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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나무 Aug 23. 2020

몹시 존경스러운 사람들①

[‘시간이 없어서’ 혹은 ‘이 나이에’란 말은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이 세상에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존경스럽고 대단한 사람들이 많이 살아가고 있다반드시 세계적으로 명성이 드높은 역사적인 위인만이 대단하고 존경스러운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위인이란 훌륭한 업적을 이루어낸 뛰어난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훌륭한 업적이란 그가 이루어낸 업적으로 인해 세계의 인류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들이라 하겠다그리고 국가를 위해 자신의 몸을 몸소 희생한 인물들도 여기에 포함된다     


잠시 고개를 돌려 가까운 이웃을 살펴보면비록 이름은 크게 알려지지는 않았지만세계적으로 이름을 크게 빛내고 있는 그 어느 위인들보다 대단한 사람들을 우리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난 그런 이웃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 이야기의 주인공들을 진심으로 부러워하기도 하고 존경한다물론 세계적으로 명성을 크게 떨친 위인들도 존경스럽지만어쩌면 개인적으로 자신의 꿈을 위해 부단히 노력한 그런 인물들이 더욱 존경스럽기도 하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며 또한 그분들의 생활 태도를 꼭 본받고 싶기도 하지만 늘 어림도 없는 일이며 마음뿐이다.     


그런 분들의 이야기는 영화나 소설을 보고 감동을 하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게 나에게 큰 감동을 일으켜 주곤 한다그리고 내 가슴에 커다란 울림을 안겨주기도 한다이건 어디까지나 소설이나 영화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허구가 아닌 사실적인 실화이기에 더욱 그런 큰 울림을 주게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기도 한다.     

   

이에 그동안 내가 두고두고 잊지 못하고 있는 그 옛날의 실화 몇 가지를 소개해 보고자 한다이 이야기는 결코 아무 누구에게나 잠깐 들어서 알게 된 그저 그렇고 그런 시시한 이야기가 아니다   

  

나 역시 신문에 실린 기사를 보았거나 실제로 나와 어느 정도 조금 친분이 있는 사람들의 실화이기에 더욱 그 감동과 값어치가 높고 빛나는 이야기가 아닐까 한다.           


  

첫 번째 이야기      


아주 오래전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혼부부가 있었다신혼이라고는 하지만 여유가 있어서 따로 살림집을 차린 것도 아니었다엄격한 시부모님을 모시고 한 지붕 밑에서 네 식구가 같이 살게 된 것이다.       


이 가정 역시 살아가는 방법은 여느 가정과 크게 다르지 않은 지극히 평범한 가정이었다넉넉지 않은 가정 형편으로 인해 부부가 모두 직장에 나가며 생활비를 마련해야만 했다그러기에 아내는 늘 종종걸음으로 바쁜 일상을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아침이면 아무리 피곤해도 다른 식구들보다 일찍 일어나서 아침 식사 준비를 해야 했다그리고 저녁때 직장에서 돌아오는 길에는 으레 반찬거리를 준비하기 위해 시장에 들러야 했으며집에 오자마자 부지런히 저녁밥을 지어 시부모님과 남편의 뒷바라지를 해야 했다     


그렇다고 휴일이라고 해서 마음 놓고 편히 쉬는 것도 아니었다오히려 그런 날아 더 바빴다밀린 빨래며 청소 등을 하다 보면 휴일이란 시간은 더 빨리 바쁘게 지나가곤 하였다.      

 

이미 비슷한 경험을 해본 분들은 능히 짐작을 하고도 남음이 있겠지만그 밖에도 알게 모르게 시부모님의 눈치외 비위를 맞추어 가면서 이런저런 자질구레한 일들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그런데 그렇게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아내에게는 오래전부터 꼭 이루고 싶은 소박한 꿈 한 가지를 가슴에 간직하고 있었다바로 글을 마음껏 쓰고 싶은 것이 그의 가장 큰 꿈이었다.


 그래서 어쩌다 틈을 내어 작은 쪽상을 펴놓고 원고지에 글을 쓰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시부모님들의 눈치는 고울 수가 없었다여자가 글을 써서 무얼 어떻게 하겠느냐는 봉건적인 사상이 몸 깊숙이 젖어 있기 때문이었다.

