마침내 미술 전문가들로 구성된 심사위원들이 벽에 게시된 그림들을 하나하나 살피고 다니며 심사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건 또 무슨 이변이란 말인가?     


벽에 게시된 그림들 중에 한 작품이 예리한 칼로 열 십자로 보기 싫게 찢겨진 그림이 전시되어 있는 게 아닌가! 그 역시 유화였다. 그러기에 화가들의 시선이 그 찢겨진 그림으로 더욱 집중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그림이 결국 특선이란 딱지가 붙게 되었다.   

   

칼로 예리하게 찢겨진 그림을 게시하다니 그 누구도 그 사연을 쉼게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사연을 나중에 듣고 보니 그렇게 가슴이 아플 수가 없었다.


그 그림을 그린 주인공은 역시  화가를 지망하는 가난한 젊은이였다. 그러나 없는 살림살이에서도 항상 그림을 열심히 그려왔다. 그리고 이번에 출품할 그림을 모두 완성해 놓고 출품을 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그만 뜻하지 않은 어려움이 생기고 말았다. 출품을 하기 위해 부모님께 출품비를 요구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평소에 자식이 그림 그리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부모는 돈이 어디 있느냐고 거절하고 말았다.


 아마 그동안 부모님들도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살림에 자식이 그림을 그릴 때마다 재료비를 달라는 일에 많이 지쳤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의 아들의 친구들이 출품 마감일이 촉박한데도 연락이 없어서 궁금한 마음에 그 젊은이의 집을 방문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이미 싸늘한 주검이 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모든 것을 포기한 아들이 칼로 그림들 찢은 다음 안타깝게도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것이었다.  

    

친구들은 곧 자신들의 주머니에 있던 용돈들을 모야 출품비를 마련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그 찢어진 그림을 그대로 출품하게 되었던 것이다. 참으로 안타깝고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는 일이었다. ( * )  

         


* 위의 두 가지 이야기는 모두 오래전, 신문에 실렸던 기사를 읽고 기억이 나는 대로 다시 옮겨 적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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