 

요즈음에는 글을 쓸 때 대부분 컴퓨터나 노트북이 있어서 어디서나 시간만 나면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지만그때만 해도 책상과 원고지 그리고 필기도구를 갖추어야 했고반드시 글을 쓸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어 있어야만 글을 쓰는 일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직장 다니랴살림하랴 가뜩이나 바쁜데 왜 괜히 쓸데없는 일에 시간 낭비를 하고 있느냐고 핀잔 아닌 핀잔을 받곤 하는 것이었다      

    

여자가 살림이나 잘 하고 직장이나 충실하게 잘 다니면 그만이지 건방지게 그까짓 글을 써서 뭘 하겠다는 거냐괜히 궁상 그만 떨고 네 할 일이나 잘해.”      


시부모님에게 그런 소리를 몇 번 듣게 된 아내는 결국 글을 쓰는 일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그리고 몇 날 며칠을 고민 끝에 마침내 편안히 마음 놓고 글을 쓸 수 있는 특별한 묘안을 찾아내게 되었다     


그 특별한 방법이란 식구들의 눈을 피해 글을 쓰면 되겠다는 생각이었다식구들의 눈을 피하려면 식구들이 모두 잠이 든 사이에 글을 쓰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날부터 아내는 곧 그 계획을 실천에 옮기기 시작했다저녁밥을 되도록 일찍 해결한 다음 남편과 같이 침실로 들어가서 잠을 청하게 되었다그리고 시부모님들이 거실에 앉아 늦게까지 TV 시청을 하는데 시청이 끝나기만을 기다리게 되었다.


그리고 거실에서 TV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이미 잠이 든 남편도 모르게 살그머니 소리를 죽여가며 거실로 나왔다그리고 식탁에 앉아 마음껏 글을 쓸 수 있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아내는 몹시 기뻤다직장 생활하랴집에 와서도 동분서주하며 시부모 봉양하랴눈코 뜰 사이 없이 몹시 바쁜 일과에 지쳐 몹시 피곤한 몸이었지만이런 좋은 기회를 마련하게 되었다는 생각에 피곤할 줄도 몰랐다모두가 잠든 사이에 마음껏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는 이런 좋은 기회를 얻게 되었다는 것이 얼마나 기쁘고 가슴 박찬 일인지 모를 일이었다.     


아내는 그 뒤부터 피곤할 줄도 모르고 매일 거실에 홀로 앉아 원고지와 씨름을 하는 날이 계속되었다물론 어쩌다 시부모님들에게 그 광경을 들킨 적도 있었지만시부모님들 역시 그 후로는 못마땅하긴 했지만 더 이상 뭐라고 나무라지도 않았다아마 속으로는 아무리 말려도 듣지 않는 사람이라며 구제 불능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누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게 되면 아무리 피곤해도 그리고 아무리 힘이 들어도 피곤하고 힘든 줄을 모르게 되는 것 같다아내는 그렇게 매일 밤마다 몇 시간씩 원고를 썼는지는 모른다


그가 쓰는 글은 장편 소설이었다그러나 그렇게 몇 년째 열심히 원고를 쓴 결과 마침내 큰 결실을 맺게 되었다. 마침내 여성동아 장편 소설에 당선의 기쁨과 영광을 누리게 된 것이다     


나는 여기서 아내가 가령 장편 소설에 당선이 되지 않았다 해도 얼마든지 존경스럽고 대단한 분이라고 여겨진다난 항상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시하는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다가령 당선이 되지 않았다 해도 어떤 장애물과 어려움이 있다 해도 좌절하거나 굽히지 않고 그런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노력그리고 당선이 되든 말든 밤잠을 아껴가며 썼다는 그 정신이 바로 존경스럽고 대단해서 본받고 싶었던 것이다  


        

두 번째 이야기      


오래전충청도에 일찍이 남편을 여의고 딸 하나와 같이 살아가는 모녀가 있었다남편 없이 딸 하나를 기르고 있는 어머니의 어려움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으리라그리고 힘겨웠던 나날들의 자세한 자초지종을 들어보자 않아도 말로 다 표현할 길이 없었을 것이다.     

   

어머니는 그렇게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딸에 대한 정성 어린 보살핌과 좀더 잘 가르쳐보려는 학구열만큼은 대단했던 것 같다그래서 어머니의 바람대로 딸의 학업 성적은 늘 우수했다그리고 어느새 어엿한 고등학생이 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우수한 딸의 성적을 말하려는 게 아니다어머니 역시 어머니 스스로의 학구열이 대단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어머니는 그렇게 어렵고 힘든 와중에도 늘 공부를 하고 싶다는 욕망에 놀랍게도 검정고시로 중학교 과정을 마치게 되었다말로만 쉽지 이게 어디 웬만한 사람들이라면 가능한 일이었겠는가아마 먹고 살기도 빠듯한 세상에 공부는 무슨 공부냐며 어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어머니의 학구열은 거기서 만족하지 않았다다시 고등학교 졸업 검정고시를 준비를 서둘러야 했다그런데 그 어머니에게 뜻하지 않은 큰 어려움이 생겼다아무리 혼자 집에서 공부를 열심히 하려고 해도 너무 어려워서 좀처럼 이해가 가지 않아 애를 먹었다  

   

생각다 못한 어머니는 문득 딸이 다니는 학교 생각이 났다자신도 딸처럼 학교에 다니며 공부를 하면 오죽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그래서 바로 학교에 찾아가서 사정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물론 학교에서는 한마디로 거절이었다어머니는 좀 부끄럽고 무안하기도 하였다그러나 이대로 멈출 수는 없었다그래서 몇 번이고 학교에 다시 가서 꼭 공부를 하고 싶다고 조르고 매달렸다     


그 결과 학교 당국이 결국 어머니에게 지고 말았다그런 예는 전혀 없는 일이었지만 딸과 같은 반에 청강생으로 교육을 받아보라고 배려를 해준 것이었다어머니는 뛸 듯이 기뻤다그래서 눈물까지 흘려가면서 고맙다는 인사를 몇 번이고 하게 되었다     


그다음 날부터 어머니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딸과 함께 등교하게 되었다그러나 어머니도 그렇고 딸도 그렇지만 좀 부끄럽고 어색하다는 생각에 친구들을 보기가 창피한 마음이 들기도 하였다     


학교에서는 딸과 같은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하게 되었다어머니는 선생님의 설명을 잘 알아듣지 못했을 때마다 딸에게 묻는 일이 잦았다반 친구들이 그럴 때마다 힐끗힐끗 쳐다보며 웃는 바람에 딸은 더욱 부끄럽고 수치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나중에 결과는 그게 아니었다딸은 물론이지만 딸의 친구들도 항상 어머니가 어려워하는 부분이 있으면 친절하게 다가와서 설명을 해주곤 하였다선생님들도 그 연세에 이 어려운 공부가 머리에 들어가느냐고 자세히 더 설명도 해주고 배려해 주기도 하였다     


그 뒤부터 딸은 물론이지만 친구들 모두가 어머니가 이해를 못하는 것은 모두 솔선수범하여 가르쳐 주려고 노력하였다이젠 딸로 친구들고 어머니도 모두가 다 어색하고 부끄럽다는 생각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되었다

  

숙제도 마찬가지였다이제는 어머니 혼자 끙끔 매며 숙제를 하는 것이 아니었다딸과 같이 앉아서 딸과 함께 숙제를 하다 보니 숙제를 하기도 훨씬 쉽고 수월했다.   

      

그러던 중 난 어쩌다 이 어머니와 전화통화를 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50대 초반의 어머니의 목소리는 50대로 들리지 않았다몹시 밝으면서도 시종여일 웃음 띈 목소리로 대화를 하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은 마치 2, 30대의 젊은 여성의 목소리로 들렸다     


그 어머니는 여전히 밝게 웃는 목소리그리고 상냥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지금 우리 딸과 함께 학교에 등교해서 같은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하고 있는 그 시간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고……


지금쯤 그 어머니는 어떻게 되었을까그 어머니의 밝고 상냥하기 그지없었던  고운 음성이 아직도 가끔 내 귓가에 생생하게 들려오는 것만 같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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